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천국 일본은 지금 - 소비활동 왕성한 남성 싱글족 급증
- 독신천국 일본은 지금 - 소비활동 왕성한 남성 싱글족 급증

#1. 도쿄도에 사는 오오타(남·39)는 금융회사에 다닌다. 아직 미혼이다. 도쿄도에서 월세 맨션(한국의 아파트 격)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이제 곧 마흔 살인데 지금까지 독신인 건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냉정하다. 그의 가장 큰 단점은 타인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다. 자신이 보기에도 고집이 세고, 주관이 너무 강한 편이다.
하지만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외롭진 않다. 오히려 편하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 사귀는 데는 흥미가 없다. 현재 독신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다. 요즘엔 취미로 시작한 골프에 푹 빠졌다. 중국 출장이 많아 중국어와 영어 공부, 집안일을 하다 보면 주말이 금방 지나간다.
휴가 땐 혼자 여행을 떠나곤 한다. 하지만 평생을 혼자 살 생각은 없다. 서른 살이 지나면서 선도 보고 미팅에도 종종 참석했다. 딱히 눈이 높진 않은데 좀처럼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여자와 사귀어 본 게 7년 전이다. 세간의 눈도 신경 쓰인다.
50대 독신 선배처럼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 찍힐까 겁도 난다. 결혼과 가정생활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는 않을까, 이대로는 성숙한 인간이 되기 어려운 건 아닐까 걱정도 된다. 3년 전 아버지를 떠나 보낸 홀어머니도 걱정이라 되도록 1~2년 안에 결혼해 함께 살고 싶기도 하다.
#2. 미즈시마(남·50)는 IT컨설팅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2년 전 23년의 결혼생활을 끝냈다. 졸업 직후 지방에서 반년 정도 일했을 때를 빼고는 독신생활 경험은 없다. 하지만 이혼 후에도 집안일에 큰 어려움은 없다. 주말에도 활동적인 타입으로 8년 전부터 시작한 합기도를 2시간씩 다닌다. 오후엔 영화를 보거나 장을 본다. 이혼한 전처 사이의 자녀와는 한 달에 1~2번 만난다.
두 달에 한 번씩은 대학 동기들과 온천 등지로 ‘남자들만의 여행’을 다닌다. ‘밤 늦게까지 일하지 않고 주말은 푹 쉬자’는 것이 신조다. 은퇴 후에는 해외 여행을 다니며 70세까지 취미생활을 하고 싶다. 그에게 미래는 우울한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기다. 독신생활이 즐겁긴 하지만 최근 동반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집에서 함께 먹고 마시며 이야기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요즘에는 적극적으로 주변에 이성 소개를 부탁하고 있다.
#3. 기노시타(남·46)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독신남이다. 결혼 경험은 없다. 대학 시절 도쿄로 상경할 때부터 20년째 독신생활을 하고 있어 불편함은 못 느낀다. 교육 관련 출판 편집자라는 직업 특성상 외식과 술자리가 잦다. 혼자서 술 마시는 일은 드물다. 휴일에는 축구를 하고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과의 교제를 즐긴다.
저축을 많이 할 생각은 없다. 돈이 쌓이면 일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재테크는 노후 대비로 보험에 가입한 게 전부다.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다. 설령 회사가 망하더라도 프리랜서로 일할 자신이 있다. 결혼은 생각해 본 적 없다. 교제 상대로부터 몇 차례 결혼 이야기가 나온 적 있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안 하겠다’고 말하고 헤어졌다.
상대가 싫지는 않지만 왜 이대로는 안 되는지 이해가 안 된다. 2명의 형이 모두 이혼하는 것을 보고 결혼에 대한 회의감이 있는 것 같다고 본인은 분석한다. 어머니가 손자 얼굴을 보고 싶다는 얘기를 할 때마다 여자를 만나볼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어쩐지 썩 내키지 않는다.

싱글족 겨냥한 비즈니스 봇물여성의 사회진출 확대와 가치관의 다양화 등으로 일본에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총인구 대비 독신세대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부부와 자녀 기반의 가족가구보다 독신가구가 일본의 ‘표준세대’가 됐다. 최근 10년 가까이 독신화 경향을 부추기는 변화도 잇따라 나타났다.
비정규직 확대 등 고용 불안으로 결혼을 꺼리는 젊은층이 늘었다. 편의점이나 휴대폰 게임 등 싱글 대상 제품·서비스 증가로 혼자 살아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됐다. SNS나 스마트폰의 보급 영향도 크다. 페이스북에 들어가면 친구들의 댓글을 볼 수 있고, 라인을 통해 메시지도 주고 받을 수 있다. 혼자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누구와도 연락할 수 있다.
특히 남성 싱글족이 급증했다. 일본 국립사회보장 인구문제 연구소의 인구통계에 따르면 2010년 남성의 생애 미혼율(50세에 결혼하지 않는 사람의 비율)은 20.1%다. 여성은 10.6%다. 연령별로는 30~34세 남성이 47.3%, 35~39세는 35.6%로 높아 앞으로 이들이 미혼사회를 이끌 것이다.
더구나 일본 남성의 경우 평균적으로 2살 아래 여성과 결혼하는데, 결혼 적령기 남성 대비 여성의 수가 적어 남성 싱글족이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30대가 50대가 될 즈음에는 남성의 생애 미혼율이 30%에 이를 전망이다. 50~60대 독신 남성이 크게 증가하는 2030년에는 남성 4명 중 1명이 혼자 살게 된다는 계산이다.
후지모리 카츠히코 미즈호 정보종합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금까지 독신화는 고령 여성의 문제였으나 앞으로는 남성의 문제”라고 말했다. 사회 인프라 대응이 늦다는 지적도 있다. 다카하시 히로시 국제의료복지대학대학원 교수는 “일본 사회는 가족을 전제로 구성돼왔기 때문에 독신 고령자가 ‘일반인’이 되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독신자 개개인의 경제적 준비상황은 어떨까? 이는 남성과 여성이 차이를 보인다. 비정규직 비중이 크고 근속연수가 짧은 싱글 여성의 경우 재무설계를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이와 달리 정규직 남성들은 비교적 태평하다. 독신 전문 파이낸셜플래너(FP) 가네코 유코는 “싱글 남성은 부모 중 한 사람이 병을 앓는 등 큰 변고가 없다면 재무상황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독신도 미리 재무설계를 해두는 게 좋다. 가네코 FP는 “가족이 있는 경우 가족들과 위험요소를 분산할 수 있지만 독신은 급할 때 모든 걸 본인 돈으로 해결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바쁜 싱글족 대형 가전 구입 늘어어느 정도 수입이 있는 독신은 소비활동이 왕성하다. 노무라 종합연구소 조사에서 연봉 500만엔 이상의 30~50대 독신 남성은 ‘좋아하는 물건이라면 비싸도 구입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동년배 독신 여성은 레크레이션이나 취미와 같은 사생활에 돈을 많이 쓴다. 경제력이 있는 독신의 증가와 함께 일부에서는 싱글족 비즈니스가 늘어나고 있다. 예컨대 최근 여행 업계에서는 ‘나홀로’가 키워드다.
여행사 JTB는 지난해 11월 1인 전용 해외 패키지 투어를 발매했다. 스리랑카·네팔·케냐 등 가이드 없이 여행하기 어려운 곳에 현지 가이드가 따라붙는다. 1인실 호텔이 확보돼 있어 참가자가 단 한 명이라도 상관 없다. 50~60대 남성을 중심으로 호응이 좋다. 4월부터는 상품을 늘릴 예정이다. 일본 내 여행지를 대상으로 한 1인 전용 료칸·호텔 예약 사이트도 작년 12월부터 개설했다. 1인 숙박이 가능한 온천여행이나 고급 료칸이 늘고 있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싱글 남성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다. 수도권인 도쿄 23구를 중심으로 30~40㎡, 3000만엔(약 3억1500만원) 정도의 신축 맨션을 취급하는 시티인덱스에 따르면 물건 구입자 중 약 절반이 30~40대 독신 남성이다. 동종 맨션에 비해 싱글 남성 비율이 높다. 카메이 아키히코 시티인덱스 사장은 “최근에는 직접 요리를 해먹는 남성이 많아 부엌이 잘 갖춰져 있는지 여부가 구입 기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도 내 중고 맨션도 지난해부터 독신 남성이 많이 사들이고 있다. 독신 여성은 1LDK(방 하나에 거실과 식당을 겸한 부엌이 있는 집)를 선호한다. 주로 대출이자 부담이 월세 수준과 비슷한 건물을 구입한다. 이와 달리 독신 남성은 편의성을 중시한다. 2LDK와 같은 비교적 넓은 물건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청소·빨래 등을 맡길 수 있는 가사대행 서비스 이용도 증가하고 있다. 하세가와 흥산은 하우스클리닝 사업의 일환인 가사대행 서비스 수요가 증가하면서 지난해 4월 사업을 독립시켰다. 이용자 중 30% 정도가 독신이다. 이 중 30~40대 남성이 60%를 차지한다. 남성의 경우 세탁이나 와이셔츠 다림질, 설거지 등의 의뢰가 많고 여성은 청소·정리·수납 의뢰가 많다. 요금은 1회에 1시간 반 이용 때 5512엔(약 5만8000원)이다.
독신 대상의 가전제품이라고 하면 필요한 기능만을 모은 비교적 저렴한 소형 제품이 주류다. 그러나 최근에는 직접 요리를 해먹는 자취족을 대상으로 한 다기능 제품이 증가하고 있다. 타이거 마호빙은 2012년 밥과 반찬 조리가 동시에 가능한 밥솥을 출시했다. 20~50대의 다양한 세대로부터 인기를 얻어 고기능·대용량 타입도 잇따라 내놨다. 싱글들의 대형 가전 구입도 증가했다.
가전 판매점 빅카메라 관계자는 “대형 냉장공·세탁기 등을 구입하는 30대 초반의 독신자가 늘었다”고 말했다. 바쁜 싱글족들이 휴일에 음식 재료를 한꺼번에 준비해놓거나 빨래를 몰아서 하기 위해 대형 가전을 선택하는 것이다. 개인 취향을 고집하는 남성 독신자가 고가의 고기능 제품을 구입하기도 한다.
식품업계에서는 ‘나홀로 나베(일본식 전골요리)’가 히트 중이다. 독신 시니어층의 인기를 모았다. 아지노모토의 올해 1인분 나베 스프 판매 실적은 전년 대비 약 30% 증가했다. 에바라 식품공업이나 미쯔칸 등도 지난해 1인용 나베 스프를 발매했다. 에바라 상품의 매출은 2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여럿이서 먹는 이미지가 강한 나베조차 1인화되는 것이다. 외식에서도 ‘1인용 야끼니쿠’ 등 1인 식사가 흔해졌다. 독신에게 걸림돌이 됐던 식생활에서도 이제 선택의 폭이 늘어났다.
여럿이 먹는 나베도 1인용 제품이 인기한편 독신자는 은퇴 후 현역 때와 같지 않은 인간관계 탓에 고립되기 쉽다. 독신생활을 즐겁게 보내려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나 회사 외의 모임도 중요하다. 특히 ‘일중독’이었던 사람일수록 은퇴 후 친구가 없다는 것에 외로움을 느끼는 법이다. 은퇴 뒤에 인맥을 만드는 것은 늦다. 도테우치 아키오 닛세이 기초연구소 사회연구부주임연구원은 “이 때는 거주 지역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현역 때부터 비영리단체(NPO) 등 회사 밖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지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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