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괴리③] 재개발, 공공이든 민간이든 ‘젠트리피케이션’ 숙제
서울시 주거정비지수제 폐지해 해제구역 재개발 유도
공공엔 인센티브, 민간엔 기부채납 없어…득·실 계산
“기존 원주민·노포상인 공존하는 해법 마련 선행돼야”
해외선 민간 개발에 인센티브로 ‘젠트리피케이션’ 해결
도시 정비의 관점이 개발→보전→개발로 다시 돌아왔다. 서울시장이 오세훈→고(故) 박원순→오세훈으로 돌아오면서다. 개발 부작용을 줄이고자 보전을 택했는데 한계에 부닥치면서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자 개발로 다시 방향을 바꿨다. 대신 추진 방식이 바뀌었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 등 과제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오세훈 시장의 개발 정책 이번엔 잘될까. [편집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2세대 도시재생’을 통해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등으로 2026년까지 주택 2만4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재개발을 추진 중이던 도시재생 사업 지역들의 속내가 복잡해졌다. 공공 재개발이냐 민간 재개발이냐에 따라 득실이 바뀔 수 있어서다.
각종 혜택(인센티브) 측면에선 공공재개발이 유리하지만, 민간재개발은 공공임대 등 기부채납 의무가 없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기부채납은 개발 사업자가 재개발·재건축을 할 때 일정 부분의 땅에 공공시설을 설치해 국가나 공공기관에 소유권을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
관건은 서울시와 정부와의 협의다. 서울시는 재개발 사업의 발목을 잡았던 주거정비지수제를 폐지하고 층고 규제 등도 완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민간재개발 문턱이 낮아지면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재개발 사업에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다만, 도시재생 사업은 주민 참여가 핵심인 만큼 재개발의 고질적 문제인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전문가 조언이 나온다.
공공재개발 vs 민간재개발…지역현안 맞춰 계산기 두드려
서울시에 따르면 앞으로 재개발을 추진하는 구역들은 모두 공공기획을 통해 정비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공공기획은 공공이 사업을 기획한다는 점에서 공공재개발과 유사하나 서울시가 시행사로 직접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허가 과정에 개입해 절차를 간소화하는 ‘조력자’ 역할에 머문다. 이 경우 기존 자치구가 맡아 통상 42개월 정도 소요됐던 절차를 14개월로 단축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구역 지정까지 걸리는 기간은 5년에서 2년 이대로 대폭 줄어든다.
서울시가 공공기획과 함께 주거정비지수제를 폐지하면 과거 재개발 해제 구역 316곳 가운데 절반 이상인 170여 곳이 재개발 추진이 가능해진다. 주거정비지수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5년 도입한 제도로, 재개발 사업 시 주민동의율과 건물의 노후도 등을 부문별로 상세히 점수화해 일정 점수 이상이 돼야 재개발사업 신청을 할 수 있게 했다. 지금까지 도시재생 사업 지역을 포함해 신규 구역에 재개발 허용을 어렵게 한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도시재생 사업 지역도 재개발 구역에 포함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서울시가 기존의 도시재생 사업 내용을 바꾸려면 정부 동의가 우선 필요하다. 도시재생 사업은 서울시만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토교통부(국토부)도 지정할 수 있다. 서울시 도시재생포털에 따르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52개 서울시 도시재생 사업 중 17곳은 국토부의 국비를 지원받고 있다. 국비를 받는 지역은 서울시·국토부 등과의 조율이 필요하다.
도시재생 지역에서 재개발이 추진된다면 주민들은 공공기획을 거친 공공재개발이냐 민간재개발이냐를 선택할 수 있다. 공공재개발은 용적률이 완화되고 분양가상한제를 적용 받지 않는다. 사업성과 직결되는 용적률의 경우 공공재개발이 민간재개발 대비 111%포인트(민간 269%, 공공 380%)까지 상향할 수 있다. 그밖에 서울시의 층수 규제인 ‘35층 룰(rule)’ 역시 세부 계획 수립 과정에서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서울시가 공공기획을 통해 민간 정비사업에 심의 기간을 단축하겠다고 한 만큼 공공재개발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각종 규제 완화 혜택을 적용하면 사업성 개선 효과가 미미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정부가 공공재개발은 분양가상한제를 면제해주겠다고 했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고분양가 관리·규제를 받는다. HUG는 통상적으로 시세보다 낮은 수준으로 분양가를 책정하기 때문에 ‘있으나 마나한’ 혜택이란 지적이다.
조합 입장에선 공공재개발 시 공급물량의 일부를 임대주택으로 내놔야 하므로 향후 주택 가치 상승 면에선 민간 정비사업이 공공재개발보다 나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공공재개발은 인센티브로 받은 용적률 상향 분의 일정 부분을 기부 채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서울시와 국토부는 상충되는 부분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 시장은 “공공재개발과 민간재개발이 상호 보완하면서 주민 선택에 따라 신규 주택을 공급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영한 국토부 주택정책관 역시 “공공과 민간의 재개발은 경쟁관계가 아니라 입지 여건과 토지주들의 사업 의지·수익성에 따라 주민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정부가 가장 관심을 보인 서울 성북구 장위동 9구역의 선택이 주목된다. 장위 9구역은 공공 재개발 공모 당시 주민 동의율 약 70%를 달성한 지역이다. 김지훈 장위9구역 추진위원장은 “최단 기간 안에 입주를 원하기 때문에 민간방식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공공재개발은 민간재개발에서 조합 비리 때문에 사업이 지연되는 등의 문제점들을 방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반대하는 주민들은 공공재개발의 정책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논란이 공공재개발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40년째 장위 9구역에 거주 중인 주민 김호연(64)씨는 “공공기관이 우리 지역에서 자기들 이익만 취할지 어떻게 아느냐”면서 “차라리 민간에 맡겨 사업성을 높이는 편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재개발의 고질적 문제인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대책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주거 젠트리피케이션 논의가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확장되고 심화되므로 임차인을 위한 대책 마련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질병 ‘젠트리피케이션’ 해외에선 당근 정책으로 해법 모색
공공이든 민간이든 재개발의 경우 원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는 현상인 젠트리피케이션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해외에선 정부와 민간이 성공적인 도시재생 협업으로 이를 해결한 사례가 적지 않아 공공과 민간이 공존할 수 있는 본보기를 보여준다.
‘제2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시애틀 사우스레이크유니언 지역은 개발 전엔 낡은 창고시설 밀집 지역이었으나, 2012년 말 부동산개발 기업인 벌캔 부동산이 대규모 업무시설을 새로 지으며 주거환경을 크게 개선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유통 기업인 아마존과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이곳에 들어섰고, 곧 이어 구글·페이스북·애플·트위터·드롭박스·일렉트로닉아츠·알리바바 등의 기술본부 등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 생태계가 선순환 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 시 의회가 민간 주도 개발에 용적률과 높은 인센티브를 준 것이 계기가 됐다. 이처럼 공공기획을 거친 민간재개발에 법인세 감면, 재투자 인센티브 등 정책적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만 재개발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또 모든 사업을 감당할 수도 없다는 이유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사업이 지지부진했거나 사업성이 낮은 단지를 중심으로 공공재개발을 진행하되, 민간에는 공공성 조건을 갖추면 인센티브 지원이나 규제 완화 등의 혜택이 더해져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재개발의 고질적 문제인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대책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주거 젠트리피케이션 논의가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확장되고 심화되므로 임차인을 위한 대책 마련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009년 발생한 ‘용사 참사’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 부작용의 극단적 예다. 용산 재개발 구역 철거에서 거액의 권리금을 투자한 임차인들이 재개발·재건축으로 인해 권리금 회수 기회가 없어지면서 일어난 참극이었다. ‘제 2의 용산참사’를 막기 위해선 서울시의 책임 있는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기웅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 연구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의 핵심은 임대료 인상으로 인한 주민과 소상공인의 비자발적 퇴거”라며 “동네 주거환경이 개선되거나 상권이 활성화되면 그 혜택이 그 지역 주민과 상인에게 가질 않고 오히려 그들이 쫓겨나는 역설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숙제”이라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는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을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는 1984년 발의된 상가건물임대차 보호법을 지금까지도 논의하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서는 민간기구인 북동투자조합이 결성돼 주민들이 공동으로 상가건물을 매입하고, 주민 소유 소상공 업체에 임대하는 ‘자산화 전략’을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근린업종을 유지하고 소형 상점을 보호할 목적으로 전체 도로의 16%를 보호 상업가로로 지정해 총 3만여 개의 수공업·음식 관련 소규모 업체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임대하고 있다.
이영범 경기대 교수(건축학과)는 “도시재생이든 재개발이든 어쨌든 동네가 되살아났다는 것은 결국 사람이 유입된다는 의미”라며 “당장의 성과를 위해 주거지역을 상업지역으로 용도 변경하는 방법을 쓰면 결국 서울 망원동·상수동이 겪은 몸살을 다른 지역도 똑같이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태원 광운대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과)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정부 주도로 모두 해결할 순 없으며, 이해관계자 간의 공존과 상생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지역과 상황에 따라 자율적인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임대인과 임차인, 소비자와 공급자, 공공과 민간이 공동체라는 의식을 갖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하늬 기자 kim.ho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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