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공동기획 한국의 리세스 오블리주⑤ - 중소기업 오너는 기부보다 직원 먼저 챙겨야
스물아홉에 상장회사 이사가 됐고 서른아홉에 창업했다. 12년 만에 이 회사를 연 매출액 4000억원을 바라보는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손병준 대표는 “많이 벌었지만 그게 내 재산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1961년 출생, 서울 소재 대학 경영학과 졸업, 대동전자 입사, 기획이사, 1999년 ㈜손성신 설립, 대표이사, 2004년 모베이스 인수·합병, 대표이사
“내가 모은 재산이니 내 것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나의 관리를 받다가 또 누군가에게 흘러가는 거죠. 말하자면 임시로 머무는 정거장인 셈인데 그러니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 생각을 못하죠.”
손병준(52) 모베이스 대표는 “차를 타고 가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한 기부에 관한 기사를 읽고 기부의 창구를 일원화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공동모금회에 총 1억원을 기부했다. 2000만원을 기부한 후 지난해 말 5년간 부은 적금을 타 8000만원을 추가로 냈다. 그는 한 달에 300만원씩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기부를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두 아들에게 본을 보이겠다는 의도도 있다. 그는 자식은 물론 예비 며느리에게도 기부를 권한다고 했다. “입버릇처럼 자식들에게 내 재산의 80%는 기부할 거라고 얘기합니다. 공부는 시키겠지만 자력으로 살아야한다고 했죠. 선진국에 유학을 시켜서 그런지 아이들도 수긍합니다.”
그는 침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봉한학설’을 연구하는 서울대 교수팀에 5년 동안 10억여 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손 대표는 7남매 중 막내다. 일찍 여읜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일본 오사카에서 사업을 하다 해방 후 귀국길에 올랐다. 당시 배를 한 척 사들여 20여 명의 식솔을 이끌고 귀국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생활신조는 “살아가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였다. 신용을 중시했고, 신망이 두터워 마을에서 분쟁이 생기면 중재에 나섰다. 그런 영향을 받아 그도 신용을 금과옥조처럼 지켰다.
편법을 쓰지 않겠다는 그의 신념은 모베이스의 기업문화로 굳어졌다. 그가 10년 전 진출한 중국 시장에서 철수를 고려하는 것도 원칙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칙주의자인 그의 눈에 중국은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였다.
손 대표는 중소기업이 회사 차원에서 하는 기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대기업이라면 몰라도 중소기업 오너는 내 직원을 챙기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서다. “모베이스도 직원의 30%가 현장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합니다.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요. 회사 차원에서 기부할 여유가 있으면 기부금을 내 오너가 생색을 내기보다 연말에 직원들 상여금을 더 주는 게 옳다고 봅니다. 물론 우리회사도 수재의연금 같은 통상적인 기부금은 자주 내죠.”
손 대표는 출신지와 출신학교 따지는 걸 몹시 싫어한다. 그래서 직원 이력서에도 이 두 가지를 적지 못하게 한다. 그는 직원들과 나누는 대화가 재미있다고 말했다. 특히 젊은 직원들은 아는 것도 많고 영악하다고 귀띔했다. 기사에 쓸 사진을 찍느라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방을 둘러보는데 사무실 벽에 ‘나이 오십에 하는 결심’이라는 제목의 글이 붙어 있었다.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끊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답답해도 끝까지 경청하겠습니다. 내가 먼저 일어서거나 화를 내지 않겠습니다. 두 뺨 다는 아니더라도 한쪽 뺨은 먼저 맞겠습니다.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지 않고 ‘이렇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묻겠습니다. 이 다짐을 사원·주재원·임원과의 대화에 적용하겠습니다.” 사진을 찍고 사무실로 돌아온 그는 “이렇게 바뀌려 나름대로 노력하니 직원들이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갤럭시 케이스 생산모베이스의 주력 제품은 휴대전화 케이스다. 액정을 제외한 삼성전자 갤럭시의 플라스틱 몸체를 생산한다. 갤럭시 노트의 S펜도 만든다. 모베이스는 삼성전자와만 거래한다. 2012년 매출액은 약 2500억원. 전년도 매출액(1287억원)의 두 배에 가깝다. 생산량의 80% 이상을 수출한다. 부평·구미 그리고 중국·태국·베트남에 공장을 두었다. 올 매출액은 40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손 대표는 내다봤다. 그는 “삼성전자가 잘나가다 보니 동반성장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경우 품질만 좋으면 거래를 틀 수 있고 주문량도 많이 확보할 수 있습니다. 삼성에만 의존하는 건 문제가 없지 않지만 요즘같이 디자인에 민감한 시대엔 원청사의 경쟁사와 거래할 수도 없습니다. 디자인이 유출됐다가는 실패한 제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죠. 그래서 디자인을 유출시키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씁니다.”
모베이스가 안정적으로 좋은 품질을 유지하는 비결은 뭘까. “현장 작업자들이 일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예컨대 동선을 잘 관찰해 불량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작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규정을 만들면 한동안은 따를지 몰라도 결국 자기들 편한 대로 움직이게 마련이죠. 그래서 동작이 자연스럽도록 프로세스를 설계해야 합니다.”
그는 중소 제조업체의 오너는 기계를 다룰 줄은 모르더라도 기술·장비에 관해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집을 차린다면 요리는 못하더라도 요리의 기본은 알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모베이스의 핵심 역량은 속도다. 휴대전화 케이스 제작사로서 짧은 시간에 원청사의 요구에 맞춘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려면 개발 속도가 생명이다. 개발 속도를 좌우하는 것은 기술이다. 손 대표는 기술력 면에서 경쟁사와 동등하거나 우위에 있다고 자신했다.
“제품 디자인은 삼성이 하지만 그 디자인을 구현해 내는 것은 우리 몫이죠. 강도 높은 제품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납기에 맞춰 대량으로 납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면 다른 대기업과 달리 접대 한번 한 일이 없습니다.”
그는 10년 전에 이미 삼성전자의 약진을 예견했다고 했다. “두 가지 근거를 들 수 있어요. 첫째 역시 속도입니다. 소니에릭슨이 일년 걸려 휴대전화 모델을 개발할 때 삼성전자는 길어야 6개월 걸렸습니다. 둘째 근거는 LCD·배터리·메모리 등 삼성은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부품을 직접 생산한다는 겁니다. 영국·이탈리아·일본에 디자인 센터를 뒀으니 디자인도 따라잡을 수 있죠. 저는 삼성전자가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선도자)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모베이스는 휴대전화 케이스 제조사로서는 후발 주자다. 다섯 개의 동종 업체 중 중간 정도 규모다. 손 대표는 부인과 함께 이 회사 지분의 70% 가량을 갖고 있다.
그는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믿음이 확고하다. 1986년 결혼한 지 1년 됐을 때 그는 부인의 화장대에 2000년까지의 가계 계획을 써 붙였다고 한다. 몇 년도에 30평 대 아파트 장만, 몇 년도에 서울 목동 입성, 아이들은 언제 어느 나라에서 공부시키고 아내는 언제 세계일주를 시킨다. 경기 광명의 28평 아파트에 살던 시절 얘기다. 부인 조해숙씨는 당시 코웃음을 쳤다고 한다. 그는 이 계획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부인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었다고 털어놓았다.
“20대 중반에 이런 야무진 꿈을 꿨으니 웃을 만도 했죠. 포기만 하지 않으면 꿈은 이루어집니다. 모베이스의 단기 목표는 3년 안에 업계 1위가 되는 겁니다. 우리 회사 매출액의 두 배인 회사, 직원 수가 우리 두 배인 회사도 있지만 저는 우리가 노력하면 이들을 앞지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는 배우자가 행복해 하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이라고 했다.
손 대표는 서른아홉에 퇴직금을 밑천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일본통이었던 그를 눈여겨본 일본의 한 오너 기업인이 그에게 70% 지분투자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50 대 50으로 하자고 역 제의를 했다. 이 제안을 수용한 그 기업인이 3년 전 자금난에 몰려 그에게 지분을 팔고 싶어했다. 상장을 앞둔 터라 그로서는 보유를 권했지만 결국 주식을 인수했다. 파격적으로 투자금의 네 배를 지급했지만 코스닥 상장으로 그 역시 큰 돈을 벌었다.
그의 멘토는 청춘을 보낸 대동전자의 강정명 회장이다. 재일교포인 강 회장은 일에 철두철미했다고 한다. 사생활 면에서도 스스로 엄격했다. 그의 영향으로 손 대표는 정시에 출퇴근하고 회사에서는 유니폼을 입는다. 그의 방엔 소파도 없다. 평일엔 골프를 치지 않고 골프 치러가서 회사 돈을 쓰지 않는 것도 강 회장에게서 배웠다고 말했다(강정명 회장은 그러나 세금을 물지 않고 부를 아들에게 이전하려다 지난해 거액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대동전자에서 고속승진한 그는 만 스물아홉에 ‘별’을 달았다. 19년 동안 승승장구했지만 오너 경영인 그늘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독립해 대동전자가 손대지 않은 휴대전화 케이스 제조 쪽에 진출했다. 삼성도 대동의 거래선이 아니었다.
“샐러리맨을 할 거면 한 직장에서 꽃을 피우는 게 좋습니다. 무슨 일이든 10년은 해야 달인이 됩니다. 그러나 자기 사업을 하려면 회사를 그만둬야죠. 우리 간부들에게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만두려면 사업을 해라. 그래야 회사에서도 도와주죠.”
구직난이 심각하지만 다수의 중소기업이 구인난을 겪고 있다. 모베이스는 잘나가는 편이라 구인난을 겪지는 않지만 그래도 고급 인력을 뽑기는 어렵다.
“연봉은 아무래도 대기업과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에 몸담으면 도전 기회가 많습니다. 대기업에선 한 가지 주어진 일을 해야 하지만 중소기업에서는 다양한 일을 경험해볼 수 있죠. 또 능력만 있으면 빨리 성장할 수 있습니다. 특히 창업을 하려면 중소기업에서 쌓은 경험이 훨씬 유용합니다. 창업을 꿈꾼다면 유망 중소기업에서 10년을 버티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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