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 중소·중견기업 후계 경영자 ⑦ - 거룩한 마음으로 빵 굽는다
유망 중소·중견기업 후계 경영자 ⑦ - 거룩한 마음으로 빵 굽는다
대전역 2층 성심당(聖心堂) 매장 앞에는 하루 종일 사람이 붐빈다. 튀김소보로 빵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이다. 이곳 직원은 “보통 20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워낙 인기 제품이라 사람당 6개만 판다. 다른 빵은 매장에 들어가서 사면 된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성심당 대전역점은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대전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임영진(58) 성심당 대표는 “다른 분들이 하도 부탁해서 마지못해 가게를 열었는데, 너무 큰 사랑을 받아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 대전시는 한국철도공사와 성심당에 공문을 보냈다. 대전역에 점포를 열어달라는 요청이었다. 임 대표는 동네 빵집에게 어려운 사업이라며 거절했다. 그가 고사하자 대전시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염홍철 대전시장이었다.
염 시장 “대전역에 들어오세요. 대전을 대표할 명물이 필요합니다. 성심당이 딱 좋습니다.”
임 대표 “역에 입점하는 것이 저희에게는 어려운 일입니다. 죄송합니다.”
염 시장 “어려운 점이 있으면 시에서 풀어보겠습니다.”
얼마 후 임 대표는 정창영 전 한국철도공사 사장도 만났다. 정 사장도 대전역에 성심당이 들어오도록 권했다.
정 사장 “역은 단순히 승객을 수송하는 곳을 넘어야 합니다. 문화가 필요합니다. 성심당이 그 역할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임 대표 “염 시장님께도 말씀 드렸는데, 저희가 나서서 사업을 벌이기에 부담되는 점이 많이 있습니다.”
정 사장 “입점만 하시면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합니다. 대전 시민도 좋고, 철도 이용객에도 도움이 됩니다. 성심당에게도 좋은 기회인데 한번 고민해 주세요.”
거듭된 요청에 임 대표는 분점을 내기로 했다. 결과는 대성공. 대전 방문객은 물론 성심당에 들리기 위해 일부러 대전에서 환승하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철도공사 관계자는 “대전역사 내 지역 대표 상품 입점 계획이 성과를 거둔 첫 번째 사례”라고 평가하며 “지역 명물을 발굴해 꾸준히 역사에 유치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추진한 정 전 사장은 얼마 전 임 대표를 만났을 때 “임대료를 너무 저렴하게 책정했다. 재임 기간 중 가장 밑지고 벌인 사업이라 사기 당한(?) 느낌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성공한 비즈니스가 성심당 대전역사 유치인 것 같아 아주 억울하지는 않다”며 덕담을 건넸다.
대전역은 성심당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장소다. 임 대표의 선친 고 임길순씨가 1956년 대전역 앞에서 문을 연 찐빵가게가 성심당의 시작이었다. 임씨는 함경도 출신 실향민이다. 그는 1950년 1·4 후퇴 당시 흥남부두에서 출발한 마지막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경남 거제도까지 내려왔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서울로 향했다. 큰 도시니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할 거란 생각에서다. 그가 올라탄 서울행 기차는 갑작스런 고장으로 대전에서 멈췄다. 마냥 기다릴 수 없던 임씨는 대전역 앞에서 찐빵장사를 시작했다. 성심당이 시작한 계기다.
그로부터 57년이 지났다. 본점은 1970년에 대전역에서 1km 떨어진 대전시 은행동 골목으로 옮겼다. 2011년에는 대전롯데백화점 지하매장에 2호점을 냈다. 지난해 3호점을 열며 43년 만에 다시 대전역에 돌아왔다. 성심당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곳에서는 매일 약 1만개의 빵을 팔고 있다. 본점의 하루 매출은 약 2000만원. 단일 제과점으로는 가장 많은 400종류의 빵이 진열되는 대전의 명소로 거듭났다.
임 대표는 보수적인 경영자다. 변화를 주도하기보다는 하던 일을 더 잘하자는 지론을 갖고 있다. 57년 간 확장한 지점이 3곳에 불과한 이유다. 그는 “원래 지점을 열 계획이 없었다”며 “규모는 제법 크지만 나는 동네 빵집 주인일 뿐, 지점 늘려가며 돈 모을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임 대표를 롯데백화점 관계자가 찾은 시기는 2011년 9월이다. 당시 롯데백화점 대전점 지하 1층에는 포숑이라는 프랑스 베이커리가 있었다. 포숑은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씨가 운영하던 매장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매출이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대통령이 재벌 빵집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하며 여론도 나빠졌다. 롯데가 대전의 명물 빵집 성심당을 찾아온 배경이다.
임 대표는 고민했다. 대전에서 매장 한 곳만 운영해왔을 뿐, 분점이나 가맹점을 내본 경험이 없었다. 완고한 임 대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롯데백화점 관계자들은 삼고초려를 하며 설득에 나섰다. 빵 만큼은 자신 있던 임 사장은 결심했다. 2011년 12월 문을 연 롯데백화점 성심당 지점은 큰 성공을 거뒀다. 하루 매출이 500만~600만원에 이른다. 같은 자리에 있었던 포숑 하루 매출(150만원)의 4배 수준이다. 빵 프랜차이즈 중 장사가 가장 잘된다는 파리바게뜨 가맹점의 평균 매출(하루 180만원)을 훨씬 웃돈다.
피란 때 기차 고장으로 내린 김에 대전 정착“동네 빵집이 백화점이나 역사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내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간곡한 부탁을 차마 거절하기 어려웠습니다. 장사 안 되면 언제든 털고 나온다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예상외로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래도 이후 다른 지점을 내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전국 제과·제빵점은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가 석권하고 있다. 역사와 전통의 골목 빵집은 어느새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대전은 이야기가 다르다. 성심당에 파리바게뜨·뚜레쥬르 등이 오히려 밀린다. 20년 전 당시 1등 제과 브랜드였던 뉴욕제과도 성심당 골목에 지점을 냈다가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전국구 빵집과의 경쟁에서 번번히 승리한 비결을 묻자 임 대표는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좋은 빵을 만들었을 뿐”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1980년대 중반 뉴욕제과가 우리 가게 인근에 분점을 열었을 때 많이 긴장했습니다. 빵도 맛이 있고 서비스도 좋았지요. 하지만 사람들이 성심당을 더 많이 찾아줬습니다. 나름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특별히 신상품을 준비하거나 마케팅을 강화한 일은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최고의 빵을 만드는 것 이외에 빵집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하던 식으로 열심히 하면 적어도 대전에서는 경쟁력이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임 대표는 빵 맛의 비결로 직원의 행복감도 꼽았다. 기분 좋게 만든 빵이 더 맛있다는 지론이다. 그러려면 대표가 종업원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 그는 “위에서 군림하며 명령만 내리고 의견을 듣지 않고 작은 잘못도 그냥 넘어가는 일없이 질책한다면 누가 행복하겠는가”라며 “우리 빵집의 매출과 이익은 다 투명하고 이익이 얼마 나면 직원들이 자기 성과급까지 계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 대표의 월급은 500만원이다.
맛있는 빵만으로는 성심당의 성공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차 성공의 이유를 묻자 임 대표는 ‘나눔’ 이야기를 꺼냈다. 성심당은 57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불우이웃에게 빵을 나눠준 기업이다. 임길순씨가 찐빵가게를 연 1956년은 한국전쟁 직후다.
대표 월급은 500만원상호인 성심당은 ‘거룩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빵을 굽는다’는 뜻이다. 1981년 임씨가 세상을 떠나자 임영진 대표가 가업과 선친의 유지를 이어받았다. 그는 매일 400∼500개의 빵을 아동센터·노인병원·외국인노동자센터 등에 제공했다.
매일 아침 성심당 앞에는 복지단체에서 빵 상자를 싣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빵을 나누어 주다 경찰서에 간 일도 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다.
성심당 맞은편 주교과 성당 앞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빵을 만들었는데 팔 곳이 없었다. 그는 대치 중인 전경과 학생에게 빵을 나누어 줬다. 문제가 생겼다. 시위대에 빵을 제공한 걸 누군가 트집잡은 것이다. 곧장 경찰서에 끌려갔다. 불량식품 판매라는 혐의를 씌웠다. 경찰은 성심당 빵을 검사기관에 의뢰하며 문제를 제기했지만 결국 검찰에서 ‘무고하다’며 사건을 접었다.
성심당의 봉사는 빵 나눔뿐만이 아니다. 인근 시장 상인 중 부모 상을 당하거나 형편이 어려워진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조용히 돕곤 했다. 요즘도 임 대표에게 도움을 구하는 편지는 매월 수십 통이 날라온다. 그는 힘이 닿는 데까지만 돕고 있다고 말했다. 혹시나 해서 정치에 관심이 있는지 물었다. 임 대표는 소탈하게 웃으며 답했다.
“제빵사가 무슨 정치입니까. 정성이 담긴 빵으로 주위에 도움 주는 게 제 인생 목표입니다. 어렵고 힘든 정치에 관심 없습니다.” 임 대표는 평탄한 길만 걸어오진 않았다고 말했다. 본점 화재로 모든 것을 잃고 포기할 생각에 빠진 적도 있다. 가족 간 갈등으로 얼굴을 붉힌 아픈 기억도 있다. 성심당 빵을 먹고 탈난 사람을 찾아가 머리 조아려 사죄하고 제빵 공정을 뜯어 고친 일도 있다. 이런 역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저력이 나눔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매년 중국 제빵사 500명 방문“오랜 동안 꾸준히 이웃을 챙겼습니다. 이런 모습을 주위에서 좋게 봐준 것 같습니다. 예전에 화재 겪고 다 접어야 하나 생각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과 5일 만에 빵을 구웠습니다. 그게 우리 직원 힘만으로 가능했겠습니까. 주위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객들이 다시 찾아와서 힘 내라며 빵을 사주셨습니다. 아버님이 남긴 가장 큰 유산 ‘나눔’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2010년 ‘제빵왕 김탁구’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성심당 임 대표가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란 소문이 있었다. 덕분에 인지도가 높아지며 대전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방문객이 크게 늘며 매출이 두배 이상으로 늘었다. 그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드라마 중 가슴에 와닿은 대사가 있었다. 주인공이 “세상은 결국 착한 사람이 이기는 것인데 참말입니까?”라고 묻는 대목이다.
“선한 의지를 가지고 삶을 살아갈 마음이 있는가? 이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성심당이 좋은 사례가 됐으면 합니다. 우리가 왜 대전 명물이 될 수 있었을까요. 나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매년 중국에서 500명이 제빵사업과 기업가 정신을 배우기 위해 찾아옵니다. 중국 제빵사들에게 나누는 기업이 성공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한 곳과 작지만 이웃을 생각하는 빵집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느 곳 빵을 드시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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