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중심 독일·영국] 獨 이민 키워드 ‘대도시·엔지니어·독일인 고용’
[유럽의 중심 독일·영국] 獨 이민 키워드 ‘대도시·엔지니어·독일인 고용’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지식과 문화의 중심지. 유럽은 오래 전부터 세계인의 로망이다. 세계인의 가치 체계를 지배하는 철학과 과학, 한 발 앞선 디자인을 품은 명품, 높은 경제 수준에서 보장받는 복지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누릴 수 없는 매력이다. 그래서 유럽에 산다는 것은 남다른 취향을 뜻하기도 했다. 문만 열면 고풍스러운 건물이 즐비하고 세계 문화유산을 지닌 박물관과 미술관을 마실 다녀오듯 챙겨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휴일마다 다양한 유럽 국가를 손수 운전해서 다닐 수도 있다. 오랜 경기 침체로 예전만 못 하지만,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 다양한 직종에 글로벌 기업 본사가 포진해 있어 취업에도 유리한 편이다. 이에 더해 저렴한 교육비용은 자녀와 후세를 위한 덤이다. 그런 유럽 중에서도 독일과 영국은 한국인이 이민 가고 싶어하는 나라로 손꼽힌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뛰어난 기술력과 높은 생산성을 자랑한다. 유럽이 글로벌 경제위기로 휘청거리는 사이에도 독일은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독일은 유럽을 먹여 살리는 경제 수도로 불린다. 이민에 대해서도 관대한 편이다. 오래 전부터 시행해온 이민정책으로 전 국민의 20%정도가 이민자나 이민 가족 출신이다. 파독광부×파독간호사로 한국인 1세대 이민자가 많아 한국인에 대한 인상도 좋은 편이다. 늘 그렇듯, 한국인은 독일에서 ‘성실하고 근면하고 검소하고 소탈하다’는 이미지다.
벤츠·포르쉐 등 자동차산업으로 유명한 독일 슈르트가르트. 이곳 한인 교회에 가면 현재 한인 이민자들의 구성을 짐작할 수 있다. 교인 25~30%를 구성하는 어르신들 대부분은 파독광부나 파독간호사 출신이다. 30%는 유학생, 나머지 30~40%는 새로 이민온 직장인이다. 직장인 중엔 유학을 한 뒤 독일에서 직장을 가진 사람보다 한국에서 독일로 직장을 옮긴 사람이 다수다. 유학 직후 직업을 가진 이들 중에 30% 정도는 연주자나 가수 등 음악을 업으로 한다. 나머지 대부분은 자동차나 기계 쪽 기업을 다닌다. 자영업은 수가 적은 편이다. 주로 한국 수퍼마켓이나 요식업 가게다. 한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가게가 주를 이룬다. 대기업 주변 작은 사무실에는 한국어-독일어 번역이나 통역을 하는 한인도 제법 있다.
독일은 취업이민 비율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엔지니어 등 전문 기술인이 아니면 독일 기업에 취업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다수 한국인이 주로 활용하는 이민 방법은 따로 있다. 가족 중 1명이 먼저 독일 현지를 답사하고 사업체를 만든 뒤 가족을 부르는 방식이다. 독일에서 사업을 시작하려면 법인 설립 비용으로 최소 2만5000 유로(약 3200만원)가 든다. 이 정도 자본으로 한국에서 운영하던 사업체의 독일 연락사무소를 만드는 것이다. 사업이 어느 정도 유지되면 동반비자를 신청해 가족을 현지로 부를 수 있다. 현지 연락사무소를 통해 물자와 자금을 주고 받으면서 생활자금도 벌 수 있다. 이렇게 5년 정도 납세 실적을 쌓으면 모든 가족을 부를 수 있는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아무리 작은 연락사무소라고 해도 세율은 높다. 통상 세율은 수익의 48~49%에 달한다.
이런 투자이민 전략에 난점도 있다. 업종에 따라 영주권을 받지 못할 수 있다. 독일 공무원은 주관적으로 이민자의 사업이 독일인 일자리를 뺏는다, 뺏지 않는다고 판단할 재량을 가진다. 일자리를 뺏는다고 보면 영주권 신청을 반려할 수 있다. 독일 내 기업과 경쟁하지 않는 무역업 등은 별 문제가 없다. 독일에 이민하려는 사람이 무역업을 주로 선택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일례로 뮌헨에서 작은 미용실을 열려던 한 한인은 영주권 발급을 거부당했다. 뮌헨 지역 공무원이 한인 미용사가 독일인 미용사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한인 미용사는 베를린으로 넘어갔다. 다시 영주권을 신청하자 수월하게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다. 지역마다, 공무원마다 판단이 다르단 얘기다. 영주권을 받은 미용사는 다시 뮌헨으로 돌아가 미용실을 차렸다.
현지 한인들에 따르면, 독일은 공무원에게 자율적인 판단과 재량권을 많이 주는 편이다. 이 때문에 지역마다 영주권 신청에 유·불리한 업종이 천차만별일 수 있다. 한인들은 외국인 이민자가 많은 대도시일수록 영주권을 쉽게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귀띔한다. 베를린 등에선 너무 많은 영주권 신청이 들어와 서류를 일일이 따져볼 공무원 수가 절대 부족하다고 한다. 그래서 세금 납부 실적 등 ‘숫자만 맞으면’ 영주권을 내준다는 것이다.
정해진 지역에서 반드시 해당 업종으로 영주권을 받아야 한다면 우회적인 방법도 있다. 독일인 1~2명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했다는 사실만 입증하면 된다. 공무원이 사업과 영주권을 거부할 명분을 없애는 방법이다. 독일인 중엔 이런 사실을 알고 영주권을 받을 때까지만 ‘월급을 받아주는’ 실직자도 흔하다고 한다.
사업 경험이 없다면 어학원을 통하는 게 이민에 유리하다. 만 30세 이상으로 유학하는 방법이다. 독일어 어학학교에 등록하면 3년 체류비자를 준다. 보통 1~2년 정도 등록하는데, 원하면 1년 만에 과정을 마칠 수도 있다. 현지에서 사업을 알아보려는 사람은 가능한 장기간 어학원에 등록한다. 이 기간 동안 독일에서 할 수 있는 사업거리를 찾아보기 위해서다. 학원비는 월 50만~60만원 정도, 사설 학원은 70만~80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장기 체류를 하려면 집을 구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물가 수준은 한국의 강남 정도다. 어학원이 대개 대도시에 있어 집을 구하는 것도 어려운 편이다. 베를린의 1인 기준 월세는 70만~80만원 정도 된다. 보증금으로 2~3 개월 치를 미리 줘야하고 중개수수료는 보증금 정도로 비싼 편이다.
어학원이나 학교를 졸업하면 6개월~1년 정도 체류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어차피 독일 영주권을 취득하려면 기초 과정 수준의 독일어 시험을 봐야 한다. 여러모로 어학원을 거치는 게 정착에 유리하다. 시험은 쉬운 편으로, 어학원 과정 정도만 성실하게 다니면 무난히 합격할 수 있다. 시험에 합격한 뒤엔 간단한 아르바이트만 해도 노동계약서를 받을 수 있다. 임금을 받고 세금을 내면 장기 거주 체류증을 받는데 취업이 유지되거나 독일인 고용주가 필요하다고 증명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체류기간이 연장된다.
하지만 정규직 취업은 상당히 힘든 편이다. 한국에서 쌓은 경력을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주로 견습생부터 시작한다. 직업교육시스템을 통한 하우스빌더 등 노무직이 많다. 서비스업은 언어의 한계로 거의 취업이 어렵다고 보면 된다. 독일 유학을 전문으로 하는 제스유학 강원석 대표는 “시간 여유를 가지고 독일을 충분히 살펴보고 확실한 사업거리가 생겼을 때 이민을 결정해도 늦지 않다”며 “나라보다 자신의 직업을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손쉽고 편리한 이민 방법은 독일 파견이나 독일계 회사로의 이직이다. 독일에선 기계공학·화학공학·법학 등의 전공자에게 기회가 많다. 독일 자동차부품 회사에서 임원으로 재직 중인 S 상무가 좋은 예다. 그는 한국의 H 자동차회사에서 9년 동안 근무하다 독일로 자리를 옮겼다. 직장을 다니던 중 해외 협력사에서 같이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며 먼저 제안을 해왔다. 독일 회사는 고용계약서만 주고 비자는 S 상무가 일일이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취업비자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회사가 고용계약서를 만들면서 독일 정부에 왜 이 사람을 반드시 고용해야 하는지, 왜 독일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지 등을 상세히 소명했기 때문이다. 고용계약 기간도 중요했다. S 상무는 자녀가 없을 때 이민을 해서 독일에서 얼마나 지낼지 결정하지 못했다. 사정을 들은 독일 회사는 고용기간을 무제한(영구고용)으로 했고 이는 이후 영주권을 수월하게 받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S 상무는 독일어를 거의 하지 못해서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독일 회사가 글로벌 기업이라 근무시간 동안 영어만 사용했다. 취업비자를 받더라도 5년 동안 소득을 신고해야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매니저급 이상이거나 독일에 없는 과학기술을 가진 사람은 1년만 지내면 영주권을 받을 수도 있다.
S 상무는 독일에 올 땐 임원이 아니어서 차량과 집을 직접 구해야 했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4인 가족이 지낼 만한 90㎡ 아파트를 기준으로 하면 월세는 1000~1600 유로(약 128만~200만원) 정도다. 하지만 거의 전용면적이어서 한국의 아파트보단 공간이 좀 더 나온다고 한다. 생활비는 한국 보다 싸다. 대도시와 시골 간 물가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우유 1L 값이 1유로를 밑돈다. 돼지 목살 1kg이 7유로 정도니, 한국보다 식료품 가격은 저렴한 편이다. 의료비 등도 무료다. 무엇보다도 자녀 교육비가 들지 않는 점이 이민자에게 큰 혜택이다. S 상무의 자녀는 사립 유치원에 다니는데 월 400유로(약 51만원) 정도 든다. 이런 유치원을 보내면 독일 사람들은 혀를 내두른다고 한다. 독일인 자녀 98%가 공립 유치원에 다니는데, 이들 유치원은 시재정에 따라 100유로 정도만 부담한다. 그나마 가정형편이 어려우면 100유로도 받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득을 증빙해야 하거나 아이들 급식을 제한하는 등 차별하지는 않는다. 연봉 수준은 대졸 신입이 4만~5만 유로(약 5120만~6400만원) 정도다. 하지만 한국처럼 연차에 따라 연봉이 오르지는 않는다. 승진을 하거나 업무가 늘어나면 연봉이 한꺼번에 오른다. 직장인 세율은 35% 정도. S 상무는 회사에서 주는 자동차를 쓰는데, 관련 세금으로만 한 달에 500 유로를 내고 있다.
S 상무는 독일 취업 이민에 대해 “가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하기는 하지만 상사 눈치를 안 봐도 되고 보고서 형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서 마음 편하게 일하고 있다”며 “쉬는 날이나 휴가 등이 보장돼 있어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삶의 질과 수준이 상당히 올라간 느낌”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이가 독일에서 소수자로 자라게 될 수 있다는 걱정, 한국의 부모님을 자주 뵐 수 없다는 점이 늘 마음에 걸린다”고 덧붙였다.
영국은 독일보다 영주권 취득이 까다롭고 초기 정착 비용도 많이 드는 편이다. 이 때문에 영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 대부분은 취업이민이나 결혼이민 등을 통한다. 혹은 유학생 신분으로 넘어간 뒤 정착을 위해 취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영국 현지 회사에 전문직으로 취직하기는 쉽지 않다. 이를 통하지 않고 이민을 하기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그럼에도 영어를 쓰는 유럽이라는 점 때문에 영국 이민을 꿈꾸는 한국인이 많다.
2006년 영국 유학길에 오른 김주선씨는 한 재영교포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1년 만에 결혼에 골인. 3년 전부터 런던 북서부에서 작은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다. 좌석 10여개 정도 밖에 없는 아담한 가게다. 손님은 많지 않지만 한가하진 않는 정도다. 이런 정도 가게는 가치에 따라 권리금(프리미엄)이 붙는다. 대략 5만~19만 파운드(약 9000만~3억4000만원) 정도다. 작은 가게 권리금 치곤 꽤 비싸다.
김씨는 비싼 권리금에 놀라 처음부터 새로운 가게를 직접 차리겠다고 마음먹었다. 요식업 허가를 받고 음식물 관리 교육을 받았다. 가게를 내는 과정에서 변호사·회계사 비용으로 각각 2000파운드(약 364만원)씩 들었다. 가장 돈이 많이 든 것은 인테리어다. 10만 파운드(약 1억8000만원)나 들었다. 본래 하던 부동산 사무실 옆에 가게를 만드는 거라 추가 임대료는 들지 않았다. 그래도 대략 2억원 넘게 초기 자본금으로 들었다. 런던에서 일반적인 아메리카노 커피 가격은 1잔당 2파운드50실링(약 4500원) 정도 한다. 김씨의 경우, 매일 10개 테이블에서 3년간 1일 회전수가 4.5회 이상은 돼야 투자금을 모두 회수할 수 있다. 서울 시내에서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여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영국에 이민한 한국인들이 가장 흔하게 하는 자영업은 식당이다. 그중에서도 일식이 인기다. 부유층이 많이 사는 런던 북서부 영국인들은 고급 음식으로 일식을 꼽는다. 하지만 일식 주방장은 여전히 부족해서 생김새가 비슷한 한국인이 일식당을 많이 연다. 영국에서 식당을 열려면 영주권을 먼저 받아야 한다. 비자를 받기 전까지는 가게를 열 수 없다. 그래서 보통 5~10년 정도 영국에서 살면서 영주권 따기만 고대해야 한다. 이 기간 동안 영국의 큰 식당 등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며 영국 문화와 언어, 식당 경영 등을 배워가며 종잣돈을 모으는 한국인이 많다.
영국에선 제조 등 생산시설이 별로 없다. 서비스업이 강한 나라인 만큼 한국인 이민자들도 학원 등의 교육업이나, 여행사·유학원을 운영하는 사람이 다수다. 하지만 이런 업종에 진입하긴 쉽지 않다. 영국에서 학교를 나오거나 오랫동안 영국에서 살아 교육계 네트워크를 확보해야만 진입해야 할 수 있는 업종이다. 우여곡절 끝에 사업을 시작했다 해도 자리를 잡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린다. 보통 2~3년 정도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본격적인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까지 3년 정도 생활비를 따로 확보해 둬야 한다. 금액으로는 20만 파운드(약 3억6000만원) 정도 된다.
그 외에도 정착하는데 부가적인 비용이 많이 든다. 현지 이민자들은 영어를 꽤 잘한다는 한국인도 영국에서 영어를 못해 곤란한 경우를 많이 겪는다고 조언한다. 복잡한 영국의 사회 시스템을 익히기 위해선 각종 법률 지원이나 통역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이 때마다 커미션을 들여야 해서 든든하다고 생각했던 여유자금마저 금방 동날 수 있다.
주거비용도 만만치 않다. 한인들이 모여 사는 런던 북서부는 임대료가 다소 비싼 편이다. 그럼에도 여성 안전 등의 문제로 한인 빌라촌에 몰려있다. 4인 가족이 생활할 만한 76㎡ 방2개짜리 주택은 40만~50만 파운드(약 7억~9억원) 정도 나간다. 빌린다면 월세로 1500 파운드(약 270만원) 내외다. 주민세 등 세금도 비싸다. 가구당 120~150 파운드(약 23만원) 정도다. 이 때문에 특별히 부유하지 않은 한국인 대부분은 집을 빌린 뒤 전 전세로 방을 빌려주고 있다. 지역에 따라 보다 저렴한 주택도 있다. 하지만 외국인들간 범죄가 자주 벌어져 가족 단위로 가서 살기엔 위험하다고 한다. 인종차별이 더러 있지만 그나마 런던처럼 전 세계인이 모여 사는 곳은 덜한 편이다. 이민자를 많이 받는 나라라서 차별에 대한 영국 정부의 제재가 강하다. 하지만 런던 외곽으로만 나가도 차별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현지 한인들은 경고한다. 그럼에도 벌이가 넉넉하진 않다. 법정 정규직으로 요식업에서 초심자로 일한다고 가정하자. 시간당 6파운드50실링으로 하루 8시간만 일할 수 있다. 1주 40시간을 모두 채워서 일하면 월급으로 1040 파운드(약 190만원) 정도를 번다. 월급을 다 해도 월세 내기 어려운 수준이다. 자녀가 있다면 영국의 비싼 교육비도 고려해야 한다. 공립학교는 무료지만 무리 없이 적응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한국의 사립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사립 프라이머리 학교는 1년 3학기를 통틀어 1만5000 파운드(약 2700만원) 정도 학비가 든다.
아이가 있는 이민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은 좋지 않다. 보육과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되지 않는 편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반드시 부모가 가야 하는데 직장생활과 병행하기 힘든 구조다. 일을 하기 위해 아이를 맡기는 데 드는 비용이 일을 해서 버는 것보다 더 많이 들기도 한다. 보통 사무직 여성이 시간당 8 파운드를 버는데 아이를 맡기면 시간당 8~9 파운드를 내야 한다. 현지 한인들은 영어에 자신 있는 한국인들이 ‘유럽+영어’라는 이유로 영국 이민에 많이 덤벼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면 벌기는 어렵고 물가는 비싼 런던을 견디기 힘들 거라고 조언한다.
- 박상주 기자 park.sangjoo@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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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부동산값 강남, 식료품값은 시골 수준
벤츠·포르쉐 등 자동차산업으로 유명한 독일 슈르트가르트. 이곳 한인 교회에 가면 현재 한인 이민자들의 구성을 짐작할 수 있다. 교인 25~30%를 구성하는 어르신들 대부분은 파독광부나 파독간호사 출신이다. 30%는 유학생, 나머지 30~40%는 새로 이민온 직장인이다. 직장인 중엔 유학을 한 뒤 독일에서 직장을 가진 사람보다 한국에서 독일로 직장을 옮긴 사람이 다수다. 유학 직후 직업을 가진 이들 중에 30% 정도는 연주자나 가수 등 음악을 업으로 한다. 나머지 대부분은 자동차나 기계 쪽 기업을 다닌다. 자영업은 수가 적은 편이다. 주로 한국 수퍼마켓이나 요식업 가게다. 한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가게가 주를 이룬다. 대기업 주변 작은 사무실에는 한국어-독일어 번역이나 통역을 하는 한인도 제법 있다.
독일은 취업이민 비율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엔지니어 등 전문 기술인이 아니면 독일 기업에 취업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다수 한국인이 주로 활용하는 이민 방법은 따로 있다. 가족 중 1명이 먼저 독일 현지를 답사하고 사업체를 만든 뒤 가족을 부르는 방식이다. 독일에서 사업을 시작하려면 법인 설립 비용으로 최소 2만5000 유로(약 3200만원)가 든다. 이 정도 자본으로 한국에서 운영하던 사업체의 독일 연락사무소를 만드는 것이다. 사업이 어느 정도 유지되면 동반비자를 신청해 가족을 현지로 부를 수 있다. 현지 연락사무소를 통해 물자와 자금을 주고 받으면서 생활자금도 벌 수 있다. 이렇게 5년 정도 납세 실적을 쌓으면 모든 가족을 부를 수 있는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아무리 작은 연락사무소라고 해도 세율은 높다. 통상 세율은 수익의 48~49%에 달한다.
이런 투자이민 전략에 난점도 있다. 업종에 따라 영주권을 받지 못할 수 있다. 독일 공무원은 주관적으로 이민자의 사업이 독일인 일자리를 뺏는다, 뺏지 않는다고 판단할 재량을 가진다. 일자리를 뺏는다고 보면 영주권 신청을 반려할 수 있다. 독일 내 기업과 경쟁하지 않는 무역업 등은 별 문제가 없다. 독일에 이민하려는 사람이 무역업을 주로 선택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일례로 뮌헨에서 작은 미용실을 열려던 한 한인은 영주권 발급을 거부당했다. 뮌헨 지역 공무원이 한인 미용사가 독일인 미용사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한인 미용사는 베를린으로 넘어갔다. 다시 영주권을 신청하자 수월하게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다. 지역마다, 공무원마다 판단이 다르단 얘기다. 영주권을 받은 미용사는 다시 뮌헨으로 돌아가 미용실을 차렸다.
현지 한인들에 따르면, 독일은 공무원에게 자율적인 판단과 재량권을 많이 주는 편이다. 이 때문에 지역마다 영주권 신청에 유·불리한 업종이 천차만별일 수 있다. 한인들은 외국인 이민자가 많은 대도시일수록 영주권을 쉽게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귀띔한다. 베를린 등에선 너무 많은 영주권 신청이 들어와 서류를 일일이 따져볼 공무원 수가 절대 부족하다고 한다. 그래서 세금 납부 실적 등 ‘숫자만 맞으면’ 영주권을 내준다는 것이다.
정해진 지역에서 반드시 해당 업종으로 영주권을 받아야 한다면 우회적인 방법도 있다. 독일인 1~2명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했다는 사실만 입증하면 된다. 공무원이 사업과 영주권을 거부할 명분을 없애는 방법이다. 독일인 중엔 이런 사실을 알고 영주권을 받을 때까지만 ‘월급을 받아주는’ 실직자도 흔하다고 한다.
사업 경험이 없다면 어학원을 통하는 게 이민에 유리하다. 만 30세 이상으로 유학하는 방법이다. 독일어 어학학교에 등록하면 3년 체류비자를 준다. 보통 1~2년 정도 등록하는데, 원하면 1년 만에 과정을 마칠 수도 있다. 현지에서 사업을 알아보려는 사람은 가능한 장기간 어학원에 등록한다. 이 기간 동안 독일에서 할 수 있는 사업거리를 찾아보기 위해서다. 학원비는 월 50만~60만원 정도, 사설 학원은 70만~80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장기 체류를 하려면 집을 구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물가 수준은 한국의 강남 정도다. 어학원이 대개 대도시에 있어 집을 구하는 것도 어려운 편이다. 베를린의 1인 기준 월세는 70만~80만원 정도 된다. 보증금으로 2~3 개월 치를 미리 줘야하고 중개수수료는 보증금 정도로 비싼 편이다.
어학원이나 학교를 졸업하면 6개월~1년 정도 체류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어차피 독일 영주권을 취득하려면 기초 과정 수준의 독일어 시험을 봐야 한다. 여러모로 어학원을 거치는 게 정착에 유리하다. 시험은 쉬운 편으로, 어학원 과정 정도만 성실하게 다니면 무난히 합격할 수 있다. 시험에 합격한 뒤엔 간단한 아르바이트만 해도 노동계약서를 받을 수 있다. 임금을 받고 세금을 내면 장기 거주 체류증을 받는데 취업이 유지되거나 독일인 고용주가 필요하다고 증명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체류기간이 연장된다.
하지만 정규직 취업은 상당히 힘든 편이다. 한국에서 쌓은 경력을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주로 견습생부터 시작한다. 직업교육시스템을 통한 하우스빌더 등 노무직이 많다. 서비스업은 언어의 한계로 거의 취업이 어렵다고 보면 된다. 독일 유학을 전문으로 하는 제스유학 강원석 대표는 “시간 여유를 가지고 독일을 충분히 살펴보고 확실한 사업거리가 생겼을 때 이민을 결정해도 늦지 않다”며 “나라보다 자신의 직업을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기계·자동차 경력자라면 이직·이민 도전할 만
S 상무는 독일에 올 땐 임원이 아니어서 차량과 집을 직접 구해야 했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4인 가족이 지낼 만한 90㎡ 아파트를 기준으로 하면 월세는 1000~1600 유로(약 128만~200만원) 정도다. 하지만 거의 전용면적이어서 한국의 아파트보단 공간이 좀 더 나온다고 한다. 생활비는 한국 보다 싸다. 대도시와 시골 간 물가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우유 1L 값이 1유로를 밑돈다. 돼지 목살 1kg이 7유로 정도니, 한국보다 식료품 가격은 저렴한 편이다. 의료비 등도 무료다.
런던 북서부 일식당 인기
S 상무는 독일 취업 이민에 대해 “가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하기는 하지만 상사 눈치를 안 봐도 되고 보고서 형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서 마음 편하게 일하고 있다”며 “쉬는 날이나 휴가 등이 보장돼 있어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삶의 질과 수준이 상당히 올라간 느낌”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이가 독일에서 소수자로 자라게 될 수 있다는 걱정, 한국의 부모님을 자주 뵐 수 없다는 점이 늘 마음에 걸린다”고 덧붙였다.
영국은 독일보다 영주권 취득이 까다롭고 초기 정착 비용도 많이 드는 편이다. 이 때문에 영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 대부분은 취업이민이나 결혼이민 등을 통한다. 혹은 유학생 신분으로 넘어간 뒤 정착을 위해 취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영국 현지 회사에 전문직으로 취직하기는 쉽지 않다. 이를 통하지 않고 이민을 하기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그럼에도 영어를 쓰는 유럽이라는 점 때문에 영국 이민을 꿈꾸는 한국인이 많다.
2006년 영국 유학길에 오른 김주선씨는 한 재영교포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1년 만에 결혼에 골인. 3년 전부터 런던 북서부에서 작은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다. 좌석 10여개 정도 밖에 없는 아담한 가게다. 손님은 많지 않지만 한가하진 않는 정도다. 이런 정도 가게는 가치에 따라 권리금(프리미엄)이 붙는다. 대략 5만~19만 파운드(약 9000만~3억4000만원) 정도다. 작은 가게 권리금 치곤 꽤 비싸다.
김씨는 비싼 권리금에 놀라 처음부터 새로운 가게를 직접 차리겠다고 마음먹었다. 요식업 허가를 받고 음식물 관리 교육을 받았다. 가게를 내는 과정에서 변호사·회계사 비용으로 각각 2000파운드(약 364만원)씩 들었다. 가장 돈이 많이 든 것은 인테리어다. 10만 파운드(약 1억8000만원)나 들었다. 본래 하던 부동산 사무실 옆에 가게를 만드는 거라 추가 임대료는 들지 않았다. 그래도 대략 2억원 넘게 초기 자본금으로 들었다. 런던에서 일반적인 아메리카노 커피 가격은 1잔당 2파운드50실링(약 4500원) 정도 한다. 김씨의 경우, 매일 10개 테이블에서 3년간 1일 회전수가 4.5회 이상은 돼야 투자금을 모두 회수할 수 있다. 서울 시내에서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여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영국에 이민한 한국인들이 가장 흔하게 하는 자영업은 식당이다. 그중에서도 일식이 인기다. 부유층이 많이 사는 런던 북서부 영국인들은 고급 음식으로 일식을 꼽는다. 하지만 일식 주방장은 여전히 부족해서 생김새가 비슷한 한국인이 일식당을 많이 연다. 영국에서 식당을 열려면 영주권을 먼저 받아야 한다. 비자를 받기 전까지는 가게를 열 수 없다. 그래서 보통 5~10년 정도 영국에서 살면서 영주권 따기만 고대해야 한다. 이 기간 동안 영국의 큰 식당 등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며 영국 문화와 언어, 식당 경영 등을 배워가며 종잣돈을 모으는 한국인이 많다.
영국에선 제조 등 생산시설이 별로 없다. 서비스업이 강한 나라인 만큼 한국인 이민자들도 학원 등의 교육업이나, 여행사·유학원을 운영하는 사람이 다수다. 하지만 이런 업종에 진입하긴 쉽지 않다. 영국에서 학교를 나오거나 오랫동안 영국에서 살아 교육계 네트워크를 확보해야만 진입해야 할 수 있는 업종이다. 우여곡절 끝에 사업을 시작했다 해도 자리를 잡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린다. 보통 2~3년 정도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본격적인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까지 3년 정도 생활비를 따로 확보해 둬야 한다. 금액으로는 20만 파운드(약 3억6000만원) 정도 된다.
그 외에도 정착하는데 부가적인 비용이 많이 든다. 현지 이민자들은 영어를 꽤 잘한다는 한국인도 영국에서 영어를 못해 곤란한 경우를 많이 겪는다고 조언한다. 복잡한 영국의 사회 시스템을 익히기 위해선 각종 법률 지원이나 통역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이 때마다 커미션을 들여야 해서 든든하다고 생각했던 여유자금마저 금방 동날 수 있다.
주거비용도 만만치 않다. 한인들이 모여 사는 런던 북서부는 임대료가 다소 비싼 편이다. 그럼에도 여성 안전 등의 문제로 한인 빌라촌에 몰려있다. 4인 가족이 생활할 만한 76㎡ 방2개짜리 주택은 40만~50만 파운드(약 7억~9억원) 정도 나간다. 빌린다면 월세로 1500 파운드(약 270만원) 내외다. 주민세 등 세금도 비싸다. 가구당 120~150 파운드(약 23만원) 정도다. 이 때문에 특별히 부유하지 않은 한국인 대부분은 집을 빌린 뒤 전 전세로 방을 빌려주고 있다. 지역에 따라 보다 저렴한 주택도 있다. 하지만 외국인들간 범죄가 자주 벌어져 가족 단위로 가서 살기엔 위험하다고 한다. 인종차별이 더러 있지만 그나마 런던처럼 전 세계인이 모여 사는 곳은 덜한 편이다. 이민자를 많이 받는 나라라서 차별에 대한 영국 정부의 제재가 강하다. 하지만 런던 외곽으로만 나가도 차별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현지 한인들은 경고한다.
사립초등학교 연간 학비 2700만원
아이가 있는 이민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은 좋지 않다. 보육과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되지 않는 편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반드시 부모가 가야 하는데 직장생활과 병행하기 힘든 구조다. 일을 하기 위해 아이를 맡기는 데 드는 비용이 일을 해서 버는 것보다 더 많이 들기도 한다. 보통 사무직 여성이 시간당 8 파운드를 버는데 아이를 맡기면 시간당 8~9 파운드를 내야 한다. 현지 한인들은 영어에 자신 있는 한국인들이 ‘유럽+영어’라는 이유로 영국 이민에 많이 덤벼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면 벌기는 어렵고 물가는 비싼 런던을 견디기 힘들 거라고 조언한다.
- 박상주 기자 park.sangjoo@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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