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역대급 종부세 대상? ...억울해진 다주택자 사연도 '각양각색'
불합리한 세금 구조·부담…조세저항 부를 수도
생계형 임대사업자나 지방·시골지역 상속 주택에 종부세 부담
“퇴직 후 노후를 위해 대출을 받아 원룸 건물을 매입했는데, 졸지에 세금 폭탄을 맞게 됐다. 당장 내야 하는 세금도 문제지만 이 마저 마저 팔면 노후 생계는 또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다.”
서울 아파트를 보유한 직장인 김 모씨. 몇 년 전 은퇴 후 노후 생계를 위해 대출을 받아 사놓은 지방 원룸 건물 때문에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 날라온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고지서 때문이다. 그는 투기가 아닌 생계 목적으로 임대사업을 시작했는데 정부에서 투기꾼으로 낙인찍어 ‘종부세 폭탄’을 부과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국세청이 올해분 종부세 고지서 발송을 시작하자 곳곳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남 등 알짜 지역 고가의 다주택 보유자뿐 아니라 지방의 주택 보유자, 생계형 임대사업자, 시골 주택 상속자 등 투기와는 거리가 먼 이들이 갑자기 종부세 폭탄을 맞게 되면서 조세 부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선 다세대·다가구 빌라, 원룸 건물 등 생계형 임대업자 중에 종부세 폭탄을 맞은 이들이 늘어난 것은 정부가 지난해 7·10대책에서 등록 임대사업자 제도를 폐지하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8월부터 의무임대 기간이 5년 이하인 원룸, 빌라 등 비(非)아파트와 모든 아파트에 대한 임대사업자 신규 등록이 금지됐고, 기존 임대주택은 잔여 의무임대 기간이 지나면 강제 말소됐다. 여기에 강제 말소된 뒤 바로 다주택자가 되면서 집을 매각할 때까지 별도의 유예기간을 못 갖고, 올해 종부세 폭탄을 맞게 된 것이다.
정부는 과거 전·월세 공급을 늘리기 위해 임대주택 등록을 장려했다. 그 혜택 중 하나로 2018년 9월 13일 이전에 취득하고 등록한 임대주택은 종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 임대료를 5% 이상 올리지 못하는 등 공적 의무를 지켜야 하는 임대사업자에 대한 일종의 세제 혜택이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임대사업자를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내몰면서 관련 제도를 전격 폐지했다.
집을 상속받으면서 갑자기 다주택자가 된 이들도 종부세 부과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서울에 사는 유 모 씨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형제가 지분을 나눠 상속받았는데, 그 집이 주택으로 간주해 지금 거주하는 집과 함께 2주택자로 종부세 부과 대상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에 살면서 시골 농가주택이나 지방 주택을 상속받은 이들도 종부세 부담에 골머리다. 상경한 지 오래된 박 모 씨는 “지방의 종택 같은 경우 팔지도 못한다"며 "장손이나 장남 앞으로 상속되는데, 이들이 서울에 집을 갖고 있으면 종부세 폭탄을 맞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요즘은 자식들이 상속받을 때 농가주택을 서로 안 받으려고 미룬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올해부터 종부세가 1가구 1주택자는 11억원 초과분에 대해 과세하고 다주택자는 공시가격 합산액 6억원 초과분에 대해 과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의 공시가 9억 원 주택을 가진 1주택자는 종부세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지방의 공시가 3억 원짜리 집 세 채를 가진 다주택자는 약 300만 원의 종부세를 내야 한다는 얘기다.
서울 한 채보다 싼 지방 다주택자들은 징벌적 세금을 물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종부세의 지방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물론 지방에 살면서 서울 등 수도권의 비싼 집을 사들인 다주택자들의 세금 부담이 급증한 영향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사례들처럼 모든 다주택자가 투기세력일 수는 없고, 형평성에 맞지 않는 세금 부과는 자칫 종부세 부과의 원 목적에 어긋날 수 있다. 종부세법 1조는 '고액의 부동산 보유자에 대해 세금을 부과해 조세 부담 형평성을 제고하고 부동산 가격 안정을 도모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세금 구조가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교수)은 “15억짜리 두 채 가진 사람이나 30억짜리 한 채 가진 사람이나 사실 똑같은데, 15억짜리 두 채를 가진 사람에게 종부세 폭탄이 떨어진다”며 “이러한 불합리한 현실들을 하루빨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부동산에 대한 자산뿐만 아니라 일반 금융자산에도 종합과세가 이뤄져야 하는데, 부동산만 유일하게 세금을 실제로 강탈하게 되면 국민의 조세 부담이 가중되고 조세 저항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승훈 기자 lee.seung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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