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그림 그리는 ‘철도 지하화’사업…부동산 개발 기지개 켜나
단절된 도시 잇는 장점 있지만…경제성 부족·부동산 급등 우려도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주요 선거마다 정치권에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철도 지하화’ 사업이 구체화하고 있다. 철도를 지하화하면 철도부지 상부 공간을 개발할 수 있는데, 사실상 공급이 멈춰있던 도심에 새로운 공간이 마련된다. 이 사업이 본격화하면 지역 개발을 견인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철도 지하화 사업 선정을 위한 지자체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고 7일 밝혔다. 정부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지자체가 마련·제시한 계획안을 평가해 선도 사업을 결정하고 내년부터 기본 계획을 수립한다는 방침이다.
지자체는 ▲사업 개요 ▲지하화 계획 ▲상부 개발 계획 ▲재무적 타당성 ▲기대 효과 등을 제시해야 한다. 국토부는 지하화 계획과 상부 개발 계획, 재무적 타당성을 중요하게 평가한다는 입장이다. 주변 지역 특성을 고려한 개발 범위와 토지 이용 계획, 지하 철도와의 수직적 연계, 기존 도시와의 수평적 연계 등에 관한 구상을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전망이다.
오송천 국토부 철도건설과장은 “철도를 지하화하는 데 필요한 사업비를 효율적으로 책정하고 상부공간을 개발해 전체 사업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상부 개발을 통해 충분한 이익이 나오지 않으면 지자체가 지하화 재원을 일부 부담해야 할 수 있다”고도 했다.
대통령, 국회도 철도 지하화 공약
철도 지하화 사업이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해당 사업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지난 1월에는 국회에서 ‘철도지하화 및 철도부지 통합개발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특별법은 지상 철도를 지하로 옮겨 시민 안전을 확보하고 선로로 단절됐던 도시의 연결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또 상층부에는 종합 개발 등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해당 공약을 제시하며 경쟁을 벌였다. 국민의힘은 철도 지하화를 통해 상부 공간과 주변 부지를 통합 개발하는 ‘미래형 도시공간’ 재창조를 강조했다. 민주당은 이 사업을 통해 지역 성장을 비롯한 ‘주거복합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성격은 다르지만, 철도를 지하화하고 그 부지를 개발하겠다는 생각은 같았던 셈이다.
총선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경기 수원을 방문해 “의도치 않았지만, 동서 간 고착화된 격차를 철도 지하화로 해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라며 “비슷한 문제를 겪는 다른 도시들에도 똑같이 말씀드리겠다”고 했었다. 국민의힘은 이를 통해 도시별 문화·스포츠 공간 지원, 지역 특색을 살린 공간 조성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에서 ‘철도 도심구간 지하화 정책’을 언급했다. 이 대표는 “과거 철도 근처가 발달했는데 요즘엔 쇠락하는 경향이 있다”며 “철도·역사 지하화를 추진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철도 지하화 사업이 진행될 수 있는 곳을 길이로 계산하면 약 550㎞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수도권(경인선·경의선·경의중앙선·경춘선·경부선) ▲부산(경부선) ▲대전(경부선·호남선) ▲대구(경부선) ▲호남(광주선·전라선) 등의 도심 구간이 있다. 여기에 서울 시내 2, 3, 4, 7, 8호선 일부 구역도 포함될 수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넓은 공간을 한꺼번에 개발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구간을 나눠 단계적으로 개발하더라도 국가적인 대규모 사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장기간에 걸친 사업으로 막대한 사업비용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지상철도 1km를 만드는 데 드는 순수 공사비는 250억원가량으로 평가되는데, 지하철도는 이보다 1.5배 많은 400억원에 이른다. 정부가 전국 철도 및 고속도로 지하화 사업과 관련해 예상하는 비용은 65조원 수준이다.
정부는 해당 사업을 위해 공공기관 채권(공사채) 발행을 통해 충당하겠다는 구상이다. 철도 지하화 대상 부지를 현물 출자하고 이에 대한 채권을 발행해 공사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후 상부 개발에 따른 이익으로 채권을 갚아나간다는 계획이다.
오송천 국토부 철도건설과장은 7일 정부세종청사 기자실에서 열린 백브리핑에서 “채권 회수 기간이 굉장히 길 것으로 생각하지만 딱히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 과장은 “지하 공사를 진행한 뒤 상부 부지 개발하고 나면 (채권 회수 기간이) 길어야 5~6년일 것”이라고 했다.
사업이 장기화하면서 개발 지역 인근 부동산 가격 급등 같은 부작용도 거론되고 있다. 철도 지하화 사업은 10~30년에 걸쳐 진행될 전망인데 그동안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GTX 개통으로 부동산 시장이 들썩였던 사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해당 사업이 쉽지만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철도를 지하화하면 단절된 도시가 연결된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현재 부동산 시장이 침체한 상황에서 민간사업자를 중심으로 부동산 개발을 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사업 진행과 별개로 지역 주민들에게 지나친 기대감을 줄 수 있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 같은 부작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147회 로또 1등 ‘7, 11, 24, 26, 27, 37’…보너스 ‘32’
2러 루블, 달러 대비 가치 2년여 만에 최저…은행 제재 여파
3“또 올랐다고?”…주유소 기름값 6주 연속 상승
4 정부,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키로…日대표 야스쿠니 참배이력 문제
5알렉스 웡 美안보부좌관 지명자, 알고 보니 ‘쿠팡 임원’이었다
61조4000억원짜리 에메랄드, ‘저주받은’ 꼬리표 떼고 23년 만에 고향으로
7“초저가 온라인 쇼핑 관리 태만”…中 정부에 쓴소리 뱉은 생수업체 회장
8美공화당 첫 성소수자 장관 탄생?…트럼프 2기 재무 베센트는 누구
9자본시장연구원 신임 원장에 김세완 이화여대 교수 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