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BEHAVIOR GENETICS - 내가 아니라 유전자가 살인을 저질렀다구!
- FEATURES BEHAVIOR GENETICS - 내가 아니라 유전자가 살인을 저질렀다구!

아칸소주 동부, 정오가 되자 기온이 30℃를 훌쩍 넘었다. 악취 나는 습한 공기 속에 모기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다니고 있었다. 윈 시에 있는 연합 감리교회 공동체의 엘리스 교회당의 예배가 끝났다. 딕슨 플래트 목사는 80세의 릴리안 윌슨이 왜 그날 아침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독실하기로 손꼽히는 교인이었다.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로 약속했던 터라 더 의구심이 들었다.
목사는 그녀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중앙연합감리교회를 찾아갔다. 주일에 그들이 때때로 모임을 갖는 곳이었다. 윌슨은 그 주 초반 그곳에서 일을 했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구호물품 꾸러미를 준비하고 있었다. 목사는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입구에서 몇 발짝 떨어진 곳 신도 예배석 아래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바지가 피로 얼룩진 여성의 시체였다. 윌슨은 살해당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경찰이 밝혀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피고인 르네 패트릭 부라사 주니어와 변호사들은 재판에서 그가 윌슨을 살해한 사실을 부인하려 애쓰지 않았다. 부라사는 수사관들과 함께 현장을 찾아가 범행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기까지 했다. 그는 그 주에 교회에서 잠을 잤다. 처음에는 밖에서 자다가 예배당 안으로 옮겼다. 필시 더위와 모기를 피하려는 생각이었던 듯하다. 그날 아침 윌슨이 교회 안으로 들어섰을 때 부라사는 성찬대의 놋쇠 십자가를 휘둘러 그녀를 죽인 뒤 그녀의 차를 훔쳐 달아났다.
1930년이나 1970년에 일어났을 법한 범죄였다. 사건 정황이 대부분 아주 흔한, 옛날 방식에 가까운 패턴인 듯했다. 그러나 유독 현대적인 측면이 하나 있었다. 재판 중 제기된 도의적 책임성(moral culpability)의 문제였다. 변호사들은 부라사가 범행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두뇌가 그런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미국의 형사사법제도는 책임성에 근거한다. 누군가의 유죄를 선고하려면 그들 스스로 언제 무슨 일을 하는지 의식하고 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포드햄대 로스쿨의 데보라 데노 교수는 거기서 한 가지 문제점을 지적한다. 미국의 50개주 거의 모두 여전히 모범형법전(Model Penal Code) 내용에 기초해 의식(consciousness)을 정의한다는 점이다. 모범형법전은 1962년 미국법률협회(ALI)가 발행한 문서다. 거의 전적으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저서를 토대로 했다.
과학과 법은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 멘스 레아(mens rea) 즉 ‘고의(guilty mind)’의 형성에 관한 프로이트의 견해다(적어도 ALI의 해석에 따르면). 이는 피고인의 정신이상을 내세우는 변론의 근거다. 범죄 용의자가 완전히 정신착란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사실상 아무런 의식 없이 행동했다는 의미다.
이는 법에 규정된 살인혐의의 스펙트럼이 넓은 이유이기도 하다. 일급(계획적이며 고의적)으로부터 고의적 살인(voluntary manslaughter,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의도적이며 ‘합당한’ 분노의 표출을 낳을 만한 상황의 결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유전학과 신경학 분야가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행동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발전했다. 지금은 의식적 과정과 무의식적 과정 간에 명확한 경계선이 존재하기보다 양자간에 유동적인 상호교류가 이뤄진다고 여겨진다.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덴노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행동을 전혀 통제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그 장벽이 더 높다는 의미다.”
이는 이론적으로는 흥미롭다. 하지만 사법 시스템의 현실적 세계에선 불편한 문제를 강요한다. 어떤 사람에게 기질적으로 특정 유형의 행동을 하는 성향이 있을 경우 그 행동이 그 자신의 잘못인가? 어떤 관점에서 부라사는 결코 살인을 선택하지 않았다. 자유의지의 환상에 실상이 가려진다. 그의 유전자 속 깊숙이 숨겨진 작은 변이가 꾸민 계획을 따랐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그를 폭력으로 유도했다는 주장이다.
행동유전학 분야는 ‘유전 vs 환경’의 복잡하고 종종 정치화된 문제에 대한 답을 모색하는 과학의 한 분파다. 유전 지표와 인간 행동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한다. 특히 1970년대 후반부터 법의학에 과도한 영향을 행사하게 된 분야이기도 하다. 당시 일단의 네덜란드 여성들이 네이메헌에 있는 대학 병원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이들 가족의 남자들이 대단히 공격적이었다. 가계도 전반에 걸쳐 방화, 그리고 강간 및 살인 미수 등 폭력행위가 만연할 정도였다.
유전학자 한스 브루너가 조사에 착수한 지 약 15년 만에 결국 답을 찾아냈다. 그들에게서 난폭한 행동을 유발하는 하나의 유전자를 분리해 냈다. 가문의 모든 남자에게 존재하는 그 유전자는 모노아민 산화효소(MAOA) 유전자의 돌연변이였다. 또는 대중매체에서 널리 알려졌듯이 전사 유전자(warrior gene)다.
인간은 모두 MAOA 유전자를 갖고 있다. 모노아민 산화효소(monoamine oxidase A)를 암호화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모노아민 산화효소는 도파민·노레피네프린·세로토닌 같은 두뇌 속의 주요 신경전달물질들을 분해한다. MAOA 유전자는 X 염색체 상에 위치한다. 여성은 2개를 가진 반면 남성에게는 하나뿐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그 유전자에 발생하는 문제는 모두 남자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의미다.
그 유전자에는 몇 가지 변종이 있다. 그중 하나가 MAOA-3R이다. 남성의 30% 안팎에 존재한다. 공격적 행동 증가와 상관관계가 있음이 여러 차례 입증됐다. 실험실에서의 통제된 동물 연구에서나 현실세계의 실험 시나리오에서 모두 마찬가지였다(브루너의 환자들에겐 그 유전자에 극단적인 돌연변이가 있었다. 일반적인 ‘폭력적인’ 변종을 훨씬 뛰어넘었다). 부라사는 MAOA-3R 변종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과학적으로는 선천적으로 남을 해칠 가능성이 컸다.
물론 유전 아니면 환경이라는 식의 흑백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모든 유전학자가 당장 지적하고 나서는 문제다. 양자가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 “유전자의 발현은 근본적으로 환경적 투입요소에 좌우된다. 손과 장갑처럼 보완적으로 작용한다.” MAOA 유전자를 폭넓게 연구한 브라운대 정치학과의 로즈 맥더모트 교수가 말했다. 최근 27종의 MAOA 연구를 비교 검토한 메타분석(종합비교분석법) 결과가 발표됐다. MAOA 유전자가 궁극적으로 어떻게 발현되느냐에 어린 시절의 학대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이 확인됐다.

정신의학자 제임스 워커는 부라사를 상대로 광범위한 정신분석 면접을 실시했다. 4세 때 아버지 친구에게서 성적 괴롭힘을 당했음이 밝혀졌다. 5학년 때는 더 큰 남자 아이에게 반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21세 때 강도를 당해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았다. 과학적으로 부라사는 사춘기 때부터 남을 해칠 가능성이 컸다.
아칸소 교회에서 부라사의 행동은 의심의 여지 없이 잔인했다. 하지만 철저히 과학이론에 따른다면 그가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추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모든 환경이 명백하게 그에게 불리했기 때문이다. 그와 비슷한 배경의 주민들로 선발된 배심원단도 같은 판단이었다.
부라사는 사형에 해당하는 살인죄(capital murder)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사형선고는 받지 않았다. 대신 가석방 없는 종신형(life in prison without parole)을 받았다. 부라사 재판에서 이 비교적 관대한 판결은 형사재판 변론의 결과다. 이 같은 변론은 근년 들어 미국 전역에서 사형재판의 필수조건이 됐다. 행동의 책임을 피고인 개인으로부터 통제 불능의 생물학적 요인으로 거의 알아 차리지 못할 만큼 슬며시 떠넘긴다.
유전학이 어떻게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는지를 말해주는 대단히 유명한 사례가 있다. 재러드 리 러프너 재판이다. 그는 19건의 살인과 살인미수로 기소됐다. 그중에는 가브리엘 기퍼즈 당시 미국 하원의원에 대한 총격도 있었다. 체포 당시 러프너는 정신이 눈에 띄게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가 법정에 설 만한 상태이냐가 재판의 주된 문제 중 하나였다.
러프너의 변호팀은 철저한 극형 반대론자 주디 클라크가 이끌었다. 189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친척들의 공식 건강기록에 대한 열람신청을 했다. 유죄답변 거래(plea bargain) 중 러프너 변호팀의 전략이 명백해졌다. 러프너의 외가쪽 친척 중 다수가 “극단적인 정신병 증상”을 보였다고 공개했다.
어떤 사람이 정신이상으로 간주되더라도 그가 어떤 정해진 시점에 의식 없이 행동했음을 입증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러프너의 경우 총격 순간). 그리고 법정에서 설득력 있게 주장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유전적 배경에 폭력적이거나 정신이상의 경향을 나타낼 만한 증거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그 자신에게만 있지 않다는 강력한 논거가 된다. 러프너는 결국 사형을 면했다. 유죄답변 거래의 일환으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 선고를 받았다. 클라크는 조카르 차르나예프의 변론도 맡게 된다. 보스턴 마라톤 테러의 범인으로 기소된 인물이다.
오늘날까지 행동유전학은 주로 극형 재판에 적용돼 왔다. 스티븐 비스카는 30년 넘게 캘리포니아 관선 변호인(public defender)으로 일해 왔다. 그에 따르면 모든 형사재판에서 이 같은 유형의 변론이 이용되지 않는 이유는 단지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관선 변호인은 “형기가 궁극적으로 조사기간보다 짧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건에 시간과 돈을 낭비할 수 없다”고 그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예컨대 러프너의 공판은 11개월 동안 진행됐다. 그리고 다수의 법률 및 과학수사 전문가들이 미국 각지에서 동원됐다.
MAOA-3R 변종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은 상당히 재현하기 쉽다. 이 같은 유형의 증거는 높은 신뢰성을 갖는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그것이 재판의 기본 요소가 된 것도 놀랍지 않다. 그러나 비판도 적지 않다.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에 대한 생물학적 해명이 너무 잘 먹혀든다는 주장이다.
2012년 발표돼 파문을 불러 일으킨 연구가 대표적인 증거다. 재판의 선고 단계 중 “범죄자가 지닌 정신병의 생체역학적 원인”의 증거를 판사에게 제시할 경우 더 관대한 선고가 내려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주장했다. 논문 작성자들은 과학의 현란함에 재판부의 눈이 어느 정도 흐려진다고 암시했다. 드러내놓고 주장하지 않았을 뿐이다.
한 가지 측면에서 그와 같은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어쨌든 로스쿨 교육과정에서 과학을 필수과목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법조계는 친자확인 소송으로부터 흔들린 아기 증후군(아기를 너무 흔들어 뇌에 이상이 생기는 현상) 수사에 이르는 갖가지 사건에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과학 분야의 지식을 테스트하지는 않는다.
최소한의 계속적인 의학 교육의 일환으로 변호사나 판사를 대상으로 하는 과학 또는 기술 교육이 미국 어디에서도 요구되지 않는다. 과학 강의가 제공되기는 한다. 하지만 판사들이 강의를 선택해야 한다(판사 대상의 주요 과학교육 기관인 ‘첨단과학기술판결자원센터’는 2011년 이후 자원 부족으로 인해 문을 닫았다).
하지만 과거에도 판사들에게 심리분석이나 도덕철학 과정의 수강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 2014년에 와서 판사와 배심원들은 정신과 의사들의 증언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뇌 스캔 화면과 유전자 염기서열을 참고한다.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증거물들이다. “그것이 형사사법제도의 지형을 바꿔놓고 있다”고 덴노가 주장한다. “재판을 훨씬 더 투명하게 만들고 전문가들이 정직성을 유지하도록 한다.”
궁극적으로 행동 유전학이 미국의 형벌 제도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사형의 정당성이 약화될지도 모른다.” 밴더빌트대 사법정신의학자 윌리엄 버넷 박사가 말했다. 그는 부라사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실시한 뒤 재판에서 증언했다. 행동을 유발하는 요인에 관해 과학이 더 많은 사실을 알아냄에 따라 고의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더 정밀한 현미경 조사가 이뤄질지 모른다고 버넷은 주장한다.
대중매체를 통해 알려지는 이미지와는 달리 정신이상을 내세우는 변론(그리고 기타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는 주장)은 상당히 드물다. 미국 사법시스템의 역사에서 피고인의 대다수는 의식적인 행위자로 간주돼 왔다. 과학적·도덕적으로 자신의 행동에 100% 책임을 졌다. 일반 상식으론 이 같은 결과에 의문이 제기되곤 했다.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거의 모두가 어느 정도 유전적으로든 환경적으로든 신경에 이상이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관점이다.
그러나 행동과 의지에 관한 새 모델이 부상하고 있다. 이 같은 프레임워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엄정한 과학에 더 의존한다. 이는 한편으로 도덕적 책임에 관해 답을 주기보다 더 많은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이 인간 유전체의 염기서열을 모두 해독했지만 여전히 거대한 사슬의 극히 일부분만 의미를 알 뿐이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MAOA 유형의 유전자가 수십 나아가 수백 가지 있을지도 모른다.
일례로 버넷은 가학적 성폭력의 유전자 지표들이 부상하면서 상습범의 예측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내다본다. 이에 따라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해질지도 모른다. 입법가들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의 집단 그리고 유전적·환경적 배경으로 인해 사실상 법의 관점에서 무의식적인 행위자가 되는 집단을 구분해야 하느냐의 결정이다.
이미 과학은 부라사 같은 개인을 그의 인생, 그리고 부모의 삶에 찾아 왔던 모든 일, 모든 사건과 행위자 등등의 총합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 모델에서 그는 대단히 복잡한 기계의 마지막 톱니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그의 행동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이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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