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성 검증된 개발 사업에 돈 몰려 … 건설금융 지원 확대 목소리 커져 금융권의 PF 대출이 이뤄진 서울 가재울뉴타운 4구역 현장.
10월 3일 충청북도는 민간자본 유치가 어려워 고속철도(KTX) 오송역세권개발 사업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오송역세권개발 사업은 KTX 오송역 주변 47만2000㎡를 상업·주거·업무용지로 개발하는 것이다. 애초 민간개발에서 공영개발(충북도 51%, 민간 49%)로 변경했지만 민간사업자 유치가 어렵자 사업 중단을 선언했다. 총 사업비가 3102억원으로 다른 대형 개발사업과 비교해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비롯한 민간 자본 유치에 실패했다.
충북도청 관계자는 “PF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데다 민간사업 신청회사들이 PF 채무보증 등 무리한 요구를 해서 사업자를 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충청북도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개발대책위원회가 환지(換地) 방식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사업 진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수년 된 대형 개발사업 줄줄이 좌초건설·부동산 경기침체 장기화로 PF 시장의 돈줄이 마르면서 전국 곳곳에서 무산되는 개발사업이 줄을 잇고 있다. 올 들어서만 최종 무산된 대형 PF 사업만 줄잡아 5곳이 넘는다.
인천 청라국제도시에 상업·업무시설을 짓는 ‘청라국제업무타운’ 사업은 시행사인 청라국제업무타운㈜가 차입금 2800억원의 만기 연장을 하지 못해 4월에 토지 매매계약이 해지당했다. 이후에도 계속 자금조달에 실패하면서 사업협약 해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6월에는 경기 수원 광교신도시의 랜드마크 시설인 ‘에콘힐’이 좌초됐다. 서울 은평뉴타운 내 중심상업업무지구에 주상복합과 호텔·의료단지를 조성하는 ‘알파로스’ 사업도 만기 도래한 대출금 상환에 실패하면서 7월 최종 무산됐다. 인천 용유·무의도에 문화·관광시설을 짓는 ‘에잇시티’ 사업은 8월 추가 증자에 실패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이들 대형 PF 사업들은 대부분 부동산 경기가 최고조이던 2005~2007년에 계획된 것이다. 대형 건설사는 물론 은행·증권사 등도 주요 주주로 참여했다. 아파트는 물론 상업시설 분양을 통해 사업비 회수는 물론 막대한 개발 이익을 향유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탓에 계획이 틀어졌다.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해 금융권이 돈줄을 조이면서 PF 대출이 사실상 중단됐다.
경기침체로 사업성이 악화되면서 민간자본 유치도 여의치 않았다. 개발사업을 위해 설립된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들은 사업비 마련은커녕 토지 매입을 위해 빌린 돈의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다. 시간이 흘러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자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이미 투자한 금액은 고스란히 손실로 남았다.
대형 PF 사업의 잇단 무산은 부동산 경기침체 탓이 크지만 사업주체들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다. 막대한 개발 이익을 쫓아 장밋빛 청사진을 그린 뒤 외부 환경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시행사의 경우 자기자본 비중이 취약하고 타당성 분석이나 위험관리 능력이 미흡한데도, 수 조원대의 개발 사업을 진행하다 쓴맛을 봤다. 대형 건설사들도 주관사 또는 건설투자자(CI)로 참여하고도 시공권 확보에만 관심을 둘 뿐 자금조달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았다.
금융권의 책임이 크다. 호황기에 PF 대출로 재미를 본 금융회사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태도가 돌변해 대출을 옥죄고 투자 위험을 시공사나 특수목적법인(SPC)에 전가했다. 박동규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의 PF 사업은 표면적으로는 프로젝트의 미래 현금흐름에 근거한 비소구금융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시공사나 SPC 출자자들의 신용보강이나 연대보증을 요구해 위험을 전가하는 실정이다. PF제도가 본래 취지와 달리 변질적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금융회사들도 할 말은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을 비롯한 건전성을 높여야 하는 금융회사로서는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PF 사업에 마냥 ‘물대기’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은행들도 PF 사업에 물린 돈이 막대해 본전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김기식 의원(민주당)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 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국내 은행 18곳이 2003년 이후 국내외 부동산 PF 투자로 입은 손실은 7조735억원이 넘었다.
지난해 말 기준 관련 대손충당금이 1조8531억원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은행들이 약 8조9000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같은 기간 부동산 PF 대출 총액 71조5000억원의 12%가 넘는 금액이다.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 등 국내 5대 주요 은행의 올 7월 말 기준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총 11조6417억원에 달한다. 김 의원은 “일부 기간의 자료만 제출한 은행들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손실액은 더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PF 우발채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시공능력 30위 건설사 기준으로 PF 우발채무는 올해 4분기에만 1조5846억원이다. 내년 상반기 2조6126억원, 하반기 2조7505억원에 이른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PF 대출금 상환을 통해 재무건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대형 개발사업 추진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PF 채무 부담에 은행권의 여신 축소로 회사채 등 직접금융 조달도 막혀 건설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얼어붙은 부동산 PF 시장이 다소 살아날 조짐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올 하반기 들어 재건축 사업장과 시장성이 검증된 일반 개발 사업장을 중심으로 은행들의 PF 여신이 활기를 띠는 것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우리·하나·기업·외환 6개 시중은행의 9월 말 현재 부동산 PF 신규 취급액은 2조835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를 연간으로 환산하면 3조8736억원이다. 지난해 3조5011억원에 비해 약 10.64% 증가한 수치다.
시중은행들이 수주하는 신규 PF는 주로 인기 아파트 분양단지 중심이다. 올 7~10월에 금융권의 PF 대출이 이뤄진 곳은 서울 가재울뉴타운 4구역재개발사업(6400억원)을 비롯해 서울 왕십리 뉴타운3구역(1700억원), 부산해운대주공 재건축(900억원) 등이다.
일반 사업장의 경우 규모가 크면서 사업성을 갖춘 것을 중심으로 대출이 이뤄졌다. 경기 평촌스마트스퀘어개발사업 리파이낸싱(3250억원)과 광희개발리츠의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 개발사업(800억원), 서울 위례뉴시티제1차(600억원), 세종시 미래산업단지개발사업(970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PF 신규 취급액 지난해보다 10% 늘어이에 따라 대한주택보증의 PF 보증도 꾸준히 늘고 있다. 올 1~10월 PF보증 건수와 금액은 각각 31건, 1조6900억원이다. 대한주택보증은 연말까지 지난해 보증잔액(2조원)을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한 부동산 개발업체 관계자는 “PF 시장이 다소 살아나는 모습이기는 하지만 안정성이 뒷받침된 일부 사업장에 국한돼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건설업의 산업연관 효과가 크다는 점을 감안해 금융권이 부동산 개발사업과 PF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하는 한편 건설금융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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