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AI 기업 과실, 국민과 나눠야 할까[한세희 테크&라이프]
- 일자리 빼앗는 AI…빅테크 독점 암울한 미래를 막을 새로운 대안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만약 인공지능(AI)이 우리 모두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이라면,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우리는 AI에 대해 얼마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깊이 개입할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기자들 앞에서 “주요 AI 기업들의 일부를 미국 대중에게 주는 방안”을 언급해 화제가 됐다. AI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인한 우려를 덜 수 있다는 것이다. 오픈AI나 앤트로픽 같은 AI 기업이 지분을 출자해 펀드를 만들어 대중에 수익을 나누는 형태를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오픈AI는 4월 AI로 인한 경제 성장의 결실을 모든 시민들과 나누는 ‘국부 펀드’ 조성을 제안한 바 있다. 백악관 일부 인사들이 이 제안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AI 확산으로 고용이 줄어들어 사람들은 고통받고 기술 발전의 혜택은 소수 빅테크 기업과 그곳에서 일하는 엘리트 인력에게만 돌아가는 암울한 미래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아이디어다. 혹은 그런 우려로 인한 대중의 반감으로 AI 사업에 지장이 생길 것을 걱정한 오픈AI의 제안이라 봐도 될 것이다.
‘사회주의’ 비판 속에서 지분 확보 나선 미국
기본소득처럼 개인에게 직접 현금을 쏘는 방식은 아니지만,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칠 기술의 등장으로 발생할 큰 이익을, 이로 인해 피해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중 전체에 일부 나누자는 기본 접근은 비슷하다.
기본소득 논의는 소득 불균형을 해소하고 누구나 기본적 삶의 질을 누릴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지만, AI 시대를 맞아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됐다. AI와 로봇이 모든 일을 하고 사람들은 일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실효성 있는 방식일지는 의문이지만, 우리가 알던 세상의 패러다임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황이라면 가능한 모든 대안들을 검토해 볼 필요는 있다. 이런 고민의 결과가 AI 기업들이 참여한 국부 펀드 같은 아이디어들로 드러나는 셈이다.
미국 민주당 버니 샌더스 의원 같은 좌파와 트럼프 대통령이 이 문제에서 비슷한 방향성을 보이는 것도 흥미롭다. 대중이 AI 기업의 소유권을 일부 갖는다는 아이디어는 최근 미국 좌파 계열에서 관심이 커졌고, 샌더스 의원이 주요 AI 기업들에 50% 세율의 일회성 중과세를 매겨 국민을 위해 사용하자는 제안을 하면서 더욱 탄력을 얻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였던 스티브 배넌 등 우파 일부도 이런 흐름에 동조하고 있다. AI 발전을 우려하는 대중을 달랠 필요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샌더스 의원의 의견이 비슷하게 만난 사례는 또 있다. 지난해 미국 정부가 반도체와과학법, 일명 칩스(CHIPS) 법에 따라 인텔에 주어지는 보조금을 정부 지분으로 전환한 일이다. 인텔은 지원금 109억달러에 대한 반대급부로 지분 약 10%를 정부에 넘겼다.
보조금 사용을 기업 결정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아예 지분을 확보한 것은 “대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국민 세금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샌더스 의원 등 진보 진영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도리어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 의원들과 경제학자들에게 “사회주의적 정책”이라는 비판을 들었다.
트럼프 행정부와 민주당 등 이른바 진보 세력이 기업 활동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각기 다르다. 진보 계열 인사들은 막대한 자금력과 기술력을 가진 오픈AI나 앤트로픽, 인텔 같은 빅테크를 향한 힘의 쏠림을 어떻게 견제할 지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현재 미국 정부는 치열한 기술 패권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고히 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 ▲AI ▲첨단 반도체 ▲디지털 플랫폼 ▲친환경 에너지 ▲양자와 우주 기술 등 세계 강대국 간 질서를 뒤흔들 기술들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들 핵심 전략 기술 분야 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전략 기술 기업에 영향력 높이는 미국 정부
최근 미국 정부는 국내 9개 주요 양자 기술 기업들에게도 칩스법에 따라 20억달러의 지원금을 제공하고, 이들 기업의 지분 일부를 받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IBM이 전체 예산의 절반인 10억달러를 받아 뉴욕주에 양자 프로세서 제조 시설을 건설한다.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글로벌파운드리스도 양자 칩 제조 시설 건설을 위해 3억7500만달러를 받는다.
또 ▲초전도 ▲이온트랩 ▲중성원자 같은 주요 양자 하드웨어 플랫폼 기술을 가진 ▲디웨이브 ▲리게티컴퓨팅 ▲퀀티넘 ▲사이퀀텀 ▲아톰컴퓨팅 ▲인플렉션 ▲디랙 등 양자 기술 스타트업이 지원금을 받는다. 미국 정부는 희토류 자석 기업 벌컨엘리먼츠와 광산 기업 MP머터리얼즈 지분도 확보했다. 중국 등 외국에 의존하는 자원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공급망 위협에 대한 일종의 보험이다.
인텔이나 양자 기업에 대한 지원은 지원금을 정부 지분으로 바꾸는 것이고, AI 기업에 대한 논의는 국부 펀드를 만들어 국민에게 이윤을 배분한다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주체인 기업을 어떤 방식으로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는 점은 비슷하다.
이런 핵심 기술의 핵심 역량이 소수 기업들에 몰려 있다는 점이 고민을 더한다. AI나 양자, 우주 기술의 혁신은 과거 2차 세계 대전 당시 원자탄 같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국가 주도로 총력을 기울인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맨하탄 프로젝트’가 오픈AI나 앤트로픽, 스페이스X에서 각각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앤트로픽이 자사 AI 기술을 자율 살상 무기에 사용하지 말라고 국방부에 요구한 것은 정당한 일일까. 기업을 제어할 행정력을 가진 국가가 기업의 전략 기술을 시민 통제에 활용한다면, 혹은 압도적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 정부의 손길에서 벗어난다면 어떻게 될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국부 펀드에 자기 몫이 있다는 사실 정도에 우리는 만족해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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