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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 김정윤의 ‘요리로 본 세상’① 영국 디저트 ‘트라이플’ - 대영제국 요리 체면 살린 디저트

Food | 김정윤의 ‘요리로 본 세상’① 영국 디저트 ‘트라이플’ - 대영제국 요리 체면 살린 디저트

디저트 전성시대다. 싱글족은 간단한 디저트류와 음료로 식사를 해결한다. 주말마다 디저트를 찾아다니는 젊은 맞벌이 부부도 많다. 이왕 먹는 거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는 분위기다. 다이어트를 하더라도 디저트는 포기할 수 없다는 여성도 많다. 해외 유명 디저트 브랜드 ‘몽슈슈’, ‘제르보’ 등이 국내 시장에 잇따라 진출하는 것도 디저트 열풍을 반영한다. 국가별 대표 디저트와 이에 얽힌 이야기를 연재한다.
사진:김정윤 푸드칼럼니스트 제공



영국 출신 스타 쉐프 제이미 올리버(39)는 지난 2003년 엘리자베스 여왕 2세로부터 ‘대영제국 훈장(MBE)’을 받았다. ‘영국 음식은 맛없다’는 오랜 오명을 벗기는 데 일조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국가 자존심과 직결된 문제였다. 그러나 한번 새겨진 편견은 유럽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반도전쟁이 한창이던 19세기 초, 스페인 세고비아주 소도시로 장면을 옮겨보자. 탈영병들이 인질극을 벌이는 등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자 영국 동맹군과 프랑스 정부는 각각 영관급 장교를 급파한다. 문제가 어느 정도 수습되자 한숨 돌린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방금 잡아온 토끼요리 방법을 놓고 격론 을 벌인다. 한마디로 적과의 동침이다. 프랑스 듀프레통 대령이 먼저 “토끼 고기는 기름과 식초, 와인 등 각종 양념에 절여 잡냄새를 없애야 한다”며 “그 다음엔 버터와 베이컨 기름에 갈색빛이 돌 때까지 볶는 것이 매우 중요 하다”고 강조한다. 이어 어울리는 소스 만드는 방법과 올리브유 한 스푼으로 요리 마무리까지 상세히 설명한다.

그러던 중 옆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영국 샤프 소령이 한마디 툭 던진다. “영국에서는 그냥 토끼 고기를 썰어서 물에 끓이고, 소금에 찍어 먹는 데요.” 영국 작가 버나드 콘웰의 역사 소설 <인질 구출 작전(sharp’s enemy)> 의 한 대목이다. 단순하고 맛없는 영국 요리의 특성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문장이다.

그나마 먹을 만한 영국 음식을 꼽으라면 맥주 안주로 어울리는 ‘피쉬앤칩스’ 정도. 이처럼 악명 높은 소문에도 영국의 디저트는 차원이 다르니 한번 도전해볼 만하다는 것이 요리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조언이다. 실제 의외로 맛이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트라이플(trifle)’도 영국의 맛있는 디저트 중 하나다. 컬러와 모양도 예뻐 여성들이 주로 찾는다.

트라이플 디저트는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영국에선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아주 흔한 후식이다. 파르페처럼 주로 기다란 유리컵에 담겨 나온다. 화려한 외관과 달리 만들기 쉽다. 컵의 밑 부분부터 스폰지케이크와 커스터드 크림, 과일 젤리, 흰자 머랭, 산딸기 같은 베리류 과일을 차곡차곡 쌓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조금만 신경 쓰면 남녀노소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음식은 긴 스푼으로 밑 부분까지 한번에 떠먹는 게 포인트다. 크림이 많아 보기엔 느끼할 것 같지만 의외로 새콤한 과일 맛과 담백한 젤리가 이를 보완해 주기 때문이다. 출출할 때 단품으로 먹기에도 나쁘지 않다. 실제 지난해 호주 시드니 제이미 올리버 직영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 트라이플 주문이 한꺼번에 쏟아져 난감했다. 특히 오후 시간대 30~40대 직장 여성들이 많이 찾았다. 그때마다 몇 개 안 되는 전용 스푼을 찾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긴 스푼으로 깊이 파먹어야 제 맛
자존심 구긴 대영제국의 체면을 살린 이 디저트의 역사는 반도전쟁보다 훨씬 앞선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역사에서 ‘피의 여왕’이란 별명이 붙은 메리 1세와 스페인의 최고 훈남 국왕 펠리페 2세 이야기다. 이들의 결혼생활은 비록 짧았지만 트라이플 디저트를 남겼다.

당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 펠리페 2세는 시종들과 함께 전용 요리사까지 영국으로 데려왔다. 신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비스케이 만을 건너 영국으로 왔지만 스페인의 정열적인 맛을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것. 스페인 최고 요리사들은 영국 주방에서 ‘비스코쵸 바라쵸(bizcocho borracho)’라는 디저트를 열심히 만들어 진상했다. 이는 스펀지 케이크를 술과 시럽에 절인 후식이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가상임신 소동 등 우여곡절을 겪자 펠리페 2세는 스페인으로 돌아가 버린다. 다만 스페인의 스펀지 케이크만 덜렁 영국에 남아메리 여왕의 외로움을 달래줬다. 그 후 과일과 크림이 추가되면서 현재의 트라이플로 발전했다. 당시 이 발명품의 인기는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대단했다.

자기 나라 음식에 대해 엄청난 긍지를 가지고 있던 이탈리아 사람들도 이 맛에 홀딱 빠졌다. 18세기에 트라이플과 비슷한 디저트 ‘주파 인 글레제(zuppainglese, 영국 스프라는 뜻)를 만들어 먹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가을 볕이 따가운 요즘 뭔가 새로운 맛을 찾고 있다면 트라이플을 추천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 전문적으로 파는 레스토랑이 없다. 크리스마스 때와 연말, 일부 대기업에서 한시적으로 선보이는 정도다. 다행히 몇 가지 식재료만 구입하면 얼마든지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말도 살찐다’는 이 계절, 한번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트라이플 조리법 - 케이크 깔고 딸기 시럽 등 쌓으면 ‘끝’

트라이플 디저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속이 잘 보이는 길쭉한 유리컵과 컵의 바닥까지 닿는 가늘고 긴 스푼이 필요하다. 먼저 딸기에 설탕 반컵을 넣고 30분 정도 재운 후, 다시 냄비에 넣고 으깨주며 졸인다. 부피가 반 정도로 졸아들면 불을 끄고 레몬주스를 넣고 식힌다. 다음은 우유에 커스터드 크림 믹스를 넣고 크림이 될 때까지 젓는다. 이어 생크림을 넣고 섞어준 뒤, 차갑게 놔둔 흰자에 나머지 설탕을 나눠서 넣으며 거품을 내준다. 볼을 뒤집어도 볼에서 흘러내리지 않는 머랭 상태가 될 때까지 저어준다. 끝으로 컵 바닥에 스폰지케이크를 깔고 준비해둔 딸기 시럽과 커스터드 크림, 머랭 순으로 차곡차곡 쌓아준다. 이어 장식용 과일을 올리고 민트를 올려 마무리한다. 과일을 올리기 전 토치로 머랭의 표면을 갈색이 될 때까지 그을려주면 더욱 먹음직스럽다.


재료: 스폰지케이크 20g, 딸기 반컵, 설탕 4분의 3컵, 레몬주스 약간, 커스터드 크림 믹스 15g, 우유 45g, 생크림 40g, 계란 흰자 40g(한 개 분량), 장식용 과일 약간, 민트잎 1장 등이다. 대부분 우리나라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김정윤- 쉐프이자 푸드칼럼니스트. 경기대 외식조리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스타 쉐프로 유명한 제이미 올리버가 운영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Jamie’s Italian’에서 쉐프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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