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가 정크푸드?”…국민간식의 반란, 프리미엄을 더하다
프리미엄 옷 입고 고객맞춤형 고급 음식으로 발전
‘빌라 드 스파이시’, ‘청년다방’ 대표적 매장
식사대용 떡볶이 밀키트까지 등장
“떡볶이는 영양이 불균형하고 자극적인 맛을 내는 정크푸드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이 지난 8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한 말이다. 앞서 그는 2018년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떡볶이는 불량식품이다. 학교 앞 그린푸드존(식품안전보호구역)에서 못 팔게 돼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황교익의 발언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정한 그린푸드존 판매금지 식품에 떡볶이가 포함되지 않아 잘못된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틀린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학교 앞 그린푸드존에서 파는 떡볶이에 한정하긴 했지만 궁중에서도 먹던 떡볶이가 ‘불량식품’이라는 주장은 공감하기 어렵다는 것이 여론의 반응이다. 오히려 떡볶이는 학교 앞에서 1000~2000원에 사먹을 수 있었던 저렴한 간식에서 확장돼 최근엔 ‘프리미엄’이라는 옷을 입고 ‘고급 음식’으로 변신하고 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떡볶이는 간장 양념에 재운 소고기를 채소, 버섯 등과 같이 볶아 만든 ‘고급 궁중음식’이었다. 그러다 1950년대에 고추장떡볶이, 짜장떡볶이 등이 등장하며 민간에 알려졌고 1970년대에 와서는 서울 신당동에 떡볶이 골목이 만들어지는 등 인기를 얻으면서 국민 대표간식으로 떠올랐다.
이처럼 빠른 대중화를 거친 탓에 떡볶이업계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프랜차이즈화로 점포가 우후죽순 생겨나며 업주들은 떡볶이 메뉴의 차별성을 강구해야했다. 사업주들은 ‘즉석떡볶이’에서 그 답을 찾아냈다.
프리미엄 맞춤 떡볶이 전성시대…가격도 파스타 맞먹어
“허기를 채우는 떡볶이는 간식이지만, 고객에게 맞춘 떡볶이는 요리다.”
떡볶이를 젊은 세대 감성에 맞춰 카페 레스토랑 음식으로 진화시킨 대표적인 곳은 2011년 강남 신사동 가로수길에 런칭한 프리미엄 떡볶이 브랜드 ‘빌라 드 스파이시’다. 전직 그래픽‧패션 디자이너 부부가 운영하는데, ‘고객맞춤 떡볶이는 간식이 아닌 요리’라는 철학을 내세우고 있다. 디자이너 출신 부부답게 재봉틀, 마네킹 등을 활용해 패션쇼 백스테이지 같은 카페 분위기를 연출해 여성고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대표 메뉴는 빨간색의 아라비아따 떡볶이, 노란색의 단호박 떡볶이, 분홍색의 로제떡볶이, 흰색의 까르보나라 떡볶이다.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맛을 추구한다는 브랜드의 철학처럼 떡볶이 요리에 다채로운 색을 입힌 것이 특징이다. 기본 메뉴인 즉석떡볶이 2인분 가격은 1만4000원으로, 여기에 각종 토핑과 튀김까지 추가하면 3만원 가까이 나온다. 레스토랑 파스타 2인분과 맞먹는 수준이다.
떡볶이를 하나의 요리로 고객의 다양한 취향을 맞출 수 있도록 ‘맞춤 식탁’을 만들고 싶었다는 부부 사장은 “우리가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맞춤 떡볶이는 간식이 아니라 최고의 재료와 최상의 서비스로 만들어지는 ‘Haute Cuisine(최고급 요리)’”라고 설명했다.
빌라 드 스파이시는 국내에 10여개 지점이 있다. 경쟁업체들과 비교했을 때 적은 수치지만 매장이 주로 ‘백화점’ 또는 ‘고급 빌딩’에 입점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 신세계 강남점‧센텀점‧대구점에 들어가 있고 신사동 가로수길과 청담동, 광화문 디타워에도 입점해 있다. 떡볶이의 고급화를 겨냥한 사업 전략이 돋보인다는 분석이다.
빌라 드 스파이시는 8월 27일 개장하는 대전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에 세컨브랜드 ‘분식사우’ 매장을 처음 선보인다. 젊은 세대에게 인기인 리코타 치즈를 접목시킨 ‘리코타 치즈 깻잎 떡볶이’가 대표 메뉴다. 빌라 드 스파이시는 “대전신세계 분식사우 1호점 개점으로 시작해 고객들에게 고급 떡볶이 요리를 카페 레스토랑에서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든든한 한끼 된 떡볶이…커피와 함께 즐기는 이색 매장도
커피와 떡볶이를 함께 팔며 ‘다방’ 느낌의 이색적인 콘셉트로 젊은 세대를 사로잡은 떡볶이 프랜차이즈도 있다. 2015년 4월 서울 굽은다리점 오픈을 시작으로 가맹사업을 시작한 ‘청년다방’은 전골 형태의 즉석떡볶이를 판매하는 신당동 떡볶이의 대항마 브랜드로 등장했다.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20대 뿐만 아니라 청년처럼 열정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곳에 모일 수 있는 방’을 만들고 싶다는 아이디어에서 커피와 떡볶이를 함께 준비했다. 청년다방은 떡볶이 앞에 ‘명품’이라는 단어를 붙여 고급 떡볶이를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했고, 특이한 메뉴 구성과 젊은 세대를 겨냥한 인테리어로 떡볶이의 프리미엄화에 불을 지폈다.
이곳의 기본 즉석떡볶이 가격은 2인 기준으로 1만3500원으로 역시 토핑이나 음료가 추가된 세트메뉴로 먹을 경우엔 3만원이 넘는다. 청년다방만의 경쟁력은 일반적인 떡이 아닌 40㎝ 길이의 긴 떡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대표 메뉴는 떡볶이에 차돌을 넣은 ‘차돌떡볶이’와 통 오징어 한 마리를 넣은 ‘통큰오짱 떡볶이’다. 분식으로 즐길 수 있는 메뉴가 아닌 한끼 식사로 먹을 수 있는 양과 재료가 들어있다.
청년다방은 2021년 8월 기준으로 가맹점 400개를 돌파했다. 2020년 기준 전체 가맹점 평균 월매출은 3254만원이다. 청년다방은 “변화하는 외식 환경과 트렌드 속에서 떡볶이 또한 든든한 한끼가 될 수 있다는 고유의 정체성을 중요시하고 있다”며 “미국, 베트남, 태국 등 해외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밀키트 시장에도 등장한 떡볶이…생활맥주·모범떡볶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떡볶이는 이제 밀키트 시장까지 진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 영향으로 급성장한 국내 밀키트 시장에 떡볶이가 등장한 것은 소비자에게 '하나의 음식'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정에서 간편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고, 외국인도 ‘한류음식’ 떡볶이를 쉽게 맛볼 수 있게 됐다.
떡볶이 밀키트 시장에 뛰어든 업체는 ‘생활맥주’와 ‘모범떡볶이’ 등이 있다. 수제맥주 프랜차이즈 브랜드 생활맥주는 대표 메뉴인 ‘생활떡볶이’를 업그레이드해 ‘어묵까지 맛있는 생활떡볶이’ 밀키트로 선보였다.
생활맥주는 7월 22일 생활떡볶이 밀키트 1차 물량이 완판됐다고 밝혔다. 생활맥주에 따르면 매장에서 팔린 떡볶이 밀키트 누적 물량은 8만개에 달한다. 생활맥주 관계자는 “생활떡볶이 밀키트를 먼저 접하고 생활맥주 매장으로 방문하는 고객이 생겨났다”며 “고객이 떡볶이를 식사로, 야식으로, 안주로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떡볶이 밀키트 덕에 매장 매출도 함께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관계자는 또 “생활맥주의 배달 전문 브랜드 ‘생활치킨’에서도 치킨‧떡볶이‧수제맥주 세트의 배달률이 계속 늘고 있어 생각지 못한 온오프 믹스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1976년 창신동에서 시작한 브랜드 ‘모범떡볶이’도 지난해 8월 ‘모범easy떡볶이’ 밀키트를 출시했다. 모범떡볶이에 따르면 모범easy떡볶이는 출시 한 달 만에 2만개 판매량을 올렸다. 회사 관계자는 “떡볶이 밀키트 인기에 힘입어 올해 1월 대형마트 ‘킴스클럽’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오프라인 입점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모범떡볶이는 오징어찌개, 고기찌개에 떡을 넣어 먹는 함경도식 떡볶이를 시초로 한 즉석떡볶이로 소비자에게 분식이 아닌 하나의 ‘식사’를 대접한다는 생각으로 매장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떡볶이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프랜차이즈 시스템이 도입되고 가맹점이 늘면서 더욱 대중화되고 있다. 특히 최근엔 높은 품질과 서비스로 소비자를 공략하며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편익을 제공하면서 높은 수준으로 성장한 대표 프랜차이즈 산업이 바로 떡볶이”라며 “가맹본부와 가맹점이 협심해 치열한 경쟁 속에서 꾸준한 노력으로 시장을 키워왔으며, 시장 과포화 우려 속에서도 대표 먹거리로 자리잡고 프리미엄화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채영 인턴기자 kim.chae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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