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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전염병’의 교훈] 바이러스의 공격, 더 집요한 인간의 항전

[‘역사 속 전염병’의 교훈] 바이러스의 공격, 더 집요한 인간의 항전

‘과학지식’ 활용한 역병 극복의 역사… 코로나19로 또다른 전쟁 서막
3월 23일 오전 코로나19 대응 지역거점병원인 대구 중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병동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역사는 2020년을 전 세계가 바이러스와 맞서 대대적인 전쟁을 시작한 해로 기억할 것이다. 4월 16일 오전 10시 현재(한국시간) 전세계 210개국과 2척의 크루즈선 선박에서 약 208만3000명의 확진자가 발견됐으며 이 중 약 13만5000여명이 숨졌다. 인구 100만 명당 확진자가 250명, 사망자는 16명을 넘어섰다.

인류가 겪는 고통은 이렇게 숫자나 통계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앓고 있거나 숨진 사람들의 불행,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지켜보거나 그들을 상실한 가족들의 고통, 그리고 역병과 파급 효과에 대한 공포는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인류는 유사 이래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끈질긴 공격을 받아왔으며, 숱한 희생을 치러가며 이들에 집요하게 대응해왔다. 이를 통해 ‘과학 지식을 활용한 역병 극복’의 역사를 써왔다.
 역병 퍼진 고대 그리스, 토론·대화 대신 주민통제
전염병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해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지금부터 3200년 전인 기원전 1200년에 지금의 이라크 지역인 바빌론, 이란과 중앙아시아에 해당하는 페르시아, 인도와 파키스탄에 해당하는 남아시아 지역에 전염병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역병이 돌던 당시에 인도 지역에서 새겨진 고대 산스크리트어 명문에 남아있는 기록이다. 기록된 증상이 독감과 비슷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으로 보인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인도 지역은 계절에 따라 서풍 또는 동풍이 부는 계절풍을 타고 무역이 활발하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전염병도 이러한 교류를 통해 옮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429년과 기원전 427~426년의 겨울에 각각 한 차례씩 모두 2차례에 걸쳐 발생했던 아테네 역병도 고대 세계를 황폐화시켰다. 당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벌이던 고대 그리스에 역병이 돌아 중심지인 아테네는 물론 무역로를 따라 지중해 건너편의 이집트와 리비아, 그리고 이집트와 교류하던 아프리카 내륙 고원지대의 에티오피아까지 퍼졌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고대 그리스 세계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아테네가 이끈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가 주도한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벌인 치열한 전쟁이다.

“역사는 영원히 반복된다”는 말을 남긴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저서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 전쟁과 함께 이 역병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육군이 강한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침공하자 당시 아테네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와 주변의 항구인 피레우스까지 이어지는 통로를 장벽으로 둘러싸고 그 안에 주변 농촌 주민을 이주시켰다. 성벽 밖을 초토화해 포위에 나선 스파르타 군대가 오래 버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군사 전략적으로는 괜찮은 방법이다. 고대 동양에서도 흔히 사용했던 작전이다.

문제는 장벽 안에 사람이 붐비고 위생 상태가 악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테네로 이어지는 유일한 항구이자 외부 식량 공급로인 피레우스를 통해 외부의 전염병이 유입되자 아테네는 속수무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아테네에선 주민의 3분의 1에서 4분의 1에 해당하는 10만명에서 7만5000명이 역병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심지어 지도자인 페리클레스가 사망해 아테네는 다 이겨놓은 전쟁을 원점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아테네는 경제적·사회적으로 황폐화했다. 그리스 특유의 토론과 대화가 아닌 엄격한 법과 권위에 의한 주민 통제가 강화됐다. 시민이 아닌 외부 출신자에 대한 단속도 심해졌다. 오늘날 코로나19로 인한 전 지구적인 변화와 닮은 점이 많다. 전염병이 역사를 바꾼 경우다.

현대 의학자들은 이 역병이 발진티푸스나 장티푸스, 또는 바이러스성 출혈열 중 하나로 짐작하다. 발진티푸스는 흡혈성 절지동물인 이에 붙어사는 리케차라는 박테리아에 의해 발생하고, 장티푸스는 살모넬라 속의 박테리아인 장티푸스균에서 비롯하는 수인성 전염병이며, 바이러스성 출혈열은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출혈과 열이 동시에 발생하는 질환으로 현대의 에볼라가 그 일종이다. 전염병은 수많은 사람이 감염되고 숨져 추가로 감염될 사람이 줄어들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살아남은 주민들에게 일종의 집단면역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너무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는 사실이다. 피레우스 항구를 통해 아테네로 들어온 전염병은 마찬가지로 이 항구를 거쳐 아테네 밖으로도 폭넓게 퍼졌다.
 14세기 동서양에 펼쳐진 세균전 ‘페스트’
인류가 겪은 최대의 범유행 전염병인 14세기 흑사병도 인류가 전염병과 치열하게 싸운 역사다. 원인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쥐벼룩에 붙어사는 페스트균이라는 박테리아다. 쥐는 페스트균에 면역력이 있지만 인간에게는 없다. 어떤 이유로 인간에 옮아온 페스트균이 범유행을 하며 역사를 바꿀 정도의 대재앙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감염자의 60~90%가 숨질 정도로 치사율이 높은 흑사병은 유럽 지역에서 1346년~1353년 절정에 달해 당시 유럽 인구의 30~60%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선 7500만~2억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인구 연구 결과 4억7500만명 정도였던 14세기 세계 인구는 흑사병이 지난 뒤 3억4500만~3억7500만명으로 줄었다. 그 뒤로도 반복적으로 유행하며 유럽을 괴롭혔다. 인구가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200년이 걸렸다고 한다.

흑사병은 오랫동안 서양의 전염병으로만 여겼지만 연구결과 지금은 동서양 모두에서 발병한 ‘글로벌 전염병’으로 간주된다. 독특하게도 이 병은 14세기 동아시아의 신흥세력인 몽골이 중국 북부의 금나라(1115~1234년)와 남부의 남송(1127~1279년)을 차례로 무너뜨린 전란과 살육의 시대가 지난 직후인 14세기에 나타났다.

쥐벼룩에 기생하던 페스트균이 인간에게 옮아간 경로는 무엇일까. 전란에, 기근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주린 배를 채우려고 야생 쥐를 잡아먹었을 수도 있다. 숲속의 야생 쥐들이 홍수·지진 등으로 서식 환경이 격변하자 먹이를 찾아 인간 거주지로 이동했을 가능성도 있다. 야생 쥐는 페스트균이 우글거리던 쥐벼룩을 달고 왔으며 이는 기근으로 면역력이 바닥이었을 인간을 덮치면서 인수공통 전염병으로 정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역병은 수시로 퍼졌다가 그쳤다가를 반복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던 것이 원나라 말기에 지금 중국의 중앙인 후난성(湖南)성과 우한(武漢)이 자리 잡은 후베이(湖北)성 지역에서 큰 역병이 발생했다. [원사(元史)]에 나타난 기록이다. 페스트균은 중국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실크로드나 초원의 길을 거쳐 중앙아시아·인도·유럽으로 번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원 제국은 동서양 교역로를 활발하게 가동했다. 실크로드 교역으로 인한 인간 이동이 전염병과 원인 미생물을 전 세계로 범유행시킨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흑사병이 유럽으로 들어온 경로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다. 1347년 흑해 연안, 크림반도 동부의 페오도시야 항구에서 시작했다. 당시 ‘카파’로 불리던 이 도시는 이탈리아 서북부 제노바 상인들의 무역 거점이었다. 인근 킵차크한국의 군주인 자니베크 칸(재위 1342~57)은 카파의 상인들과 분쟁이 생기자 4만 병력으로 도시를 포위해 해결하려고 했다. 가톨릭 신자였던 카파 상인들은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 외에 뾰족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다. 기도가 응답을 받았는지 킵차크한국 군대에 역병이 돌았다. 화가 난 자니베크 칸은 투석기를 이용해 희생된 병사들의 시신들을 성 안으로 던져 넣은 뒤 퇴각했다. 세균의 존재도 모르던 시절인데도 세균전을 벌인 셈이다.

카파 상인들은 감사 미사를 마치고 배편으로 흑해와 지중해를 거쳐 2500㎞의 기나긴 항해 끝에 시칠리아 등을 거쳐 제노바로 귀향했다. 문제는 이 ‘오디세이’에 쥐와 쥐벼룩·페스트균도 동행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이탈리아에 도착한 이듬해인 1348년 유럽에서 흑사병이 대량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역병의 비극은 동서양이 따로 없었다. 인류는 이미 14세기에 글로벌 이동과 무역, 분쟁과 난민 이동, 세균전으로 전염병 확산을 경험했다. 안전한 글로벌화를 위해선 국경을 넘나드는 질병의 통제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이미 670여 년 전에 확인된 셈이다. 지금은 항공과 해상 수송로가 있어 전염병의 확산은 더더욱 쉽지 않은가.
 1800년대 파스퇴르와 코흐가 세균 정체 밝혀내
1348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흑사병이 유행할 당시의 모습을 묘사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삽화.
하지만 페스트를 겪고도 인류는 원인을 몰랐다. 인류가 미생물의 존재를 육안으로 보고, 감염병의 원인임을 확인하기도 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은 미생물의 존재를 처음 확인한 것은 네덜란드 델프트의 무역업자이자 과학자인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1632~1723년)이다. 과거 생물학 교과서에선 그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뢰벤후크’로 표기했다. 레이우엔훅은 스스로 갈아 만든 렌즈로 현미경을 만들어 빗물 속의 미생물 등을 눈으로 관찰해 미생물의 존재를 확인했다. 괴팍하게도 정액 속의 정자의 운동성도 확인했다.

프랑스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1822~1895년)는 레이우엔 훅이 현미경을 발명하며 육안으로 보게 된 미생물을 배양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파스퇴르는 미생물이 더러운 환경에서 자연 발생하지 않고 온도·습도·양분 등 다양한 조건 속에서 증식한다는 사실을 밝혀 현대 미생물학의 문을 열었다. 그는 감염성 질환은 자연적으로 생기지 않고 세균이 사람 몸에 들어와서 증식하면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파스퇴르의 업적은 의료계와 산업계가 수술실 소독, 우유 등 식품 멸균법, 백신 등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게 된 바탕이 됐다.

독일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1843~1910년)도 미생물과 감염병을 연구해 질병과 미생물의 관계를 정리한 ‘코흐의 가설’을 발표하면서 ‘세균학의 아버지’가 됐다. 아래와 같은 가설은 오늘날 미생물과 감염병의 관계를 확인하는 기본 공식이 됐다. “질병에 걸린 모든 개체에서 원인 미생물이 다량 발견돼야 하고, 건강한 개체에선 발견되지 않아야 한다.” “이 미생물은 질병에 걸린 생물체에서 분리할 수 있어야 하고, 배지에서 순수 배양할 수 있어야 한다.” “배양한 미생물을 다시 건강한 개체에 주입하면 동일한 질병이 유발돼야 한다.” “배양한 미생물을 주입한 개체에서 다시 동일한 미생물을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의 제자인 리하르트 페트리(1852~1921년)는 1887년 지금도 미생물 배양에 요긴하게 사용하는 둥글고 납작한 접시인 ‘페트리 디시’를 고안했다. 페트리 디시는 미생물 실험에서 공기와도 같은 도구다. 일본에 정박했던 크루즈선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량으로 발생하자 BBC 등 서방 언론은 이를 ‘바이러스 페트리 디시’로 불렀다. 국내 매체들은 이를 ‘질병의 온상’이라는 말로 옮겼다.

천연두도 인류가 오랫동안 고통 받은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다. 한국에서 마마 등으로 불리던 질환이다. 기원전 1145년에 숨진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라에서 천연두를 앓은 흔적이 발견됐을 정도로 오래된 질환이다. 천연두는 인류 역사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큰 상처를 남긴 전염병이다. 아시아와 유럽 등 구대륙은 천연두가 오랫동안 발생하면서 주민들이 어느 정도 면역력을 갖춘 것으로 추정한다. 페스트처럼 세상을 바꿀 정도로 대규모 집단 발병이 이뤄지지는 않은 이유다.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과 호주의 원주민들은 1492년 이후 유럽인들이 오기 전까지 천연두 바이러스와 접촉한 적이 없다. 감염이 되어야 항체가 형성되면서 면역력이 생기는데 주민들이 바이러스와 접촉한 적이 없으나 항체도 면역력도 생길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유럽인들이 환자가 쓰던 담요를 보낸다든지 하는 의도적이거나 우연한 전파를 시도하면서 대규모 비극이 발생했다. 남미 잉카제국 주민의 60~94%, 미국 매사추세츠 지역 아메리칸 인디언의 90%, 호주·뉴질랜드 원주민의 절반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세균전이나 다름없다.

인류는 과학적 지식을 넓히면서 실용적인 천연두 예방법도 함께 개발했다.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1749~1823년)가 1800년 우두를 통해 천연두를 예방하는 방법, 즉 종두법을 개발했다. 종두법은 미생물의 존재를 제대로 모르던 시절에 관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한 과학적 예방법이었다.

그 뒤 인류가 천연두를 물리친 과정은 그야말로 드라마다. 인류는 바이러스는커녕 미생물의 존재 자체를 모를 때부터 우두로 천연두를 극복해왔는데 20세기 들어 백신을 개발하며 본격적으로 대항하기 시작했다. 백신을 국제사회에서 대대적으로 접종하면서 급기야 197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박멸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인류의 과학 연구가 질병을 완벽하게 퇴치한 사례다. 인류가 천연두를 박멸하는 데는 종두법 개발부터 무려 180년이 결렸다. 소의 질환인 우역과 함께 인류가 멸종시킨 드문 바이러스다.
 ‘투명한 대응’의 중요성 웅변한 스페인독감
현대사가 기록한 최대의 범유행인 스페인독감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가장 흔하게 인용되는 질환이다. 1918~20년 H1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해 전 세계로 퍼졌다. 약 5억명이 감염돼 1차 세계대전 사망자보다 많은 5000만~1억명의 희생자를 냈다. 1차 세계대전에선 2050만~2200만명의 군인과 1100만명의 민간인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니까 말 그대로 전쟁보다 무서운 독감이다. 당시 전 세계 인구의 3~5%가 스페인독감으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스페인독감은 1918년 3월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일부 지역에서 처음 발생했다. 6개월 뒤 미국 보스턴, 프랑스 서부 브레스트, 아프리카 서부 시에라리온 등에서 독성이 강한 독감이 폭발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이 독감은 결국 전 세계로 퍼졌으며 남태평양의 절해고도와 북극권도 독감을 피하지 못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확산했다. 한국에서도 무오년인 1918년에 대대적으로 퍼져 ‘무오년 독감’으로 불렸다. 한반도에서만 740만명이 감염돼 14만명의 희생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 중에는 유명 인사도 적지 않다. 그만큼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증거다. ‘키스’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년)와 ‘소녀와 죽음’으로 명성을 얻은 그의 제자 에곤 실레(1890~1918년)도 스페인독감 희생자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라고 노래했던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9년)도 독감으로 숨졌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쓴 독일 경제학자·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년)도 마찬가지다. 사망 연도가 1918~1920년인 사람은 스페인독감 희생자로 일단 의심할 필요가 있다.

유럽에선 스페인독감이 유행한 초기에 의료 종사자들이 많이 감염되면서 의료체계가 마비돼 환자를 제대로 돌볼 수 없어 희생자가 더욱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상황과도 상당히 닮았다. 이를 계기로 예방접종의 중요성이 대두됐으며 특히 의료기관 종사자들은 최우선적으로, 의무적으로 접종하는 제도가 마련됐다. 전염병과의 싸움에서 의료진과 의료시설, 그리고 의료 장비·기구의 중요성을 잘 말해주는 사례다.

미국에서 처음 나와 전 세계에 퍼진 이 질환을 스페인독감으로 표현한 이유는 당시 각국이 전시보도통제로 이를 쉬쉬했지만 참전하지 않은 중립국 스페인에서는 가감 없이 보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투명하지 못한 전염병 대응이 확산에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진정시키는데는 투명한 대응이 필수임을 웅변하는 역사적 사례다.

코로나19는 백신이나 치료제가 아직 없다. 증세를 완화하는 대증요법과 개인의 면역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영양 부족이나 과로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지는 저개발국이나 취약지역 주민에게 병이 번지면 치명적일 수 있다. 병의 확산을 막으려면 검역 강화만큼 인도주의적인 글로벌 연대도 절실하다.
 소아마비 앓은 루스벨트, 백신 개발에 앞장
프랑스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왼쪽, 1822~1895년)의 업적은 의료계와 산업계가 수술실 소독, 우유 등 식품 멸균법, 백신 등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게 된 바탕이 됐다. 장년에 소아마비를 앓아 하반신 장애를 겪은 미국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통령에 재임 중이던 1938년 국가 소아마비 재단을 세워 기금을 모았고, 재단은 1955년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했다.
인류가 집요한 과학적인 노력으로 전염병을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가 소아마비다. 소아마비(Polio)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범해 주로 신경계를 공격해 마비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소아마비는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고고학 유물에 환자 정보가 기록될 정도로 인류와 오랫동안 함께해왔다. 지금으로부터 33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집트 18왕조(기원전 1403~1365년) 시대에 제작된 석판에 한쪽 다리가 가는 모양의 남자가 목발을 짚고 서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누가 봐도 소아마비 후유증이다. 까마득히 먼 고대에도 소아마비 바이러스 질환이 적지 않게 발생했음을 추측하기에 충분하다. 바이러스는 인류와 함께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현대에 와서도 인류를 위협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미국에선 1900년대 소아마비 대유행이 수시로 발생해 1916년 한해에만 2만7000여명이 감염됐고 6000여명이 숨졌다.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의 역대 대통령 소개 코너에 따르면 미국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년, 1932~1945년 재임)는 장년에 소아마비를 앓아 하반신 장애를 겪었다.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 법대에서 공부한 그는 뉴욕주 상원의원(1911~1913년)과 해군부 차관보(1913~1920년)을 지낸 전도양양한 청년 정치인이었다. 38세 때인 1920년 대선에서 민주당 제임스 콕스의 러닝메이트가 돼 부통령 후보로 나섰지만 공화당의 워런 하딩과 캘빈 쿨리지 후보에게 패배했다.

그런 루스벨트는 39세 때인 1921년 여름 소아마비를 앓고 하반신 장애를 얻었다. 그는 병마는 물론 장애와도 싸웠다. 다리를 조금이라도 쓸 수 있도록 부지런히 수영을 했다. 인고의 세월이 지난 뒤인 1924년 공화당 전당대회에 목발을 짚고 나타나 박수갈채를 받았다. 바이러스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을 꺾을 수 없었다.

루스벨트는 뉴욕주지사(1929~1932년)를 거쳐 1932년 미국 대통령이 됐다. 1936년·1940년·1945년 세 차례 더 당선해 미국 유일의 4선 대통령이 됐다. 백악관에 첫 입성할 당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대공황(1929~1939년)에 따른 실업자 1300만명과 문을 닫은 은행들이었다. 루스벨트는 테네시 강 개발 계획을 핵심으로 하는 뉴딜 정책으로 경제를 부흥시켜 대공황을 물리쳤다. 그는 1941년 12월 7일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어 일제와 나치·파시즘에 대항했다. 하지만 종전을 앞둔 1945년 4월 12일 자유진영의 애도 속에 세상을 떠났다. 바이러스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그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가난과 군국주의·전체주의를 물리친 영웅이 됐다.

루스벨트는 사후에 백신 영웅이 됐다. 그는 대통령에 재임 중이던 1938년 국가 소아마비 재단을 세우고 기금을 모았다. 재단은 루스벨트가 세상을 떠난 1948년 피츠버그 의대의 조너스 소크 교수에게 백신 개발을 맡기고 장기간에 걸쳐 연구·개발을 지원했다. 그 동안에도 소아마비는 기승을 부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따르면 1952년 한해에만 미국에서 5만8000건의 소아마비가 발생해 3145명이 숨지고 2만1269명이 마비 장애를 겪었다. 환자는 대부분 어린이였다. 대중은 소아마비를 ‘전후 최대의 공포’ ‘20세기 흑사병’으로 여겼으며 ‘핵무기 다음가는 위협’으로 간주했다.

결국 소크 교수는 1955년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했으며 그 결과 소아마비 환자 발생률을 기존의 30% 수준으로 크게 떨어뜨렸다. 소아마비 백신은 루스벨트가 소아마비를 앓은 지 34년, 재단을 설립한 지 17년, 세상을 떠난 지 10년 만에야 비로소 완성됐다. 루스벨트는 과학을 앞세워 정기전을 벌인 결과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승리를 거뒀다.

인류가 과학을 활용해 바이러스를 상대로 거둔 또 다른 승리가 황열병과의 싸움이다. 황열병은 발열·오한·근육통·두통 증세와 함께 간 손상에 따라 피부가 노랗게 변하는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1859~1869년 수에즈 운하를 완성한 프랑스 외교관 겸 기술자인 페르디낭 드레셉스는 1881년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의 건설에 나섰다. 하지만 공사에 동원한 노동자 사이에서 황열병이 유행하면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뇌물 스캔들도 터지면서 1889년 공사를 중단했다. 질병이 거대 공사를 포기하게 만든 셈이다.

1904년 권리를 인수해 공사를 재개한 미국은 군의관을 동원해 황열병을 막는 방법을 찾는 데 골몰했다. 역학(疫學)을 공부한 군의관 월터 리드는 황열병이 모기를 매개로 전염된다는 쿠바인 카를로스 핀라이의 연구를 바탕으로 파나마 늪지대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모기 퇴치 작업을 펼쳤다. 그 결과 미국은 황열병을 누르고 1914년 무사히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바이러스 존재를 확인하기도 전에 역학을 활용한 과학적 연구 끝에 예방법을 찾은 셈이다. 역학의 승리다. 이는 보건학과 역학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엄청난 업적이다.

황열병의 원인은 1927년 황열병 바이러스로 밝혀졌다. 남아프리카 출신의 미국 미생물학자 막스 타일러는 1937년 황열병 백신을 개발했으며 그 공로로 1951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아프리카 출신의 인물이 받은 첫 노벨상이다. 황열병은 한 차례 백신 접종으로 평생 면역을 얻을 수 있지만 치료제는 아직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감염된 다음에는 해열제 등으로 증상을 완화하는 대증요법이 고작이며, 인체 면역력으로 병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 전쟁서 최고 무기는 ‘백신’
지난 3월초,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종합상황실에 설치된 폐쇄회로 화면. 의료진들은 확진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병실을 폐쇄회로 화면을 통해 환자의 움직임과 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
설사를 유발하는 노로 바이러스의 경우는 치료제는 물론 백신조차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손 씻기 등 위생으로 예방할 수 있지만, 발병했을 경우 대증요법 외에 방법이 없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는 아직 치료제도 백신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코로나19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풍진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풍진의 경우 국내에서 무증상 감염자가 많아 오랫동안 고질병으로 통해왔다. 하지만 2001년 전국 동시 예방접종을 하면서 대대적으로 감소했다. 현재는 매년 10건 이하만 발생해 희귀병이 됐다. 동물에겐 광견병을, 사람에겐 공수병을 일으키는 광견병 바이러스도 백신과 치료법 개발로 사라져가고 있다. 국내에선 광견병이 2014년, 공수병이 2005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보고되지 않고 있다.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개발에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 시행착오가 필요하지만 백신은 바이러스와 전쟁에서 가장 유용한 ‘과학 무기’다. 에볼라·지카 바이러스와 함께 이번에 우리가 싸우고 있는 코로나19의 원인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SARSCoV-2)에 대한 인간의 면역력을 키워준다. 백신은 이미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임상 실험에 들어갔다. 백신은 환자가 아닌 일반인에 주사해 임상실험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과정이 조심스럽다. WHO는 전 세계적으로 70건의 백신 개발 프로젝트가 보고됐다고 4월 13일 밝혔다. 이 가운데 3건에서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동물 시험이나 시험관 시험 등 임상 정 시험 단계다.

신종 항바이러스제를 비롯한 코로나19 치료제 개발도 중요하긴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완치자의 혈액을 활용한 항체 의약품과 혈장치료제 개발에 국내외에서 진행 중이다. 에볼라 치료제인 렘베시비르 등 기존의 항바이러스제나 항체 형성제, 면역 시스템의 과도한 반응을 치료해주는 항염제 등 다양한 코로나19 치료의약품이 개발 중이다.

인류와 코로나와의 전쟁이 바야흐로 막이 올랐다. 그 한복판에 면역이 있고, 이를 획득하는 수단은 과학이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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