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금리 인상 가능성에 발등에 불 떨어진 기업·가계
기업 10곳 중 3곳, 이자 비용도 못 벌어…“산업 재편 필요”
가계 부채 1765조 시대, 영끌족 이자 부담 최소 6조원 이를 듯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 16일(미국 현지 시간) 이틀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금리 인상이 2023년으로 앞당겨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미국보다 앞서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이주열 한국은행(한은) 총재가 ‘통화정책의 질서 있는 정상화’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연초 예상과 다르게 경기가 강한 회복세에 접어들었고, 유동성을 바탕으로 급증한 가계부채를 더는 지켜만 볼 수 없는 상황이 통화 완화 정책의 기조 전환을 이끄는 형국이다. 이에 금리 인상이 몰고 올 파장에 대한 경계감도 고조되고 있는 분위기다.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이자 부담 높아
경기가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 기업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권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17일 발표한 ‘2021년 1분기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올해 1분기(3~5월) 우리나라 기업들의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때보다 7.4% 증가하면서 2017년 3분기(7~9월) 13.8%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한은이 외부감사법 적용 대상인 2만914개 기업 가운데 3862개 기업을 표본 조사해 추계한 결과다. 한은은 “반도체·자동차 수출 결과가 좋았고, LCD(액정표시장치) 등 제조업 전반이 호조를 나타낸 결과”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리 인상 가능성에 숨죽이고 있는 기업들이 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대표적이다. 한은에 따르면, 국내 외부감사대상 비금융 영리법인 기업 가운데 이자보상이율(이자보상배율) 100% 미만 기업 비중은 2018년 31.3%에서 2019년 31.0%로 소폭 줄었다가 2020년 들어 34.5%로 상승했다. 지난 2013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다.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비율인 이자보상비율이 100%보다 적으면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영업이익이 이자비용보다 적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지난해 우리나라 기업 10곳 가운데 3곳은 이자비용도 벌어들이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자보상비율이 0% 미만(영업적자)인 기업도 2018년 21.6%에서 2019년 21.1%로 감소했다가 2020년 25.2%로 급증했다.
금리가 인상될 경우 이 한계기업들의 앞날은 더욱 어둡다. 이미 초저금리로 진행된 대출에 코로나19로 인한 추가 대출과 이자상환 유예 등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던 한계기업이 금리 인상이라는 난관을 헤쳐 나가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도 비슷한 의견이다. 지난 7일 발표된 산업연구원의 ‘코로나19 후 경제회복을 위한 한계기업 정상화 과제와 정책시사점’ 보고서는 “한계기업 특성상 외부자금에 의존해 기업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으며, 장기한계기업의 높은 타인자본 의존도는 정부 지원 또는 외부차입에 의존한 생존을 시사한다”며 “코로나19 발생 후 단기적 부실 위험을 가진 기업이 증가해 향후 이들 중 일부가 한계기업이 될 압력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지난 5월 한은의 ‘금융안정 상황 평가’에 따르면 금리가 상승하면 기업들이 부담하는 평균 이자율이 0.09%포인트 상승하고 이자 부담액은 약 5000억원 증가한다. 특히 중소기업은 평균 이자율 0.09%포인트 상승 시이자 부담액이 5000억원 증가해 대기업(0.08%포인트 상승 시 1000억원 증가)에 비해 높았다.
민경희 대한상공회의소 연구위원은 “시급한 유동성 공급을 지원하는 대책들을 유지하는 동시에 그 이면에 자리한 부실기업과 구조조정 관련 문제들을 풀어가기 위한 선제적 사업 재편 등을 포함한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금리 1%포인트 오르면 가계 이자 부담 12조↑
역대 최고 수준의 부채를 안고 있는 가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765조원이다. 이는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03년 이래 가장 많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보험사·대부업체·공적 금융기관 등에서 받은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금액(판매신용)까지 더한 ‘포괄적 가계 빚(부채)’이다. 가계 신용은 지난해 1분기 말과 비교해 1년 새 약 153조원(9.5%)이 늘어났다. 특히 올 1분기에만 37조6000억이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 시중금리 역시 오르게 되고 결국 대출을 받은 가계의 이자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대출 금리는 오름세다. 한은의 ‘금융기관 가중평균 금리’ 통계에 따르면 4월 예금은행의 전체 가계대출 금리(가중평균·신규취급액 기준)는 2.91%로 3월(2.88%)보다 0.03%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1월(2.95%) 이후 1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2.73%로 한 달 새 변화가 없었지만, 2019년 6월(2.74%) 이후 최고 수준을 두 달 연속 유지했다. 일반신용대출 금리(3.65%)도 지난해 8월(2.86%)과 비교하면 0.99%포인트 높아진 상태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70% 가까이 변동금리를 적용하고 있어 이자 부담이 불가피하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주택담보대출 잔액 593조원 중 404조원(68.1%)이 변동금리에 쏠려 있다. 특히 공격적인 매수세를 보였던 20대의 변동금리 비중은 72.6%에 달하는 상황이다. 대출을 끼고 주택을 매수한 경우 당장 이자 비용이 늘어나게 된다는 의미다.
이자 부담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한국은행이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개인 대출(주택담보대출·신용대출 등) 금리가 1%포인트 오를 경우 가계대출 이자는 총 11조 8000억원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소득분위별 가계대출(금융부채) 가운데 약 72%를 변동금리 대출로 보고 분석한 결과다. 금리가 0.5%포인트가 오른다고 해도 가계대출 이자 부담은 약 6조원(약 5조9000억원)에 달한다.
아울러 대출금리가 1%포인트 뛰면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도 5조 2000억원이나 커지는 것으로 추정됐다. 결국 금리 인상은 청년층과 자영업자 등 금리 방어력이 취약한 계층에 자산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이에 신용상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민간부채 전체의 총량 관리와 함께 가계부채, 부동산금융 등 특정 부문별 총량관리 목표를 설정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청년층 대출 등 위험이 높은 부문에 별도로 총량 목표를 제시하거나 취약계층의 부채 상환 시점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등의 대책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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