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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갈 뻔했던 반도체 공장, 요즈마가 용인으로 끌고 왔죠”

[인터뷰] 이동준 요즈마그룹코리아 국내부문 대표
이스라엘 의료기기업체 나녹스, 21년 용인공장 준공
“한국 중견·대기업 생산능력, 스타트업 성장에 최적”

 
 
이동준 요즈마그룹코리아 국내부문 대표는 ″사업화를 지원해 투자한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요즈마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사진 김현동 기자]
 
2021년 10월 이스라엘 의료기기 스타트업 ‘나녹스(Nanox)’가 경기도 용인시에서 반도체 공장 준공을 앞두고 공개기념식을 열었다. 차세대 엑스레이기기에 들어갈 전용 반도체를 만드는 시설이다. 나녹스가 이 공장에 들인 돈만 4000만 달러(약 475억원)다. 2020년 8월 미국 나스닥에 입성해 탄탄한 자금력을 갖춘 회사 입장에서도 제법 큰 투자규모였다.  
 
이 공장의 원래 행선지는 일본이었다. 나녹스의 원천기술을 일본기업 소니로부터 받았고, 기기에 들어갈 다른 부품도 일본 업체가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장의 국적을 바꾼 건 이스라엘 벤처캐피탈(VC) 요즈마그룹이었다. 아시아사업을 총괄하는 요즈마그룹코리아에서 나녹스에 한국행을 권했다. 한국법인이 SK텔레콤과 함께 나녹스에 투자한 인연이 있었고,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란 점도 내세웠다. 당시 한국법인 측은 “SK하이닉스 같은 대형 파트너사가 있다는 점부터 한국과 이스라엘의 비슷한 과거사까지 어필해 공장을 용인에 지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 크려면 제조 인프라도 필요…한국이 적격

란 폴리아킨 나녹스 회장이 2021년 10월 14일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나녹스용인 FAB 공개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전민규 기자]
 
요즈마그룹은 무엇보다 일본보다 한국에 공장을 짓는 게 나녹스가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이스라엘엔 연구실 기업이 많지만, 사업을 키울 만한 생산 기반이 많지 않다. 한국의 탄탄한 제조기업들이 이 약점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요즈마그룹은 그런 판단력을 갖춘 회사다. 1993년 설립 이후 20여개의 기업을 입성 과정이 가시밭길 같은 나스닥에 들여보냈다. 글로벌 투자업계에선 ‘나스닥 상장 전문 VC’로 꼽힌다.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요즈마그룹코리아의 새 수장으로 취임한 이동준 국내부문 대표를 만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 출신의 VC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발전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가늠하고 있는지 묻기 위해서다.  
 
요즈마는 글로벌 VC지만 낯설어하는 독자도 있다. 회사소개를 요약해 달라.
요즈마그룹은 1993년 이스라엘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만든 펀드가 시작이었다. 정부가 40%, 민간이 60%를 투자해 이스라엘 스타트업을 지원했다. 설립 후 15년간 수백 개 기업에 투자했다. 이후 1998년 민영화했고, 2015년엔 한국에 첫 해외법인을 세웠다.
 
왜 한국에 처음으로 법인을 세웠나.
이원재 법인장(현 해외부문 대표)의 역할이 컸다. 현지 히브리대 경제학과를 나와서 이스라엘 총리 아시아경제자문관 등을 지냈다. 그때 만났던 이갈 에를리히 요즈마그룹 회장과 마음이 맞았던 것 같다. 이원재 법인장이 회장에게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가능성을 잘 어필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당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풍부하지 않았다. 어떤 가능성을 어필했던 건가.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당시 한국에선 기술기업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2011년 나왔던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 ‘김기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스라엘 스타트업에서 만든 ‘웨이즈’와 성능이 거의 같았다. 그런데 웨이즈는 구글에 9억6600만 달러(1조1461억원)에, 김기사는 카카오에 650억원에 팔렸다. 해외 네트워크가 있는 벤처캐피탈이 있었다면 김기사도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을 거다. 요즈마의 한국법인이 지금 하는 역할이 이런 거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탄탄하면 이점이 확실히 많겠다. 이스라엘의 나녹스가 한국에 제조시설을 세운 것처럼 말이다.  
요즈마가 해외 매각·상장 전문 VC가 된 이유가 있다. 스타트업이 크려면 배후에 부품 공급업체·조립업체도 있어야 하는데, 이스라엘엔 기술기업이 개발한 상품을 만들어줄 제조 인프라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됐다.  
 
이스라엘 기업을 한국에 연결하는 건 나녹스가 첫 사례인가.
2019년에도 있었다. 이스라엘의 기초과학연구소인 ‘와이즈만연구소’와 한국 바이오기업 ‘바이오리더스’ 간 합작법인을 만들도록 주선했다. 합작법인에선 와이즈만연구소가 가진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항암치료제를 개발한다. 현재 임상시험 진입 단계에 있다. 
 

2022년 한-이스라엘 기술이전센터 개소 예정

한국 VC는 스타트업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손을 떼는 경우가 많은데, 요즈마는 경영에 제법 관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 벤처캐피탈은 비교적 작은 규모의 투자를 진행해놓고, 전략 컨설턴트를 고용해서 기업에 파견 보내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선 이런 방식을 반기지 않는다. 자칫 경영 개입처럼 보일 수 있어서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해당 기업에 경영에 왈가왈부하겠다는 게 아니다. 다만 기업과 함께 성장할 방안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사업화 지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업화 지원? 낯선 개념이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
해외 네트워크와 연결하는 게 핵심이다. 나녹스처럼 해외(한국) 생산시설과 연결할 수 있고, 바이오리더스처럼 해외 원천기술을 이전받는 형태일 수도 있다. 이렇게 촘촘하게 연결할 때 기업 가치도 높아질 수 있다. 다른 국내 벤처캐피탈은 추구하기 어려운 요즈마그룹코리아만의 강점이다.
 
사업화까지 돕자면 필요한 인력이 더 많겠다.
한국법인에서 32명이 일하고 있다. 2022년 1월이면 누적 운용규모가 4000억원이 되는데, 비슷한 규모의 다른 VC보다 두 배가량 인원이 많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으냐’고 업계에선 놀라더라. 재무 검토나 투자 관련한 지원 인력 말고도 사업 개발하고 컨설팅해주는 인력이 있어서 그렇다.  
 
중견기업연합회와도 협력한다고 했다.
2021년 4월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중견기업 성장펀드(‘요즈마-ATU Game Changer 1호’)를 만들었다. 연 매출 5000억~1조원 사이인 중견기업들은 투자 수익보다도 새로운 성장 동력에 관심이 많다. 그걸 초기 기술기업에서 찾으려고 한다. 이런 전략적인 목적에서 출자한 기업이 많다. 2022년 초엔 아예 한국-이스라엘 기술이전센터를 만들어서 대응하려고 한다.
 
기술이전센터는 어떤 역할을 맡게 되나.
한국 중견기업이 신사업이나 새 기술을 찾을 때 이스라엘 스타트업을 소개하는 취지다. 한국 중견기업은 2세 오너가 회사를 물려받을 때 해외 기술기업에 관심을 특히 많이 가진다. 새로운 사업으로 본인의 경영 능력을 증명해야 하니 더 그렇다. 몸집이 작은 이스라엘 스타트업은 투자가 절실한 상황이다.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양쪽을 연결해보자는 거다.  
 
VC치고 벌이는 일이 많다. 본연의 업무인 투자 실적은 어땠나.
우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투자한 기업의 가치를 더 끌어올리자는 거다. 누적 운용규모 약 4000억원에서 절반을 2021년 한 해 동안 투자하는 데 썼다. 그만큼 투자 규모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또 투자한 곳 중 2022년에만 4곳을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려고 한다.
 

“투자기업 네 곳 2022년 나스닥 상장 기대”

나스닥 입성을 꿈꾸는 한국 스타트업도 많다.  
나스닥 입성을 돕는 건 우리가 잘하는 일이지만, 꼭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요즈마는비즈니스 모델이 글로벌하게 커질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해왔다. 차세대 엑스레이기기를 만드는 나녹스만 해도 어느 나라에서나 잘 팔릴 게 뻔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뉴욕증시 입성을 노렸던 거다. 상장이 중요하다기보단 상장을 통해서 어떤 비즈니스를 펼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한 이슈다.  
 
국내 기업 가운데 가능성 있는 곳이 있다면.
우리가 투자한 기업 중에선 두나무가 눈에 띈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곤 있지만, 사업성 자체가 글로벌하게 주목받을 만하다.  
 
상장을 앞둔 4곳 중 배터리기업도 있다고 들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스토어닷(Store Dot)이다.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5분 안에 완전히 충전되는 배터리다. 현재는 아무리 빨라도 1시간 가까이 걸린다. 지난 9월엔 테슬라가 쓰는 4680 원통형 셀을 10분 만에 완충하는 시제품을 발표했다. 요즈마는 물론 영국 BP와 독일 다임러, 일본 TDK 등이 투자했다. 한국 배터리 제조사에서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이제 막 생태계에 발을 디딘 초기 스타트업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한다고 들었다.  
소니스트가 좋은 예다. 호흡기질환 재활운동을 돕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있다. 2019년 경북테크노파크 중소벤처기업 성장촉진프로그램을 통해서 보육한 기업이다. 지금은 프랑스 금연치료 기업인 ‘크윗(Kwit)’과 연결해 글로벌 진출을 돕고 있다. 2015년 처음 법인을 만들었을 때도 경기도 판교에 창업보육기관인 요즈마 캠퍼스를 가장 먼저 만들었다.
 
상장 직전인 기업부터 초기 스타트업에까지 모두 투자한다.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고 싶다. 실제로 1억원 미만인 시드 투자부터 상장 전 투자(프리IPO), 그리고 메자닌(상장사 채권 투자)까지 집행해왔다. 투자받는 기업 입장에서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후속 투자까지 꾸준히 지원받을 수 있는 셈이다. 사업화 지원을 한다는 점과 함께 한국법인을 소개할 때 빼놓지 않고 강조하는 점이다.
 
모든 단계의 투자를 다 하려면 고충은 없나.
단계마다 기업을 바라보는 인사이트가 다르다. 초기 스타트업을 심사하는 자리에 액셀러레이터 팀이 아니라 벤처투자 팀을 들여보내 봤는데, 대부분 반려하더라. 한 회사로 다 같이 가면 인력 구성이나 사업 전략이 분산되는 상황이 올 것 같다. 그래서 2022년에는 각 사업 부문을 계열사로 나누려고 한다. 여러 단계의 투자를 해봤고 운용규모도 충분히 키웠기 때문에 나눌 때가 됐다고 본다.
 
이동준 요즈마그룹코리아 국내부문 대표는 ″2022년엔 메타버스와 ESG 관련 기업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벤처투자에도 싸움의 기술 필요해”

변화를 앞둔 시점이 2021년 11월 대표가 됐다.  
국내부문을 맡았다. 2019년 최고전략부시장(CSO)로 합류했을 때부터 투자와 사업개발을 담당해 왔다.  
 
이전까진 스타트업 생태계와 큰 인연이 없었다.  
졸업한 뒤 대기업 전략팀에 있었다. 전략적인 목적으로 기업에 투자하거나 인수·합병하는 일을 했다. 그 뒤에는 다수의 중소기업에서 전문경영인을 했었다. 그때 대기업에서 지닌 경영 관리 기법이나 전략을 이식했다면 더 큰 성과를 냈을 텐데 하고 안타까웠던 적이 많았다.
 
기억에 남는 기업이 있나.
협력업체 중에 하나가 워크아웃(기업 채권단이 합의해 금융부채를 조정한 뒤 기업을 정상화하는 제도) 상태였다. 그런데 채권단에 있는 시중은행 한 곳이 추가 대출을 다 막았다. 쉽게 말하면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일단 자기 빚부터 갚으라는 거다.
 
그러면 방법이 있나.
그때는 대환(기존 대출을 다른 대출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번엔 담당 회계법인에서 안 된다고 하더라. 알고 보니 문턱이 높은 1금융권에서만 대환해줄 곳을 찾고 있더라. 결국 상호금융기관을 찾아가 해결했다. 상대적으로 여신심사 기준이 유연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기업에서 일반적으론 상호금융권을 찾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일종의 싸움의 기술인 거다.
 
사업화 지원까지 도맡는 요즈마에서도 그런 싸움의 기술이 유용했을 것 같다.
성공할 것 같은 스타트업에 미리 돈을 대는 게 역할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길과 기술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가령 최고재무책임자(CFO)가 필요해 보였는데도 담당 임원이 없던 스타트업이 있었는데, ‘CFO를 영입하는 게 우리의 투자조건’이라고 제안한 적도 있었다.  
 
최근 주목하는 투자처가 있나.
메타버스와 ESG(환경·사회·거버넌스)를 지켜보고 있다. 당장 어떤 기업을 눈여겨보고 있다 말하긴 빠른 것 같다. 다만 수익성 외에도 우리의 정체성에 맞는 투자를 하려고 한다. 한국과 이스라엘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가 투자했을 때 가치를 키워줄 수 있는 기업을 찾으려고 한다.
 
이스라엘과 한국의 협업으로 순항 중인 나녹스 같은 기업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이미 진행하고 있다. 스토어닷이 그중 하나다. 생산을 한국에서 하려고 한다. 지금 양극재·음극재 등 배터리 부품을 만드는 업체를 찾고 있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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