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말만 잘해도 인생이 바뀝니다”…한석준이 말하는 대화의 스킬[이코노 인터뷰]

책 ‘말하기 수업’ 저자 한석준 아나운서 인터뷰
코로나 이후 어색해진 대면 대화…중요해진 말하기 기술
“대화는 받아들이는 것”…오프라 윈프리·유재석의 경청의 힘 강조

한석준 아나운서.[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김정훈 기자]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일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적 능력, 말하기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워본 경험이 없다. 회사 면접이나 과제 발표, 소개팅 등 일상에서 말을 잘해야 하는 여러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당황하고 어려워하는 이유다. 

한석준 아나운서는 올해로 아나운서 경력만 25년째를 맞이한 베테랑이다. 지난해 8월 화법 내용을 담은 저서 ‘말하기 수업’을 출간한 이후 각종 유튜브 채널 출연, 강연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수천명의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어느새 ‘말하기의 달인’이 된 한 아나운서가 생각하는 훌륭한 말하기 기술이란 무엇일까. 

왜 ‘말하기 능력’이 중요한가

Q.어느새 경력 25년차 아나운서가 됐다.

-한국방송공사(KBS) 입사년도는 2002년인데 2년 전인 2000년부터 아리랑TV에서 아나운서 일을 시작했어요. 그래서 올해가 아나운서 일을 한 지 정확히 25년차죠. 제가 올해 50세가 됐으니 딱 인생 절반을 아나운서로 살았더라고요. 그동안 일로 만난 사람만 4000명이 넘어요. 개인적인 만남까지 더하면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죠.

Q.지난해 ‘말하기 수업’이란 책을 냈는데, 계기가 있었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주변에서 제가 그동안 아나운서로 일하며 체득한 말하기 방법에 대해 알려달라는 요청이 많았어요. 그래서 2020년부터 말하기 관련 강의를 시작했죠. 강연 이력이 쌓이다보니 주변에서 아예 강연 내용을 교재로 만드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 왔어요. 그런데 막상 강연 내용을 교재로 만들자니 좀 거창하게 느껴지고 부담도 됐어요. 그래서 아예 강연 내용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책 출판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한석준 아나운서가 지난해 8월 출간한 저서 ‘말하기 수업’ 표지.[사진 인플루엔셜]

Q.올해 또 책을 낸다고 들었다.

-‘말하기’가 필요한 상황은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남들 앞에서 말을 하는 프레젠테이션(PPT·발표) 등 연설류의 말하기, 두 번째는 지금 제가 기자님하고 진행하는 대화를 말하죠. 그런데 사람들은 대체로 이 두 가지 말하기 상황을 모두 어려워해요. 발표할 생각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사람이 많죠. 발표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또 직장 내에서 상사나 동료들과의 소통을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하기 수업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한 내용이 담겨있어요. 첫 번째 책 ‘말하기 수업’에서 이 두 가지 말하기 능력에 대한 부분을 다뤘고 지금 쓰고 있는 두 번째 책은 좀 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소통, 대화 등 이런 측면에서의 말하기 내용을 담을 예정이에요.

Q.말하기에 대한 강연 수요도 많고, 책 반응도 좋다. 사람들은 왜 말하기에 관심을 둔다고 보나. 

-코로나 때 어쩔 수 없이 말을 못하고 사는 시기가 있었어요. 이 시기에는 이메일과 메신저로만 주로 대화를 했죠. 그러다 코로나가 끝났는데, 갑자기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 너무 어색해진 거죠. 특히 코로나 기간에 대학생이 된 고등학생, 직장인이 된 대학생은 이런 어색함을 더 심하게 느껴요. 신분의 변화를 겪고 나면 새로운 인간관계와 상황이 펼쳐지는데 거기에 아예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거죠. 사실 사람들이 말하기를 통해 얻고 싶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인간관계예요. 사회에 나와보면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하게 되죠. 내 말하기 능력이 향상되고 인간관계가 원활해지면 결국 나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화술이나 인간관계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대화 필요”

한 아나운서는 ‘대화는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말을 하고,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야 하나’를 고민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의 문제라는 얘기다.
한석준 아나운서.[사진 신인섭 기자]

Q.‘대화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말은 듣는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해한다’, ‘인정한다’가 아니라 ‘받아들인다’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있어요. 과거에는 제가 선한 의도를 가지고 제대로 말을 하면 그걸로 내 역할은 끝났고 나머지는 상대방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듣는 사람에게 나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선 내가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하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또 어떤 단어와 화법 등을 구사해 생각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할까를 고민해요. 

우리가 많이 쓰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예로 들어볼게요. A앱은 정말 사용하기 편리하고, B앱은 창을 열기만 해도 화가 날 정도로 서비스가 엉망이에요. B앱은 사용자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거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고 볼 수 있어요. 설명서를 안 봐도 주요 기능을 쓸 수 있는 앱이 있고, 설명서를 보지 않으면 기능을 쓸 수 없는 앱이 있어요. 그러면 어떤 앱이 소비자와 대화를 잘하고 있는 걸까요. 대화 방식도 똑같아요. 받아들이는 사람이 이해를 잘할 수 있게 말하는 것이 훌륭한 대화법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주변에 보면 회사에서 상사가 어떤 얘기를 하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 못하는 직원들이 많잖아요. 이건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이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어요. 

Q.타인과의 대화에서 말하기 기술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보나.

-저는 예전부터 저 스스로 ‘본질주의자’라는 말을 많이 하고 다녔어요. 어떤 것이든 본질이 중요하지 본질을 감싸고 있는 껍데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변에 얘기해왔죠. 그런데 그게 굉장히 잘못된 생각인 것을 깨달았어요. 우리가 내뱉는 말로 얘기하자면 말에는 내용이 있고 형식이 있어요. 어떤 내용을 말하는가는 당연히 중요해요. 이때 이 내용을 ‘어떤 형식’으로 말하는가도 만만치 않게 중요해요. 하지만 저는 극단적으로 본질(내용)에만 치중했던 사람인 거죠. 저는 직업이 아나운서여서 말하는 방식(형식)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본질에만 집착을 했어도 대화를 풀어가는데 큰 문제가 없게 보였을 뿐이죠.

식당을 비유해서 얘기해볼게요. 아주 유명한 설렁탕 맛집이 있어서 방문했어요. 그런데 주방이나, 테이블 등 주변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요. 그리고 설렁탕이 나왔는데 그릇에 고춧가루가 묻어 있어요. 누가 봐도 이건 설거지를 똑바로 안 한 거죠. 이건 본질(설렁탕)이 아무리 좋아도 형식(위생)이 잘못된 사례예요. 그 설렁탕집을 다시 찾지 않는 사람이 많겠죠. 사람들은 형식이 잘못되면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당신의 얘기를 듣지 않으려 할 수 있어요. 

Q.외모도 나의 말하기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라고 보나.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요. 특히 옷차림은 신뢰감과 호감을 높여주죠. 제가 이렇게 말하면 주변에서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메타 CEO나 경제 유튜버 ‘신사임당’ 등 몇 명을 거론해요. 이들이 옷을 잘 입어서 말에 신뢰감이 더해진 것은 아니라고 저에게 반박이죠. 그런데 이들은 정말 매우 드문 사람들이죠. 이들처럼 단출하게 입어도 말에 신뢰감을 주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옷차림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예의의 표시예요. 훌륭한 화법의 시작은 단정한 외모에서 출발할 수 있어요.
한석준 아나운서.[사진 신인섭 기자]

Q.25년 동안 방송일을 하면서 ‘이 사람 화법 참 훌륭하다’라고 느낀 사람이 있다면.

-일단 화법 측면에서 보면 저는 말을 재밌게 하는 사람들이 늘 부러웠어요. 제가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 않거든요. 저랑 가깝게 지내는 MC 전현무씨나, 예전에 방송을 같이 했던 방송인 노홍철씨, 개그맨 지상렬씨 같은 사람들은 정말 말의 표현이 참신하고 좋아요. 대화의 영역에서 보면 저의 선배인 이금희 아나운서, 그리고 MC 유재석씨를 꼽고 싶어요. 이분들은 경청의 힘으로 상대방 마음의 벽을 무너뜨리고 내면에 있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끌어내요. 특히 유재석씨가 진행하는 방송을 보면 특별히 상대방의 말을 이끌어내기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느낌도 들지 않아요. 그냥 온몸을 다해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죠. 또 제가 정말 좋아하는 형인 MC 신동엽씨는 자기 얘기를 은근히 섞어가며 대화를 풀어가요. 내 얘기를 풀어놓으니 자연스럽게 상대방도 얘기를 하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죠. 

Q.해외 유명인 중에서 인상적 화법을 가진 인물을 꼽는다면.

-경청의 측면에서는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를 꼽아요. 어떤 유명인도 윈프리 앞에서는 별소릴 다 털어놔요. 그 사람만의 힘인 거죠. 말하기 영역에서는 버락 오바마(Barack Obama)를 꼽고 싶어요. 오바마는 일단 말하기 형식이 거의 완벽해요. 미국은 상류층이 구사하는 영어가 있어요. 특히 오바마는 아주 많이 배운 것 같은 고급 상류층 영어를 구사하는데 아마 대학에서 엄청난 노력 끝에 이 능력을 터득한 것 같아요. 또 오바마는 발성도 좋고 듣는 사람이 오해할 만한 여지가 없게 아주 신중한 표현들을 쓰면서도 비유를 굉장히 잘해요. 어떤 사람이 오바마 정도의 화법 능력을 갖고 있다면 어떤 직종이든 상위 1%에 올라갈 수 있을 거예요. 그 정도로 오바마의 말하기 능력은 전 세계에서 역대 최고라고 생각해요.

Q.앞으로도 한석준의 ‘말하기 수업’은 계속되나.

-지난 4년간 제 인터넷 강의 수강생이 7000명 정도 돼요. 오프라인 수강생을 포함하면 훨씬 많죠. 그런데 아직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대화, 말하기 등의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방송인으로 살면서도 말하기 강의, 그리고 인간관계를 리딩하는 코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또 올해는 하반기에 나올 책을 열심히 쓰고 발표에만 국한된 내용으로 된 전자책도 낼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종류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더 도와줄 수 있는 여러 활동을 해나갈 예정입니다.


‘말하기 코치’ 한석준의 원포인트 레슨 

Q.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할 때 너무 긴장을 많이 합니다. 긴장감을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요?

-적절한 긴장은 필요합니다. 경력이 오래된 저도 당연히 긴장을 해요. 오히려 저는 긴장은 안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긴장을 안하는 건 내가 정신을 똑바로 안 차리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리고 긴장감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연습 밖에 없어요. 발표 상황을 계속 시뮬레이션해서 연습하는 것이죠. 핸드폰을 앞에 두고 나를 촬영하거나 청중이 많은 그림을 앞에 놓고 말하는 연습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이런 식의 반복 과정을 통해 발표를 어느정도 잘 해낸 후 '내가 생각보다 잘하고 있다'라는 걸 느끼는 이 성공의 경험이 이 다음 발표를 훨씬 잘하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발표 도중에 너무 말이 빨라지고 있다거나, 얼굴이 새빨개졌다거나 한다면 심호흡을 해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어떻게 발표하다 말고 심호흡을 하나요'라고 얘기하지만 괜찮아요. 심호흡에는 1~2초밖에 안 걸려요. 사람들이 발표 도중 심호흡을 한다고 해서 특별히 이상하게 보지 않거든요.

Q.강연할 때 실제로 활용할 만한 팁이 있을까요?

-일단 얼굴과 신체가 따로 놀면 안 돼요. 내 몸통과 전신이 따로 놀아서도 안 됩니다. 쉽게 말해 내 시선부터 얼굴, 어깨, 몸통, 무릎은 모두 한 방향을 향해야 해요. 만약 왼쪽을 볼 거면 신체가 다 같이 그 방향을 향하게 서야 해요. 그리고 아마 말하기가 두렵고 긴장을 많이 하는 사람은 대체로 강단(Podium·포디움) 뒤에서 얘기할 거예요. 그때는 무대를 걸어 다닐 필요가 없어서 그냥 얼굴 시선 처리를 잘해야 해요. 얼굴과 시선이 함께 움직이면 됩니다. 또 너무 긴장된다면 스크린을 가리키는 포인터를 쥐고 있거나, 물을 한 병 들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나운서들이 큐 카드(Cue-card)를 들고 있는 이유도 마음이 한결 편해지기 때문이죠. 

Q.누굴 만나도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을까요?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만 알면 대화는 절대 끊길 수 없어요. 왜냐하면 나는 말을 안 해도 되거든요. 상대방이 답변할 테니 난 질문만 하면 돼요. 예를 들어 상대방이 커피를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러면 따지듯이 한 번 물어보세요. 신 맛과 구수한 맛의 차이가 뭐냐고. 상대방 취미가 독특한 것일수록 더 좋아요. 이런 취미들은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더 할 말이 많거든요. 

Q.자기소개를 갑자기 해야 하는 자리에서 당황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자기소개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제일 쉬운 방법은 과거-미래-현재 공식이 있어요. 예를 들면 ‘저는 아나운서고요. 스피치 강의를 주로 하고 있는 한석준입니다.’ 이게 과거죠. 그리고 ‘저는 앞으로 방송도 하고 말하기 관련 일을 더 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고요. 그걸 위해서 제가 현재는 이런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미래입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을 만나서 저는 이러이러한 교류를 하면서 즐거운 나날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게 현재예요. 이런 식으로 몇 가지 공식을 만들어서 답변을 거기에 맞춰 얘기하면 좀 더 수월한 소개를 할 수 있어요.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전청조, 항소심서 감형..."끝까지 용서 구하겠다"

2'한국판 마블' 무빙, 시즌2 나온다..."제작 초기 단계"

3한미사이언스, "4인 공동출연 재단은 임시주총서 중립 지켜야"

4美 법무부, 구글에 '크롬' 강제 매각 요청...왜?

5정부, 취약계층 복지·일자리에 95조 썼다

6외국인 노동자 3만명 사용 신청 받는다...제조업 2만명 '최다'

7대출 조이자 아파트값 '뚝뚝'...서울은 35주 연속 상승

8기술력 입증한 바디프랜드, ‘CES 2025 혁신상’ 3개 제품 수상

9SK스퀘어, 2000억 자사주 소각 나선다..."주주환원 나설 것"

실시간 뉴스

1전청조, 항소심서 감형..."끝까지 용서 구하겠다"

2'한국판 마블' 무빙, 시즌2 나온다..."제작 초기 단계"

3한미사이언스, "4인 공동출연 재단은 임시주총서 중립 지켜야"

4美 법무부, 구글에 '크롬' 강제 매각 요청...왜?

5정부, 취약계층 복지·일자리에 95조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