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韓 경제 타격 불가피
국제유가 급등에 물가 상승 압박…사실상 휘발유 2000원 시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대응으로 고강도 경제 제재를 이어가고 있는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제재에 나선다. 미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로 배럴당 120달러까지 치솟은 국제유가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따라 L당 1900원까지 오른 국내 휘발유 평균 가격 역시 L당 2000원을 향해 질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9일 산업계 등에 따르면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3.60% 오른 배럴당 123.7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종가 기준으로 2008년 8월 이후 최고치인데, 이번 미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로 향후 국제유가는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전날 보고서에서 국제유가 전망과 관련해 “아직 유럽의 에너지 제재까지 시장 가격에 반영되지는 않아 추가적인 유가 상승이 가능하다”며 “유가 안정화가 이뤄지려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종전과 유가 수요 감소가 선행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에너지 전문가들 사이에선 러시아의 석유 수출이 본격 차단되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는 물론 2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서면 이른바 ‘오일 쇼크’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로 한국 경제 성장률이 꺾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제유가뿐만 아니라 다른 원자재 가격 역시 고공 행진 중이다. 최근 들어 가격 상승폭이 큰 대표적인 원자재로는 니켈이 꼽힌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니켈 현물 가격은 t당 4만299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연초와 비교하면 107.40% 급등한 수치다. 니켈 가격은 8일(현지시간) 장중 한때 t당 10만 달러까지 치솟으면서 거래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2007년 5월 16일(t당 5만4200달러)보다 5만 달러 이상 높은 가격까지 급등했다가 상승 폭이 다소 진정된 셈이다. 니켈은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 중 하나다.
‘유가에 원자재까지’…소비자물가 상승률 4% 넘나
전기차 핵심 원료인 니켈, 코발트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은 제조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의 원가 부담을 가중시킨다. 원가 상승에 따른 상품 가격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원자재 가격과 상품 가격 등의 상승으로 물가 상승 압박이 커지면서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대까지 오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지난 2월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7%로 집계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대까지 치솟으면 2011년 12월(4.2%) 이후 처음으로 4%대를 기록하는 것이다.
실제 국내 기름 가격은 L당 2000원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L당 1887.62원을 기록 중이다. 서울을 비롯해 대전, 부산, 제주 등에선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이 L당 1900원을 넘어선 상태다. 정부의 유류세 20% 인하 조치 효과를 제하면 이미 L당 2000원을 돌파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 여파가 국내 기름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도 않은 상황이라는 점이다. 통상 국제유가 등락은 2~3주 시차를 두고 국내 석유 제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향후 국내 기름 가격이 L당 2000원을 넘어선 이후에도 지속 상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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