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po] 불 꺼지지 않는 연질캡슐 생산의 메카

발에 덧신을 신고 위생모자를 썼다.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위생모자 밖으로 삐쳐 나와서는 안 된다. 이곳은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알앤피코리아 연질캡슐 공장. 규모는 3529㎡, 의약품 공장과 건강기능식품 1·2공장이 있다.
하루에 450만 연질캡슐 생산연질캡슐은 우루사 등에 쓰이는 말랑말랑한 캡슐이다. 연질캡슐은 내용물인 약성분이 액체상태로 몸에 흡수돼 약효가 확실하고 흡수속도가 빠르다.
약의 유효성분이 젤라틴(소나 돼지 등 동물의 가죽·힘줄·연골에서 뽑아낸 단백질의 일종)으로 감싸져 있기 때문에 공기와 빛, 그리고 수분으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된다. 표면 또한 매끄러워 삼키기 편하다.
마스크를 쓰고 손 소독까지 마친 후 들어간 공장은 바깥보다 따뜻했다. 이 곳의 온도는 24도. 건조하는 곳을 제외하고 습도는 항상 40~50%를 유지한다. 연질캡슐을 만들 땐 온도·습도관리가 중요하다. 연질캡슐 껍질은 온도와 습도에 따라 모양이 불규칙하게 변하는 젤라틴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김지형 알앤피코리아 대표는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지 않으면 연질캡슐 표면에 불량이 생기게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알앤피코리아는 1983년 대웅제약과 미국 알피 쉐라(RP Scherer)의 합작법인으로 출발했다. 알피 쉐라는 1933년 ‘로터리 방식’으로 연질캡슐을 처음 만들었다. 로터리 방식은 두개의 롤러가 맞물리면서 끊임없이 캡슐을 만드는 것이다. 이 방식이 개발되기 전에는 한판 한판 찍어서 만들었다. 두 개의 롤러가 서로 맞물린다. 롤러에는 껍질을 만드는 젤라틴 막이 감겨 있다.
이 사이로 내용물을 주입하면 다시 롤러가 맞물리면서 봉해진다. 이렇게 끊임없이 롤러가 맞물리면서 끊김 없이 자동으로 연질캡슐이 만들어지게 된다. 국내에 로터리 방식이 도입된 것은 1983년 합작법인이 출범한 직후다.
알앤피코리아는 현재 순수 국내기업이다. 1998년 대웅제약이 알피 쉐라 지분을 인수했다. 이 회사의 월 매출은 약 40억원이다. 화
성공장에서는 일일 450만 캡슐이 생산된다. 지난해에는 10억5000만 캡슐을 생산했다. 생산능력만큼 기술력도 좋다. 이 회사는 최근 동물성 원료인 젤라틴이 아닌 해초에서 추출한 식물성 원료로 연질캡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연질캡슐 업체 최초로 1986년 의약품 KGMP(우수의약품제조관리기준) 적격업체 승인도 받았다. 알앤피코리아는 의약품 연질캡슐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알앤피코리아는 연질캡슐 껍질만 만드는 게 아니다. 주로 가루로 들어오는 내용물을 액체상태로 만드는 것도 이 회사의 일이다. 오후 3시경 공장에선 점심식사 후 연질캡슐에 들어가는 내용물의 무게를 재는 작업이 한창이다. 작업자들은 신중하게 흰색 용기를 저울에 올려놨다 내려놨다 하고 있었다. 조용하고 신중한 분위기다. 김 대표는 “의약품은 적은 양이라도 차이가 나면 안 되기 때문에 항상 정확한 유효성분 양이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의약품은 건강식품보다 내용물의 양에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
다음은 본격적으로 연질캡슐을 만들기 위한 공정이다. 껍질을 만드는 탱크에 손을 대보니 뜨끈하다. 탱크 아래쪽 절반까지 뜨거운 물이 감싸며 젤라틴을 녹인다. 탱크 안은 진공 상태다. 기포를 빨아내 균질한 껍질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렇게 녹인 젤라틴을 다른 탱크에 옮겨 색소를 넣으면 원하는 색의 캡슐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우루사에 들어가는 초록색, 좌약에 들어가는 흰색 모두 이 과정에서 색이 결정된다.
이번엔 성형 과정이다. 이 공장에서 연질캡슐을 생산하는 성형기는 총 12대. 이 중 5대는 공장 문을 처음 열 때부터 사용하던 기계다. 내용물 성분이 독특해서 연질캡슐로 찍어내기 어려운 제품, 공기 중 수분을 빨아들이는 의약품 등 독특한 물성을 가진 제품은 지금도 이 기계로 생산한다.

성형기에서는 로터리방식으로 연질캡슐제품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투명한 초록색 연질캡슐이 맞물린 롤러 사이로 톡톡 떨어졌다. 성형기로 만들 수 있는 연질캡슐은 크기·색깔·모양이 다양하다. 지금은 익숙한 투명 연질캡슐은 알앤피코리아가 국내 최초로 만들었다. 이 회사는 연질캡슐의 형태가 변형되거나 서로 달라붙는 점을 개선한 ‘네오젤’이라는 특허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불량률 0.1% 이하성형기에서 막 나온 제품을 만져보니 젤리보다 더 말캉말캉하다. 별도로 건조가 필요한 이유다. 연질캡슐을 찍어내고 남은 껍질은 그물모양 같았다. 실제 이것들은 ‘네트(net)’라고 부른다. 껍질용으로 성형기에 들어가는 젤라틴막 가운데 40%는 네트가 된다. 이렇게 나온 네트들은 다른 업체로 옮겨져 서바이벌 게임장 등에서 사용하는 색소 총알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형태를 갖춘 연질캡슐은 건조기에 넣어 1차로 건조한 후 2차로 자연건조를 한다. 넓은 판에 골고루 펴서 건조한다. 건조장의 습도는 다른 작업장의 절반 정도다. 공장에 갔을 때는 건조가 마무리된 흰색 좌약을 통에 담고 있었다. 건조에 걸리는 시간은 2~3일 정도. 제품에 따라 10일이 걸리기도 한다.
건조장을 빠져 나와 복도를 걷다 보니 엄청난 굉음이 나는 작은 방이 있었다. 석유 냄새가 진동했다. 이 곳에선 건조된 캡슐을 세척한다. 대부분의 내용물이 기름 성분이기 때문에 석유에서 나오는 나프타(원유를 증류해 얻은 중질 가솔린)로 연질캡슐 표면을 세척한다. 세척 후 나프타를 빨아내는 과정에서 큰 소리가 났던 것이다. 이렇게 세척하지 않으면 표면에 기름기가 뭍어 있어 글자나 로고 등을 인쇄하기 어렵다. 생산관리부 김남기 부장은 “레이저 인쇄를 할 경우 잉크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세척을 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했다.
인쇄된 제품을 따라 가보니 여성 작업자들이 육안으로 불량제품을 선별하고 있었다. 연질캡슐은 내용물이 새어 나오지 않아야 한다. 모양이 일그러지거나 휘어지는 등 변형도 없어야 한다. 알앤피코리아의 제품 중 불량률은 0.1% 이하다. 김 부장은 “연질캡슐은 반사율이 높아 다른 형태의 알약과 다르게 기계보다는 사람이 선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작업자들이 선별하는 제품은 분홍색의 여성 호르몬제다.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은 기형아 출산 등의 우려 때문에 여성 호르몬제와 관련된 작업을 할 수 없다. 이후 포장 과정을 거쳐 제품이 완성됐다.
오후 5시가 되자 학교에서나 들을 법 한 종소리가 공장 전체에 울렸다. 하루 작업의 끝을 알리는 소리다. 이 공장은 아침 8시에 일과를 시작해 오후 5시에 마친다. 대부분의 작업자가 하던 일을 정리하느라 바빠 보였다. 하지만 정리하지 않는 곳이 있다. 김 부장은 “성형기를 담당하는 성형팀은 24시간 3교대로 8시간씩 근무한다”고 말했다. 성형기는 중간에 멈추면 다시 세팅하기 위해 2시간 이상 걸린다. 중간에 다른 제품을 만들기 위해 기계를 세척하고 다시 세팅하는 데도 3~4시간이 걸린다. 이 때문에 공장의 불은 밤에도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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