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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이어 GMO에도 혁신…‘유전자 가위 기술’ 과학자도 주목하는 까닭 [이코노 인터뷰]

내년 중 브로드·CVC와 합의계약 기대…바로 수익 내는 구조
“유전자 가위와 관련한 IP 확보, 치료제 개발에 매진할 것”

이병화 툴젠 대표 [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브로드연구소와 CVC그룹 등 특허와 관련해 분쟁 중인 기업과의 합의계약(Settlement)은 이르면 내년에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회사가 이 분쟁에서 이길 자신감이 있고, 수익 파이프라인도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분쟁이 합의계약 단계에 도달하면, 바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라는 점도 강점입니다.” (이병화 툴젠 대표)

유전자는 생물을 만드는 설계도다.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자에 입력된 유전 정보에 따라, 사람의 얼굴과 몸통·손·발 등이 만들어진다. 다양한 질병도 이 유전 정보를 따라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어진다. 유전자나 염색체에 변이가 생겨 질병이 생기면 이를 유전 질환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유전 질환이 변이된 유전자 때문에 발생한다면, 문제가 된 부분만 잘라내거나 떼어낼 수는 없을까. 이런 상상을 현실로 만들 기술을 처음으로 찾아낸 과학자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제니퍼 A. 다우드나다. 이들은 지난 2020년 유전자 기술의 혁명을 가져왔다고 평가받는 유전자 편집 기술 ‘크리스퍼-카스9’(CRISPR-CAS9)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화학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됐다.

크리스퍼는 쉽게 말해 유전자의 특정 부분을 찾아낸 뒤, 잘라내는 기술이다. 유전자를 잘라내는 기술은 징크핑거 뉴클라아제(1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와 탈렌(2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 등이 개발돼 있었으나, 제작 과정이 복잡하거나 우리 몸에서 잘 작동하지 않아 한계가 있었다. 크리스퍼는 이들 유전자 가위를 잇는 3세대 유전자 편집 기술이다. 징크핑거 뉴클라아제와 탈렌 등 앞선 유전자 가위 기술보다 만들기 쉽고, 비용도 적게 든다

특허 놓고 경쟁 치열…툴젠, 시니어파티로 지정

과학자들이 유전자 가위 기술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기술로 유전 질환을 치료하거나 장기를 이식하는 등 의료 분야는 물론, 유전자 변형 생물(GMO)을 대체하는 농업 분야도 혁신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특히 크리스퍼 기술은 앞선 유전자 가위보다 빠르게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는 질병 모델을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다. 이 기술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질환도 낭성섬유증과 낫적혈구빈혈, 자폐증 등 다양하다.

유망한 기술인 만큼 크리스퍼-카스9과 관련한 특허를 차지하려는 경쟁도 치열하다.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제니퍼 A. 다우드나가 소속된 UC버클리대, 비엔나대의 CVC그룹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하버드대의 브로드연구소와 어느 기관이 먼저 크리스퍼-카스9 기술을 개발했는지를 두고 다툼을 벌여왔다. 브로드연구소가 크리스퍼 기반의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해 진핵세포의 유전자를 편집했고, 이와 관련한 특허를 미국 특허청에 출원하면서다. 미국 특허청은 지난 2022년 진핵세포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편집 기술을 브로드연구소가 먼저 개발했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브로드연구소와 CVC그룹은 미국 특허청의 판결에 대해 현지 고등법원에 각각 항소를 제기했다. 브로드연구소는 미국 특허청이 인정한 특허의 내용을 인정할 수 없었고, CVC그룹은 이번 판결에서 졌기 때문이다. 서울 강서구의 툴젠 본사에서 만난 이병화 툴젠 대표는 “미국 고등법원의 판결이 최종 판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 대법원에서는 심리가 아닌 법리만 다루는 데다, 대법원까지 사건을 올리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두 기관이 제기한 항소가 정리되면, 특허를 둘러싼 갈등도 끝날 것”이라며 “항소를 제기한 뒤 1년에서 1년 6개월 정도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년 상반기 중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고 했다.

미국 고등법원이 브로드연구소와 CVC그룹이 제기한 항소에 대해 판결하면, 툴젠은 두 기관과 저촉심사(Interference)를 진행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이 대표는 현재 브로드연구소와 CVC그룹이 어떤 방식으로 특허 분쟁에 대응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이 대표는 “어떤 기관이 기술을 먼저 개발했는지 가리는 만큼 각 기관이 착상(Conception of the invention)을 어떻게 했는지, 발명을 구현하는 단계는 어떤지(Reduction to practice), 어떤 실험이 진행됐고, 과학적으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촘촘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툴젠이) 시니어파티로 지정돼, 합의계약을 진행할 가능성이 큰 만큼 기업의 리스크와 비용 등을 줄일 수 있도록 합의계약의 시기와 조건을 조율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이병화 툴젠 대표. [사진 신인섭 기자]
툴젠이 합의계약을 마치고 난 이후 계획은 명확하다. 이 대표는 툴젠의 사업 전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명제는 간단하다”며 “유전자 가위와 관련한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하고, 치료제 개발과 종자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은 의료 분야와 농업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되는 기술이다. 툴젠도 유전자 가위 기술로 치료제를 개발하면서, 종자 기술을 연구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 대표는 “GMO는 안전성과 관련한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되는데, 이를 유전자 편집 기술로 대체할 수 있다”며 “유전자 편집 기술은 GMO처럼 외부 유전자가 다른 종인 생물체의 핵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라고 설명했다.

툴젠은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해 치료제 개발이나 종자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과 협의체도 조직하고 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을 기반으로 한 치료제가 곧 나올 것으로 기대되는 데다, 브로드연구소와 CVC그룹과의 특허 분쟁도 마지막 단계로 가고 있는 만큼 산업계의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서다.

현재 20여 개 기업이 모였으며, 올해 안으로 협의체를 발족한다는 구상이다. 이 대표는 “미국에서는 현재 유전자 편집 기술을 GMO를 규제하는 법안에서 분리하는 제도를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토마토나 도미 등 다양한 식자재를 유전자 편집 기술로 변형해도 상업화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주고 있다”며 “한국은 아직 유전자 편집 기술이 적용된 식품을 GMO로 보고 있으며, 이를 예외 규정으로 인정하는 여러 법안이 국회 계류 중”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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