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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나와 스타트업으로…새둥지 찾아 떠나는 IB맨들

과로·승진 불안에 스타트업 향하는 IB맨
스타트업 이직으로 연봉·업무 자유 노려
호흡 긴 M&A보다 혁신업무 선호 흐름
PEF 전문성 살려 밸류업 이끌어내자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바라본 증권가의 모습. [노진환 기자]
“주니어 때는 돈 쓸 시간이 없고, 시니어 이후로는 안정적이지 못한 승진 체계로 불안감이 유독 커진다. 그런 상황에서 흡족한 조건을 내건 유망 스타트업의 이직 제의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최근 만난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운용사에서 스타트업으로 둥지를 옮기는 IB맨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높은 연봉을 위해 과도한 업무 강도를 감수하고 PE 업계에 뛰어들었지만, 경직된 조직문화와 안정적이지 못한 승진 체계에 스타트업에서 스톡옵션을 두둑이 받고 자리를 옮기는 업계 관계자들이 최근 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내 IB 조직을 내재화해 기업가치(밸류에이션)를 높이고 향후 직접 M&A(인수합병) 등 자본시장 업무를 진행하려는 스타트업이 늘면서 ‘이직 골든 타임’을 놓치면 안 된다는 인식도 관계자들 안팎에서 퍼지고 있다.
 

과거부터 이어진 IB맨들의 스타트업행

 
9일 자본시장에 따르면 글로벌 PEF 운용사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 가장 최근 스타트업으로 둥지를 튼 인물은 모건스탠리와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를 두루 거친 한신 상무다. 그는 지난 6월 콘텐츠 지식재산권(IP) 기반의 컴퍼니빌더 ‘콘텐츠테크놀로지스’에 최고투자책임자(CIO)로 합류했다.  
 
콘텐츠테크놀로지스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음원 IP를 보유한 비욘드뮤직을 비롯해 스튜디오비욘드, 뮤지스틱스 등 총 5개 콘텐츠 기업을 기획·설립한 콘텐츠 IP 기반 컴퍼니빌더다.  
 
설립한 지 2년이 채 안 된 가운데 뮤직 대체불가능토큰(NFT) 레이블과 버추얼 아이돌 매니지먼트사를 비롯한 8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등 컴퍼니빌더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콘텐츠테크놀로지스 측은 한신 상무의 합류로 신규 투자 및 M&A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밖에 맥킨지앤드컴퍼니와 테슬라 코리아, KKR을 두루 거친 김용수 상무는 지난 4월 자율주행 트럭 스타트업 마스오토 부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그는 마스오토의 사업 확대와 투자 유치, 중장기 전략 구축 등 운영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마스오토는 화물 운송용 트럭을 위한 인공지능(AI) 기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카메라 기반 머신 러닝 모델을 활용해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하는 자율주행 트럭을 구현하는 기술을 갖추고 있다. 최근 미래에셋벤처투자와 센트랄(CTR) 등으로부터 약 150억 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사실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관계자들의 유망 스타트업행은 새롭게 나타난 흐름은 아니다. 과거 JP모건 홍콩에 몸담았던 배동근 IB 본부장은 지난 2018년 하반기 크래프톤 최고재무책임자(CFO)로 둥지를 옮겼다.  
 
해당 시기는 크래프톤이 기업공개(IPO) 준비를 본격화한 시기로 기업가치(밸류에이션)를 높이려는 경영진의 갈증이 어느 때보다 컸다.  실제로 배 CFO는 지난해 하반기 크래프톤의 코스피(유가증권시장) 상장에 힘을 보탰다.
 
글로벌 PEF 운용사인 블랙스톤 등에서 부동산 투자 전문가로 활동해온 피터 송도 지난해 컬리 재무실 소속 시니어 리더로 입사했다. 컬리 입사 전까지 미국과 한국 기업의 M&A 거래 및 부동산 투자를 담당해온 그는 컬리의 성장성과 직결된 물류센터 확보·관리 등에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평이 적지 않다.
 

‘혁신·자유’ 외치는 주니어, ‘C레벨’ 외치는 시니어

 
‘자본시장의 꽃’으로 통하는 IB 관계자들이 유망 스타트업으로 속속 둥지를 옮기는 이유는 뭘까. 보수적인 PEF 운용사와 달리 자유로운 기업 문화와 평등하고 신속한 의사결정 구조 등이 이직 원인으로 꼽힌다. 과거와 달리 높은 연봉만 바라보고 수직적 근무 환경이나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견뎌내는 직원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PE의 경우 딜(deal) 하나의 호흡이 꽤 긴 편이다”며 “부실한 회사를 인수해 턴어라운드하고 재매각하는 과정을 모두 따지면 수년이 걸리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 과정에 신속하고 혁신적인 업무에 목 마른 젊은 인재 일부는 업무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며 “추가적인 밸류업을 위해 IB맨을 찾는 스타트업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현재 시점을 이직 골든 타임으로 고려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교적 젊은 주니어와 달리 시니어 입장에서는 안정적이지 못한 승진체계가 이직의 주요 이유로 통한다. 주니어 입장에서는 글로벌 PEF 운용사만큼 배울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지만, 본격적인 ‘성과 싸움’이 이뤄지는 시니어부터는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업무를 맡아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자본시장 관계자는 “시니어들 일부는 몇 년씩 같은 직책으로 높은 업무 강도와 불안감에 시달린다”며 “이를 모두 견디느니 ‘C레벨’을 달아주는 유망 스타트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과를 내고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피라미드 구조가 되다 보니 수십억 원의 보너스를 포기하고 자신의 전문성이 두드러질 수 있는 스타트업을 찾아 떠난다”며 “특히 스톡옵션 등을 통해 기존 PE에서 받는 보너스 이상을 확보할 기회가 커졌기 때문에 보너스에도 연연해 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자본시장 경험을 발판 삼아 스타트업에서 성공적인 투자유치에 IPO까지 경험하는 과정을 하나의 ‘커리어 패키지’로 가져가려는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얘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PEF 운용사에 스타트업 경험까지 두루 갖춘 인물은 향후에도 C레벨로 찾을 가능성이 높다”며 “앞으로도 좋은 기회를 찾아 떠나려는 IB맨들이 많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김연지 이데일리 기자 ginsburg@edaily.co.kr, 김성훈 이데일리 기자 sk4h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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