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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강국 건설로 기수를 돌리다

문화강국 건설로 기수를 돌리다

중국 항저우 수상가무공연 ‘인상서호’.

10월 15일 중국 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 회의(이하 중전회)가 개막됐다. 후진타오 주석을 수반으로 하는 4세대 지도부가 가진 마지막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 회의였다. 당 중앙위원회 회의는 사실상 중국 최고 정책결정 기구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언제나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다. 지난해 5중전회에서는 앞으로 5년 간 중국 경제의 비전과 발전 계획을 제시한 12차 5개년 발전 계획을 입안해 중국 안팎의 관심을 모았다. 이번 6중전회에서는 ‘문화체제 개혁의 심화 및 사회주의 문화 대발전과 번영 촉진에 관한 결정’을 통과시켰다.

현재 중국은 좀처럼 잡히지 않는 물가, 지속적인 긴축정책에 따른 중소기업 도산, 위안화 절상에 따른 수출 감소 등 각종 경제 현안이 산적해 있다. 이들 문제의 해결이 시급함에도 당 지도부는 문화체제의 개혁과 문화산업의 육성을 이번 회의의 핵심 의제로 삼았다. 일부 국민들은 경제현안 해결이 우선이며, 문화는 그 다음이라며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중국 사회의 안정과 장기 발전을 위해서는 더 이상 문화라는 주제를 외면할 수 없음을 중국 지도부는 잘 알고 있다. 지난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 반열에 올라선 데 이어 이제는 문화강국 건설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도 중국의 문화역량과 시민의식을 비롯한 소프트파워의 육성 방안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이뤄졌다. 중앙위원들은 세계가 대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국력에서 차지하는 문화의 비중 역시 커지고 있다며 국가의 문화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고 국제사회에서 중화 문화의 영향력을 키우는 게 당면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중국 문화산업의 최근 5년 간 성장률은 16~20% 정도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중국 정부가 문화 쪽으로 눈을 돌리기로 한 만큼 영화, 애니메이션, TV 드라마, 출판, 광고 등 문화산업 전반에 대해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 10년은 중국 문화산업 발전의 황금기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흘러나온다. 중국의 궈진증권은 2015년 중국 문화산업 시장규모는 2조8500억 위안으로 2009년의 3.4배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문화산업 규모 2015년 2조8500억 위안중국은 2009년 ‘문화산업 진흥계획’을 마련해 문화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에 포함시킨 데 이어 12차 5개년 발전 계획에서도 국민경제 지주산업으로 문화산업의 전체적인 경쟁력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문화산업이 국가가 지정한 지주산업에 포함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점 육성 대상에는 문화 창작, 영상물 제작, 출판, 인쇄, 오락 연출, 디지털 콘텐트, 애니메이션 등 7개가 선정됐다. 정부는 각 분야별 대표기업 육성과 중소기업 지원을 통해 산업 영역과 분야를 초월해 전체 산업 규모와 기술 수준을 향상시킨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현재 문화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2.5%)를 5년 안에 5~6%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자금 융자, 증시 상장, 세제 우대, 신용대출, 수출 지원 등 각 분야 별로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자금 지원을 위해 대규모 문화산업 발전기금을 마련하는 한편, 각종 세금감면 혜택도 마련하기로 했다. 각종 복권 판매로 거둬들이는 수익금을 문화산업에 지원하는 비중도 대폭 높이기로 했다. 해외시장 공연과 해외 문화콘텐트 기업 인수 등 해외시장 진출에는 정부가 나서서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는 방침이다.

베이징에서 6중전회가 개최된 10월 15일 항저우에서는 ‘중국-대만 문화산업협력 포럼’이 열렸다. 포럼에 참석한 칭화대학 국가문화산업연구센터 슝청위 주임은 ‘항저우가 중국 문화산업의 메카’라며 항저우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항저우시 당 부서기 예밍 역시 “다른 대도시에는 반드시 있는 중화학공업 단지가 항저우에는 없다. 대신 문화산업 발전이 가장 빠른 도시 중 하나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항저우는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다. 예로부터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만큼 중국인들은 쑤저우와 항저우를 가장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친다. 특히 항저우에 대한 애정은 절대적이다. 은퇴 후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고 싶은 지역으로 너나없이 항저우를 꼽을 정도다.

항저우의 대표적인 명소가 바로 서호다. 서호는 중국 4대 미인 중 하나인 월나라 미인 서시가 태어난 지역이자, 시성(詩聖) 이태백이 달을 노래하고 아름다움을 찬양한 곳이다. 올 6월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항저우에는 서호만 유명한 게 아니다. 무엇보다 ‘인상서호’라는 공연을 빼놓을 수 없다. 항저우에 가서 서호를 보지 않으면 항저우에 다녀갔다고 할 수 없고, 서호에 가서 ‘인상서호’를 보지 않으면 서호에 다녀왔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장이모우 연출의 인상서호 유명‘인상서호’는 서호의 산수화 같은 풍경과 고도 항저우에 전해지는 전설을 가미한 블록버스터급 공연이다. 메인 테마는 서호에 전설로 내려오는 백사(白蛇)와 총각의 사랑 이야기이다. 연출자는 중국 영화계의 거장 장이모우 감독이다. 계림 양삭에서 공연되는 ‘인상 유삼저’의 성공에 힘입어 그가 두 번째로 연출한 작품이 ‘인상서호’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도 그랬듯 장이모우 특유의 스토리를 풀어내는 상상력과 그것을 자연 속에 체화하는 능력은 경이로울 따름이다. 넓은 호수가 무대가 되고, 호수 뒤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산이 배경이 된다.

배경으로 보면 한 폭의 잘 그린 수채화가 따로 없다. 자연과 인간, 빛과 소리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조화를 이루는 공연도 환상적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기발함과 웅장한 스케일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인상서호’는 2007년 첫 선을 보인 이후 연간 50만 명 이상이 찾는 메가 히트작이다. ‘인상 유삼저’와 함께 연간 300억원이 넘는 이익을 낸다. 항저우는 ‘인상서호’ 공연 덕에 그저그런 관광지를 벗어났다. ‘인상서호’의 의미는 단순히 관광명소 하나가 추가된 데 그치지 않는다. 기나긴 역사와 전설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에 현대적인 테크놀로지를 결합해 새로운 문화콘텐트 작품으로 탈바꿈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한국 역시 유구한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인상서호’ 같은 작품이 없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장소야 경주 보문단지도 좋고, 서울대공원 저수지나 일산 호수공원도 가능하다. 게다가 ‘춘향전’ 같은 고전소설도 있고, ‘견우와 직녀’, ‘호동왕자와 평강공주’와 같은 설화, 전설도 많다. 갖춰야 할 요소는 모두 갖췄다. 필요한 건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의 기술과 결합해 미래의 고부가가치 문화 콘텐트 작품으로 재창조하려는 노력이다. ‘인상서호’가 볼거리와 흥행 요소를 모두 갖춘 상품으로 승화한 데는 장이모우 감독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소프트파워의 육성과 발전에는 무엇보다도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에도 하루 빨리 ‘장이모우’와 ‘스티브 잡스’같은 인물이 나타날 수 있도록 정책적 역량을 쏟아 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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