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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폭풍이 지구를 덮치는 날

자기 폭풍이 지구를 덮치는 날



1859년 9월 1일 정오, 영국의 천문학자 리처드 캐링턴은 태양 표면에서 이례적으로 큰 폭발을 관측했다. 여기서 쏟아져 나온 고에너지 입자의 흐름은 18시간 만에 지구에 도착, 지구를 둘러싼 자기장을 뒤흔들었다. 이탓에 일어난 강력한 자기 폭풍은 지구를 휩쓸었다. 유럽과 북미의 모든 전신 시스템이 마비됐고 일부에선 기기 조작자를 감전시켰다. 전신 철탑은 불꽃을 일으켰다. 전보용지들은 저절로 불이 붙었다. 수많은 전신 사무소가 화재에 휩싸였다.


전력선이 유도전류 모으는 안테나 역할일부 전신 시스템은 전원을 차단했는데도 메시지 송수신을 계속하는 것처럼 작동했다. 북극 인근에서만 보이던 오로라, 즉 북극광이 카리브해와 쿠바까지 퍼져나갔다.북미 록키 산맥 위에 생긴 오로라는 너무나 밝아서 금광 광부들이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할 정도였다. 날이 밝은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캐링턴 이벤트’라 불리는 이 사건은 지금껏 기록된 지자기 폭풍 중 가장 위력이 큰 것이다.

지자기 폭풍이란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자기장이 크게 흔들리는 현상을 말한다. 지구 중심부에선 액체 상태의 철과 니켈이 회전하면서 강력한 자기장을 만들고 있다. 이자기장은 남극을 뚫고 나와 지구 전체를 감싼 후 다시 북극을 뚫고 내려간다. 지구를 막처럼 둘러싼 자기권은 외부로부터 지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위험한 것은 태양에서 쏟아져 나오는 고에너지 입자의 흐름인 태양풍이다.

태양풍은 주로 전자와 양성자로 구성된 고속의 입자 빔이다. 태양 표면을 둘러싼 코로나에서 특히 큰 폭발이 일어나면 다량의 입자들이 고속으로 튀어나온다.

폭발의 방향이 지구를 향할 경우가 문제다. 전기를 띤 입자들이 지구를 덮쳐서 만들어낸 지자기 폭풍은 특히 지상에 유도전류를 발생시켜 피해를 끼친다. 앞에서 살펴본 피해사례도 결국 도처에 강력한 전기가 흐른 탓에 생긴 것이다. 문제는 유도전류의 피해가 1859년에 비해 오늘날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점이다.

1989년 3월 13일 일어난 자기폭풍은 북반구 전역에서 화려한 빛의 향연,즉 북극광을 목격하게 했다. 이때 지상에서 발생한 유도전류 때문에 캐나다 퀘벡 주민600만명이 9시간 동안 전기가 끊긴 채 살아야 했다. 정전사태의 재산피해액은 20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앞서 1921년 5월 발생한 지자기 폭풍은 이보다 10배 강력한 지상 유도 전류를 발생시켰다.

2009년 1월 미국 과학아카데미는 ‘심각한 우주기상 사건-사회 경제적 충격에 대한 이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1921년의 지자기 폭풍을 모델로 삼은 보고서는 현대 하이테크 사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 어떤 피해를 입게 되는지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특히 전력이 문제다. 자기 폭풍에 의해 지상에 발생하는 전류는 변압기의 구리 전선을 녹여버릴 수 있다. 곳곳에 뻗어있는 전력선이 지상 유도전류를 모으는 안테나처럼 작용하는 탓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형 변압기 350개가 영구 손상을 입을 위험이 있고 1억3000만 명에게 가는 전력이 끊길 위험이 있다. 몇 시간 내로 수도망이 마비되고, 12~24시간 내로 상하기 쉬운 음식과 약품이 못쓰게 된다. 그 밖에도 냉난방 장치, 하수 처리장, 전화 서비스, 연료 재보급등이 엉망이 된다.

동시에 전파 통신이 두절되고 인공위성이 기능 이상을 일으키며 위치추적시스템(GPS), 내비게이션, 은행 및 금융업무, 대중교통과 수송체계 모두가 큰 피해를 입는다.전파 통신과 GPS는 자기폭풍이 잦아들면 바로 회복될 테지만 다른 문제들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타버린 톤 단위의 변압기를 수리하려면 짧게는 수 주, 길게는 몇 달씩 소요될 것이다. 그에 따른 최대 피해액은 첫 해에만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의 100배 이상이 될 수 있다.

보고서는 “이 같은 사태는 100년 뒤에 일어날 수도 있고 100일 뒤에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남극 얼음층 속의 빙핵을 조사한 결과 1859년과 같은 자기폭풍은 약 500년에 한 번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있다.

하지만 50년만에 한 번씩 일어나는 정도의 폭풍도 인공위성을 구워버리고 전파를 방해하며 지역에서 지역으로 이어지는 정전을 유발할 수 있다. 2003년 발생한 자기폭풍만 해도 항공기들의 북극 항로를 변경하고 핵발전소의 출력을 줄였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변압기들을 손상시켰다.


우주 기상 예보시스템 도입해 대비해야대책은 사회의 인프라를 지자기 교란에 더 잘 견딜 수 있게 설계하는 것과 우주의 기상을 더 잘 예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태양의 고에너지 입자들이 지구에 도달하는 데는 한나절에서 5일 정도가 걸린다. 각종 기기와 위성을 조작하는 사람들은 자기폭풍이 오고 있다는 것을 대비할 수 있다.

선의 연결을 끊고, 취약한 전자기기에 보호장치를 두르고, 핵심 하드웨어의 출력을 낮추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세계기상기구 총회에선 189곳의 회원 기구들이 우주의 기상을 예보하기 위한 국제협조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이 기구의 우주기상 프로그램 책임자인 바버러 라이언은 “우리는 우주 기상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다”며 “예보를 조율하고 다가오는 폭풍에 대한 경보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기상기구는 만국 공통의 경보 규약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구 전역에 영향을 미치는 이슈라면 세계가 단결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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