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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인사이트 | UAE가 아랍권 반대에도 이스라엘과 손잡은 속사정] ‘포스트 석유’ 경제 개혁 갈망

[채인택의 글로벌인사이트 | UAE가 아랍권 반대에도 이스라엘과 손잡은 속사정] ‘포스트 석유’ 경제 개혁 갈망

기술강국 이스라엘 통해 아랍에미리트 산업개발·치안강화 모색
아랍에미리트(UAE) 국기(왼쪽)와 이스라엘 국기(오른쪽). / 사진:AFP=연합뉴스
아랍국가 아랍에미리트(UAE)가 8월 13일 이스라엘과 외교관계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중동 지역에 한바탕 외교 지각변동이 전망된다. 이날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최대 토후국인 아부다비의 왕세자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는 각각 양국의 평화협정과 수교를 발표했다. 무함마드 빈 자이드 왕세자는 와병 중인 아랍에미리트 대통령 겸 아부다비 에미르(이슬람 군주) 할리파 빈 자이드 알나흐얀을 대신해 국정을 이끌어왔다.

이번 조치는 이집트가 41년 전인 1979년, 요르단이 26년 전인 1994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수교한 뒤 처음 있는 일이다. 페르시아 만(아랍권은 아라비아 만으로 부른다) 연안 국가로는 처음이다. 가히 역사적이라고 할 만하다.

아랍에미리트와 이스라엘의 수교 결정으로 193개 유엔 회원국 중 163개국이 이스라엘을 승인하고 30개국이 미승인국으로 남았다. 아랍권 지역기구인 아랍연맹(AL) 22개 회원국 중 알제리·바레인·코모로·지부티·이라크·쿠웨이트·레바논·리비아·모로코·오만·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소말리아·수단·시리아·튀니지·예멘 등 17개국이 주축이다. 여기에 이슬람협력기구(OIC) 회원국 중 아프가니스탄·방글라데시·브루나이·인도네시아·이란·파키스탄·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7개국과 말리·니제르 등 아프리카 2개국이 포함된다. 남미의 쿠바와 베네수엘라, 아시아의 북한 등 반미국가와, 고립정책을 추구하는 불교 군주국가 부탄도 이스라엘을 승인하지 않는 나라로 남았다.
 첨단 기술 확보에 공 들이는 아부다비
이런 상황에서 아랍에미리트가 ‘퍼스트 펭권’으로 나선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중동의 시아파 반미국가인 이란·시리아·예멘 등에 대한 견제 등 다양한 전략적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동기로 경제적인 요인을 꼽을 수 있다.

사실 아랍에미리트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석유부국이다. 이 나라의 경제의 핵심은 해상 유전을 중심으로 하는 석유사업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총생산(GDP)은 국제통화기금(IMF) 2019년 명목금액 기준 4057억 달러로 세계 30위에 이른다. 1인당 GDP는 3만7749달러로 24위에 오른 부자나라다.

아랍에미리트를 이루는 7개 토후국의 핵심은 아부다비와 두바이다. 아부다비는 아랍에미리트 전체 GDP의 60%를 생산한다. 대부분 석유와 가스다. 연간 2000억 달러를 넘는 아랍에미리트 전체 석유 생산의 94%를 차지한다.

주목할 점은 아랍에미리트의 중심인 아부다비가 1976년 설립한 아부다비투자청(ADIA)이 파이낸셜 타임스(FT) 추정 약 9000억 달러(8750억 달러~1조 달러로 추정액이 다양하다)의 국부펀드를 운영한다는 사실이다.

아부다비는 포스트 석유 시대에 대비해 첨단기술 확보에 필사적이다. FT 보도에 따르면 아부다비 국부펀드의 하나인 무바달라는 이미 지난해 세계적인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인 GE와 공동으로 아부다비에 80억 달러 규모의 합작법인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GE의 10대 투자자가 되기로 했다. 할리파의 원전 도입은 원전 기술 확보와 산업 진흥이라는 큰 그림의 일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원전 도입의 최종 목표는 결국 에너지 산업 다양화라는 이야기다. 아부다비가 간단치 않은 토후국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아부다비는 그린과 에너지 기술뿐 아니라 다양한 고부가 하이테크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독특한 점은 심지어 우주항공 분야에까지 손길을 뻗치고 있다는 점이다. 무바달라 펀드는 에어버스 여객기를 만드는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와 계약을 맺고 일부 항공기 부품을 아부다비에서 제조하는 계약을 맺고 있다. 아부다비에서 현지 젊은 기술자들의 손으로 항공기 부품을 개발하고 제조하겠다는 의지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와 스위스 항공업체들에 대한 지분도 투자해왔다. 아부다비는 심지어 반도체 분야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무바달라 펀드는 설립 목적부터 독특하다. 벤처 투자, 인수합병 등을 통해 아부다비 경제를 다양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할리파가 UAE와 아부다비를 앞으로 어떤 나라로 만들려는지 의도가 분명히 보이는 부분이다. 그것은 오일달러로 최첨단 기술을 확보해 단숨에 고부가 하이테크 산업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다.

아부다비의 국영 투자회사인 어드밴스드 테크놀러지 인베스트먼트사(ATIC)는 싱가포르의 반도체업체인 차터드세미컨덕터를 18억 달러에 매입한 점도 눈에 띤다. ATIC은 그 전에 미국의 반도체회사인 AMD와 공동으로 글로벌 파운드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차터드 세미컨덕터를 이 회사에 합병해 덩치를 키웠다.
 아랍 투자자들 이스라엘 기술에 눈독
이처럼 아랍에미리트, 특히 아부다비는 투자할 곳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스타트업 국가로 발돋움하는 이스라엘에 매력적인 투자처의 하나로 보였을 것이다. 2018년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만난 스타트업 분야 관계자는 “아랍권 투자자들이 다른 나라 여권을 들고 이스라엘을 방문해 스타트업 기업을 살펴보고 있으며 정부도 이를 모른 척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아랍권 투자자들과 당국자들이 이스라엘의 경제력, 과학기술력, 서구와의 네트워크 등을 활용하려고 경제적 접촉 면적을 오래 전부터 넓혀왔다는 이야기다. 이 가운데 투자할 것을 찾고 있는 아랍에미리트 사람이 상당수 있었을 것으로 추론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아랍에미리트가 이스라엘과 손잡은 이유로 이스라엘의 뛰어난 보안 기술을 꼽을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우선 외국인 거주자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아랍에미리트 인구는 2020년 현재 989만 명으로 추산된다. 2005년 센서스에서 집계한 인구가 410만 명이었으니 12년 새 2배 넘게 늘었다. 세계적인 인구 고속 증가 국가의 하나다. 문제는 늘어나는 인구가 대부분 외국인 이주자라는 점이다. 전 세계 200개국 출신이 아랍에미리트에 거주한다.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구 중 내국인과 외국인 비율이다. 이주민이 몰리면서 그 비율은 이미 오래 전에 역전된 상태다. 2018년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인구의 11.48%만 국민이고 나머지 88.52%는 외국인이다.

7개 토후국 중 인구가 많은 5개 토후국을 대상으로 거주자의 국적을 조사한 결과 인도인(25%)·파키스탄인(12%)·에미라티(UAE국민·9%)·방글라데시인(7%)·필리핀인(5%)·스리랑카인(3%)의 순으로 나타났다. UAE가 국제사회에서 ‘거대한 인디언(인도계 주민) 타운’으로 불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10만 명의 영국인과 러시아·유럽·중남미 등에서 온 50만 명의 유럽계 이주민도 존재한다. 국민은 이슬람 종파로 수니파 85%, 시아파 15%의 비율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이주민을 관리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기술과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UAE의 석유 시설의 대부분은 이란과 연결된 해상 유전에서 나온다. 해상 유전은 페르시아 만(아라비아 만)의 작은 섬이나 바다 위에 건설한 인공 섬에서 바다를 뚫어 석유나 가스를 채굴한다. 이 섬의 원유 채굴 시설, 작업장으로 향하는 선박, 이동하는 노동자들의 동태 파악은 UAE 경제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테러라도 벌어지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원전·우주선 개발로 산업 다양화 모색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주민들이 8월 18일 UAE·미국·이스라엘 지도자 사진에 X 표시한 표지를 들고 아랍에미리트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협상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사진:Penta Press=연합 뉴스
주목할 점이 석유와 가스에 경제의 상당 부분을 의존해온 산유국인 UAE가 이제는 포스트 석유시대에 대비해 자국에 다양한 산업을 일으키고 세계 각국의 주요한 첨단산업에 투자해 동반 성장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UAE는 한국과 손잡고 바라카 원전 건설에 들어갔으며 지난 8월 1일 1호기가 상업 발전에 들어갔다.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아랍에미리트(UAE) 총리 겸 부통령 겸 두바이 지도자는 8월 1일 아부다비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1호기 가동을 발표했다. 바라카 원전사업은 한국형 차세대 원전 APR1400 4기(총발전용량 5060㎿)를 UAE 수도 아부다비에서 서쪽으로 270㎞ 떨어진 바라카 지역에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한국전력 컨소시엄은 2009년 12월 이 사업을 수주해 2012년 7월 착공했다. 애초 2017년 상반기에 1호기를 시험 운전할 계획이었지만 UAE 정부 측에서 자국민 고급 운용 인력 양성을 요구하면서 시기를 수 차례 연기했다. 한국에선 고리 원전에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KINGS)를 세워 아랍에미리트 등 국내외 원자력 전문 인력을 양성해왔다.

중동권에서 원전 가동은 이스라엘의 네게브 원전과 이란의 부셰르 원전이 이에 세 번째다. 이스라엘과 이란 원전이 핵무기 개발 의혹을 사는 것과 대조적으로 바라카 원전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규제를 따르는 상업발전 시설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중동의 강국으로 자부하는 터키도 2018년 4월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 로사톰과 손잡고 지중해 연안 메르신 지역의 악쿠유 원전의 건설 기공식을 열었다. 기공식에 맞춰 터키를 찾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손을 잡았다.

AFP 통신에 따르면 아랍권의 강국 이집트도 러시아와 손잡고 원전 4기를 건설하려다 미국의 반대로 주춤한 상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요르단도 한국과 협력해 연구용 원자로를 가동하며 실력을 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UAE는 원자력으로 다른 나라보다 앞서가고 있는 셈이다.

UAE는 지난 7월 20일 중동 최초의 화성 탐사선 아말을 발사했다. 아랍어로 희망을 뜻하는 아말은 이날 일본의 우주발사체인 H2-A에 실려 일본 남부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발사됐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UAE의 첨단과학기술부의 주도 아래 과학기술자들이 지난 6년간 개발한 화상탐사선 아말은 5억㎞의 우주 공간을 날아가 2021년 2월 UAE 건국 50주년에 맞춰 화성 궤도에 진압할 예정이다.

이런 성과에도 아랍에미리트와 아부다비는 고민이 많다. 1971년에 독립한 아랍에미리트는 석유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지만 작업복을 입고 먼지 속에서 땀 흘려 일하는 국민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한 마디로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 아라비아 만(페르시아 만) 연안 산유국의 공통적인 고민이다.
 성과 없는 이스라엘 봉쇄 정책 변경
아랍에미리트 인구의 9%를 차지하는 현지인들은 에어컨이 잘 되는 사무실에 앉아 편안히 일하는 공공 부문 일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건설 등 힘든 일은 대부분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가 맡고 있다. 중동 산유국 도시들이 거대한 인디언 타운이 되고 있는 이유다. 게다가 사회복지는 거의 완벽해 힘들여 일하지 않고도 상당한 수준의 생활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숙련된 기술자와 지식인이 필요한 제조업이나 첨단산업의 발전을 애초에 기대하기가 힘든 구조다.

게다가 경제에서 석유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문제도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60%가 석유와 천연가스에서 나온다. 다른 걸프 산유국 평균인 45%와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2000억 달러 정도를 수출하는 석유 말고는 수출품이라고 해봐야 대추야자와 중동과 인도 요리에서 양념으로 쓰이는 말린 생선 정도밖에는 없다. 다만 국내에서 석유 플랜트를 제작하고 여기에 사용하는 철강을 자체 제철소에서 생산하는 등 아라비아 만(페르시아 만) 연안 산유국 중에선 드물게 자체 산업을 보유하고 있기는 하다.

아무리 부자 산유국이라고 해도 과도한 복지정책을 언제까지나 계속 펼 수는 없다. 인구는 갈수록 늘고 있고 복지비용은 경제에 서서히 부담을 준다. 나라 안에는 석유회사와 국부펀드 운용사, 그리고 공공 부문 말고는 별다른 일자리도 없다. 산업을 추가로 일으킬 필요성이 절실한 이유다. 석유 다음의 시대도 고민해야 한다. 대대적인 경제구조 개혁 드라이브가 필요한 부분이다. 산유국에서 원전을 건설하는 이유는 이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아랍에미리트에 이스라엘은 중동 유일의 과학기술 능력을 보유한 최선의 지역 내 파트너가 될 수 있다. 팔레스타인을 위해 이스라엘을 봉쇄한다는 아랍 민족주의의 구호는 실제 팔레스타인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현실론도 감안했을 것이다.

사실 와병 중인 아랍에미리트 대통령 겸 아부다비 에미르인 할리파는 중동 서민들에게 인기 있는 군주다. 팔레스타인에선 하마스 지도자에 이어 인기 2위의 인물이다. 대대적인 경제적인 지원 때문이다. 할리파는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가자지구에 자신의 이름을 딴 신도시인 셰이크 할리파 시티의 건설을 추진해왔다. 팔레스타인의 경제적인 부흥을 지원해 이 지역에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기대에서다. 거의 대부분 젊은이 일자리가 없는 팔레스타인에 건설 분야 등에서 일자리를 제공한 것이다.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에 심장병과 중환자동 건물 건설에 거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이 건물에는 자신의 선친인 셰이크자이드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경제개혁가이자 자선기부자인 할리파의 야망은 사막의 열기보다 뜨겁다. 할리파의 뜻을 이복동생인 왕세제 무함마드 빈 자이드가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이스라엘이 보유한 능력은 한국도 마찬가지로 확보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에 없는 인적 자원과 지식, 기술, 그리고 경험과 의지가 있다. 아랍에미리트와 이스라엘의 수교는 아랍에미리트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들의 숨은 고민을 보여준다. 그 틈새에 한국이 진출할 기회가 엿보인다. 문제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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