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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대담집 단독 입수] 『이낙연의 약속』 “제 뿌리는 남루했던 청춘”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싱크탱크 ‘연대와 공생’ 주최로 열린 정책 심포지엄에 참석해 국정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저의 남루한 청춘을 위로했던 『별들의 고향』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2013년 9월 고(故) 최인호 소설가를 추모하며)
저는 남루한 청춘을 종로에서 지냈습니다. (2020년 3월 지역구민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젊은 날을 돌이킬 때면 언제나 ‘남루했다, 누추했다’라고 말했다. 1970년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 군대도 ‘용투사(용산 미군기지에서 근무하는 카투사)’를 나오고, 졸업 후엔 [동아일보]에 기자로 입사했던 그가 왜 자신의 청춘을 남루하다고 했을까. 그를 소개하는 짤막한 약력으론 이런 말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27일 출간한 책 『이낙연의 약속』(21세기북스)을 엮은 문형렬 작가도 이곳에서 첫 질문을 시작한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후문 쪽 독서실에서 의자 몇 개 붙여놓고 자던 일, 성북구 종암동 외삼촌 세탁소에서 외삼촌 가족 여섯 명과 두 평 남짓한 방에서 살던 일…. 그는 전남 영광에서 혈혈단신 올라와 이곳저곳에 의탁했던 청춘을 되짚는다. 대학 4학년 때는 영양실조 초기증상까지 찾아와 그를 괴롭혔다. 그때 나온 입대 영장은 그에게 차라리 탈출구였다.
 
카투사 부대를 가니 일단 먹는 게 좋아요. 제가 웃통을 벗었을 때 갈비뼈가 안 보인 게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23쪽)
 

“청년 시절의 남루함이 이낙연을 이해하는 열쇠” 

 
가난했던 시절의 기억은 비단 이 전 대표만의 것이 아니다. 산업화 시절에 컸던 사람이라면 대부분 겪었을 집단 기억에 가깝다. 그런데도 문 작가가 집요하게 이 전 대표의 청춘을 되짚어나갔던 이유가 뭘까. 답은 책의 2장 ‘청년 이낙연과 영끌’에서 나온다.
 
청년들의 생각은 헬조선에서 이생망, 영끌, 영털(영혼까지 털렸네)로 가고 있어요. 
한스럽죠. 청년을 만나면 기피해야 하는 말이 ‘라떼’라고 하지요. 이제는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나 때 말이야’가 아니라 ‘왜 나 때의 문제가 아직도 안 변했는가?’라고. (…) 남산 꼭대기에 올라가 내려다봐도 단 한 평도 내 몸 눕힐 곳이 없는 저였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 청년들도 비슷하게 고통받는가….(67쪽)
 
40년도 전 그가 겪었던 고통이 지금도 여전하다는 데서 오는 한스러움. 문 작가는 “청년 시절의 남루함이 정치인 이낙연의 존재를 구성하고, 정책을 이해하는 열쇠 단어”(62쪽)라고 이낙연의 답에 해설을 더한다. 실제로 책 전반에 걸쳐 소개하는 정책도 대부분 청년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청년 주거급여 보완 ▷용산 미군기지 부지에 청년 공공임대주택 조성 ▷군 사회출발자금 ▷공공산후조리원 확대 등이 그렇다. 이 전 대표는 “20대에서 40대가 행복하면 노년은 물론 사회 전체가 행복해진다”며 청년 지원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가는 2017년,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와 대담한 내용을 엮은 책 [대한민국이 묻는다](21세기북스)에서도 문 후보에게 유년의 기억을 첫 장부터 꺼내었다.
 
문득 이런 물음이 생각납니다. 아버지 시대에는 무엇을 빼앗겼는지….
(문재인) (아버지는) 남쪽으로 피난 와서는 자신이 원했던 삶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실패한, 아주 무기력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지요. (…) 그런 모습이 늘 가슴에 서늘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묻는다』, 18~19쪽)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년 임기 동안 대북 정책에 가장 역점을 뒀다.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고, 이듬해에는 북한이 개성 공동연락 사무소를 폭파할 때도 문 대통령은 대화 재개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문 작가는 본지와 통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분단의 현실이 절절했다면, 이 전 대표에겐 청춘의 고통이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는 더 실용적이어야 한다”

 
청년 이후 이 전 대표의 약력은 4선 국회의원(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전라남도 도지사, 역대 최장수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이어진다. 낙선 한번 없이 직을 맡아왔지만, 이 전 대표는 “(유권자와의) 약속이 자꾸 키가 자라는” 시간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도지사직을 시작하자마자 찾아갔던 진도 팽목항, 당 대표 시절 찾아가 고개 숙여야 했던 산업재해 노동자 유가족들의 농성장과 함께 그가 맞닥뜨렸던 가장 큰 사건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었다. 그는 “갈 곳 없고 배고픈 나를 재워주고 고시 공부 하도록 배려해준 그 마음을 본받자는 약속은 (…) 팬데믹을 겪으면서 감염병 국가책임제를 하겠다는 약속으로까지 자랐다”(63쪽)고 말했다. 이 전 대표가 말하는 감염병 국가책임제는 공공병원 설립, 공공의료대학 설립 등을 포함하고 있다. 소상공인의 희생에 대가를 지급하는 손실보상제 방안도 다뤘다.
 
이밖에 이 전 대표는 이번 대담집에서 사회부터 정치·경제·안보 등 모든 이슈를 총망라해 자신의 고민과 제안을 밝혔다. 지난 4월 15일 코로나19 자가격리를 마치고 나선 첫 외부 활동에서 “내가 대통령을 안 했으면 안 했지, 문재인 대통령을 배신할 수는 없다”고 했지만, 현 정부 정책에는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의 말을 빌려 “진보는 더 실용적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표 공약으로 내세우는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재원 마련 대책 등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직격하기도 했다. 
 
문 작가는 책 말미의 ‘작가의 말’에서 묻는다. ‘당신은 진실한가.’ 그는 “이 전 대표와 만나는 내내 마음 속에 품어왔던 단 하나의 질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답이 진실했다면, 이 전 대표의 지지율도 반등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결과는 어떨까.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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