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백년가게들도 쓰러져…소상공 정책 ‘사후약방문’
상권 명물 노포들도 코로나 속 잇따라 영업 중단
예산 집행, 성과 관리에 편중 사후 관리엔 ‘찔끔’
김정재 의원 “전수조사·손실보상 지원 신속해야”
백년가게들이 쓰러지고 있다. 온갖 동란 속에서도 반세기 넘는 세월을 지탱해온 업력임에도 전염병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백년가게를 국정과제로 추진했던 정부도 우왕좌왕하며 힘이 되질 못하고 있다.
종로 설렁탕 맛집 ‘만수옥’이 3월에 문을 닫았다. 1969년 서울 안국동에 문을 열고 50년 넘게 맛을 이어왔는데 하루아침에 끊어졌다. 지난해 2월 대선 주자인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게다가 지난해 6월 국민 추천을 받아 정부의 소상공 육성 사업인 백년가게로 선정됐다.
하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영업 중지를 결정했다. 만수옥 안주인인 현희경(62)씨는 “코로나 때문에 폐업한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가게를 승계하려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나서는 인수자가 없어 결국 문을 닫게 됐다”고 말했다.
만수옥뿐만 아니다. 서울 명동에서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부터 3대를 이어온 냄비 찌개 맛집 ‘금강보글보글섞어찌개’도 문을 닫았다. 2019년 백년가게에 선정되면서 명동 상권의 명물로 꼽혔다. 하지만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로 방역을 강화하면서 지난해 11월 영업을 중단했다. 업주 김용권(53)씨는 “폐업이 아니라 휴업”이라고 말했지만 “재개 시점은 내년, 혹은 늦으면 2~3년 후로 예상되지만 코로나 상황 때문에 (그때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남 창원에 위치한 ‘봉래식당’은 55년의 업력을 자랑하지만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발발 후 6개월여 만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폐업을 결정해야 했다.
코로나 직격탄으로 매출이 급락한 데다 임대차 분쟁에까지 휘말린 백년가게도 있다. 서울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상징으로 꼽히는 ‘을지OB베어’는 임대계약을 놓고 건물주가 제기한 명도소송에서 패소해 가게를 비워줘야 하는 처지가 됐다.
업종·예산 늘려 수두룩 뽑았지만 코로나에 속수무책
백년가게는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이 업력이 30년 넘는 오랜 노하우를 가진 우수 소상공인을 발굴해 100년 이상 존속·성장하도록 지원·육성하는 사업이다. 사업에 선정된 가게엔 교육·금융 등을 정책적으로 지원한다. 업주가 자부심을 갖도록 현판식도 열고 유명 온라인 플랫폼 등에 홍보할 기회도 제공한다.
이 정책사업은 홍종학 중기부 장관이 재임하던 2018년 6월부터 백년가게를 선정하기 시작했다. 이후 박영선 장관 시절엔 음식·도소매 외에도 이미용·사진·양복 등으로 업종과 규모를 크게 확대하고 국민추천제를 도입해 사업 홍보를 강화했다. 이를 위해 백년가게 정책 예산도 대폭 늘렸다.
그럼에도 최근 문을 닫는 백년가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27일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소진공의 ‘백년가게 지정취소 현황’(2018년~2021년 9월)을 보면, 백년가게로 선정된 점포 중 지정취소된 곳은 총 5곳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영 악화, 승계인이 없어 대표자의 사망으로 인한 폐업 등이 주된 이유다.
성과 관리에 급급했던 중기부, 손실 보상엔 미적미적
중기부는 사업 첫 해인 2018년에 80곳을 백년가게로 선정한 이후 2019년 254곳, 지난해 71곳 등으로 늘려, 올해 8월 기준 총 1022곳에 백년가게 현판을 달아줬다. 지원예산도 2018년 약 6억원에서 시작해 올해는 약 10배 상향해 58억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예산 집행은 정부 성과 알리기에만 편중됐다. 중기부는 백년가게 예산 58억원 중에서 선정평가·현판제작에 8억5000만원, 컨설팅·시설지원에 38억원, 스토리보드 설치와 홍보에 10억원을 각각 산출했다. 하지만 사후 관리엔 고작 2억원에 그쳤다. 이는 당초 지출 계획 3억5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 줄어든 금액이다. 사후 관리 내용도 실태 조사나 관리시스템 구축뿐이다.
즉, 정책의 취지대로 100년 동안 지속할 수 있는 가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부분엔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정부의 장기간 방역 강화로 입은 매출 피해에 대해 “현실적인 손실 보상을 해달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유다.
선정된 백년가게엔 지역신용보증재단에서 보증비율 100%, 보증료율 0.8% 고정,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 금리 우대 0.4%포인트 인하 등의 금융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업주들은 “이런 형식적 지원으로는 현 위기를 극복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사업 지원을 받는 백년가게들 조차도 운영난을 호소하는 마당에 일반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은 길어져만 가는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에 “버티는 게 일상”이라며 한숨을 내쉰다.
이들의 피해 손실을 보상해주는 법이 지난 7월초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중기부는 손실 보상 산정방식과 금액, 지급 절차조차 여태껏 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중기부는 다음달 8일 손실보상 심의위원회를 열어 실행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지만 “빨라야 다음달 말부터 보상금 지급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만 답변하고 있다. 게다가 심의위원 15명 명단조차 지금까지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계청 조사 결과 지난 8월 기준 자영업자 수는 지난해보다 약 5000명 감소한 총 555만명으로 파악됐다.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약 11만2000명이 감소했다. 정부가 부랴부랴 지원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선 악화된 경영 상황을 회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지원이 부족하다고 토로한다.
특히 생계형 자영업자들은 “지난해부터 정부의 영업 제한, 원자재 가격 급등, 금리 인상, 대출 규제 등의 문제로 인내의 한계에 다다라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등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잇따르고 있다.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가 조사한 결과 극단적 선택을 내린 자영업자와 관련해 받은 제보가 22건에 이른다고 한다.
정부가 현장 상황에 귀 기울여 좀더 실질적인 소상공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김정재 의원은 “반세기 동안 지탱해온 노포, 백년가게들 조차도 코로나 사태로 인해 폐업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일선에 있는 소상공인의 휴·폐업 등 피해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에 대한 전수 조사와 충분한 손실보상금 지급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하늬 기자 kim.ho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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