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FINANCIERS - 월街의 늑대들

FINANCIERS - 월街의 늑대들

금융계를 흔들어놓았던 악덕 금융가들이 자선사업가로 활동한다. 정말 사기꾼들이 사라졌는가?
“젊은 금융계 종사자들은 느린 사고의 가치를 과소평가한다. 오로지 단기적인 수익 목표만 생각한다면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못하게 된다.”



조던 벨포트(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분)의 회고록을 원작으로 한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도 나왔다.
조던 벨포트가 동기부여 강사로 다시 태어났다. 1990년대 대규모 증권 사기로 미국 증시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인물이다. 요트를 구입하고 마약을 복용하는 등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 증권사기로 쇠고랑을 찼다. 그의 자서전 ‘월가의 늑대(The Wolf of Wall Street)’를 원작으로 한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도 출시됐다. 한편 악덕 금융가 플로리안 홈은 지금은 라이베리아 아동을 돕는 데 주력하는 자선사업가 이미지를 독일인들에게 심어줬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잘 알려진 비즈니스 모델을 추종해 큰 돈을 벌었다. 남들에게 어떤 피해를 주든 상관하지 않고 최대한 빨리 많은 돈을 모으려 혈안이 됐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집, 자동차, 요트, 애인을 끌어 모았다. 모두 다량의 마약과 함께 소화시켰다. 이제 이 ‘월가의 늑대’가 과거지사가 됐을까?

런던의 적당히 이국적인 번화가 피카딜리에 인접한 터키 커피숍에서 늑대 탐색작업에 착수했다. JP 모건의 글로벌 투자 책임자 출신으로 지금은 다방면에 관심을 보이는 사업가 웨슬리 폴과 만나기로 약속 했다. 가이아나 태생의 폴은 제임스 본드 영화의 캐릭터로 딱이었을 듯하다. 미소가 매력적이며 무기를 좋아할 뿐 아니라 폭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유력 금융가다.

그런 열정은 옛날 유럽과 일본 무기의 광범위한 개인 컬렉션과 영국 왕립무기고박물관(Royal Armouries) 회장 신분에서 잘 드러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무인기 기술에서 출발해 방위 연구분야 투자까지 뻗친다. 그 과정에서 자연히 과학자, 사업가, 군사 관계자 및 기타 모험 사업가들과 폭넓은 교류가 이뤄진다.

폴은 여전히 의욕적이며 끊임없이 호기심을 드러낸다. 네트워킹에 집착하며 자신은 에너지 넘치는 일 중독자라고 털어놓는다. 다행히 “돈벌이 단계”는 오래 전에 넘어섰으며 대신 “목적”에 몰두해 있다. 그 목적은 다양한 형태를 띤다. 일부는 경제적인가 하면 문화적이거나 인도주의적인 목적도 있다. 하지만 모두 비효율, 변칙, 금융기관 이탈(disintermediation) 기회를 탐색하는 강박적인 욕구를 공통분모로 삼는다.

이는 알고 보면 ‘늑대’를 막는 그의 방어책이다. “맞다, 앨런 스탠퍼드의 수하들을 한 번 만났다”고 그가 시인했다. 플렉시글라스(투명 합성수지) 박스에 현금 2000만 달러를 담아 손에 든 채 금박 헬리콥터를 타고 영국 로드 크리켓 경기장에 내린 사기꾼 금융가를 일컫는 말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수익을 어떻게 올리는지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답하지 못했다. 시장조사 담당자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끝으로 그들의 투자 프로그램 전체가 시장수익이 아니라 사실상 스탠퍼드 개인 자산을 담보로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답하지 않았지만 그뒤로는 나와 시선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

64세의 스탠퍼드는 현재 다단계 사기죄로 110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미숙한 금융가들이 아직도 그런 제안에 쉬 속아 넘어가는지 폴에게 물었다.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이라는 책을 즐겨 읽는다. 젊은 금융계 종사자들은 느린 사고의 가치를 과소평가한다. 오로지 단기적인 수익 목표만 생각한다면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못하게 된다.”

젊은 사람들만 잘 속는 건 아니다. 폴은 극히 조심스럽게 말하면서도 한 가지 시나리오를 예로 든다. 몇몇 아시아인 투자자와 기성체제 실력자 그룹 간의 금융거래 안에 관한 자산실사를 요청 받았다. 책상에 앉아 리서치에 착수한 지 오전 반나절도 안돼 그 거래가 얼토당토않으며 투자자가 사기꾼들임을 밝혀낼 수 있었다. 제품이나 아이디어보다는 거래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것이 가장 기본이 되는 황금률이라고 폴은 설명한다. “결국에는 인성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JP 모건에서 우리가 상대한 사람들은 금융계 중에서도 비난의 여지가 없는 얇은 한 꺼풀에 지나지 않았다. 이 같은 구조의 저변에 불투명한 중간지대가 있으며 더 깊이 들어갈수록 오염지역이 커진다. 사전조사를 해야 하며 거래 상대방이나 아이디어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손을 떼야 한다. 평판만 믿었다간 한 번 거래를 잘못해도 파멸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다.”

폴의 많은 프로젝트 중 ‘위대한 제국(The Great Empires)’으로 명명될 예정인 야심적인 박물관 건립 사업이 있다. 이슬람 문명이 세계 문화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보여주려는 취지다. 그가 가장 최근에 자임한 ‘목적’이다. 그와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금융 전문가가 버니 메이도프(희대의 다단계 금융 사기범) 같은 사람에게 속아 넘어갈 수 있는가? 폴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 그가 쌓은 인맥의 위력을 보여주는 작은 증거가 될 듯하다.

그러나 그뒤 내가 도착한 곳은 런던 나이츠브리지에 있는 성공한 부실채권(distressed debt) 투자자 저스틴 비클의 호화판 사무실이었다. 가죽 소파, 고급 호두나무 가구, 유서 깊은 그림들에 둘러싸인 곳이었다. 하지만 비클 자신은 가난한 플리머스시 공공주택단지 출신임을 연상케 했다.

그는 장래 사업 파트너의 인품과 자질을 강조했다. 바로 전의 대화에서도 언급된 점이었다. 대화가 자선사업으로 넘어가자 비클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4자녀의 양육 부담을 안고 있는 가장으로서 “돈벌이 단계를 뛰어넘는다”는 사고가 꿈 같은 이야기인 듯하다. 그렇다고 그가 상당한 애정을 갖고 있는 영국국립발레단 후원을 줄이지는 않았다.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주말 워크샵을 시작하려는 참이다.

순회공연·자금조달·파트너십 같은 주제에 관한 자신의 상당한 상업적 역량을 활용할 계획이다. 나는 그뒤 ‘벤처 자선(venture philanthropy, 벤처 투자 원칙과 방식을 적용한 자선 활동)을 더 깊이 탐구하면서 폴과 비클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 분야에 대한 실무적인 개입에서 일종의 깊은 직무만족을 얻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온갖 이타주의적 토론에 진이 빠진 몸을 끌고 스코츠 주점을 찾아가 얼음처럼 차가운 샴페인 한 잔을 주문했다. 이 곳에서 고급 소비주의라는 주제의 권위자라 해도 무방한 여성을 만나기로 했다. 켈리 러치퍼드는 명품 세계(이탈리아제 요트, 부티크 호텔, 슈퍼부자용 아파트 등)를 홍보하는 PR 회사의 CEO다.

그리고 자금조달을 대단히 중시하는 초부유층 여성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 또한 10억 달러 규모의 모태펀드(fund-of-funds)인 어드밴스드 캐피털을 대표한다. 지출보다 나눔을 중시하는 더 친절한 ‘우리 세대(We Generation)’가 ‘나 세대(Me Generation)’를 대체했는지 그녀에게 물었다.

완벽하게 몸치장을 한 러치퍼드는 모직 셔츠(hair shirt, 중세 시대 참회할 때 고행의 일환으로 입는 거친 털옷)보다는 고운 실크 블라우스 차림이 분명 더 어울리는 듯하다. 초부유층은 예나 변함없이 런던의 첨단유행 특구에서 아름다운 아파트를 구입하며 요트에 올라 석양을 향해 항해한다고 귀띔한다.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시절이라 해도 사회 상류계급은 그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어드밴스드 캐피털로 화제가 넘어가자 곧바로 이들 금융가가 옥스팸이나 아스펜 연구소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강조한다. 옥스팸은 빈민 구호단체이며 아스펜 연구소는 책임 있는 리더십을 장려한다.

켈리는 청춘 같은 아름다움, 명품, 그리고 자선사업은 잘 어울리는 동지가 된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이 같은 관점의 다소 별난 사례로서 그녀는 자신의 유명 스타 고객 중 한 명인 스칼렛 요한슨의 배려를 언급한다. 요한슨은 솔즈4소울즈(Soles4Souls)라는 자선단체를 통해 신지 않는 자신의 구두 2000켤레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낸 듯하다. 애당초 일개인이 구두를 2000켤레나 소유해야 하느냐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약간 특이한 경우라는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표면상 ‘늑대’는 겸양을 배웠다.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후원이 매춘부의 둔부 위에 코카인을 쌓아놓고 코로 흡입하는 것보다 더 지속적인 황홀감을 안겨준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사무실의 방탕함에 관해 묻자 비클이 답한다. “글쎄, 여기서는 난장이 멀리 던지기(dwarf-tossing, 과거 술집에서 하던 내기)는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가 하는 가장 흥미진진한 일은 금요일 오후에 케이크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주 뒤 나는 외부인 출입이 제한된 고급 주택지구의 잘 다듬어진 정원으로 안내됐다. 텍사스주 출신의 악덕 금융가 앨런 스탠퍼드의 옛 수하 한 명과 만남을 폴이 주선했다. 솔직히 그를 만나기 전까지 조던 벨포트의 묘사가 내 예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자신의 투자은행 스트래튼 오크몬트의 수하들을 어리석은 쓰레기들로 묘사했다.

실제론 완전히 달랐다. 50세 가량의 차분하고 품위 있는 중견 기업인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지금도 금융계에서 활동하는 그는 MBA 출신의 국제적인 금융인이다. 그의 이력에는 미국과 유럽의 일류 은행들이 즐비하다. 예상대로 그는 먼저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다.

몇몇 입에 발린 말을 늘어놓은 뒤 물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앨런 스탠퍼드 같은 사람과 얽히게 됐는가? 그는 시가에 불을 붙여 한 모금 빨아들인 뒤 약간 지친 듯이 대답했다. “우량기업들을 거치며 경력을 쌓은 뒤 더 창업지향적인 도전에 끌렸다. 그리고 헤드헌터를 통해 스탠퍼드를 소개 받았다.”

스탠퍼드와의 첫 만남은 아주 기이했다. “마이애미의 고급 호텔에 방을 잡아뒀으니 잠시 후 소집통보가 갈 때까지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잠시’가 3일간 이어졌다. 그렇다고 소집 명령을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수영장 가에서 여유를 부릴 상황도 아니었다.” 결국 카이저 콧수염을 기른 그 사기꾼이 나타나 스위스에 있는 위성 사무소에서 함께 일하자고 권유했다.

곧바로 기대와 어긋나는 일들이 벌어졌다. “처음 규제문제와 스탠퍼드 제품 중 잠재적인 주력상품을 논할 때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그저 미숙하려니 생각했다. 나는 어떤 식으로 수익을 창출하는지 알아야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내가 속았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좋은 기회를 잡았다고 잔뜩 기대했었기 때문이다.”

불과 두어 달 만에 큰 실수를 범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했다.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1년 뒤 스탠퍼드가 잡혀 들어갔다(그리고 동료 수감자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필시 심장이 빠르게 고동칠 때는 느린 사고가 힘든 모양이다.

좀더 대화를 나눠보니 상대방은 분명 지적이고 해박하고 타인의 긍정적인 의도를 잘 믿어주는 성향인 듯하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 답을 알아야 할 질문을 던졌다. 조던 벨포트, 버니 메이도프, 앨런 스탠퍼드 같은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제대로 교훈을 얻은 건가, 아니면 아직도 금융시장 주변에 순진한 사람들을 노리는 늑대들이 어슬렁거리는가?

그는 쿠바산 코히바 시가를 과장된 몸짓으로 한 모금 빨더니 마크 트웨인의 말투(자신의 사망설에 관한 논평)를 흉내내 답했다. “늑대 사망설은 크게 과장됐다(Reports of the Wolf’s death are greatly exaggerated).”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정상 궤도 오른 제네시스

2제1121회 로또 1등 11명...1등 당청금 25억2451만원

3“직구제한 반대”…700명 서울 도심서 집회

4의대교수들 “의대증원 확정은 오보…법원 집행정지 결정 아직 남아있어”

5이재명 “소득대체율 44% 수용…민주당 제안 받아달라”

6 이재명 "여당 제시 '소득대체율 44%' 전적 수용"

7국민의힘, 이재명 연금개혁 주장에 “정치적 꼼수로 삼을 개혁과제 아냐”

8의대 교수들 “정원 늘었지만 교원·시설 모두 제때 확보 어려울 것”

9요미우리, 한중일 공동선언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 담겨

실시간 뉴스

1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정상 궤도 오른 제네시스

2제1121회 로또 1등 11명...1등 당청금 25억2451만원

3“직구제한 반대”…700명 서울 도심서 집회

4의대교수들 “의대증원 확정은 오보…법원 집행정지 결정 아직 남아있어”

5이재명 “소득대체율 44% 수용…민주당 제안 받아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