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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정체성의 힘 [장근영 팝콘 심리학]

‘나’와 비슷한 상대와 갈등 깊어져…차별점 강조하려는 심리
고유의 정체성 만들기 위해 나와 닮은 상대 비방하기도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쌍둥이, 그것도 일란성 쌍둥이들은 유전자가 100% 같다. 당연히 외모는 거의 같고 기질이나 체질도 같다. 만약 그들 간에 차이가 있다면 유전자 때문일 리는 없으니 결국 환경의 탓이다. 같은 부모에게서 자라더라도 틈틈이 다른 곳에 가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경험을 할 수도 있지 않겠나.  
 
그렇다면 언제나 함께 지낼 수밖에 없는 쌍둥이라면 어떨까? 그들 사이에도 성격이나 성품의 차이가 있을까? 발달심리학자 해리스(J.R.Harris)는 저서 [개성의 탄생]에서 그런 극단적인 사례로 이란의 접착 쌍생아 랄레흐와 라단 자매를 제시한다. 이들은 예전에 ‘샴 쌍둥이’라 불리던, 머리는 둘이지만 몸의 일부가 붙은 채로 태어난 아주 희귀한 일란성 쌍둥이 중 한 쌍이었다.  
 
이들은 몸이 붙어있으니 어쩔 수 없이 삶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해야 했다. 요컨대 이들은 유전자만이 아니라 환경까지 100% 동일한 조건에서 27년을 성장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 둘은 누구보다도 서로 비슷해야 한다. 정말 그랬을까? 당사자의 입장은 정반대였다. 라단은 이렇게 인터뷰했다. “우리는 세계관도 다르고, 생활방식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완전히 다릅니다.”  
 
향후 진로 계획에 있어서도 둘은 달랐다. 랄레흐는 테헤란으로 가서 기자가 되고 싶어 했지만 라단은 고향에 남아 변호사가 되고 싶어 했다. 이들이 목숨을 건 분리수술에 참여한 건 생활의 불편이나 자신들을 이상하게 보는 주변의 시선 이전에, 자매와 분리된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인 것’과 ‘내가 아닌 것’

‘정체성’,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우리는 각자 자기가 남들과 어떻게 다른지, 그 다름이 얼마나 일관적으로 유지되어 왔는지를 통해서 그 답을 채워나간다. 그런데 이 정체성은 알면 알수록 오묘한 개념이다. 해리스는 위에 인용한 사례를 통해 정체성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로 서로 다르기 때문에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걸까, 아니면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서 서로 다르다고 느끼는 걸까?  
 
서로 무시하고 적대하는 극동의 세 나라 한국과 일본, 중국 사이에는 사실 차이점 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 서양인들은 이 세 나라 사람의 외모부터 구별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끔은 당사자들끼리도 그렇다. 중국 도시나 공항을 들를 때면 종종 현지인들이 스스럼없이 내게 중국어로 말을 걸곤 했다. 물론 그 기분은 결코 좋지 않았다. 도쿄에 처음 갔을 때, 외국이라기보다는 한국의 오래된 도시에 들어선 것 같은 친숙함을 느꼈다. 유럽인들의 눈에 한중일 사람들이 비슷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눈에 독일과 프랑스, 영국은 사람들의 외모나 문화나 풍경도 비슷하다. 그리스와 터키도, 인도와 파키스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모두 서로 막연하거나 심각한 적대감을 가진 나라들이다. 영국·독일·프랑스 국민들 간의 감정은 미묘한 수준이다. 그리스와 터키는 한국과 일본보다 더 심한 앙숙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적대 관계는 더욱 심각해서 장차 3차 세계대전은 여기서 시작될 것이라고 할 정도다. 이런 이웃끼리의 적대감은 과거사 때문일까? 물론 그들 사이에는 갈등이나 전쟁의 과거와 원한이 깔려있다. 하지만 심리학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감정들은 어쩌면 단지 너무나도 비슷하다는 사실에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일란성 접착 쌍생아였던 이란의 두 자매처럼.
 

‘정체성’에 대한 인간의 욕구

우리가 나를 정의하는 방법은 구별에서 시작된다.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는 아닌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나인 것과 내가 아닌 것, 그 둘 간의 차이에서 ‘나’라는 존재의 명확성이 만들어진다. 나와 남의 차이가 큰 경우에는 이 과정이 쉽다. 문제는 내 주변에 나와 너무 비슷한 존재들이 함께 있는 경우다. 그러면 없는 차이도 만들어내고, 있는 차이는 강조해야 한다. 차이를 강조하려면 실제로 내가 남과 달라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차별하고 배척하고 적대시하거나 혐오하는 것도 방법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나는 변하지 않고 남들에 대한 태도만을 바꾼다. 지역감정이 왜 하필 서로 이웃한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부각되는지, 왜 고만고만한 같은 반 청소년들끼리 왕따를 시키는지에 대한 대답도 여기에 있다.
 
올해 10월, 미국에서는 ‘페이스북 스캔들’이 터졌다.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페이스북의 내부고발자 프랜시스 하우겐(F.Haugen)은 페이스북이 사용자간의 차별·적대의식·혐오 그리고 이를 조장하는 가짜뉴스를 발견하고 차단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관했다고 고발했다. 이유는 사용자 트래픽이었다. 타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자극하는 가짜뉴스들, 극단주의적 태도가 담긴 메시지들에 노출될수록 이용자들이 더 열성적으로 페이스북에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정보를 미리 삭제할 수 있었음에도 그냥 내버려두거나 심지어 더 조장했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경영진은 알고리즘이라는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이용자들이 자기 생각을 더욱 극단적으로 만들고 자기와 다른 의견을 배척하거나 다른 집단을 혐오하게 될 수도 있고, 혹은 서로 다른 의견을 더 많이 접하면서 현실감각을 유지하고 중립적인 태도를 가지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회사의 이익이 더 많이 보장되는 전자를 선택했다. 그 결과 페이스북은 미국 내에서는 국회의사당 점거사태까지 이어진 어처구니없는 음모론의 토양을 만들었고, 미국 이외의 나라들에서도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플랫폼이 되었다.
 
페이스북이 이용한 것도 정체성에 대한 인간의 욕구였다. 사람들에게 나와 내가 아닌 것 사이의 모호한 경계선을 만들어주면 그들이 스스로 그 경계선을 뚜렷하게 만들기 위해서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을 것이며 그게 모두 돈으로 환산된다는 사실을 이용한 것이다. 페이스북 사례는 인간의 본성 중 하나를 잘 보여준 셈이다. 그것은 우리는 자기 고유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면 나와 큰 차이 없는 상대를 악마로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정체성의 무서운 힘이다.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험인간] [심리학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장근영 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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