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로 얼룩진 터키, 왜?] 터키 안팎의 쿠르드족과 해묵은 앙숙
[테러로 얼룩진 터키, 왜?] 터키 안팎의 쿠르드족과 해묵은 앙숙
지난 2월17일 오후 6시30분쯤 터키 수도 앙카라 도심 한복판에서 차량 폭탄테러가 발생해 최소 28명이 사망하고 61명이 다쳤다. 국회의사당에서 불과 2㎞ 정도 떨어지고 공군사령부도 인접한 대로변이었다. 더구나 신호 대기 중이던 군 병력수송 차량을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테러였다. 희생자도 대부분 군인이었다.
사건이 벌어지자 터키 지도부는 즉각 대응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예정됐던 아제르바이잔 방문을 취소하고 긴급 국가안보회의를 열었다. 터키 정부가 테러 배후로 지목한 세력은 소수민족인 쿠르드족 반정부 세력이다. 다부토울루 총리는 2월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가 확보한 증거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반정부 세력과 연계된 시리아계 쿠르드인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터키 당국은 테러 용의자가 시리아 국적의 쿠르드족 난민인 살리흐 네자르로 확인됐으며 관련 용의자 9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용의자는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 대원. 시리아 난민으로 터키 입국 당시 찍었던 지문을 통해 신원을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터키는 YPG가 불법화된 쿠르드노동자당(PKK)과 연루돼 있다고 주장해왔다. PKK는 터키 남동부에 몰려 사는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의 자치를 주장하며 오랫동안 중앙 정부와 맞서왔다. 하지만 쿠르드족 반정부 세력의 하나인 쿠르드민주연합의 살리 무함마드 대표는 “이번 테러는 우리가 아니라 (중동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벌인 짓”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터키 남동부 도로에서 군인들이 타고 있던 버스가 지나가자 폭발물이 터져 6명이 사망했다. 터키당국은 이 테러가 터키 쿠르드족 반정부 단체인 PKK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앙카라 기차역 폭탄테러와 1월 이스탄불 구도시 관광 중심지 술탄아흐메트광장 폭탄테러가 터지자 터키 당국은 그 배후로 IS를 지목했는데 이번에는 시리아 쿠르드족 단체인 YPG, 터키 쿠르드족 반정부 단체인 PKK를 배후로 지목한 것이다. 이는 터키를 둘러싸고 있는 안보 위협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잘 보여준다. 지역의 경제강국이자 군사강국이 터키가 시리아 내전에 휩싸일지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에 걸친 ‘유라시아 국가’
터키를 잠시 살펴보자. 터키는 흔히 ‘유라시아 국가’로 통한다.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국토의 3%가 유럽에, 97%가 아시아에 위치한다. 종교적으로는 국민의 97%가 이슬람을 믿는다. 하지만 1923년 케말 아타투르크가 터키 공화국을 건국한 이래 정치와 종교를 엄격하게 분리한 세속주의 정책에 따르고 있다. 당시 문자도 아랍 문자에서 라틴 알파벳으로 바꾸었다. 2005년부터 유럽의 일원이 되려고 가입 원서를 내둔 상태다.
서구와 중동의 교차로인 터키는 경제적으로도 주목받는다. 유럽연합(EU) 가입 뒤 관세혜택을 노려 수많은 국가에서 터키에 투자하고 있다. 자동차·조선 등 다양한 제조업이 발달하고 있다. 관광 국가로도 유명하다. 구약성서에도 나오는 고대 히타이트 제국 유적, 일리아드·오디세이에 등장하는 트로이 유적, 성모마리아가 지냈다는 에페소스 유적, 동로마제국의 영화를 보여주는 이스탄불 유적 등 전국이 역사 관광지다. 기후가 온화하고 온천도 좋아 전 세계 다양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오스만 제국의 후예답게 전 세계 다양한 음식 문화를 접목한 맛의 나라로도 유명하다.
지역의 경제대국이자 군사강국
터키는 사실 중동 기준으로 보면 경제대국이다. 세계 17위인 7870만 인구에 세계 18위인 7220억 달러의 국내총생산(GDP)을 기록한다. 1인당 GDP는 1만482달러에 이른다. 중동 국가 중 산유국을 제외하고 이런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는 없다. 거기에 EU에 가입해 경제적인 통합을 이루는 것을 국가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250만 명에 가까운 이민자가 독일에 정착해 있는 것도 장점이다. 송금은 물론 숙련 노동자 확보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역의 전통적인 군사강국으로 방위산업 수요도 상당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런 터키는 최근 시리아 내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시리아에 전투기를 보내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공습하고 있는 것뿐 아니라 지상군 투입까지 거론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1923년 공화국 건국 이래 전통적으로 유럽과 가까우려고 노력하면서 중동 지역에는 개입하지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던 터키가 달라질 것이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터키 만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강국이 중동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경우 사태가 더욱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터키는 64만의 병력을 가진 군사대국이다. 나토 회원국 중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병력을 보유한 나라다. 군장비도 대단하다. 전차만도 1683대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제 M-60전차가 932대, 독일제 레오파르트1전차 397대, 2전차 354대를 운용하고 있다. 모두 성능이 뛰어난 정예 지상무기체계다. 장갑 차는 7900대나 운용하고 있다. 공군력도 막강하다. 미국제 F-16전투기를 232대나 운용한다. 더욱 놀라운 일은 핵무장 국가라는 점이다. 물론 핵보유국은 아니고 나토의 ‘핵공유 정책’에 따라 미국의 B61 핵폭탄을 국내에 배치하고 있다.
국경 맞댄 시리아의 IS 맹폭격
터키를 둘러싼 8개국은 터키의 군사력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터키는 유럽에서는 서쪽으로 그리스(206㎞), 서북쪽으로 불가리아(240㎞)와 각각 접경하고 있다. 400년 간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1821년 독립한 그리스와는 두고두고 앙숙 관계다. 1974년 키프로스 사태 이후 두 나라의 민족주의는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그리스 군사정권의 지원을 받은 그리스계 키프로스인들이 이 섬을 그리스에 합병하자며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 계기였다. 그러자 터키는 즉각 키프로스를 침공해 3분의 1에 해당하는 북부를 점령하고 터키계가 주도하는 별도의 정부를 세웠다. 키프로스는 그리스계의 남부와 터키계의 북부로 남북 분단됐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진 한반도에 파병한 뒤 1952년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이 된 터키가 키프로스 사태로 같은 회원국인 그리스와 갈등을 일으키면서 미국과 나토의 골칫거리가 됐다.
불가리아도 400년 이상 오스만의 지배를 받았으나 1878년 오스만의 종주권을 인정한 봉신국가로서 독립했다. 여러 차례 전쟁 끝에 1908년 완전 독립을 이룬 역사적인 앙금이 있다. 불가리아는 오스만 세력을 발칸 지역에서 몰아내는 데 앞장섰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불가리아인은 원래 터키계 유목민족이었는데 중앙아시아 스텝 지역에서 유럽으로 이동하면서 함께 이동하던 슬라브족에 문화와 언어적으로 동화됐다. 이후 비잔틴 제국의 영향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이슬람 국가가 된 터키계 왕조와 갈등했다. 인구의 8.8%를 차지하는 터키계 소수민족을 박해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게다가 냉전 시절 불가리아는 바르샤바조약의 일원으로 소련의 충실한 동맹국으로 활동했다.
터키는 동쪽으로 옛 소련에서 독립한 그루지아(252㎞)와 아르메니아(268㎞), 아제르바이잔(9㎞) 등 카프카스 국가들과도 국경이 닿아있다. 그루지아는 터키의 숙적인 러시아와 반목하는 국가다. 아르메니아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제국 곳곳에 살던 아르메니아인들을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학살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으면서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다. 카스피해에 접한 아제르바이잔은 터키계 민족이 사는 산유국인데, 터키와 국경이 닿은 지역은 나히체반이라는 역외 영토다. 아제르바이잔 땅이긴 하지만 본국과 이어지지 않고 이웃 나라인 아르메니아와 이란, 터키 사이에 놓인 지역이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분쟁을 유발한 지역이기도 하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 터키와 접경한 중동 국가들이다. 터키는 이란과 499㎞, 이라크와 352㎞, 시리아와 822㎞ 접경하고 있다. 유럽과 중동을 잇는 교차로, 또는 연결점으로서 터키의 전략적인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터키가 가장 길게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시리아와 셋째로 길게 접경하고 있는 이라크 모두 심각한 내부 분쟁을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동의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세력을 떨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넘어온 난민 처리부터 IS의 위협에 대응하는 것까지 복잡한 국제 관계와 안보 문제가 있는 것이다. 터키가 미국·영국·프랑스 등과 함께 IS에 대한 공습에 나서는 이유다.
터키 안보의 최대 불안 요인은 쿠르드족
하지만 터키가 가장 큰 안보 문제로 여기는 것은 쿠르드족이다. 쿠르드족은 역사상 한 번도 자기 민족만의 국가를 이뤄본 적이 없다. 민족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 이후 유럽에서 나온 개념이니만큼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십자군에 맞서 예루살렘을 탈환한 무슬림 군주 살라딘(1138~1193)이 쿠르드족이다. 살라딘은 유럽에서 알려진 이름이고, 본명은 살라흐 앗딘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다. 이라크 북부 티크리트에서 태어났으며 아이유브 왕조(1169~1260)를 세워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아라비아 반도를 통치했다.
국제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의 쿠르드족은 3000만~4000만 명에 이른다. 터키에 가장 많은 1450만 명이 있으며 이란에 600만 명, 이라크에 500만~600만 명, 시리아에 200만 명 가까이 각각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150만 명 이상이 유럽 등 전 세계로 이민 가서 살고 있다. 250만 명의 터키계 이민자가사는 독일에 80만 명 정도의 쿠르드족이 산다. 상당수는 터키에서 초청 노동자로 독일로 건너가는 사람들 사이에 포함돼 이주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내전과 IS를 피해 옮겨간 난민이 대부분이다.
터키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은 대부분 서북부에 몰려있다.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와의 국경지대다. 문제는 터키에 사는 쿠르드족이 PKK를 만들어 분리운동을 벌이면서 중앙정부와 대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터키 정부는 1984년부터 PKK와 싸워왔다. PKK는 불법화됐다. 1999년 PKK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을 체포해 감옥에 보내면서 대규모 시위와 소요 사태가 발생했다. 터키군은 PKK 무장대원과 전투도 벌여왔다. 터키는 이를 국내 보안문제로 여기지만 일부 유럽 국가는 인권 문제로 다루기도 한다. 터키에 레오파르트 전차와 각종 야포를 수출해온 독일에서는 이를 문제 삼아 무기 수출 금지 여론이 일기도 했다. 독일은 분쟁이 벌어지고 있거나 가능성이 있어 자국 수출 무기가 인명 살상에 동원될 수 있는 경우 무기 수출을 금지하는 법률이 있다. 이 때문에 터키는 한국 등으로 무기 구입선을 다양화하고 공동 개발을 통한 자체 조달을 추구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국은 K-9자주포 등 다양한 무기체계를 터키에 수출하고 공동 개발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문제는 이라크에 들어선 민주정부가 전국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데다, 북서부 쿠르드족 거주지역을 자치지역으로 정하면서 PKK의 일부가 이라크에 훈련 캠프를 세웠다는 점이다.
시리아의 쿠르드족과도 적대적
터키는 시리아 쿠르드족과도 사이가 좋지 않다. 터키 국경 지역에 주로 사는 시리아 쿠르드족은 시리아 내전이 벌어지면서 자치를 노리고 자체 무장을 했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정부군과도 싸우고, 반정부군 세력인 자유시리아군과도 싸운다.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 격인 알누스라 군단이나 극단주의 세력인 IS에도 맞서 싸운다. 터키는 이런 시리아 쿠르드족이 터키 쿠르드족을 돕고 있다고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 사실 상당한 무장을 갖춘 쿠르드족이 허술한 국경을 사이에 두고 존재하는 것은 터키 안보의 불안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시리아 내의 쿠르드족 무장조직이다. 시리아의 쿠르드족은 내전이 터진 2011년 쿠르드 통일민주당(PYD)이라는 정치조직을 만들었다. 그 산하에 인민방위대(YPG)라는 무장조직을 뒀는데 병력이 6만5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PYD는 터키 내 동족 조직인 PKK와 손잡은 것으로 관측된다. 상당한 병력의 YPG를 거느리고 있는 PYD가 PKK와 손잡았다는 것은 터키에게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터키는 자국 내 쿠르드족 조직인 PKK와는 사실상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이들과 손잡은 시리아 쿠르드족 조직에 대해선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해 초 터키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시리아 도시 코바니가 IS의 공격으로 함락 직전에 있었음에도 터키군이 이를 보고만 있었던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미군의 폭격 지원과 국제 사회의 지원 등으로 코바니의 쿠르드족이 IS를 물리치자 터키는 피난을 떠났던 쿠르드족이 이 도시로 돌아오는 것을 방해했다는 외신 보도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 제1의 적으로 여기는 IS보다 쿠르드족이 터키에는 더 큰 문제인 것이다. 미국은 YPG를 지원하지만 터키는 YPG를 적으로 간주한다.
이라크 쿠르드족과는 좋은 관계
이와는 대조적으로 터키는 이라크 쿠르드족과는 무난하게 지내고 있다. 이라크 쿠르드족은 바그다드의 중앙정부로부터 자치권을 얻어 쿠르드 지역정부(KRG)를 이루고 있다. 쿠르드 민주당(KDP)라는 정당이 집권하고 있다. 이들은 1946년 이란의 쿠르드족 거주지역에서 탄생한 정당이다. 이들은 ‘모든 쿠르드족이 개인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동등하게 누리고 체제를 만들어 민주적 가치와 사회 정의를 이루기 위해 창당했다’고 주장한다. 자칫 모든 지역의 쿠르드족을 모아 독립국가를 만들자는 뜻으로 볼 수 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서로 다른 나라에 사는 쿠르드족끼리는 역사적인 경험과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파벌도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현재 지역 자치정부를 맡고 있으니만큼 당장 독립이나 자치를 위한 무장활동을 벌일 필요가 없다. 게다가 유전 지대에 위치해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편이다. 하지만 이 지역의 상당 지역을 IS가 장악하고 있어 안보상 문제가 있다. 페슈메가라는 쿠르드족 민병대를 구성해 중앙정부군이 제대로 맡아주지 못하는 지역 방위에 나서고 있다. 유전 지대이니만큼 IS도 이 지역을 더 많이 장악해 자금을 확보하려고 혈안이다. 하지만 이라크 중앙정부는 이를 제대로 방어할 능력도, 의지도, 의욕도 부족하다는 평가다. 터키의 지원이 필요하다. 터키와 사이가 좋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2월 일련의 사태로 터키가 본격적으로 시리아 사태에 개입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터키가 시리아 쿠르드족 소탕을 위해 지상군 파병 등 본격적으로 시리아 사태에 개입할 경우 시리아 사태는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EU 가입과 경제 건설을 목표로 달려왔던 터키의 국가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지역 경제강국으로 성장해온 터키의 앞길이 어떻게 변할지 주목된다.
-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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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벌어지자 터키 지도부는 즉각 대응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예정됐던 아제르바이잔 방문을 취소하고 긴급 국가안보회의를 열었다. 터키 정부가 테러 배후로 지목한 세력은 소수민족인 쿠르드족 반정부 세력이다. 다부토울루 총리는 2월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가 확보한 증거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반정부 세력과 연계된 시리아계 쿠르드인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터키 당국은 테러 용의자가 시리아 국적의 쿠르드족 난민인 살리흐 네자르로 확인됐으며 관련 용의자 9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용의자는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 대원. 시리아 난민으로 터키 입국 당시 찍었던 지문을 통해 신원을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터키는 YPG가 불법화된 쿠르드노동자당(PKK)과 연루돼 있다고 주장해왔다. PKK는 터키 남동부에 몰려 사는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의 자치를 주장하며 오랫동안 중앙 정부와 맞서왔다. 하지만 쿠르드족 반정부 세력의 하나인 쿠르드민주연합의 살리 무함마드 대표는 “이번 테러는 우리가 아니라 (중동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벌인 짓”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터키 남동부 도로에서 군인들이 타고 있던 버스가 지나가자 폭발물이 터져 6명이 사망했다. 터키당국은 이 테러가 터키 쿠르드족 반정부 단체인 PKK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앙카라 기차역 폭탄테러와 1월 이스탄불 구도시 관광 중심지 술탄아흐메트광장 폭탄테러가 터지자 터키 당국은 그 배후로 IS를 지목했는데 이번에는 시리아 쿠르드족 단체인 YPG, 터키 쿠르드족 반정부 단체인 PKK를 배후로 지목한 것이다. 이는 터키를 둘러싸고 있는 안보 위협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잘 보여준다. 지역의 경제강국이자 군사강국이 터키가 시리아 내전에 휩싸일지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에 걸친 ‘유라시아 국가’
터키를 잠시 살펴보자. 터키는 흔히 ‘유라시아 국가’로 통한다.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국토의 3%가 유럽에, 97%가 아시아에 위치한다. 종교적으로는 국민의 97%가 이슬람을 믿는다. 하지만 1923년 케말 아타투르크가 터키 공화국을 건국한 이래 정치와 종교를 엄격하게 분리한 세속주의 정책에 따르고 있다. 당시 문자도 아랍 문자에서 라틴 알파벳으로 바꾸었다. 2005년부터 유럽의 일원이 되려고 가입 원서를 내둔 상태다.
서구와 중동의 교차로인 터키는 경제적으로도 주목받는다. 유럽연합(EU) 가입 뒤 관세혜택을 노려 수많은 국가에서 터키에 투자하고 있다. 자동차·조선 등 다양한 제조업이 발달하고 있다. 관광 국가로도 유명하다. 구약성서에도 나오는 고대 히타이트 제국 유적, 일리아드·오디세이에 등장하는 트로이 유적, 성모마리아가 지냈다는 에페소스 유적, 동로마제국의 영화를 보여주는 이스탄불 유적 등 전국이 역사 관광지다. 기후가 온화하고 온천도 좋아 전 세계 다양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오스만 제국의 후예답게 전 세계 다양한 음식 문화를 접목한 맛의 나라로도 유명하다.
지역의 경제대국이자 군사강국
터키는 사실 중동 기준으로 보면 경제대국이다. 세계 17위인 7870만 인구에 세계 18위인 7220억 달러의 국내총생산(GDP)을 기록한다. 1인당 GDP는 1만482달러에 이른다. 중동 국가 중 산유국을 제외하고 이런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는 없다. 거기에 EU에 가입해 경제적인 통합을 이루는 것을 국가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250만 명에 가까운 이민자가 독일에 정착해 있는 것도 장점이다. 송금은 물론 숙련 노동자 확보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역의 전통적인 군사강국으로 방위산업 수요도 상당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런 터키는 최근 시리아 내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시리아에 전투기를 보내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공습하고 있는 것뿐 아니라 지상군 투입까지 거론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1923년 공화국 건국 이래 전통적으로 유럽과 가까우려고 노력하면서 중동 지역에는 개입하지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던 터키가 달라질 것이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터키 만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강국이 중동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경우 사태가 더욱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터키는 64만의 병력을 가진 군사대국이다. 나토 회원국 중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병력을 보유한 나라다. 군장비도 대단하다. 전차만도 1683대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제 M-60전차가 932대, 독일제 레오파르트1전차 397대, 2전차 354대를 운용하고 있다. 모두 성능이 뛰어난 정예 지상무기체계다. 장갑 차는 7900대나 운용하고 있다. 공군력도 막강하다. 미국제 F-16전투기를 232대나 운용한다. 더욱 놀라운 일은 핵무장 국가라는 점이다. 물론 핵보유국은 아니고 나토의 ‘핵공유 정책’에 따라 미국의 B61 핵폭탄을 국내에 배치하고 있다.
국경 맞댄 시리아의 IS 맹폭격
터키를 둘러싼 8개국은 터키의 군사력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터키는 유럽에서는 서쪽으로 그리스(206㎞), 서북쪽으로 불가리아(240㎞)와 각각 접경하고 있다. 400년 간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1821년 독립한 그리스와는 두고두고 앙숙 관계다. 1974년 키프로스 사태 이후 두 나라의 민족주의는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그리스 군사정권의 지원을 받은 그리스계 키프로스인들이 이 섬을 그리스에 합병하자며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 계기였다. 그러자 터키는 즉각 키프로스를 침공해 3분의 1에 해당하는 북부를 점령하고 터키계가 주도하는 별도의 정부를 세웠다. 키프로스는 그리스계의 남부와 터키계의 북부로 남북 분단됐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진 한반도에 파병한 뒤 1952년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이 된 터키가 키프로스 사태로 같은 회원국인 그리스와 갈등을 일으키면서 미국과 나토의 골칫거리가 됐다.
불가리아도 400년 이상 오스만의 지배를 받았으나 1878년 오스만의 종주권을 인정한 봉신국가로서 독립했다. 여러 차례 전쟁 끝에 1908년 완전 독립을 이룬 역사적인 앙금이 있다. 불가리아는 오스만 세력을 발칸 지역에서 몰아내는 데 앞장섰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불가리아인은 원래 터키계 유목민족이었는데 중앙아시아 스텝 지역에서 유럽으로 이동하면서 함께 이동하던 슬라브족에 문화와 언어적으로 동화됐다. 이후 비잔틴 제국의 영향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이슬람 국가가 된 터키계 왕조와 갈등했다. 인구의 8.8%를 차지하는 터키계 소수민족을 박해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게다가 냉전 시절 불가리아는 바르샤바조약의 일원으로 소련의 충실한 동맹국으로 활동했다.
터키는 동쪽으로 옛 소련에서 독립한 그루지아(252㎞)와 아르메니아(268㎞), 아제르바이잔(9㎞) 등 카프카스 국가들과도 국경이 닿아있다. 그루지아는 터키의 숙적인 러시아와 반목하는 국가다. 아르메니아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제국 곳곳에 살던 아르메니아인들을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학살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으면서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다. 카스피해에 접한 아제르바이잔은 터키계 민족이 사는 산유국인데, 터키와 국경이 닿은 지역은 나히체반이라는 역외 영토다. 아제르바이잔 땅이긴 하지만 본국과 이어지지 않고 이웃 나라인 아르메니아와 이란, 터키 사이에 놓인 지역이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분쟁을 유발한 지역이기도 하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 터키와 접경한 중동 국가들이다. 터키는 이란과 499㎞, 이라크와 352㎞, 시리아와 822㎞ 접경하고 있다. 유럽과 중동을 잇는 교차로, 또는 연결점으로서 터키의 전략적인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터키가 가장 길게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시리아와 셋째로 길게 접경하고 있는 이라크 모두 심각한 내부 분쟁을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동의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세력을 떨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넘어온 난민 처리부터 IS의 위협에 대응하는 것까지 복잡한 국제 관계와 안보 문제가 있는 것이다. 터키가 미국·영국·프랑스 등과 함께 IS에 대한 공습에 나서는 이유다.
터키 안보의 최대 불안 요인은 쿠르드족
하지만 터키가 가장 큰 안보 문제로 여기는 것은 쿠르드족이다. 쿠르드족은 역사상 한 번도 자기 민족만의 국가를 이뤄본 적이 없다. 민족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 이후 유럽에서 나온 개념이니만큼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십자군에 맞서 예루살렘을 탈환한 무슬림 군주 살라딘(1138~1193)이 쿠르드족이다. 살라딘은 유럽에서 알려진 이름이고, 본명은 살라흐 앗딘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다. 이라크 북부 티크리트에서 태어났으며 아이유브 왕조(1169~1260)를 세워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아라비아 반도를 통치했다.
국제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의 쿠르드족은 3000만~4000만 명에 이른다. 터키에 가장 많은 1450만 명이 있으며 이란에 600만 명, 이라크에 500만~600만 명, 시리아에 200만 명 가까이 각각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150만 명 이상이 유럽 등 전 세계로 이민 가서 살고 있다. 250만 명의 터키계 이민자가사는 독일에 80만 명 정도의 쿠르드족이 산다. 상당수는 터키에서 초청 노동자로 독일로 건너가는 사람들 사이에 포함돼 이주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내전과 IS를 피해 옮겨간 난민이 대부분이다.
터키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은 대부분 서북부에 몰려있다.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와의 국경지대다. 문제는 터키에 사는 쿠르드족이 PKK를 만들어 분리운동을 벌이면서 중앙정부와 대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터키 정부는 1984년부터 PKK와 싸워왔다. PKK는 불법화됐다. 1999년 PKK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을 체포해 감옥에 보내면서 대규모 시위와 소요 사태가 발생했다. 터키군은 PKK 무장대원과 전투도 벌여왔다. 터키는 이를 국내 보안문제로 여기지만 일부 유럽 국가는 인권 문제로 다루기도 한다. 터키에 레오파르트 전차와 각종 야포를 수출해온 독일에서는 이를 문제 삼아 무기 수출 금지 여론이 일기도 했다. 독일은 분쟁이 벌어지고 있거나 가능성이 있어 자국 수출 무기가 인명 살상에 동원될 수 있는 경우 무기 수출을 금지하는 법률이 있다. 이 때문에 터키는 한국 등으로 무기 구입선을 다양화하고 공동 개발을 통한 자체 조달을 추구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국은 K-9자주포 등 다양한 무기체계를 터키에 수출하고 공동 개발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문제는 이라크에 들어선 민주정부가 전국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데다, 북서부 쿠르드족 거주지역을 자치지역으로 정하면서 PKK의 일부가 이라크에 훈련 캠프를 세웠다는 점이다.
시리아의 쿠르드족과도 적대적
터키는 시리아 쿠르드족과도 사이가 좋지 않다. 터키 국경 지역에 주로 사는 시리아 쿠르드족은 시리아 내전이 벌어지면서 자치를 노리고 자체 무장을 했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정부군과도 싸우고, 반정부군 세력인 자유시리아군과도 싸운다.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 격인 알누스라 군단이나 극단주의 세력인 IS에도 맞서 싸운다. 터키는 이런 시리아 쿠르드족이 터키 쿠르드족을 돕고 있다고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 사실 상당한 무장을 갖춘 쿠르드족이 허술한 국경을 사이에 두고 존재하는 것은 터키 안보의 불안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시리아 내의 쿠르드족 무장조직이다. 시리아의 쿠르드족은 내전이 터진 2011년 쿠르드 통일민주당(PYD)이라는 정치조직을 만들었다. 그 산하에 인민방위대(YPG)라는 무장조직을 뒀는데 병력이 6만5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PYD는 터키 내 동족 조직인 PKK와 손잡은 것으로 관측된다. 상당한 병력의 YPG를 거느리고 있는 PYD가 PKK와 손잡았다는 것은 터키에게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터키는 자국 내 쿠르드족 조직인 PKK와는 사실상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이들과 손잡은 시리아 쿠르드족 조직에 대해선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해 초 터키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시리아 도시 코바니가 IS의 공격으로 함락 직전에 있었음에도 터키군이 이를 보고만 있었던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미군의 폭격 지원과 국제 사회의 지원 등으로 코바니의 쿠르드족이 IS를 물리치자 터키는 피난을 떠났던 쿠르드족이 이 도시로 돌아오는 것을 방해했다는 외신 보도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 제1의 적으로 여기는 IS보다 쿠르드족이 터키에는 더 큰 문제인 것이다. 미국은 YPG를 지원하지만 터키는 YPG를 적으로 간주한다.
이라크 쿠르드족과는 좋은 관계
이와는 대조적으로 터키는 이라크 쿠르드족과는 무난하게 지내고 있다. 이라크 쿠르드족은 바그다드의 중앙정부로부터 자치권을 얻어 쿠르드 지역정부(KRG)를 이루고 있다. 쿠르드 민주당(KDP)라는 정당이 집권하고 있다. 이들은 1946년 이란의 쿠르드족 거주지역에서 탄생한 정당이다. 이들은 ‘모든 쿠르드족이 개인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동등하게 누리고 체제를 만들어 민주적 가치와 사회 정의를 이루기 위해 창당했다’고 주장한다. 자칫 모든 지역의 쿠르드족을 모아 독립국가를 만들자는 뜻으로 볼 수 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서로 다른 나라에 사는 쿠르드족끼리는 역사적인 경험과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파벌도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현재 지역 자치정부를 맡고 있으니만큼 당장 독립이나 자치를 위한 무장활동을 벌일 필요가 없다. 게다가 유전 지대에 위치해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편이다. 하지만 이 지역의 상당 지역을 IS가 장악하고 있어 안보상 문제가 있다. 페슈메가라는 쿠르드족 민병대를 구성해 중앙정부군이 제대로 맡아주지 못하는 지역 방위에 나서고 있다. 유전 지대이니만큼 IS도 이 지역을 더 많이 장악해 자금을 확보하려고 혈안이다. 하지만 이라크 중앙정부는 이를 제대로 방어할 능력도, 의지도, 의욕도 부족하다는 평가다. 터키의 지원이 필요하다. 터키와 사이가 좋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2월 일련의 사태로 터키가 본격적으로 시리아 사태에 개입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터키가 시리아 쿠르드족 소탕을 위해 지상군 파병 등 본격적으로 시리아 사태에 개입할 경우 시리아 사태는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EU 가입과 경제 건설을 목표로 달려왔던 터키의 국가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지역 경제강국으로 성장해온 터키의 앞길이 어떻게 변할지 주목된다.
-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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