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호수_1668호(20230109)[20] 투자업계 리더 12명이 답했다…‘당근마켓’ 닮아야 스타트업 생존 가능
['집단고사 위기' 스타트업 생태계②]
2023년 상반기 투자 위축 ‘확실’ 전망…하반기 반등도 불투명
투자 관심 분야 ICT, 기업 평가 기준 BM…“확장보단 안정 중요”
중기부 선정 유니콘 중에선 ‘당근마켓·무신사·야놀자’ 성장 기대
[이코노미스트 정두용·송재민 기자] 2023년 투자를 집중할 사업 분야는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와 바이오·의료 영역.”
2023년 가장 중요한 투자 집행 기준은 “수익 확보가 가능한 사업 모델(BM) 구축 역량.”
스타트업 시장에서 곡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세계 경제 불황에 따른 투자 시장 위축 탓이다. 그런데도 ‘투자받을 곳’엔 여전히 뭉칫돈이 몰린다. 그 기준이 궁금했다. 또 ‘투자 혹한기’로 요약되는 현 상황을 현장에선 어떻게 느끼는지, 매섭게 몰아치는 칼바람은 언제쯤 끝이 날지도 물었다.
<이코노미스트>는 벤처캐피털(VC) 대표·주요 투자 심사역 등 12명의 투자업계 리더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이들은 스타트업에 투자가 이뤄지는 주요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 중인 전문가다. VC에 따라 별로 선호하는 투자 시점·자금모집(펀드레이징) 방식 등 분명한 차이를 보이지만, 몇 가지 지점에선 공통된 반응을 보였다.
이들이 꼽은 2023년 생존·성장 조건은 ‘ICT 서비스 분야에서 확실한 수익 모델을 갖춘 스타트업’으로 압축된다. 2023년 상반기까지 확실하게 이어질 투자 위축 기조에서도 디지털 역량을 갖춘 기업은 성장할 수 있다고 봤다. 올해 크게 성장할 기업으론 ‘당근마켓’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는 “창업자가 세상을 바꿀 영향력이 있는지가 투자 향방을 가를 것이라는 점은 동일하다”면서도 “투자 시장은 현금 유동성(Cash Flow)이 손익분기점(BEP)에 근접하고 있는 곳을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2022년 가장 어려움을 겪은 스타트업 사업 분야는 ‘유통·서비스’로 조사됐다. 투자 위축으로 인한 스타트업 생태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민간 출자 문제 완화 ▶성장금융·모태펀드(정부가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VC에 출자하는 방식) 확대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제도 활성화 ▶인수합병(M&A) 규제 완화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자금모집 어렵다…상반기까진 시장 위축 지속”
12명의 투자업계 리더들은 “자금모집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현장에서 느끼는 펀드레이징이 ‘활발하다’라거나 ‘큰 변화 없이 평년과 비슷하다’고 답한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8명은 ‘어렵다’고 답했고, 4명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들이 투자 시장에서 느낀 이 같은 분위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기술기업·스타트업 전문 시장조사기관 CB 인사이츠(CB Insights)에 따르면 2022년 1분기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벤처투자액은 1420억 달러(약 180조6240억원)를 기록, 전년 동기 대비 5% 상승했다. 그러나 2022년 2분기엔 투자 규모가 1130억 달러(약 143조7360억원)로 줄었고, 3분기엔 750억 달러(약 95조4000억원)로 급감했다. 2022년 3분기의 경우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54%나 감소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주요국 금리 인상·미-중 패권 경쟁 등으로 인해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자, 투자 시장 역시 빠르게 얼어붙었다. 세계 경제 침체 여파는 국내 시장이라고 비껴가지 않았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2년 3분기 국내 벤처투자 규모는 1조252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0% 줄었다.
12명의 투자업계 리더들은 이 같은 기조가 2023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상반기 내 반등이 이뤄질 수 있으리라고 본 이는 없다. 하반기까지 시장 위축이 진행될 수 있다고 응답한 전문가도 4명이나 됐다. 8명은 ‘하반기 반등’을 점쳤다.
정부도 이들과 비슷한 관점으로 시장 흐름을 전망했다. 정부는 지난 2022년 12월 21일 범부처로 발표한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세계 경제는 가파른 금리 인상 영향에 따른 내수 부진·제조업 경기 및 교역 위축 등으로 성장세가 크게 약화될 것”이라며 “중국 부동산 경기와 같은 경제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신흥국 부채위험 등 하방 리스크(위험)가 상존하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세계 경제 개선 등으로 점차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국내 경제 역시 “상반기에는 잠재 수준을 하회하는 성장세가 예상되며, 하반기로 갈수록 대외여건 개선 등으로 점차 회복 흐름을 나타낼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고려, 이례적으로 2023년 경제성장률(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 전망치를 1.6%로 잡았다. 한국이 2%를 밑도는 성장률은 보인 시기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친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8%)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0.7%) 정도다. 정부가 이번 세계 경제 위축에 따른 경기 침체 여파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데스밸리 넘은 스타트업도 ‘위기’…“유통 분야 위축 심화”
최근 6개월간 뚜렷하게 나타난 투자 시장 위축이 2023년 상반기까지 유지·악화가 확실시되면서 스타트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 기간 경제 위축의 칼바람을 정면으로 맞이한 스타트업들은 사업 축소·권고사직·매각 등을 진행하고 있다.
경영난은 초기 스타트업은 물론 ‘데스밸리’를 넘은 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스타트업 데스밸리는 사업 안착까지 걸리는 3~5년의 기간을 말한다. 이 기간 사업 가능성을 시장에서 입증해야 사업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투자 유치 등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5년 차 스타트업의 생존율은 29.2%에 그친다.
업력이 짧을수록 투자 의존도가 높다. 이들이 넘어야 할 데스밸리 문턱이 투자 위축으로 더욱 높아졌단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 안착한 스타트업 역시 외연 확장에 따른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길이 막히며 경영난도 심화하는 추세다.
투자 전문가들은 2022년도에 유통·서비스 분야에서 스타트업 경영난이 특히 두드러졌다고 분석했다. ‘투자한 스타트업 분야 중 예상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던 업종’을 묻는 말에 6명이 유통·서비스를 골랐다. 이와 함께 ICT 서비스(5명)와 바이오·의료(4명)도 높은 선택을 받았다.
이는 ICT 기반의 유통 서비스로 ‘간판급 스타트업’이 몰락한 사례가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난 데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특화 배송 서비스로 시장의 주목을 받은 스타트업 ▶정육각 ▶오늘식탁 ▶얌테이블 등에서 지난해 권고사직·사업축소 등이 진행됐다. 컬리의 경우 최근 기업공개(IPO) 연기를 결정하기도 했다.
유통 분야뿐 아니라 스타트업계 전반에서 나타난 경영 악화 현상으로 올해 ‘헐값 매각’이 많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블록체인 생태계 전문 투자사인 해시드(Hashed) 소속 파트너는 “수익성 없이 투자금에 의존하는 회사들 사이에서 파산·M&A 사례는 물론 대규모 구조조정도 나타날 것으로 생각한다. 창업자·개발자들의 상처 없이 이뤄져야 스타트업 생태계가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이 가능하다”고 정부·VC의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투자 전문가들은 이 같은 스타트업 생태계 위축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봤다. 김학윤 가이아벤처파트너스 대표는 “투자 시장이 어려운 상황이라 모태펀드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스타트업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려면, 1차 시드를 모태가 출자한 펀드를 통해 유치하고 이후 투자를 민간에서 담당하는 게 스타트업 입장에서 유리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올해 모태펀드 예산을 지난해 대비 40% 줄인 3135억원으로 책정했는데, 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가능성’에서 ‘수익성’으로…투자 기조 변화
경제 불황은 투자 기조 변화로도 이어졌다. 투자 시장은 2021년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활황을 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소비 위축을 타파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유동성을 증가한 데 따른 영향이다. 스타트업 역시 이 시기 ‘가능성’만 입증하면 대규모 투자 유치가 가능했다. 예상보다 높은 시리즈 투자 성료나 IPO ‘대박’ 사례도 이어졌다.
이 같은 기조가 투자 혹한기에 따라 최근 급격하게 변화하는 추세다. 출자자들의 지갑이 닫혔고, 투자 심사는 강화됐다. 변화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BM’이다. 12명의 투자업계 리더들은 ‘2023년 투자 집행에 가장 중요한 기준’을 묻는 말에 다양한 답변을 내놨지만, 수익성만큼은 공통 요소로 꼽았다.
장원열 카카오벤처스 수석심사역은 ‘팀의 펀딩 능력과 BM 설계 등 사업 역량’을, 김영덕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 대표도 ‘큰 수익 모델 가능성’을 주요 기준으로 선정했다. 권오형 퓨처플레이 대표도 실행·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팀의 차별성과 함께 ‘탄탄한 BM’을,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 역시 ‘자본조달 능력·딥테크·기업가 정신’을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파트너는 “후속 투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 아무래도 예전보다 좀 더 빠르게 실적이 날 수 있는 곳을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며 “명확한 BM과 기본 가설이 어느 정도 검증된 스타트업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해시드 파트너도 “투자 시장이 매우 보수적으로 변하고 고금리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고려, 자체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현금흐름 창출 능력을 2023년 투자 기준으로 삼을 것”이라며 “조직을 타이트하게 운영할 수 있는 능력과 시장 수요를 잡아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비즈니스 역량이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12명의 투자업계 리더들은 이와 함께 ICT 서비스 분야에 관심을 나타냈다. 2023년도 투자 집중 분야로 8명이 ICT 서비스를 선택했다. 또 ▶바이오·의료(5명) ▶콘텐츠(3명) ▶전기·전자·장비(3명) 업종에서 투자 기회를 찾는 것으로 조사됐다.
ICT 분야는 비대면 문화 확산과 디지털 전환 등에 따라 성장성이 담보된 영역으로 꼽힌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세계 IT 서비스 시장은 2019년 1조400억 달러(약 1319조원)에서 2024년 1조3010억 달러(약 1650조원)로 25.1% 성장이 전망된다. 소프트웨어(SW) 시장 규모 역시 같은 기간 4770억 달러(약 605조원)에서 6960억 달러(약 883조원)로 45.9%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ICT·BM 기준 충족한 ‘당근마켓’ 주목
중소벤처기업부가 2022년 상반기 선정한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거대신생(유니콘) 기업 중 당근마켓이 투자 전문가가 꼽은 ‘2023년 가장 성장이 기대되는 기업’으로 선정됐다. 설문 참여자 절반이 당근마켓 성장성에 관심을 나타냈다. 무신사(4명)·야놀자(3명)도 많은 선택을 받았다.
당근마켓은 투자 선호 분야로 꼽힌 ICT 영역에서 탄탄한 BM을 갖춰가는 기업으로 평가된다. 당근마켓이 아직 흑자를 올리고 있진 않지만, 플랫폼 안착에 따른 수익 개선이 올해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온라인 채널 강화를 추진 중인 무신사와 IT 솔루션 사업에 진출한 야놀자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선택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당근마켓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의 2021년 매출은 257억원으로, 2020년 118억원에서 2배 이상 성장했다. 2021년 기준 당기순손실이 364억원을 기록했지만, 주요 수익 모델인 ‘지역 광고’가 올해 크게 성장할 신호를 보이고 있다.
당근마켓의 연말 결산 데이터에 따르면 2022년에만 1억64000만번의 거래가 플랫폼을 통해 이뤄졌다. 2022년 12월 기준 당근마켓 누적 가입자 수는 3200만명에 달한다. 1년간 1000만명의 회원을 추가로 확보하는 성과를 썼다. 이용자 증가는 광고 수익 확대의 주요 요소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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