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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도곡동도 고개를 떨군 ‘황금의 땅’ 반포(盤浦)

압구정·도곡동도 고개를 떨군 ‘황금의 땅’ 반포(盤浦)

원조의 귀환!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강남 개발 개척자가 주택시장의 선두자리를 차지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이야기다. 1970년대 한강 이남의 ‘남서울’ 개발을 위한 교두보였던 반포동이 40여년이 지난 지금은 국내 최고가 부촌으로 떠올랐다. 부동산 불황 속 반포 불패 신화의 역사를 들여다봤다.
한강변 매립지인 반포 일대에 들어서 있는 아파트촌. 재건축을 통해 새 아파트로 탈바꿈하면서 가격이 뛰고 있다.
반포동은 과거 개울이 서리서리 굽이쳐 흘렀다고 해서 서릿개, 반포(蟠浦: 뱀처럼 휘감는 물가라는 뜻)라고 했다고 한다. 그 뒤 뜻이 변해 반포(盤浦)로 부르게 됐다. 한편으론 이곳이 상습 홍수피해 지역이어서 반포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1752년(영조 28)부터 1910년까지 왕의 동정과 국정을 기록한 일기인 『일성록』에 1790년(정조 14년) “반포리 옆의 강가에 둑을 쌓아 막았다”고 쓰여 있다. 어쨌든 한강 옆이어서 물을 피할 수 없는 곳이다. 홍수라는 재난을 낳은 물이 이제는 ‘돈 덩어리’로 탈바꿈한 셈이다.

반포동이 주택시장에 고개를 내민 것은 1970년대 서울시의 강남개발 때다. 당시 서울시 당국은 한강 이남을 개발해 한강 이북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하는 남서울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한강변에 하상을 정리해 매립하는 방식으로 대규모 택지를 조성했다. 반포를 비롯한 6개 지구였다.
 상습 홍수피해지역이 ‘황금의 땅’으로
1970~80년대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반포 일대. 상습 홍수피해지역으로 1970년대 초반 택지조성을 위한 매립작업이 이뤄졌다.
그때 택지로 거듭난 곳이 지금 반포주공 1단지가 있는 구반포 일대다. 1971년 3월 16일 중앙일보는 ‘부상하는 황금의 택지 18만평’이라는 제목으로 막바지 매립공사 르포기사를 게재했다.



“모두 19억4000만원이 투입된 이곳 반포지구 매립 공사는 평균 지반고가 3·5m 밖에 안 되는 침수 지역을 9·5m 높여 지반고를 13m로 만들고 매립지의 둑이 될 국립묘지 앞에서 매립이 끝나는 데까지 폭 20m, 길이 1·5km의 강변 5로를 만든다. 이 공사에 투입되는 흙은 모두 570만 루베(1루베=1㎥). 한번에 8루베를 실어 나를 수 있는 대형 덤프·트럭으로 71만대분이다. 현재 이 지구의 지반고는 12m. 앞으로 1m를 더 높이기 위해선 114만 루베의 토사가 필요하다.

이 어마어마한 양의 토사는 매립지 앞에서 제3한강교에 이르는 하상의 토사를 사용함으로써 이곳의 한강 수심이 2·3m 깊어졌다.

또 강변 5로의 매립지 쪽의 경사지는 잔디, 강 쪽은 석축으로 덮여지게 되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돌도 엄청나다. 5로의 강쪽 경사지의 넓이는 12만㎡로 144만개의 석축용 돌이 필요하다. (1㎡ 평균 12개 소요) 석축용 돌은 모두 관악산에서 트럭으로 옮겼는데 트럭 1대는 보통 돌 130개 정도를 실어 나를 수 있어 돌 나르는데 동원된 「트럭」만도 연 1만2천대에 이르고 있다.”


그 해 옛 주택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이 매립지에 대규모 아파트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강남 아파트 개발의 원조인 반포 주공 단지다. 당시만 해도 이 아파트는 ‘호화 맨션·아파트’로 불렸다.

주택공사의 주공 아파트를 시작으로 한신공영이 27차에 걸쳐 ‘한신’ 시리즈 단지를 지으면서 반포동과 사실상 반포동 생활권인 잠원동 일대는 3만가구 가량의 아파트촌으로 바뀌었다.

반포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황금의 땅’이 신흥 부촌으로 탈바꿈하고 ‘고급·맨션 아파트’가 최고가 주택으로 거듭나고 있다. 주택시장에서 반포의 약진이 매섭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최근 2년새 반포동 아파트값이 19% 뛰었다. 같은 기간 서초구가 평균 14%, 서울시 전체로는 평균 10% 상승했다.

이 같은 상승세를 타고 반포동은 강남권 주택시장을 석권했다. 2월 기준으로 전국에서 아파트값이 가장 비싼 곳이 반포동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반포동의 3.3㎡당 평균 매매가격이 4000만원에 육박한 3997만원이다. 2위 압구정동 3911만원, 3위 대치동 3333만원 등이다. 전셋값도 반포동이 가장 비싸다. 3.3㎡당 평균 2288만원이다. 압구정동 1667만원, 대치동 2080만원 등이다.

 주택·분양시장 모두 반포가 최고가
래미안퍼스티지와 반포자이의 쌍두마차가 반포 주택시장을 끌고 있다. 둘 다 2009년 지어진 대단지이고 인지도가 높은 아파트 브랜드를 달고 있다. 삼성물산이 지은 래미안퍼스티지는 2444가구다.

59~222㎡형(이하 전용면적)으로 구성돼 있다. 매매가격이 3.3㎡당 평균 4367만원이다. 전셋값은 평균 3468만원이다. 59㎡형의 시세가 12억원선, 전셋값은 9억4000만원 정도다. 84㎡형은 각각 16억원, 13억원선이다. 가장 큰 222㎡형은 33억원까지 나가고 전셋값은 24억원 선이다. 래미안퍼스티지는 지난해 1년간 100건가량 거래됐다.

반포자이는 GS건설이 지은 59~244㎡형 3410가구다. 몸값이 래미안퍼스티지보다 조금 떨어진다. 매매가격이 3.3㎡당 평균 3709만원이고 전셋값은 3018만원이다. 59㎡형의 매매가격과 전셋값이 각각 10억5000만원, 8억6000만원이다. 84㎡형은 각각 15억6000만원, 12억원. 옛 100평형인 244㎡는 30억원, 20억원 선이다.

분양시장도 반포가 선도하고 있다. 분양가 최고 기록 보유자다. 2014년 아크로리버파크가 3.3㎡당 4000만원을 돌파하며(3.3㎡당 4130만원) 반포가 ‘3.3㎡당 4000만원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 10월과 11월 잇따라 나온 센트럴푸르지오써밋·래미안아이파크 모두 4000만원을 넘겼다. 센트럴푸르지오써밋이 4040만원, 래미안 아이파크가 4240만원이다. 올 들어 1월 신반포자이가 4290만원으로 기록을 갈아치웠다.

신반포자이는 행정구역상 잠원동이지만 사실상 반포나 마찬가지다. 아파트 이름도 ‘반포’를 강조하고 반포자이 인근이어서 ‘신’을 추가했다.

분양가가 높아도 청약자들이 몰린다. 신반포자이 청약경쟁률이 1순위 평균 38대 1이고 앞서 나온 단지들도 평균 10대 1을 넘겼다. 청약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분양권 수요도 많아 웃돈(프리미엄)이 적지 않게 붙었다. 아크로리버파크에 1억5000만 원까지 웃돈이 형성돼 있고 웃돈을 합친 분양권 시세가 3.3㎡당 5000만원을 넘기도 한다.

부동산114가 분양권 실거래가를 조사한 결과 아크로리버파크 113㎡형이 지난해 11월 24억4100만원에 거래됐다. 3.3㎡당 5423만원에 이른다. 같은 달 이 아파트 59㎡형은 4800만원인 11억5100만원에, 84㎡형은 4760만원인 16억1900만원에 팔렸다. 전매제한 기간이 최소 6개월인 서울·수도권에서 보기 드물게 전매제한 규제를 받지 않는 신반포자이는 분양계약과 동시에 상당수 분양권이 거래됐다. 2월 1일부터 분양계약이 실시되고 계약 직후부터 전매가능했다. 계약과 동시에 일반분양 분의 20% 가량인 35건의 전매가 이뤄졌다. 주변 부동산중개업소들은 웃돈이 주택형·층·향에 따라 500만~3000만원 붙었다고 전했다. 인근 L공인 관계자는 “분양권에 상당한 웃돈이 붙을 것으로 보고 분양권 전매차익을 노리고 청약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포동의 최고가 부촌으로 등극하면서 강남권 주택시장 판도가 달라졌다. 강남 개발과 함께 신흥 부촌으로 떠오른 압구정동·도곡동·대치동 등이 모두 반포동 앞에 고개를 떨구게 됐다.

강남 개발 40여년 동안 시대 흐름을 타고 부촌들이 바뀌었다. 강남에서 전통적인 대표 부촌은 압구정동이다. 압구정동은 큰 주택형이 많은 고급 주택촌을 형성하며 ‘강남1번지’가 됐다. 한때 수입차를 몰고 다니며 “야, 타!”라고 말하며 여성을 유혹하는 경우가 있어 ‘압구정 오렌지족’이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다.
 주거 쾌적성 선호로 한강 프리미엄 높아
압구정동이 20년 정도 강남 주택시장을 좌우하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사교육 열풍이 불면서 명문 학군과 학원가가 조성된 대치동 일대가 ‘강남 맹주’ 자리를 차지했다. 2002년 도곡동에 최고급 주상복합단지의 효시이자 대명사인 타워팰리스가 입주하면서 도곡동도 주목을 받았다. 각 동마다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적 아파트가 있다. 압구정동은 현대, 대치동은 은마, 도곡동은 타워팰리스.

반포가 떠오르는 것은 주택시장 패러다임이 바뀌면서다. 주택 수요가 사교육과 개발기대감에 따른 시세차익 중심에서 주거 쾌적성으로 바뀌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침체기를 겪으면서 강남권 주택 시장도 투자수요보다 실수요 위주로 재편됐다. 압구정동 등 과거 가격을 주도하던 큰 주택형 위주의 아파트들이 금융위기 이후 중소형에 밀려 타격을 받았다. 주택수요자가 시세차익을 노리기보다 실제로 거주할 집을 찾으면서 한강의 중요성이 커졌다. 물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과 함께 한강 주변에 넓은 녹지공간과 휴식공간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한강이 고급 주택시장의 키 포인트로 떠오르면서 국내 최고가 단지들에 반포동을 비롯해 한강변 아파트가 많다. 부동산 114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재건축 진행 단지 제외) 3.3㎡당 가격 상위 10개 단지 중 9곳이 한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 성동구 성수동 갤러리아포레, 용산구 한남동 한남더힐 등이다. 매매가격이 비싼 10곳 중 6곳도 한강과 접한 지역이다.

부동산114 김은진 리서치팀장은 “2008년 금융위기 전에는 대치·도곡동 등에 상위 단지가 많았는데 지금은 한강변이 압도적”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주택시장이 실수요 중심으로 바뀌면서 고급 주택 수요도 조망권 프리미엄을 갖추고 한강 공원이 가까운 한강변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포동은 교통·교육·생활편의시설 여건도 좋다. 반포동은 강북 도심과 강남의 길목이다. 동작대교·반포대교·한남대교가 강북 도심으로 이어진다. 지하철 3호선과 9호선이 지난다. 3호선은 도심을 관통하는 노선이고 9호선은 여의도와 강남을 지난다. 강북과 강남을 순환하는 지하철 2호선도 이용할 수 있다.

업무시설이 몰려 있는 용산·여의도·강남테헤란로 방면의 교통이 편리하다. 경부 고속도로와 올림픽대로·강변북로 이용이 쉬워 서울 이외 수도권 등 광역교통여건도 좋다.이러다 보니 반포동엔 주로 젊은 임원이나 IT(정보기술) 업체 대표 등 신흥 부자들이 많이 산다. 압구정동과 개포동엔 자수성가형 자산가들이 많이 살고 대치동엔 자녀 교육 목적으로 사는 사람이 많다.

옛 반포주공3단지를 재건축한 반포자이는 래미안퍼스티지와 함께 반포 랜드마크다. 3000가구가 넘는 매머드급이다.
반포에는 이름 있는 학교가 많아 ‘학군 수요’도 끌어들이고 있다. 명문대 진학률이 전국에서 손꼽히는 반포고·세화고를 포함해 계성초·세화여고·상문고·서문여고·서울고 등 내로라하는 학교가 많다. 덜 위치칼리지반포외국인학교도 있다. 대치동에 못지 않은 학원가도 형성돼 있다. 반포동은 공교육 중심의 학군 중심지로 꼽힌다. 백화점 등 생활편의시설도 많다.

부동산중개업소들은 “반포는 흠 잡을 데가 없는 입지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입지여건을 빛나게 한 게 재건축이다. 지은 지 30년 이상 지난 낡은 아파트가 새 아파트로 탈바꿈하고 있다. 재건축을 통해 반포에 들어서는 단지들이 새 아파트 공급이 부족한 강남권에 가뭄 속 단비 역할을 하고 있다. 래미안퍼스티지·반포자이 등은 재건축을 통해 지어진 단지다. 신반포자 등 근래 반포에 분양된 단지들 모두 재건축 아파트다.

반포엔 중층 단지가 많다. 도곡동·잠실 등의 강남권 저층 재건축이 마무리돼가면서 재건축 붐이 중층 단지로 옮겨 붙으면 반포의 재건축이 활발하다.

반포는 상종가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재건축 사업이 활발해 앞으로 반포에서 새 아파트 분양이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현재 반포에서 재건축을 추진 중인 단지는 10개 단지다. 반포주공1단지와 신반포3, 15차가 조합설립 단계다. 삼호가든3차와 신반포 6, 18차, 반포우성은 사업시행 단계로 분양이 다가오고 있다.

 매머드급 주공1단지·재건축 활발
특히 강남 개발 선두주자였던 반포주공 1단지가 재건축되면 강남권 고급 주택시장은 다시 한번 더 요동칠 것으로 예상된다. 래미안퍼스티지 등에 못지 않은 대단지인 데다 바로 한강변이고 입지여건이 반포에서 가장 좋은 곳으로 평가 받기 때문이다. 재건축되면 5000가구가 넘는 매머드 단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남권 거의 마지막 저층 단지여서 사업성도 좋다.

반포 재건축에서 주목해야 할 게 통합 재건축이다. 여러 개 단지가 힘을 합쳐 재건축하는 것이다. 그만큼 덩치가 큰 매머드단지로 바뀌게 된다. 신반포3차·23차와 경남아파트가 통합재건축을 결정했다. 삼성물산이 시공을 맡고 3000여가구의 단지로 거듭 태어난다. 신반포8, 9, 10, 11, 17차 통합추진위는 주민들로부터 조합설립을 위한 동의서를 받고 있다. 신반포7, 22차도 통합 재건축을 협의 중이다. 홀로 재건축 추진 단지는 덩치에서 밀릴 것이어서 통합 재건축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신반포자이에 이어 올해 신반포 5차와 18차가 분양될 예정이다. 신반포 5차는 대림산업이 시공하고 일반분양분은 많지 않다. 신반포 5차는 한강 조망권을 강조해 ‘아크로리버뷰’로 이름 지어질 예정이다.

삼성물산이 신반포 18차 재건축 단지 475가구 중 140여가구를 일반분양한다.

이들 단지 모두 잠원동에 속한다. 신반포자이의 분양가를 뛰어넘을지도 주목된다.

개발호재도 있다. 서초구가 경부고속도로 진입구간인 한남IC~양재IC를 지하화 하는 내용의 일명 ‘나비플랜’을 추진하고 있다. 고속도로가 지하로 들어가고 그 위에 생기는 56만㎡의 여유 공간에 공원 등 녹지와 복합단지가 들어서면 반포 주택시장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반포를 넘볼 수 있는 지역으로는 압구정동이 가장 유력하다. 하지만 압구정동 재건축이 요원하다. 한강변의 초고층 단지로 청사진은 여러 번 그려졌으나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하다. 큰 주택형이 많아 주민들이 적지 않은 부담금을 내고 선뜻 재건축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대치동은 은마 재건축이 관건인데 4000가구가 넘는 은마는 ‘사공이 많아’ 역시 재건축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개포동 개포지구가 본격적인 재건축 착공에 들어가지만 지리적으로 강남권 외곽이어서 새 아파트촌으로 변신하더라도 반포를 능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민은행 박원갑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다시 시동이 걸리고 있는 용산 개발도 반포 주택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당분간 반포의 경쟁자가 나타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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