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장 전략에서 게임 산업 육성은 뒷전? [신성장 4.0 전략 동상이몽③]
계속되는 정부의 게임 산업 ‘패싱’…산적한 과제 ‘한가득’
정부가 최근 2023년 경제정책방향 및 신성장 4.0 전략을 발표했다. 특히 신성장 4.0 전략에는 ‘한국형 디즈니’를 만들겠단 계획이 담겼다. 하지만 정작 K 콘텐츠 수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게임 산업 육성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콘텐츠 이해도가 여전히 낮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잘 나가는’ 게임 산업 육성은 여전히 ‘뒷전’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콘텐츠 수출액은 135억7825만달러로, 이 가운데 게임 수출액은 69.5%에 해당하는 94억3540만달러로 조사됐다. 이는 6.9%의 비율을 차지한 음악, 5.2%의 차지한 방송 등을 크게 앞서는 수치다.
하지만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K 콘텐츠에서 게임은 그동안 뒷전으로 밀려 왔다. 이번 신성장 4.0 전략을 비롯해, 지난 7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뤄진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 관련 첫 업무계획 보고서에서도 게임 산업 진흥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콘텐츠 융복합 미래 인재를 양성한다는 과제에서 영화·웹툰·음악·OTT와 더불어 게임이 잠시 언급된 것이 전부다.
특히 문체부는 최근 한류가 전례없는 성과를 창출하고 국제적 경쟁력을 입증했다면서 대중음악 분야에서 ‘BTS’를, 영화 분야에서는 ‘기생충’, 드라마 분야에서는 ‘오징어게임’ 등을 언급했다. 반면 전체 콘텐츠 수출의 70%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게임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의 게임산업 패싱 역사는 사실 그 역사가 깊다. 오히려 ‘규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임업계 관계자들 역시 ‘그럼 그렇지’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대선 과정에서 게임 관련 공약으로 ▶확률형 아이템 정보 완전공개 및 국민 직접 감시 강화 ▶게임 소액 사기 전담 수사기구 설치 ▶e스포츠 지역연고제 도입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현재 구체화된 내용은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몇 년간 계속 지적돼 왔던 ‘중국 판호 문제’, ‘P2E 게임 관련 정책 이슈’ 등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 판호 발급의 경우, 국내 게임사들의 생사가 달릴 정도로 중요한 일임에도 정부는 그저 방관해 왔다.
판호란 중국이 자국에 출시되는 게임에 발급하는 일종의 서비스 인허가권이다. 게임 내 재화를 팔기 위해서 반드시 발급받아야 한다. 판호에는 크게 내자판호(중국 내 게임에 부여하는 판호)와 외자판호(해외게임에 대한 판호 발급)가 있다. 국내 게임의 경우 지난 2017년 3월 이후, 일부 게임을 제외하곤 제대로 된 판호 발급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중국산 게임들은 자유롭게 국내 시장에 출시되면서, 국내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점차 높여가고 있다. 한 게임사 관계자는 “자동차나 반도체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정부가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는 어디까지는 의지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최근 국내 게임사들이 북미와 유럽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콘솔 게임 개발에 나서기 시작한 것도 중국 판호 발급 거부 영향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글로벌 빅마켓 중 하나인 중국이 막히면서 새로운 활로 개척에 나선 것이다.
P2E 게임 허용 불가와 게임사간 양극화도 이제는 고질적인 문제가 됐다. 현재 정부는 사행성 등을 이유로 P2E 게임을 제도권에 편입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게임사 관계자는 “최근 암호화폐 관련 문제가 많이 발생하면서 정부의 P2E 게임 허용 불가에 대해 잘했다는 의견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며 “하지만 산업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많은 기회를 놓친 것 역시 맞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정확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게임사간 양극화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내 게임 산업 매출의 70% 가량이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크래프톤, 펄어비스 등 소수의 중대형 게임사에서 발생하고 있다. 소형 게임사들의 매출은 집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양극화 문제와 관련해 게임업계에서는 여러 규제가 소형 게임사의 성장을 막아왔다고 말한다. 특히 지난 2011년 도입된 ‘강제적 셧다운제’가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강제적 셧다운제는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인터넷 게임 이용을 전면 제한하는 법을 말한다. 여성가족부 주도로 지난 2011년부터 시행돼 오다 2022년 1월에 들어서야 폐지됐다.
한 중소게임사 개발자는 “셧다운제 때문에 게임사는 시스템에 많은 수정을 해야만 했다. 규모가 큰 기업은 하나의 프로세스를 만들어 다른 곳에 적용하면 된다”며 “그러나 중소 개발사들에게는 그러한 여력이 없다. 결국 셧다운제 도입 직후인 2012년을 기점으로 대형 게임사와 중소 게임사간 격차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근 코로나19 역시 재택 시스템을 갖추기 어려운 중소 개발사들에게 큰 타격을 입힌 것으로 알려졌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콘텐츠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낮은 상태에서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며 “게임은 오래전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 받아 온 분야다. 다만 최근 정체기를 맞으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럴 때 정부가 나서야 하는데, 미적지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소 게임사들의 해외진출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원태영 기자 won77@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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