경제일반
“상사 눈치 보기 싫어”…자유로운 N잡러 택한다 [긱워커 870만, 일터 기본법 파장은]①
- 초단기 근로자 긱워커 성장세 지속
경기불황 인건비 부담…기업도 긍정적
[이코노미스트 이지완 기자] #서울 동대문구에 거주 중인 이모씨(37·여)는 N잡러(복수의 직업을 가진 사람)다. 그는 “물류기업을 다니다 딱딱한 조직 문화가 싫어 퇴사했다. 지금은 낮에 시간 강사를 하고 밤에는 자전거로 배달을 한다.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직장에 다닐 때와 달리 스케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디자이너 박모씨(39)는 야간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 박씨는 “아침에는 플랫폼을 통해 수주 받은 콘텐츠 제작을 하고 밤에는 대리기사로 일한다”며 “일감이 없을 때는 도보로 배달도 하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긱워커’(Gig Worker·초단기 근로자)가 노동 시장에 뿌리를 내렸다. 전통적인 장기 고용 관계가 아닌 단기·프로젝트 단위의 업무를 맡아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다. 이는 노동자에게 자유를, 기업에는 효율화를 제공한다. 이들 모두에게 윈-윈(Win-Win)인 셈이다.
원하는 만큼 일하고 돈 번다
안정적인 고용만을 추구하던 시대는 끝났다. 고용 안전성이나 정기적인 복지 혜택보다 ‘시간 주권’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긱워커’라고 부른다. 이들은 기업 및 산업 현장의 필요에 따라 단기 계약을 맺고 일하는 노동자다. 짧게는 몇 시간 단위로, 길게는 며칠 짜리 계약을 체결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차량 공유 서비스 운전자와 배달 라이더 등 1인 계약자도 포함된다. 배달 등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서비스가 확산함에 따라 관련 시장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긱워커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정부기관의 통계 자료로 확인 가능하다. 국세청에 따르면 인적용역 사업자(근로계약이 아닌 용역계약으로 형성된 관계) 규모는 2020년 704만명에서 2024년 869만명으로 165만명(23.4%) 늘었다.
관련 기업의 이용자 수 증가도 긱워커 시장의 성장세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취업정보 제공 기업 인크루트가 운영하는 긱워커 플랫폼 뉴워커의 2024년 기준 일일 활성 이용자수(DAU)는 전년 대비 172.3% 늘었다. 같은 기간 기업 의뢰건수는 216% 증가했다.
올해도 긱워커를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영전략 컨설팅 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택스테크 스타트업 자비스앤빌런즈는 올해 긱워커 채용 건수가 5억5000건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2022년 긱워커 연간 채용 건수가 1억2000만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약 358% 성장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정규직 채용 대신 필요에 따라 전문 기술을 보유한 인력을 단기 채용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들은 긱 이코노미 시장이 2030년 전후로 1조8000억달러에서 2조5000억달러를 상회하는 거대 시장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채용 리스크 없고 저비용·유연성 확보
기업들이 긱워커를 고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부담’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기업은 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하기 위해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근로자 급여의 약 10% 수준인 4대 보험료를 의무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또한 주 15시간 이상 1년 이상 근무한 정규직 근로자에게 1년 기준 급여 1개월치를 퇴직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은 매월 급여의 12분의 1을 퇴직급여 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채용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국내 중견기업 채용 담당자는 “채용 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부적응”이라며 “스펙은 모두 훌륭한데, 조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문제를 일으키는 사례가 생각보다 많다. 이는 조직 전체의 분위기를 훼손할 수 있다. 기업들이 인성검사를 적극 도입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의 긱워커 선호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기 불황으로 인해 기업들이 정규직 노동자 고용을 꺼리고 있어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2026년 기업 경영 전망 조사’에 따르면 30인 이상 기업 229곳 가운데 31.4%는 ‘긴축경영’에 나설 계획이라고 답했다. 기업 규모가 300인 이상인 대기업의 경우는 41%, 300인 미만은 기업은 26.1%가 긴축경영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긴축경영의 구체적인 계획으로는 61.1%가 인력 운용 합리화로 가장 많았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긱워커의 증가는 디지털 플랫폼 확산과 유연한 근무 선호 그리고 추가 소득 수요 확대가 함께 작용한 결과”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경기와 수요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을 고정비보다 변동비로 관리하려는 유인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들은 필요한 인력을 필요한 시점에 빠르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충분히 긍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종우 남서울대 교수는 “글로벌 정세 불안으로 인해 현재 경기 상황이 불투명하다”며 “저성장세가 이어짐에 따라 기업들은 정직원 고용보다 단기 계약 형태의 고용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인력 대체 요인과 정부의 노동법 강화 기조 등이 맞물리면서 기업들은 정규직 고용 부담이 더 커졌다. 이런 흐름이라면 단기 고용 노동자를 선호하는 추세가 계속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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