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투자 혹한기’ 녹일 모래바람…스타트업도 ‘오일 머니’ 훈풍
[중동에 부는 K-바람]④
중동 부국, 한국 기술 주목…“스타트업에 사업 기회 창출”
뉴빌리티·우듬지팜 등 중동서 성과…“혁신성 보여줄 것”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혁신은 자본에서 나온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1911년에 쓴 ‘경제발전의 이론’이나 1942년 펴낸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 등을 굳이 꺼내 들지 않더라도, 이는 많은 기업가가 현실에서 느끼는 문장일 터다. 특히 혁신적 아이디어는 있으나 사업을 꾸려갈 체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에 자본은 비전을 실현할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위기를 겪고 있다. 1년 넘게 이어진 ‘투자 혹한기’ 때문이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투자 위축 기조가 ‘역대급 호황기’ 직후 나타나 자금난에 허덕이는 스타트업이 더욱 많아졌단 분석도 나온다.
국내 투자 시장은 2021년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활황을 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소비 위축을 타파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유동성을 증가한 데 따른 영향이다. 이는 뭉칫돈이 스타트업 시장에 흘러간 배경이 됐다. 이들은 흘러온 자본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적 시도를 이어갔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2021년 국내 연간 벤처투자 규모는 7조6802억원을 기록했다. 2020년 대비 무려 78.4%가 증가한 수치다.
이 같은 기조가 뒤바뀐 건 2022년 3분기부터다. 2022년 벤처투자 규모는 ▲1분기 2조2214억원(전년 동기 대비 68.5% 상승) ▲2분기 1조9315억원(전년 동기 대비 1.4% 상승)을 기록하며 호황을 보였다. 그러나 2022년 3분기엔 1조284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8.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4분기 역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43.9% 감소한 1조3268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투자 시장이 활황을 보였음에도, 2022년 연간 벤처투자 규모는 총 6조7640억원으로 2021년과 비교해 11.9% 감소했다.
문제는 이 같은 기조는 올해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23년 3분기 누적 벤처투자 규모는 3조695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0% 줄었다.
‘오일 머니’ 노리는 韓 스타트업
투자 위축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오일 머니’(Oil Money)란 동아줄이 내려왔다. 탈(脫)석유를 외치고 있는 중동 부국들이 한국의 기술에 주목하면서 다양한 스타트업이 기회를 잡고 있는 모습이다. 다수의 스타트업이 오일 머니를 통해 자신의 혁신을 중동에서 펼치겠단 포부를 내보였다.
중동 진출을 노리고 있는 한 국내 기술 스타트업 임원은 “오일 머니로 쌓은 자본을 바탕으로 국가 경제 체제를 변화하려는 시도가 중동 지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스타트업이 가진 혁신성에 주목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유동성 악화에 따른 스타트업 생태계 위기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중동 지역에선 되레 대규모 투자와 대형 사업이 전개돼 새로운 기회의 장이 열리고 있단 설명이다.
실제로 중동 국가 다수가 이런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한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가 2021년 기술 스타트업 투자를 위해 결성한 ‘두바이 미래 지구 펀드’가 대표적이다. 해당 펀드는 올해 초 운용 자산 목표를 기존 대비 4배 증가한 10억 달러로 설정해 2024년 말까지 운영하기로 했다. UAE는 아부다비에도 최근 ‘웹3.0 스타트업’과 ‘블록체인 기술 지원’을 목표로 20억 달러 이상의 자본 투입을 결정한 바 있다. 디지털 자산 ‘Hub71+’ 등을 만들어 10년 내 비석유 부문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디지털 경제의 기여도를 20% 이상 만들겠단 구상이다.
한국 시장을 직접 겨냥한 자본도 있다. 지난 10월 윤석열 대통령 국빈 방문으로 사업적 논의가 활발해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특히 한국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양국 정상은 앞서 지난해 11월 공동펀드 조성에 합의하기도 했다. 사우디벤처투자(SVC)와 사우디국부펀드(PIF Jada) 등이 출자자로 참여해 조성 중인 1억5000만 달러(약 1954억원) 규모의 펀드에 한국벤처투자가 1000만 달러(약 130억원)를 출자하는 형태다.
이 같은 분위기는 지난 11월 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막한 국내 스타트업 최대 행사인 ‘컴업’(COMEUP)에서도 나타났다. 올해 처음 신설된 글로벌 커뮤니티 존에서는 사우디·UAE의 국가관이 운영됐다. 행사 둘째 날인 9일엔 UAE 사절단을 이끄는 압둘라 빈 토우크 알마리(HE Abdulla Bin Touq Al Marri) 경제부 장관이 직접 ‘컴업 2023’ 행사장을 찾기도 했다. 그는 특별 무대에 올라 UAE 스타트업 생태계를 소개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올라탄 대표적 국내 스타트업으론 뉴빌리티가 꼽힌다. 실내외 자율주행 로봇 서비스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뉴빌리티는 지난 6월 글로벌 프로그램 ‘옥사곤 X 맥라렌(Oxagon X McLAREN) 액셀러레이터’에 선정된 바 있다. 옥사곤(Oxagon)과 영국 슈퍼카 제조사 맥라렌(McLAREN)이 공동으로 주관하고, 글로벌 벤처 액셀러레이터 브링크(Brinc)를 통해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다. 옥사곤은 사우디 정부가 사업비 5000억 달러(약 675조원)를 책정해 추진 중인 4곳의 대형 도시 조성 계획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포함된 지역이다. 홍해 연안과 바다 위에 7㎞ 너비의 해상 부유 산업단지 건설을 목적으로 한다.
뉴빌리티는 해당 프로그램에 선정된 후 옥사곤 화물·창고 운영과 라스트 마일 배송 작업 개선 등을 중점 진행했다. 옥사곤 내 기술 공급망을 확장하고 물류 유통의 고도화를 목표로 추진되는 사업이다. 회사 측은 “3개월간 진행한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며 “연내 국내 실외 자율주행 배달 로봇으로는 처음으로 옥사곤 현지에서 실증사업에 나설 계획”이라고 전했다.
뉴빌리티는 향후 진행할 네옴시티 실증사업에서 ▲카메라 기반 자율주행 로봇 ‘뉴비’ ▲로봇의 모니터링이 가능한 ‘뉴비고’ ▲주문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뉴비오더’ 등을 전반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자율주행 로봇-주문 플랫폼-모니터링’ 통합 솔루션을 이용, 로봇 자율주행 배달서비스를 운영한다는 취지다. 뉴비오더의 경우, 네옴시티 실증을 위해 별도 앱을 출시한 상태다.
네옴시티 프로젝트엔 국내 프롭테크 스타트업 아키드로우도 참여한다. 아키드로우는 지난 5월 PMI-KSA와 업무협약을 진행한 바 있다. PMI-KSA는 사우디 정부 산하 기관으로, 네옴과 같은 초대형 사업을 기획·감독하고 있다. 아키드로우는 AI를 이용한 자동 실내장식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 외에도 ▲온다(호텔 운영 소프트웨어 개발) ▲베스텔라랩(스마트시티 자율주행 솔루션)이 PMI-KSA와 사업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H2O호스피탈리티(호텔 디지털전환) ▲웨이브라이프스타일테크(주방 로봇 도입) 등은 사우디 투자청과 양해각서를 교환한 바 있다.
우듬지팜도 사우디 진출을 노리는 기업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한 ‘반 밀폐형 스마트팜’ 구축 역량을 토대로 3420만달러(약 455억원) 규모의 사우디 사업 수주를 노리고 있다. 업무협약(MOU) 내용대로 사업이 진행된다면 사우디 현지에 18만평 규모의 K-스마트팜 테마단지 조성 사업에도 참여가 가능하다는 기대가 나온다. 국내 초소형 전기차 스타트업 쎄보모빌리티는 UAE 진출을 노린다. UAE 투자기업 마사리로부터 1억 유로(약 1430억원) 투자 유치 계약을 체결했다. UAE를 비롯해 중동시장을 겨냥한 전기차 개발에 나설 예정이다.
뉴빌리티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11월 이후 지능형로봇법 시행과 함께 실외 이동로봇의 인도 통행이 가능해짐에 따라 본격적인 자율주행 로봇 ‘뉴비’의 실외 배달 서비스 준비에 막바지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며 “여기에 네옴시티 실증사업 진행을 위한 준비로 경영진과 기술진들은 추석 연휴까지 반납한 채 사우디 현지에서 구슬땀을 쏟아내며 바쁜 일정을 보내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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