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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나눔으로 ‘진짜 부’ 일군 장석보 집안 [김준태 조선의 부자들⑩]

‘노잣돈이 떨어지면 장씨 집에 가라’…나눔의 미덕 실천한 장석보
사익 좇다 망하기 십상…오늘날 부자들 뒤돌아봐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1910년 한일강제병합 직후, 전라북도 김제군(현 김제시) 금구면 서도리에 위치한 ‘금구신명학교(金溝新明學校)’가 폐교당했다. 반일(反日) 교육이 행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학교를 설립한 장태수(張泰秀, 1841~1910)는 일제의 회유를 거부하고 24일간의 단식 끝에 눈을 감는다. 그는 “내가 두 가지 죄를 지었다. 나라가 망하고 군주가 없는 데도 적을 토벌하여 원수를 갚지 못하였으니 불충을 범한 것이요, 이름이 적의 호적에 오르게 되었는데도 몸을 깨끗이 하지 못하고 선조를 욕되게 하였으니 불효를 저지른 것이다. 내가 이 같은 죄를 지었으니 진즉에 죽었어야 했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가문의 큰 어른이자 종증조부 장태수의 순절을 본 장현식(張鉉軾, 1896~1950)은 독립운동의 길에 나섰다. 그는 조선민족대동단의 운영 자금을 지원하였고, 젊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중앙고등보통학교(현 중앙고등학교)의 재정 50%를 책임졌다. 1000석 규모의 농장을 학교에 기부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각종 교육 사업에 많은 돈을 희사하였으며, 조선어학회의 [조선어사전] 편찬사업을 지원하다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장석보 네 아들의 재산 증식 비결…‘선택과 집중’, ‘신뢰’  

장태수와 장현식, 김제의 부자 장석보(張石輔, 1783~1844)의 자손이다. 장태수는 장석보의 손자이고, 종손인 장현식은 5대손이다. 각각 순국지사이자 독립운동가로서 건국훈장 독립장,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두 사람은 모두 교육 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학교를 세우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경주 최 부잣집처럼 튼튼한 재정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장태수와 장현식이 교육 사업을 벌일 수 있었던 데엔 장석보와 네 아들이 쌓은 부가 토대가 됐다.
 
인동 장씨 금구파인 장석보 일가는 연산군의 폭정에 환멸을 느낀 장기건이 김제 금구면에 낙향하면서 대대로 터전을 잡고 살아왔다. 그러다 장석보 대에 이르러 번성하게 된다. 그는 넉넉한 인품과 부지런함으로 재산을 일궜다.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고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했다. 양반이건 봇짐장수건 차별하지 않아서 ‘노잣돈이 떨어지면 장씨 집에 가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장석보의 네 아들 장한방, 장한진, 장한규, 장한두는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잘 이어받았고 덕분에 장석보 가문은 두터운 인망을 쌓을 수 있었다. 훗날의 이야기지만, 양반이자 큰 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동학농민혁명 때 농민군으로부터, 6·25한국전쟁 때 공산군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장석보 이래 축적해 온 신뢰 자본 덕분이었다.
 
그런데 장석보가 재산을 모으긴 했지만, 그가 죽고 아들 사형제가 상속받았을 때만 해도 큰 부자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었다. 토지가 많았다지만 네 명이 나눠 가지면서 개별로 본다면 중농(中農) 수준에 불과했다. 자, 그렇다면 이들 사형제는 어떻게 재산을 불린 것일까? 사형제는 매년 돌아가며 한 사람의 논밭을 경작하는 데 힘을 모았다. 올해 맏이네 집에서 농사를 지었다면 내년은 둘째, 그다음은 셋째, 또 그다음은 넷째가 하는 식이다. 4년마다 로테이션을 돈 것이다. 무릇 한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에는 한정이 있다. 한데 농사를 지으려면 자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어차피 품삯을 주고 노동력을 사야 하는 상황이었던 만큼, 대신 가족 구성원들의 힘을 모아 ‘선택과 집중’에 나선 것이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인적·물적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여함으로써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해도, 나 혼자 내 논밭을 경작하는 것에 비해 수입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4에서 4를 생산하다가, 1에서 4를 생산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외부인에게 인건비를 지급할 필요가 없으므로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부의 유출을 막을 수 있었다.  
 
혼자 농사를 지을 때보다 여력이 있으므로 품질 향상에도 신경 쓸 수 있다. 삶에도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그뿐만이 아니다. 3년간 쉬는 휴경지는 풋거름 작물을 심는 등 지력을 보존하여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관리하기 쉬운 작물을 심어서 부수입을 올릴 수도 있었다. 로테이션을 통한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사형제의 재산은 점점 불어났다.
 
물론 이 같은 방식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 내가 다른 형제의 농사에 최선을 다한 만큼, 다른 형제들도 내 농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줄 거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누가 혼자서 욕심을 부리거나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거라 서로를 신뢰해야 한다. 함께 농사를 지어야 하는 논밭에는 대충 임하면서 자기 논밭만 신경 쓰고, 따로 돈 벌 궁리만 한다면 이들 형제의 ‘선택과 집중’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타인을 고용했을 때보다도 훨씬 못한 결과가 나오고 만다. 따라서 장석보의 아내이자 사형제의 어머니 홍씨 부인은 형제간의 이견을 조율해주며 서로 믿고 의지하도록 엄히 가르쳤고, 이후에도 그 역할을 종부들이 맡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초과 이익은 어려운 집에…시대 앞선 ‘부의 재분배’  

그러나 이 같은 조치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족의 숫자가 적고 형제의 형편이 비슷할 때는 괜찮다. 손자 세대, 증손자 세대로 내려가면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가구 수도 많아진다. 살림살이도 집집이 차이가 벌어진다. 자연스레 갈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고, 서로를 무조건 믿는다는 것도 어려워진다. 이에 장석보 가문은 ‘의장(義庄)’을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의장이란 문중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전답이다. 주로 문중의 제사 비용을 충당하는 데 쓰인다.  
 
그런데 쌀 40석에서 시작한 의장이 점점 불어나 200석이 되고 급기야 1000석 규모에 도달하자, 장씨 가문은 이를 ‘부의 재분배’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매년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문중 제사를 주관하는 유사(有司)로 선발하고, 의장에서 발생하는 초과 이익을 갖도록 한 것이다. 요즘 방식으로 말하면 재단의 자산은 일정액으로 고정해두고, 자산을 통해 얻은 사업 소득 및 이자를 유사에게 몰아준 셈이다. 덕분에 장석보의 후손 30여 가구는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을 보유하게 되었고 문중의 단합 또한 유지될 수 있었다.
 
요컨대 장석보 가문은 구성원의 힘을 결집함으로써 부를 일궜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로테이션을 통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쳤고, ‘의장’을 통해 부를 재분배함으로써 일가를 화합했다. 장태수와 장현식의 교육 사업에 문중이 합심해 자금을 각출한 것도 이 같은 노력의 결과이다. 한 대만 내려가도 기업이 찢어지고, 서로 더 많은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다가 오히려 재산이 줄어드는 오늘날의 부자들에게 교훈이 될 것이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김준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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