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증시 떠받친 반도체인데…“정점 지났다” 시장 흔드는 피크아웃 논란
- [반도체 피크아웃, 시험대 올랐다]①
모건스탠리·국내 증권사 잇단 눈높이 조정
‘AI 버블’ vs ‘성장 둔화’ 해석 엇갈려
[이코노미스트 이용우 기자] 국내 증시 상승을 이끌었던 반도체주가 ‘피크아웃’(정점 통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인공지능(AI) 투자 확대를 기반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증시를 견인해 왔지만, 최근 들어 실적 성장세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투자심리가 빠르게 흔들리는 모습이다. 반면 시장에서는 업황 자체가 꺾인 것이 아니라 성장 속도가 둔화되는 국면일 뿐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반도체 업황을 둘러싼 해석은 당분간 엇갈릴 전망이다.
“AI는 아직 5살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7월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나스닥 시장에서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 거래 개시를 기념하는 오프닝벨 행사 이후 한국 기자들과 만나 AI 산업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 “AI는 아직 5살입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시장에서 제기되는 AI 거품론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그는 “AI 시대에는 메모리 칩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며 “주식시장에는 항상 과열이나 냉각 같은 오버슈팅이 존재한다. 이를 AI 거품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이는 시장의 현상일 뿐이며 AI 기술 자체는 아직 미성숙하고 불완전하지만 진짜”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의 발언은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확산되고 있는 반도체 고점론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거품 논란이 일부 제기되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AI 산업의 구조적 성장세는 유효하며, 반도체 수요 역시 장기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다.
하지만 시장의 시선은 점차 반도체 업황의 정점 통과 여부에 쏠리는 분위기다. 국내 증시에서도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방향은 코스피 전체 흐름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평가된다.
실제 최근 들어 글로벌 투자은행(IB)과 국내 증권사들은 메모리 반도체 업황에 대해 잇따라 신중한 시각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모건스탠리다. 글로벌 경기와 업황 전환기에 비교적 선제적인 전망을 제시해 온 모건스탠리는 최근 메모리 반도체 업종에 대한 경계론을 제기했다. 반도체 중심으로 이어졌던 ‘좁은 상승장’(narrow rally)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반도체 비중을 줄이고 미국 빅테크 하이퍼스케일러 기업으로 자금을 옮길 것을 권고했다.
모건스탠리가 제시한 핵심 근거는 실적 추정치 상향 흐름의 둔화다. 지금까지 반도체 주가 상승을 이끌었던 것은 지속적인 실적 전망 상향이었지만 앞으로는 이익 증가 속도가 둔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주가 역시 고점 신호를 보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증권사들도 비슷한 시각을 일부 내놓고 있다. BNK투자증권은 이달 SK하이닉스에 대해 투자의견 ‘보유’(HOLD)를 유지하면서 목표주가 185만원을 제시했다. AI 인프라 투자를 이끌어온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설비투자(CAPEX)가 시장 기대만큼 확대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주요 변수로 꼽았다.
키움증권도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기존 43만원에서 39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키움증권은 “하반기에는 주당순이익(EPS) 성장률이 둔화하는 가운데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와 기업용 SSD(eSSD) 시장점유율 확대 기대, 중국 메모리 업체들의 추격이라는 상반된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주가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메모리 장기 전망치를 일부 조정하면서 목표주가를 낮췄다고 설명했다.
실적 둔화는 맞지만…“반도체 사이클은 계속”
다만 반도체 실적 장세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주가 변동성을 고점 신호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 역시 시장에서 여전하다. 모건스탠리도 AI 밸류체인의 상승 사이클이 완전히 끝났다고 보지는 않았다. AI 관련 투자와 수요 자체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단기적으로는 메모리 반도체보다 빅테크 하이퍼스케일러 기업의 투자 매력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나증권은 현재의 반도체 주가 하락을 약세장의 시작이 아니라 상승 이후 나타나는 정상적인 재가격화 과정으로 평가했다. 김두언 하나증권 연구원은 “1차 상승 이후 가격과 수급이 균형을 다시 찾는 과정”이라며 “반도체 이익의 방향은 아직 꺾이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업황 역시 성장의 끝이 아니라 성장률의 정점을 지나가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 전망을 보면 올해가 반도체 산업 성장률의 정점이 될 가능성은 있지만, 매출과 수요의 절대 규모가 정점을 찍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내년에는 성장률이 다소 낮아질 수 있지만 AI 서버와 고성능 메모리 수요 확대가 이어지면서 시장 규모 자체는 계속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시장의 핵심 쟁점은 반도체의 ‘성장 둔화’를 ‘업황 종료’로 볼 것인지 여부로 풀이된다. 다만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증가세가 올해 상반기까지 나타난 것과 비교해 가파르지 않을 수는 있지만, AI 확산이라는 성장 동력이 여전히 유효한 만큼 이번 조정을 장기 침체의 신호로 해석하기에는 이르다는 주장도 지속해서 제기될 전망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최근 삼성전자 주가 조정은 메타의 데이터센터 임대 계획을 둘러싼 AI 투자 지속성에 대한 우려가 부각된 가운데 삼성전자 2분기 실적에 대한 고점 논란까지 맞물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어 “메타의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AI 산업에서 컴퓨팅 자원이 충분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며 “2027년이 70년 반도체 역사상 가장 공급이 타이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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