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락하는 미국 증시 거품 더 빠져야 [이종우 증시 맥짚기]
미국 금리인상과 양적 긴축이 美 주택시장에 악영향
자산가격 하락과 소비 감소로 경기둔화 가능성 커
국내외 여러 자산에서 거품이 빠지고 있다. 가상화폐의 반응이 가장 강하다. 지난해 11월 9일 6만7734달러로 사상 최고 가격을 기록했던 비트코인 가격이 지난 5월 11일 2만8402달러까지 떨어졌다. 고점 대비 58% 하락한 건데, 지금도 3만달러를 중심으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가격 하락으로 가상화폐 시장의 시가총액이 많이 줄었다. 2조 9700억 달러였던 전세계 가상화폐 시가총액이 최근에 1조 3720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약 1조6000억 달러가 줄어든 건데 감소율이 50%를 넘는다.
가상화폐 가격하락은 거품 축소에 스테이블 코인의 안정성 문제가 겹쳐 심화됐다. 스테이블 코인은 법정화폐에 연동되어 있어 가격 변동이 거의 없고 안전하다는 장담과 달리 루나 가격이 119달러에서 0.01~0.02센트로 하락했다. 가치가 거의 없어진 것이다. 그 영향으로 다른 스테이블 코인 가격도 빠르게 하락했다. 가상화폐 시장 전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거품 붕괴 리스크가 커진 것이다. 10여년 넘게 가상화폐는 많은 회의적인 시각을 극복하면서 발전해왔다. 이번에도 극심한 상황 악화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이 3만달러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생명력을 감안하면 대표 가상화폐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거로 보인다.
문제는 신뢰이다. 시장이 유지되더라도 가상화폐의 신뢰도 하락을 피할 수 없다. 지난해 기관투자자가 가상화폐를 포트폴리오에 편입한 덕분에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이번 하락으로 기관이 지난해 올렸던 수익의 대부분을 까먹었다. 루나 사태를 계기로 기관투자자가 가상화폐를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졌기 때문에 앞으로 가상화폐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있을 거로 보인다. 크게 형성됐던 거품이 빠지는 건 물론 신뢰도가 낮은 코인은 시장에서 사라지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부동산도 거품 축소 과정에 들어갈 듯
두 번째 거품 축소는 주식에서 발생했다. 미국 나스닥 지수가 고점에서 30% 넘게 하락했다. 미국 시장을 이끌던 빅테크 기업의 주가도 크게 떨어져, 테슬라가 6개월 사이에 절반이 됐다. 지난 10년 사이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를 제외하고 미국시장이 이번만큼 하락한 적이 없다. 2014년에 금리인상을 시작했지만 속도가 느리고, 폭도 크지 않았던 덕분이다. 지금은 반대로 금융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 주가 하락이 이해된다.
2011년 이후 9년 중 6년 이상을 코스피는 박스권에 머물러 있었다. 기간 동안 미국시장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우리 시장은 상승분이 크지 않아 추가적으로 거품이 줄어들 여지가 없지만, 미국시장은 사정이 다르다. 해당 기간 지속적으로 상승해 주가가 높아졌기 때문에 거품 축소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더 큰 문제는 부동산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부동산 시장이 크게 오른 후 별다른 조정을 받지 않았다. 가격이 여전히 고점 부근에 머물고 있는데, 본격적인 하락이 시작될 경우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부동산과 주식은 동일한 요인에 의해 움직인다. 경기가 좋으면 상승하고, 금리 상승으로 비용이 증가하면 하락한다. 이미 주식을 비롯해 많은 투자자산의 가격이 떨어졌는데, 부동산만 예외일 수는 없다.
2020년 3월 이후 연준이 금리인하를 강하게 추진한 덕분에 미국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부담이 줄었다. 미국의 은행들은 가계가 매년 갚아야 할 대출 원리금에 보험료와 세금을 더한 주택담보대출 비용이 연 소득의 28%를 넘지 않을 걸 요구하고 있다. 주택 대출 자금의 안정성이 높이기 위해서다. 금융완화정책은 주택가격 상승에 크게 기여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금리인하로 집을 살 여력이 향상됐기 때문이다. 이 수요 덕분에 1월에 미국 주택 거래 건수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인 649만건까지 늘었다. 집값도 지난해 3분기 상승률이 21%를 기록했고, 1분기에도 16%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최근 미국 주택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거래와 심리지표가 둔화돼 조만간 가격 조정이 시작될 가능성이 커졌다. 5월에 전미주택건설업협회(NAHB) 주택시장지수가 69로 떨어졌다. 전월 77에서 크게 후퇴한 건데 5개월 연속 하락이다. 여전히 기준치 50위에 있지만, 방향이 밑으로 잡힌 상태여서 조만간 기준점을 하향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주택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첫 번째 원인은 긴축일 것이다. 연속 3번 0.5%포인트씩 금리를 올리고, 채권 보유 규모를 줄이는 양적 긴축을 시행해 주택시장에 타격을 줬다. 연준이 6월부터 주택담보부채권(MBS) 보유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그 영향으로 수개월 전만 해도 3%대 아래에 있었던 모기지 금리가 5.5%가 됐다. 모기지 원리금 부담이 작년보다 30% 늘어난 건데, 가계소득 증가율 3.6%보다 월등히 높다.
거품 축소가 실물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듯
모기지 금리상승은 모기지 신규 신청을 줄어들게 한다. 그동안 미국 가계는 금리가 떨어지면 낮은 금리로 모기지를 새로 일으켜, 줄어드는 이자 부담만큼을 소비에 사용해왔다. 이제 이런 구조가 통하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평균 모기지 규모가 코로나 이전 35만달러에서 45만달러로 늘어난 것도 주택시장에 부담이 되는 부분이다. 모기지 대출 금액이 늘어난 상태에서 금리가 오를 경우 부담이 배가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연준은 미국 주택시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을 더 강화해 나갈 것이다. 연준은 소비자물가만큼이나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잡고 싶어한다. 자산시장 효과가 줄어야 소비 수요를 잠재울 수 있고, 그래야 물가가 잡히기 때문이다. 미국 물가지수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는다. 이 비율을 감안하면 서비스 물가 잡기의 성공 여부는 부동산 가격이 얼마나 빠르게 안정되느냐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자산 가격 거품 축소가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측하기 어렵다. 최악의 경우 다수의 나라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지만 가볍게 마무리될 수도 있다. 2003년에 우리나라에서 카드채 사태가 터졌지만 어렵지 않게 극복됐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분명한 게 하나 있다. 거품이 줄면서 지난 몇 년과 다른 상황이 벌어질 거란 사실이다. 그동안 세계 경제는 낮은 금리와 넘치는 유동성을 만끽해왔다. 덕분에 자산가격이 상승했고, 그 영향으로 경제가 오랜 시간 좋은 상태를 유지해왔다. 이제 해당 구조가 반대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자산가격 하락으로 소비가 줄면서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버블 축소는 피하기 힘든 과제다. 지금처럼 버블이 커졌을 때는 더하다. 피할 수 없으면 가격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
※필자는 경제 및 주식시장 전문 칼럼니스트로, 오랜 기간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해당 분석 업무를 담당했다. 자본시장이 모두에게 유익한 곳이 될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기본에 충실한 주식투자의 원칙] 등 주식분석 기본서를 썼다.
이종우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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