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 더 뉴 그랜저 2.5 가솔린 시승기
인공지능 에이전트 글레오 AI에 질문 폭탄
똑똑해진 그랜저, 주행 성능은 명불허전
기자는 지난 28일 그랜저 2.5 가솔린 캘리그래피 모델을 시승했다. 코스는 서울 강동에서 강원 춘천까지 오가는 왕복 120km 남짓이었다. 약 2시간 동안 시승을 진행했는데, 이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글레오 AI와 대화를 나눴다. 물론 모든 대화가 매끄럽진 않았다. 아직 미흡함이 있다. 다만, 현대차그룹이 그리는 미래는 가장 직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귀여운 구석 있는 글레오
글레오 AI는 “헤이 글레오”·“글레오야”처럼 글레오라는 이름을 넣어 호출해야 한다. “친구야”·“동생아”·“꼬마야” 등 다른 별칭으로는 부를 수 없다. 현대차그룹이 글레오를 새로운 AI 에이전트이자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설정하고 있어서다. 브랜드를 각인시키려는 의도는 이해된다. 다만 운전자 취향에 따라 호출어를 바꿀 수 있다면 더 자연스러운 대화 경험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글레오는 유독 큰 목소리에 약했다. 조용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부르면 비교적 빠르게 반응했다. 다만, 큰 목소리에는 반응이 눈에 띄게 줄었다. 글레오 AI와의 모든 대화가 매끄럽지는 않았다. 가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답을 내놓기도 했다. 답답한 마음에 큰 목소리로 글레오를 부르면 역효과였다. 크게 호출할수록 글레오 AI가 반응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됐다.
담당 개발자에 일정 데시벨 이상으로 글레오를 호출하면 인식이 어려운 것인지 묻자 “그런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답했다. 실제 다양한 환경에서 주행 테스트를 거쳤겠지만, 무엇이든 100% 무결하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음성인식 시스템은 더욱 그렇다. 해당 관계자는 “인식이 안 되는 여러 사례를 계속 발견하고 있고,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색에 대해서도 물었다.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중 어느 당을 지지하는지 묻자 글레오 AI는 “정치적 성향이나 의견을 갖고있지 않다”고 답했다. 또 6·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으로 누구를 뽑을 거냐는 질문에는 “투표권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감한 질문에 이리저리 잘 피해 가는 모습을 보고 대규모 언어 모델(LLM)의 가드레일이 잘 구축됐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탕수육을 어떻게 먹는지도 물었다. 탕수육 소스에 대해 부먹(부어서 먹기)과 찍먹(찍어서 먹기)은 극명하게 갈리는 대화 주제다. 여기서도 글레오 AI는 재치 있는 답변을 내놨다. 글레오 AI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찍먹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순간 글레오 AI는 찍어서 먹는 방식을 선호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주행감도 듬직한 더 뉴 그랜저
똑똑해진 그랜저도 좋지만, 무엇보다 고려해야 할 점은 주행감이다. ‘국가대표 세단’이라고도 불리는 만큼, 그랜저의 주행감은 명불허전이었다. 차가 전체적으로 무거운 감은 있었는데, 의도된 것이라고 한다. 서스펜션 하드웨어를 일부 변경하고 신규 튜닝을 적용했다는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단순히 디자인과 편의사양만 손본 변화는 아니었던 셈이다.
물론 묵직해진 감각이 모든 운전자에게 장점으로만 다가오지는 않을 수 있다. 가볍고 경쾌한 움직임을 기대했다면 더 뉴 그랜저는 다소 둔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랜저는 도로 위에서 쏘아붙이는 차와는 거리가 멀다. 긴 거리를 편안하게 달리는데 초점을 뒀다. 그런 의미에서 더 뉴 그랜저의 무게감은 단점이라기보다, 중후한 매력을 완성하는 요소다.
스티어링 휠 감각도 그랜저의 성격과 잘 맞았다. 조향이 과하게 가볍거나 헐겁다는 느낌은 없었다. 저속에서는 큰 차체를 다루는 부담을 줄여주고, 고속에서는 적당한 무게감을 더해 차분하게 길을 따라갔다. 스티어링 휠이 주는 감각과 별개로 배치된 여러 조작 버튼도 직관적으로 구성돼 만족스러운 요소 중 하나다.
빛과 소리는 실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보스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은 실내 공간을 빈틈없이 채웠다. 음악을 틀면 소리가 앞뒤 좌우로 고르게 퍼지는게 느껴졌다. 다만, 글레오 AI와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선 음량을 조금 낮추는 것을 추천한다. 글레오 AI와 더 대화할 일이 없다면 보스 프리미엄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다.
실내 무드등도 고급감을 더했다. 과하게 화려하게 꾸미기보다 은은하게 공간을 감싸는 쪽에 가까웠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앰비언트 라이트와는 또 다른 고급스러움이다. 대시보드를 따라 흐르는 빛은 실내 분위기를 더욱 차분하게 만들었다. 그랜저가 오랫동안 쌓아온 ‘편안한 고급 세단’의 이미지를 무드등 빛으로 다듬어 냈다.
머리 위에 자리한 스마트 비전 루프도 인상적이다. 일반적인 선루프처럼 단순히 열고 닫는 방식이 아니라, 루프의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는 구조다. 햇빛을 완전히 받아들이거나, 필요에 따라 빛을 걸러내는 식이다. 작동 방식도 신기했다. 한번의 터치로 루프 분위기가 바뀌는 모습은 더 뉴 그랜저가 더욱 진화했음을 보여줬다.
더 뉴 그랜저는 가솔린 2.5 모델이 4185만원부터 시작한다. 가솔린 3.5 모델은 4429만원, LPG 3.5 모델은 4331만원부터다. 하이브리드 모델은 4864만원부터 책정됐다. 전반적으로 가격이 300만~500만원가량 오른 만큼, 아쉬움을 표하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은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이 모든 것을 상쇄시켜준다. 더 뉴 그랜저는 또 한번 진화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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