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위스 시계의 180년 자존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차로 1시간 정도를 달려 발레 드 주 계곡에 도착했다. 세계적인 시계 업체들이 자리잡은 이곳에서 스위스의 시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르 상티에 마을에 위치한 예거 르쿨트르 매뉴팩처는 뾰족한 지붕의 구식 건물과 유리 외벽이 돋보이는 현대식 건물이 여럿 모여 이채롭다.
예거 르쿨트르 관계자는 가장 작은 뾰족한 지붕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예거 르쿨트르의 첫 매뉴팩처 건물입니다. 이 옆에 건물을 짓고, 또 지어 잇는 식으로 확장해 이런 모습이 됐습니다.” 매뉴팩처나 본사를 제네바로 옮긴 시계 회사도 있지만 예거 르쿨트르는 180년 전 시작했던 처음 그 자리를 아직도 지킨다.

예거 르쿨트르 매뉴팩처에서 일하는 직원은 현재 1000명이 넘는다. 이 중 250명 이상이 시계 장인이다. 휠과 레버, 케이스는 물론 나사 하나까지 직접 제작한다. 부품 제작실에서 기름 냄새가 나고 기계 소리도 간간이 들리는 이유다. ‘스탬핑 툴’은 무브먼트 부품을 만드는 도구다. 한 개의 무브먼트를 만드는데 스탬핑 툴이 최소 200개가 필요하다. 예거 르쿨트르는 스탬핑 툴을 약 1만 개 보유한다. 새 스탬핑 툴을 제작해도 옛것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추후 수리할 때 꼭 맞는 부품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부품 제작실에서는 푸른 옷을 입은 기술자가 2mm남짓 돼 보이는 부품에 주얼(부품 중간에 나사처럼 박는 보석)을 빠른 속도로 박아 넣는다. 100개를 처리하는데 15분이 걸린다고 한다. 보통 사람은 주얼 한 개를 부품에 박아 넣는데 15분 이상이 걸린다. 무브먼트 겉 부분을 장식하는 ‘코테 드 제네브’(일정한 간격의 줄무늬) ‘코테 드 선라이즈’(원모양이 서로 일정하게 겹쳐 만든 무늬)를 자로 잰 듯 일정한 간격으로 찍어내는 것도 모두 숙련된 기술자의 솜씨다.
무브먼트와 케이스·부품들을 조립하면 시계가 서서이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한다. 완성된 모든 제품은 1000시간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충격·방수기능 시험이 다양한 온도에서 이뤄진다. 이는 시계를 찬 사람의 손목이 움직이는 것처럼 여섯 가지 위치로 회전과 정지를 모두 해 본다.
예거 르쿨트르 매뉴팩처 주 건물 꼭대기 층에서는 컴플리케이션 워치(퍼페추얼 캘린더, 미닛 리피터, 투르비옹 등의 기능을 가진 시계)만 만든다. 시계 장인 1명이 각각 시계 제작의 전 과정을 처리한다. 예거 르쿨트르의 안내를 맡은 아서 헤리 씨는 “퍼페추얼 캘린더는 매뉴얼이 없으며 각 회사마다 만드는 방법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정해진 방법대로 단순 조립하지 않고 장인의 개성과 독특한 기능을 시계에 담아낸다. 시계 장인을 ‘시간’의 창조자라 부르는 이유다. 그래서 컴플리케이션 워치는 제작자만이 애프터서비스를 할 수 있다.
애트모스 시계는 따로 움직임이나 태엽, 건전지 없이 온도 변화에 따라 자체적으로 동력을 만들어 작동한다. 시계 안에 있는 기체의 공기 변화에 따른 수축과 팽창이 에너지원이다. 1928년 처음 세상에 나온 애트모스는 다양한 디자인으로 지금도 꾸준히 생산된다. 투명 유리 수납장에는 수 백개의 애트모스가 놓여 있다.
완성된 애트모스를 모두 똑같은 시간에 맞춘 후 5주 동안 시간의 오차를 확인한다. 애트모스 시계는 외부 환경에 매우 민감해 작업실에 진동이 있어서는 안된다. 매일 하루에 3~5번씩 시간을 확인하고 기록한 후 오차를 조정한다. 이 일만 30년 한 기술자도 있다고 하니 예거 르쿨트르의 명성이 180년을 이어올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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