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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 빅테크, 골도 깊었나…대대적 구조조정 ‘칼바람’ [한세희 테크&라이프]

코로나19에 ‘초호황’ 누린 빅테크의 몸집 줄이기
‘거품 꺼진’ 메타버스부터 손보는 실리콘밸리

구글 노동자들로 구성된 ‘알파벳노조’(AWU) 조합원들이 미국 뉴욕 소재 구글 사무실 밖에서 알파벳의 대규모 정리해고 발표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알파벳은 최근 어려운 경제상황을 이유로 들며 전세계적으로 직원 약 1만2000명을 정리해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진 뉴욕 AFP=연합뉴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코로나19가 세계를 덮친 지난 3년간 테크 업계는 최고의 시기를 보냈다. 업무와 학업, 상거래, 엔터테인먼트 등에서 비대면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반도체와 전자기기, 클라우드 인프라를 만드는 기업들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인력 몸값도 폭등했다. 회사마다 개발자들을 구하지 못해 난리가 났다. 서로 연봉을 더 주고 인력을 빼 오기 위한 경쟁이 벌어졌다. 신입 개발자들의 초봉은 하늘 높이 올렸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잦아들고 2022년이 저물면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시장은 얼어붙었다. 벤처 투자 자금은 말랐고, 인플레이션은 이어졌으며 금리는 높아졌다. 한때 유니콘이었던 기업의 가치도,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규모도, 부동산 가격도, 주가도 모두 급락했다. 그리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테크 업계 전반에 걸쳐 일어났다.

고통스러운 정리해고 쓰나미

기업들은 악화된 경영 환경에 대응하고, 조직을 줄여 수익성을 높이며, 미래 핵심 사업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한다는 명목으로 인력을 해고하기 시작했다.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주요 글로벌 테크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사업부 폐쇄 뉴스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새해 들어 아마존은 전체 직원의 1.2%에 해당하는 약 1만 8000명의 직원을 해고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아마존 직원은 150만 명 규모로 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전체 직원의 5%인 1만명을 해고한다는 방침이다. 구글은 1만2000명을 정리할 계획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는 지난해 말 전체 직원의 13%인 1만 1000명을 해고한다고 밝혔다.

IBM, 스냅챗, 스포티파이, 리프트, 도큐사인 등도 구조조정 대열에 뛰어들었다. 기업 규모를 막론하고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트위터는 지난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에 인수된 이후, 거시 경제 악화라는 이슈만 있던 것은 아니지만, 7500명이던 인력을 절반으로 줄였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최근 실적을 발표하며 말한 바와 같이 “(성장보다) 효율을 중시해야 할 때”라고 모두 생각하나 보다.

구조조정 시기에는 비핵심 사업이나 지원 조직, 경기 좋던 시절에 미래 가능성을 보고 투자했으나 이제는 언제 수익으로 돌아올지 부담스러운 프로젝트 등이 우선 칼질을 당하기 마련이다. 벤처 투자금이 흘러가는 분야를 보고 산업이나 기술의 트렌드 혹은 거품을 짐작할 수 있듯이, 우선적으로 정리 내지는 축소되는 분야에서도 변화의 흐름은 감지할 수 있다. 최근 글로벌 테크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분야는 무엇일까?

메타버스 가장 먼저 손절?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메타버스이다. 불과 1-2년 전 메타버스는 지금의 인공지능, 챗GPT 못지않은 화제와 거품을 일으켰다. 페이스북은 “메타버스 기업이 되겠다”라며 2021년 회사 이름을 아예 ‘메타’로 바꾸어 버렸다. 게임과 소셜미디어, 산업과 교육 현장에 메타버스를 적용하겠다는 기업들이 잇달아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엔 잠잠하다. 실제로 관심이 식었는지, 단지 의미 없는 노이즈가 줄었을 뿐 내실 있는 발전이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는 이르다.

이런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의 메타버스 관련 사업부는 1만명 규모 이번 정리해고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헤드셋 모양의 혼합현실(MR) 기기 ‘홀로렌즈’를 앞세워 산업용 메타버스 시장 구축에 적극적 모습을 보여 왔다. 홀로렌즈를 쓴 현장 작업자가 본사가 보내는 디지털 증강현실 형태의 업무 정보와 지시를 참고하며 작업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최근 홀로렌즈 하드웨어 개발팀의 상당수 인력을 내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홀로렌즈의 다음 버전 제품이 나올 수 있을지 의구심이 제기된다.

산업용 메타버스 시장을 겨냥한 프로젝트팀도 해체하고 구성원을 모두 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팀은 의료나 금융, 에너지 등의 분야 기업이 메타버스를 활용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와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일을 주로 했다. 작년 10월 구성되었으며 약 100명의 직원이 속해 있었다. 제조 현장 자동화에 쓰이는 AI 모델을 구축하는 소프트웨어 기술도 매각을 추진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8년 본사이AI라는 스타트업을 인수해 이 기술을 확보한 바 있다.

중국 대표 테크 기업 텐센트도 가상현실 하드웨어 개발 계획을 취소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6월 300명 규모의 ‘확장현실(XR)’ 기기 개발팀을 구성했으나, 기술 개발과 수익화 어려움으로 최근 팀을 정리했다. 팀원들은 이직을 권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메타 스스로도 자회사가 만든 인기 VR 게임 ‘에코 VR’을 올해 8월 종료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메타의 메타버스 사업부 리얼리티랩은 지난해 137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지만, 아직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 수준이다.

실패 좌절 딛고 새싹 피우길

신사업 부문은 구글에서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구글의 사내벤처 인큐베이터 ‘에어리어 120’은 구성원 대부분이 해고되었다. 에어리어 120은 새로운 서비스나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빠르고 가볍게 실행해 테스트해 보는 조직인데, 현재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인력은 거의 정리되었다. 구글이 새로 개발하는 퓨시아 운용체계(OS) 개발팀도 전체의 16%인 400명 가까이 해고되었다. 퓨시아는 IoT를 비롯해 다양한 기기의 OS로 쓰기 위해 내부에서 개발하고 있었다.

한편 아마존에선 인사와 소매 부문 등의 직군이 주로 정리되었지만, 알렉사와 킨들, 웨어러블 피트니스 기기 헤일로 등 사업부에서도 조정이 있었다. 알렉사는 음성 AI 비서 시장을 개척했음에도 지난해 약 100억 달러(약 13조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거품은 좋은 시절 격하게 부풀어 오르지만, 어려운 시절 고통스럽게 터지기도 한다. 경기가 좋을 때 이뤄지는 투자가 모두 최선의 투자는 아니듯, 침체기에 타격을 받은 분야가 모두 전망이 어두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메타버스나 음성AI 같은 ‘핫’한 트렌드라 하더라도 진정 그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돌아볼 용기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실패와 해고의 무덤에서 새로운 가치가 솟아날 것이라는 희망도.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과 ‘플랫폼 경제, 무엇이 문제일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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