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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먹어 치우는 산업” 비관 딛고 세계를 호령 [유웅환의 반도체 열전]

메모리 주도권, 미국→일본→한국→중국?
외환위기 등 거치며 삼성·SK 투 톱 체제로
TV조차 제대로 못 만들던 나라의 눈부신 변신

 
 
취임 후 한국을 첫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윤석열 대통령과 6월 2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도체 산업의 영원한 강자는 없다. 초창기 세계 시장을 선도했던 곳은 미국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일본 기업들이 D램 분야에서 추격하자, 미국의 인텔은 시스템반도체인 CPU 분야로 방향을 틀게 된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 기업들은 10위권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다. 한국 기업들의 추격은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정리하면,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은 미국에서 일본으로 이동했고, 마침내 한국으로 이동했으며 이제는 중국이 거세게 추격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 역사는 1965년 시작된다. 1965년 미국계 기업들이 국내에 진출하면서 반도체 산업이 처음 도입됐다. 이때 트랜지스터 생산을 위해 설립한 합작기업 ‘코미전자산업’이 한국의 첫 반도체 회사다. 다만 1960년대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은 저렴한 노동력으로 단순 조립을 하는 회사에 불과했다. 
 

80년대 들어 반도체 산업에 본격 진출 

1970년대는 한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면서 기반을 구축한 시기다. 두 번의 오일쇼크로 외국계 투자업체들의 투자가 줄면서 국내 기업들이 기술 개발에 힘썼다. 1976년에는 민·관이 공동출연해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를 세워 반도체와 컴퓨터 등 첨단 전자 분야의 기술 지원과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소는 초소형 컴퓨터의 Unix OS기술,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VCR용 바이폴라IC 등의 기술을 보급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80년대는 한국 정부와 대기업들이 반도체 산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시기다. 1982년 상공부에서 반도체 시장에 대한 개별 산업 지원정책인 ‘반도체공업육성세부계획’을 수립했다. 이어 노태우 정부 때는 김종인 당시 경제수석의 주도 하에 꾸준한 연구개발 투자가 뒷받침 되면서 글로벌 수준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한다. 한국 대기업들은 대량 생산체제와 자립 연구개발 체제를 갖춰 나갔다.
 
1982년 1월 삼성전자는 반도체연구소를 설립하고 선진 기술을 도입하는 등 사업 본격화에 착수했다. 이병철 회장은 초대규모 집적회로 개발을 본격화하기 시작하면서 사업을 확대했다. 1983년 2월에는 삼성그룹이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세계에서 3번째로 64K D램을 개발한다. 
 
현대그룹은 해외건설 수주와 중공업·자동차 산업 등 중공업에 집중된 사업 체제를 바꾸기 위해 전자산업에 진출한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1982년부터 매주 전자사업 회의를 주관하고 미국의 반도체 기술자들과 면담했다. 정주영 회장은 한국의 기술자들이 미국의 선진 기술을 받아들인다면 반도체 산업의 미래가 유망해질 것으로 판단, 1983년 2월 현대중공업(주) 산하에 전자사업팀을 설치했다. 
 
금성사는 1970년대 대한전선의 대한반도체를 인수하고 미국의 AT&T와 합작해 금성반도체를 설립했다. 이후 1984년 KIET의 반도체 설비를 인수해 반도체 사업을 진행했다. 1989년 9월에는 각 계열사의 반도체 사업부가 통폐합된 금성 일렉트론을 설립했다. 
 
하지만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1997년 외환위기로 시작과 함께 어려운 시기를 맞이한다.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게 되면서 대부분 산업 분야에서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시작했고, 결국 1998년 9월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합병안이 체결된다. 2001년 LG반도체를 합병한 현대전자는 하이닉스반도체가 되고, 이후 SK에 인수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현재 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는 한국 반도체 업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뿐이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아버지인 이병철 선대 회장의 반대에도 1974년 오일쇼크 여파로 파산 직전에 몰린 한국반도체의 지분 50%를 개인재산을 털어 50만 달러에 인수했다. 당시 삼성그룹 이사회와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 기술이 일본과 최소 27년 이상 격차가 나고 있어 따라잡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 하에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반대했다.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대해 “돈을 먹어 치우는 산업”이라 할 정도로 비관적인 견해였다.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고 교체 주기도 짧아 조금만 뒤처져도 승산이 없다고 바라봤던 것 같다. 삼성 경영진 역시 TV 하나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반도체를 만드는 건 꿈같은 이야기라며 반대했다고 한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GAA(Gate-All-Around) 기술을 적용한 3나노 파운드리 공정 기반의 초도 양산을 시작했다고 6월 30일 밝혔다. 3나노 파운드리 양산에 참여한 파운드리사업부, 반도체연구소 주역들의 기념 촬영 모습.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SK하이닉스, 세계적 반도체 기업으로 

이병철 회장의 관점이 바뀌는 계기는 1982년 미국 방문 이후다. 그는 조그마한 지하실에서 고작 자본금 1000달러로 시작한 휴렛팩커드(HP)의 성장성에 주목했다. 여기에 미국 IBM 공장까지 둘러본 후 반도체 사업에 대한 의지를 굳힌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1983년 일본 도쿄에서 반도체 사업 진출을 알리는 그 유명한 ‘도쿄선언’을 하게 된다. ‘도쿄선언’을 두고 73세 나이에 노망이 났다는 평가도 당대에 있었다. 실제로 인텔은 이병철 회장을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비꼬았고, 일본 언론들은 무모한 도전이라며 평가절하했다. 
 
이쯤에서 필자의 가친을 언급하고자 한다. 가친께서는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 당시 모은 재산을 삼성반도체에 투자했다. 삼성반도체 입장에서 아버지는 주요 주주인 셈이어서, 삼성 오너 일가를 제외하고는 회장직까지 오른 유일한 인물이기도 한 강진구 전 회장이 직접 아버지를 불러 조언을 들을 정도였다고 한다. 필자의 아버지는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고 이 사업은 반드시 성공한다”라며 확신에 차 얘기했고 그런 아버지를 향해 강 회장이 거꾸로 “진짜 그렇게 될 것 같냐”라며 반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모든 가전제품의 자동화를 위해 반도체가 필수적으로 쓰일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올 것으로 내다봤기에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 
 
한편 강 회장은 삼성전자의 기술자립을 진두지휘하며 1969년 창립 이후 5년간 적자이던 삼성전자를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다. 삼성전자 상무로 부임한 지 3개월 만에 대표이사 전무로, 전무가 된 지 다시 9개월 만인 1974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그는 대한민국 전자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시킨 개척자적 경영인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가 삼성에서 CEO로 25년간 장수하며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는 데에는, 필자의 가친께서 가지셨던 확신도 영향이 아예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음 시간에는 반도체 치킨게임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는 27년 경력의 반도체 열사(烈士)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후 인텔에서 수석매니저를 지냈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스카웃돼 최연소 상무로 재직했다. 현대자동차 연구소 이사, SKT 부사장(ESG그룹장) 등을 거쳐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으로 활동하며 반도체 정책 보고서 등을 작성했다. 반도체 분야 90여 편의 국제 논문과 Prentice Hall과 고속반도체 설계에 관한 저서를 출간했다.   

유웅환 전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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