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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의 종말② 부동산 하락기, 전세제도의 운명은? [김현아의 시티라이브]

아파트로 확산되는 역전세, 선제적 대책마련 필요해

국회 앞에서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주최로 정부 전세사기 특별법안 비판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현아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센터장] 지금 막 전세로 임대차 계약을 하려는 세입자에게 “이 집에서 나갈 때는 보증금을 어떻게 돌려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마 세입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집주인이 돌려주겠죠.” 그럼 집주인에게 물어보자. “당신은 이 돈을 고스란히 은행이 맡겨뒀다가 세입자가 나갈 때 돌려줄 것인가요?” 이 질문에 당장 “예”라고 대답할 집주인은 드물지 않을까? 아마 집주인들의 대답은 이럴 것이다.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은 다음 세입자에게 받은 돈으로 돌려주면 되죠.”

그렇다면 첫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보증금은 어디로 갔을까? 집주인이 다른데 투자했을 수도 있고, 생활비로 썼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돈이 이미 집주인 수중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전세금 반환 문제, 빌라에서 오피스텔·아파트로 확산

이럴 때 전세가격이 계속 상승하면 문제가 없지만 하락하게 되면 지금처럼 반환에 문제가 발생한다. 집주인이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만큼 전세금을 내고 들어올 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다면, 대출을 받든지 다른 방식으로 돌려줄 돈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처럼 금리가 높고 대출이 어렵다면, 그리고 전세가격이 더 떨어진다면 전세보증금 반환문제는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가 돼버릴 것이다.

이미 사회문제가 돼버린 전세사기는 아직까지 빌라(다가구 및 다세대주택)나 일부 오피스텔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건축물들은 대부분 임대소득을 목적으로 지어지고 거래되기에 통상 월세로 세입자를 구한다. 그런데 전세로 물건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다. 즉 소유주 또는 건축주가 잔금납부 등을 위해 급하게 목돈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아파트처럼 시세가 알려지는 등 시장에 가격정보가 풍부하지 않기에 전세보증금을 과다하게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특성은 곧 전세사기로 이어진다. 

빌라, 오피스텔과 비교하면 아파트는 전세사기가 드문 편이다. 다만 전세가격이 지금처럼 하락하면 아파트 세입자들 역시 다수가 보증금을 계약만기에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역전세’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올해 초 중앙일보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통해 올해 전세만기가 도래하는 서울 아파트 13만 2017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역전세난을 겪을 수 있는 경우가 이중 28.6%인 3만 7774가구에 이른다고 한다. 만약 전세가격이 지금보다 10% 더 하락한다면 역전세난 아파트는 전체의 39.6%인 5만 2251가구까지 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빌라의 경우 역전세나 전세사기 징후가 이미 1~2년부터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딱히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문제는 사전에 예방해야지 이미 터지고 난 이후에는 손 쓸 방법이 별로 없다. 

피해자 구제책부터 역전세 대응책까지, 할 일 태산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야기될 역전세의 대책마련을 위한 타이밍은 오히려 지금이다. 여론에서 거론되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세보증금을 집주인이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에스크로(대금예치) 계정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 에스크로 계정에서 지급되는 이자를 세입자가 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상적인 방안이기는 하지만 과연 이렇게 하면 자기집을 전세로 내놓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대신 전세금 중 최우선 변제금과 같이 세입자에게 최후의 보루가 될 만한 금액을 에스크로 계정에 예치시키는 방안은 한번 검토해 볼 만하다.

둘째,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세입자가 부담할 것이냐, 임대인이 부담할 것이냐의 논란은 있지만 충분히 합의가 가능한 사항이다. 임대인이 국세 등의 세금납부를 성실히 하고 주택에 선순위 저당권이 없을 경우 보증료를 할인해 주는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면, 반환보증 가입은 좀 더 활성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전세가격이 집값의 70%를 상회하거나, 집주인의 대출이 적정 수준 이상이라면, 보증서 발급을 제한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보증을 통해서 사전에 위험한 전세물건을 거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이다. 

셋째는 좀 극단적인 처방인데, 전세가격을 예를 들면 ‘매매가격의 50%’ 같은 방식으로 상한을 두자는 의견도 나온다. 위에서 제시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으로 일부 유도할 수 있는 효과인데, 이걸 상한제로 규제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이 역시 전세매물이 사라지는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임차인들은 매월 월차임을 지급하는 월세보다 목돈을 맡겼다가 되돌려 받는 전세계약방식을 선호한다. 그동안은 전세자금 100%를 저리의 대출로 해결할 수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지난 정부가 전세대출 확대를 줄기차게 추진해 왔던 이유 역시 전세가 임차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지원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전세대출 한도를 조정하자는 제안도 거론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빌라나 다세대 주택, 오피스텔만 한도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미 2013년부터 임대차계약에서 월세비중이 전세비중을 초월하기 시작했다. 지역별로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세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작금의 전세사기와 역전세 사태를 겪으면서 높아진 전세보증금을 지킬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보완조치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전세보증금을 보호하는데 많은 비용이 초래된다면 결국 전세는 지금보다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보증부 월세나 순수월세가 그 자리를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부동산 상승기에 만들어진 제도나 정책이 하락기에 세입자나 경제적 약자에게 더 무용지물이 되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이제 전세의 운명은 시험대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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