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감원장에게 거는 기대 [전성인 퍼스펙티브]
금융회사 재무적 건정성 점검 필수
금융지주 회장들의 파워·꼼수 경계해야
직접 나서지 말고 그림자처럼 해결해야
신임 금융감독원장에 특수통인 이복현 검사가 임명되었다. 파격적인 인사다. 검사가 금융감독원의 수장에 임명된 것도 그렇고, 연배도 무척 젊다. 금융감독원의 파트너인 금융위원회에는 이 금감원장과 나이가 엇비슷한 고참 과장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이 금감원장 임명을 두고 뒷말이 많았다. 나이가 너무 어리다느니, 검찰이 감독원까지 접수한다느니 하는 세평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금감원장의 임명이 최선은 아니지만 ‘매우 의미 있는 차선’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 정답은 보수 언론의 논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동안 보수 언론은 윤석열 대통령과 견고한 밀월 관계를 유지해왔다. 비판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이 정권이 흔들리지 않고 잘 버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비판이 대부분이었다.
진보·보수 언론 모두 꼬투리 잡으려 안간힘
상황이 이렇지만, 나는 이 금감원장에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재벌과 금융 권력 그리고 모피아들의 정글 속에서 어쩌면 중심을 잡고 본인이 해야 할 바를 또박또박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걱정도 있다. 도처에 널린 지뢰밭은 물론이고 경제 상황과 금융시장의 현실도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하에서는 노파심에서 이 금감원장이 유념해야 할 부분을 짚어 보기로 한다.
이 금감원장의 과제 중 으뜸은 금융회사들의 재무적 건전성을 점검하고 또 점검하는 것이다. 지금은 국내외적으로 1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할 정도의 큰 충격이 우리 경제를 강타한 시기다. 물가가 3%를 넘은 적이 언제였나? 무역수지가 적자였던 적이 언제였나? 한국은행이 공공연히 빅스텝을 운운한 적이 언제였나? 환율이 1300원을 위협한 적이 언제였나? 이 모든 일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적이 언제였나? 경제는 두말한 필요 없이 위기다.
경제가 위기인데 금융회사와 금융시장이 태평성대일 수 없다. 이미 주식시장은 자유낙하를 시작하고 있다. 그럼 금융회사들은? 곧 여기저기서 시퍼런 멍자국을 드러낼 것이다. 그걸 놓치거나 외면해서는 안된다.
피상적으로 보면 은행들은 고금리 상황에서 엄청난 금리 장사를 해서 이익을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고금리의 초기에 보이는 착시다. 고금리가 지속되면 빚을 못 갚는 기업과 개인이 생길 수밖에 없고 대출자산은 부실화할 수밖에 없다. BIS 자기자본 비율과 같은 재무 건전성 기준을 회복하려면 자본 확충을 해야 하는데 자유낙하하는 주식시장에서 신주 팔기가 녹록한 것이 아니다.
자칫 공적 자금이라도 들어가야 되는 상황이 되면 국민 경제 차원에서 손실인 것은 물론이고 이 금감원장 본인도 자칫 ‘검찰 출신 풋내기가 와서 금융감독을 망쳤다’는 평가 속에서 희생 제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주변의 누가 뭐래도 은행·증권·보험·저축은행·여전사까지 모두 재무 건전성 충족 여부를 샅샅이 점검하고 대비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적기시정조치의 초기 단계 발동을 만지작거리면서 ‘금융회사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수도 있다.
이 금감원장의 두 번째 과제는 금융지주사 회장들의 파워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 금감원장은 재벌 비리에 대한 수사 경험이 많고 따라서 재벌들의 정관계 로비력이나 사법부에 대한 영향력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어쩌면 금융지주사 회장에 대해서는 자칫 ‘내가 OO 재벌도 무릎 꿇린 사람인데 피감기관 사람이 뭘 어쩌겠냐’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은행을 품고 있는 금융그룹은 그 정보력과 파워가 재벌 못지않다. 또한 정권의 핵심부와 직거래한 경험도 많다. 신한금융지주와 남산 3억원 혐의, 최서원 국정농단 사건과 하나금융지주 관계 등 언론에 명시적으로 조명된 것도 있고, 문재인 정부 때 민정수석실이 적법한 업무 범위를 넘어 금융감독원 간부의 뒤를 캔 이면에 혹시 금융지주사의 입김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 차원의 해프닝도 있다.
물론 이 금감원장이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겠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신임은 이권과 계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서질 수도 있고, 본인은 버틸지라도 주변의 수족들이 잘려 나갈 수도 있다. 따라서 언제나 금융지주사 회장들의 꼼수와 파워를 경계해야 한다.
이 금감원장의 세 번째 과제는 ‘나서지 않는 것’이다. 검사는 본인이 직접 수사도 하고 기소도 하고 공소유지도 한다. 그러나 금감원장은 그런 자리가 아니다. 뒤에서 일하는 자리다. 앞장서서 본인이 일을 직접 처리하는 것이 사나이답다고 생각할 수 있고, 언론 앞에 서서 중대 사안을 발표하면서 스포트라이트가 주는 마약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소위 ‘초짜’들이 하는 행동이다. 고수는 일의 방향을 정할 때에도 허수아비 위원회를 개최해서 결정하고 그 결정을 집행할 때에도 ‘금융 관련 협회나 금융회사 대표들의 자율 결의’ 형식을 빌린다. 외환위기 때 시행되었던 상당수의 정책은 정확히 이런 과정을 통해 입안되고 집행되었다는 점을 잘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반대로 금감원장 전결로 금융회사 임원을 제재했던 윤석헌 전임 금감원장이 (그 처분이 지극히 정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구설과 견제구에 시달리고 그 결과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던 점도 중요한 반면교사다.
‘나서지 않는 것’의 또 다른 측면은 정권 핵심부와 모피아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정권 핵심부와 모피아는 각자 자신들의 어젠다와 속셈을 가지고 행동하는데 대체로 그것은 금융감독의 기본 원리와 상충한다. 이때 금감원장은 ‘의리의 사나이 돌쇠’처럼 앞장서서 그 어젠다는 구현해서는 안되고,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빼면서 최대한 금융감독의 본령을 사수해야 한다.
금융감독의 본령 끝까지 사수해야
* 필자는 현재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를 지내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 미국 MIT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에서 강의하다 귀국한 후에는 한국금융소비자학회 회장, 한국금융정보학회 회장, 한국금융학회 회장, 한국금융연구센터 소장 등을 역임해 다양한 외부 활동을 하는 지식인으로 꼽힌다. 저서로는 [화폐와 신용의 경제학] 등이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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