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H17 항공편 격추는 러시아 소행?

히긴스를 비롯한 9명의 자원자 그룹은 벨링캣(Bellingcat)으로 불린다. 세계 각지의 여러 전쟁터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한 정보 공백을 메워 왔다. 소셜미디어 메시지와 유튜브 동영상을 직소 퍼즐 조각처럼 짜맞추는 방법이다. 독학으로 오픈소스(공개정보) 분석법을 터득해 페이스북에 올라온 미사일 발사 동영상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다. 동영상의 배경을 구글 어스(위성 영상지도)의 다른 이미지와 대조하는 식이다. 또는 인스타그램(사진 공유 서비스) 게시 자료를 이용해 험준한 지형을 따라 이동하는 장갑차량의 움직임을 추적한다.
서방 첩보당국자들은 히긴스의 노력을 칭찬했다(브뤼셀 방문도 조사결과를 나토에 전달하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취미 활동으로 인해 막강한 적도 생겼다. 영국 중부 레스터 출신인 그는 2013년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살포를 폭로했다. 1년 뒤엔 그의 웹사이트가 이슬람국가(IS)에 공격당했다. IS 전사가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를 참수한 장소일 가능성이 있는 위치 정보를 사이트에 올린 뒤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러시아 정부의 적이 됐다. 소셜미디어에서 러시아 봇(데이터를 찾아주는 프로그램) 군단이 그를 줄기차게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러시아 관영 매체들도 수시로 그를 비난한다. “우리가 분명 러시아 언론을 가슴 졸이게 하는 모양”이라고 히긴스가 말했다. “우리에게 그렇게 큰 관심을 갖는 걸 보면 말이다.”
벨링캣이 크렘린 정부의 심기를 건드린 큰 요인이 있었다. 말레이시아 항공 MH17편에 관한 조사 결과였다. 말레이시아 항공 보잉 777기는 지난해 여름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에서 격추됐다. 탑승자 298명이 전원 사망했다. 러시아 당국은 곧바로 우크라이나 군대의 소행이라고 비난했다. 히긴스 팀은 지난 1년 동안 모스크바가 제시한 사건 경위를 철저히 파헤쳤다. 오는 7월 17일 MH17 추락 1주기를 앞두고 현재 유럽연합(EU)은 러시아 제재를 검토 중이다. 그런 시점에 히긴스는 ‘MH17의 다른 얼굴들(The Other Faces of MH17)’ 이라는 보고서를 새로 공개할 예정이다. 모스크바 정부가 내세우는 주장의 허구성을 한층 더 폭로하려는 의도다. “러시아 측이 거짓말을 하도 많이 해서 폭로할 내용도 아주 많다”고 그가 말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금방 지루해졌을 것이다.”
러시아의 거짓말은 지난해 여름 기자회견으로 시작됐다. 당시 크렘린 정부는 우크라이나 Su-25 전투기가 여객기를 격추시켰다고 주장했다. MH17편 근처에 또 다른 비행기가 있는 듯한 레이더 데이터를 러시아 국방장관이 제시했다. 비행기가 열추적 공대공 미사일로 파괴됐음이 잔해에서 잘 드러난다고 ‘러시아 엔지니어 연맹’이 밝혔다. 키예프의 스페인 항공 관제사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러시아 언론과 인터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전투기 2대가 MH17을 뒤따랐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MH17편에 어떤 비행기가 미사일을 발사하는 듯한 위성 이미지도 등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증거’들이 하나 둘씩 거짓으로 밝혀졌다. 스페인 대사관은 키예프의 어떤 공항에도 스페인인 항공 관제사는 없다고 밝혔다. 레이더에 나타난 점은 MH17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일 뿐이라고 전문가들이 반론을 제기했다. Su-25의 러시아 설계자 중 1명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 전투기는 MH17의 고도로 비행하는 목표물에 미사일을 발사할 수 없다, 여객기를 그렇게 산산조각 낼 수 있는 건 지대공 미사일뿐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벨링캣이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위성 사진이 구글 이미지의 조잡한 합성임을 밝혀냈다. 여객기의 말레이시아 항공 로고도 제자리에 있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믿을 만한 건 우크라이나 정부의 설명뿐이라고 히긴스는 믿는다. 러시아가 공급·운영하는 발사장치에서 쏘아 올린 부크 미사일이 MH17을 격추시켰다는 설명이다. 추락지점 인근의 반군 점령 지역에서 AP통신이 발견해 당초 그의 관심을 끌었던 발사장치 중 하나였다. 그 발사장치는 지난해 여름 이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러시아가 구축해온 복잡한 대공 방어 시스템의 일부라고 우크라이나 군이 말했다. “6월에 도네츠크 인근에 위치한 토레즈, 그리고 노보아조브스크 북쪽에 부크 미사일 3기가 들어왔다”고 우크라이나 공군의 올레그 자카르추크 참모차장이 말했다. “우리 비행기들은 레이더 경보 수신 시스템을 갖췄다. 정찰에 나선 우리 조종사들이 때때로 레이더망에 잡혔다. 부크 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있음을 조종석의 비행사도 알 수 있다. MH17편이 추락한 바로 그 지역이었다.”
그러자 언제나 플랜 B를 준비해 놓는 러시아답게 다른 가설을 내놓았다. MH17이 부크 미사일에 격추당한 건 맞지만 그것은 키예프 정부에 충성하는 군대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발사했다는 주장이었다. 크렘린 정부는 이번에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위성사진을 내놓았다. 그러나 벨링캣은 위성 이미지를 자체적으로 입수해 또 다시 러시아의 사진이 디지털 기술로 조작됐음을 시사했다. 러시아 국방부에 전화와 이메일로 벨링캣의 조사결과에 대한 논평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답변도 없었다.
러시아 부대 소속 군인들의 SNS 프로필 수집

히긴스는 크렘린의 수법을 직접 겪어 봤다고 한다. 요 몇 달 사이 러시아 국영매체들이 그에게 집요하게 인터뷰를 요청하며 거절이라도 하면 겁쟁이라고 불렀다. 그가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또 유라마이단 혁명(유럽 통합 지지자들의 봉기) 때 우크라이나의 친크렘린 정부 전복에 일조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히긴스는 자신의 단체가 독립적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중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법과 대학생, 심지어 25년 전 동독 비밀경찰 슈타시 요원이었던 사람도 있다. 핀란드·폴란드·네덜란드·독일·미국 출신이다.”
크렘린이 계속 관심을 보이는 한 가지 이유는 분명하다. 히긴스가 이젠 러시아 주장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벨링캣은 몇 달 전부터 소셜미디어 게시 자료의 실제 위치를 확인해 왔다. AP통신이 찾아낸 부크 미사일 발사장치의 움직임을 추적하기 위해서다. 그 자취는 반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러시아의 기지로 이어졌다. 그에 따라 히긴스 팀은 발사장치를 다뤘다고 여겨지는 러시아 부대 소속 군인들의 소셜미디어 프로필을 샅샅이 훑었다. “군인들의 소셜미디어 프로필을 100건 이상 수집했다. 그 부대 조직을 재구성할 작정”이라고 히긴스가 말했다. “관련자 신상을 파악하고 MH17을 격추시킨 부크 미사일을 러시아 접경으로 이동시킨 수송대원들의 신원을 알아내려 한다.”
히긴스 팀은 최초로 여객기 피격 참사의 배후에 이름과 얼굴을 채워 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정보를 네덜란드·말레이시아·호주·벨기에·우크라이나 출신 수사관들로 이뤄진 조사팀에 제공했다. 여객기 추락사건의 범죄수사를 이끌고 있는 팀이다. 조사팀은 벨링캣 보고서에 관한 논평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증인소환, 범인 인도요청, 기소에 기여할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 보고서에 관해 알고 있다”고 네덜란드 검찰청의 빔 데 브루인 대변인이 말했다. “우리 자체적으로 추락 원인을 규명해 공소를 제기할 만큼 충분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용의자를 지목하고 그들을 추적해 기소할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브뤼셀의 호텔방에서 만났을 때 히긴스는 자기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크렘린의 소행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모두 말해주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러시아가 실제 무슨 일을 하는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말할 수 있다. ‘보라, 여기 증거가 있다. 사진과 동영상이 있다. 이것이 러시아의 속셈이다’라고.”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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