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슈
반도체만 훨훨, 성장 엔진 식는 韓 경제…환율도 정체
- [갇혀버린 원화, 1400원 시대]②
미국에 역전당한 잠재성장률…역대 최저
중동 리스크에 흔들리는 공급망…구조적 체질 개선 시급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코스피(KOSPI)가 7000을 돌파하면서 주식시장에선 축포가 터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내년 잠재성장률은 사상 최저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부 기업 실적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의 허약한 체력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 환율에 영향을 미치면서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도 1400원대 후반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한국의 올해 잠재성장률이 1.71%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에는 1.57%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1.92%였는데 매년 성장률 상승폭이 줄어들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잠재 국내총생산(GDP)의 증가율을 의미한다. 잠재 GDP는 한 나라의 노동·자본·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동원하면서도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수준이다.
OECD의 최신 추정치 기준으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12년 3.63%를 기록한 이후 계속 낮아졌다. 심각한 것은 미국의 성장률보다도 못하다는 점이다. 2023년 미국의 잠재성장률은 2.44%, 한국은 2.41%를 기록하며 역전됐다. 이후 격차는 매년 벌어지고 있다. 올해 0.31%포인트(p), 내년 0.38%p 차이가 날 것이란 전망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역시 한국의 올해 성장률이 직전 전망치인 1.9%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앨버트 박 ADB 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경제연구·개발영향국장은 4일(현지시간) 오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ADB 연차총회에서 “한국은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아 고유가 타격이 크고, 이로 인한 물가 상승에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며 성장이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중동 전쟁 장기화가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는 “지난주 ADB가 발간한 최신 기준 시나리오에서 유가가 올해 배럴당 평균 96달러, 내년에는 배럴당 80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며 “이런 시나리오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올해 0.9%p, 내년에는 0.5%p 하락할 수 있다”고 했다.
쏠림과 양극화가 만들어내는 위기의 뇌관
문제는 우리나라의 성장률 정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일부 기업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면서 성장률 하락을 방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증권시장 전체 시가총액에서 두 기업의 비중을 보면 이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6일 기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전체 기업의 시가총액 합은 약 6000조원, 그런데 삼성전자(약 1500조원), SK하이닉스(약 1100조원) 두 기업의 시총이 43%를 웃도는 셈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해외에서 보기에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개별 기업 주가는 올라도 환율은 오르지 않는 현상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용 없는 과열된 경기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기술 변화가 지식 자본 중심으로 이동하며 투자가 고용과 소비를 견인하지 못하는 경제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IBK투자증권의 ‘쏠림과 양극화가 만들어내는 위기의 뇌관’ 보고서를 보면 “기술과 부가가치에 따른 노동 시장의 양극화”를 경계하고 있다. 지금 미국의 투자 유치는 이를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노동보다는 자본 집약적인 산업에 투자를 집중하면서 노동보다는 자본 생산성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도 이런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다. 보고서는 “노동과 경제 부가가치의 괴리가 커지면서 과거와 달리 기업 이익과 소비 같은 경제 지표와의 관계도 약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결국 가계 소비와 소득의 양극화 심화로 이어지고 하위에 누적된 부담이 경기와 시장의 발걸음을 늦추고 결국 주저앉게 만들 수 있다는 해석이다.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와 공급망 위기
우리 기업들이 주요 원자재 수입을 일부 국가나 지역에 한정하는 쏠림 현상이 한국 경제의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 경제는 내수의 한계 때문에 수출에 의존하는데, 자원의 한계로 대부분의 원자재나 가공품을 수입한다. 그런데 이번 중동 전쟁 같은 지정학적 위기가 발생하면, 기름 수입 중단처럼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의 ‘중동 지정학 리스크 확대에 따른 산업 공급망 핵심 품목 영향 분석’ 보고서를 보면 해협 봉쇄 장기화로 글로벌 에너지 및 원자재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보고서는 봉쇄가 길어질 경우 단순한 에너지 가격 상승을 넘어 석유화학 원료 및 산업 소재 공급 차질로 인한 ‘중간재 공급망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국내 제조업 생산 비용과 공정 안정성에 영향을 미칠 8대 핵심 영향 품목으로 원유·액화천연가스(LNG)·나프타·액화석유가스(LPG)·헬륨·브롬·암모니아·알루미늄 등을 꼽았다. 특히 나프타·헬륨·브롬 등 중동 생산 집중도가 높은 원자재는 수급 불안이 발생할 경우 구조적으로 대체하기 어렵고, 사태가 심각해질 경우 ▲반도체 ▲전자 ▲석유화학 ▲자동차 등 한국 주력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진실 무역협회 선임연구위원은 “고유가·공급망 단절 시에도 생산이 유지되는 구조적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며 “핵심 공정은 회수·재사용 등 자립형 공정으로 전환하고, 에너지 자립 관련 기술은 국가 안보 필수 기술로 지정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구조 개혁 통한 잠재성장률 반등 모색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국가 차원의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잠재성장률을 반등시키기 위해 단편적 고육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저출생‧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4월 26일 엑스(X·옛 트위터)에 “반드시 잠재성장률을 반등시키겠다”고 했다. 구 부총리는 OECD가 전망한 한국의 잠재성장률에 대해 “정부도 이를 주의 깊게 듣고 있지만 잠재성장률은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다”며 “경제구조 변화와 정책 대응에 따라 얼마든지 반등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2차 추경 등 적극적 재정 정책으로 전년 동기 대비 기준으로 2025년 상반기 0.3% 저성장에서 하반기 1.7% 성장으로 반등에 성공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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