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야후 사태’로 네이버가 잃은 것
[라인야후 사태 네이버가 잃은 것]①
‘한국’ 지우면서까지 라인 확장한 이해진…다시 고개 든 ‘국적 논란’
‘라인 타고 네이버 서비스 확장’ 계획 차질…일본선 사실상 불가능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우리가 매일 같이 쓰는 카카오톡이 사실은 중국 기업의 서비스였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으냐.”
한일 양국을 뜨겁게 달군 이른바 ‘라인야후 사태’가 최근 네이버가 지분을 지키는 방향으로 일단 결론 내려지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기자와 만난 정보기술(IT) 기업 고위 관계자는 ‘네이버가 라인야후 사태로 잃은 것’을 묻는 말에 이런 비유를 들었다. 이 인사는 네이버가 라인야후의 경영권을 지켰음에도 “잃은 게 너무 많다”고 평가했다.
사드 배치 후 한한령 등으로 중국이 보복에 나서자, 국내에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졌다. 미국 정부를 중심으로 ‘중국 IT 기업의 개인정보 탈취’ 의혹을 제기하고 제재했다는 점은 반중 감정이 국내서 더 깊게 뿌리내리는 계기가 됐다. 중국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상태에서 ‘국민 메신저’가 한국 기업의 서비스가 아니라고 알려지게 된다면 곧장 거센 반발이 나올 터다. 물론 카카오는 한국 기업이다. ‘라인야후 사태’로 네이버가 손실을 본 가장 큰 지점을 설명하기 위해 든 비유다. 그는 “미국의 틱톡 퇴출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라인야후 사태’로 대변되는 외교적 분쟁을 겪으면서 일본인들은 라인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든 기업이 어디인지를 널리 알게 됐다. 그간 일본인 대다수는 라인 앱을 ‘일본 앱’으로 인식해 왔다. 일본 내에선 이 때문에 “철석같이 믿은 앱에 배신당했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가 만들고 지금은 라인야후가 서비스하고 있는 메신저 앱 ‘라인’의 일본 내 위상은 한국의 카카오톡과 거의 비슷하다”라며 “네이버는 그간 일본 내 퍼져있는 혐한 감정을 경계, 라인을 일본 앱으로 인식하도록 노력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라인야후 사태로 라인을 만든 곳이 한국 기업이란 사실이 일본 내 널리 알려졌다. 이 지점이 네이버에 가장 큰 손실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혐한 감정에 묶인 라인
일본 내각부가 발표한 ‘2023 외교에 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6.4%가 ‘한국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한일 관계가 양호하지 않다’고 본 이들도 49.8%에 달했다. 2022년 10월에 시행된 직전 조사에선 같은 항목에 각각 53.7%와 67.3%를 기록했다. 상황이 나아지곤 있지만 여전히 혐한 감정은 국내 기업의 일본 진출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네이버는 이를 고려해 라인 앱 출시 후 몇 가지 과정을 거쳐 ‘일본 플랫폼’으로 자리 잡도록 했다. 문제는 라인야후 사태를 겪으면서 라인 국적이 알려졌고 곧장 혐한 감정과 묶이게 됐다는 점이다. 라인을 기반으로 일본 사업 확장을 노려왔던 네이버에 치명타가 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네이버 측은 다만 “인터넷 서비스 시장이 국경이 없다는 특성을 살려 라인 앱이 특정 국가가 아닌 ‘글로벌 앱’으로 자리 잡도록 해왔다”고 설명했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의 영향력을 기반으로 사업을 결제·금융·콘텐츠·모빌리티·커머스 등으로 넓혔다. 라인 역시 국민 메신저 지위를 이용해 뉴스·비대면 진료·뮤직·콘텐츠·쿠폰·쇼핑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라인야후의 경영권을 쥔 네이버는 라인 앱에 자사 서비스를 넣어 사업을 확장할 기회를 노려왔다. 실제로 네이버웹툰은 일본 내에서 ‘라인망가’로 서비스되고 있다. 네이버웹툰이 일본 내에서 라인망가로 서비스되는 건 단순히 브랜드 차용의 성격이긴 하다. 라인이 일본 내 글로벌 브랜드로 인지도가 높다는 점을 고려한 사업 전략이다. 라인망가는 라인야후의 포털 서비스인 야후와 협력, 웹 콘텐츠 사업 영역을 넓히기도 했다. 이런 사업적 기회가 라인야후 사태가 불거지며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라인 앱을 떠올린 건 지난 2011년 3월이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오사카 사무실에 있었던 이 GIO는 진앙과 거리가 먼 지역이었음에도 ‘빌딩이 흔들릴 정도’의 상황을 마주한다. 쓰나미가 몰아닥쳤고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터졌다. 문자·전화가 먹통이 됐다. 당시 가족·지인이 서로의 생사를 확인한 수단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서비스가 살아있던 온라인 소통 플랫폼이었다. 이 GIO는 일본에서 직접 재난을 겪으면서 소통에 초점을 맞춘 모바일 기반 온라인 플랫폼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 GIO가 이 구상을 구현하기 위해 찾은 이는 신중호 라인야후 최고제품책임자(CPO)다. 신 CPO는 2006년 네이버가 인수한 검색업체 ‘첫눈’의 창업자다. 둘의 의기투합은 동일본 대지진 후 3개월 만에 라인 공식 출시란 성과를 만들었다. 신 CPO는 라인 출시 이후로도 현지에서 사업을 이끌었다. 대외에서 그를 ‘라인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다.
당시 NHN재팬을 통해 출시된 라인은 역대급 재난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끊김이 없는 연락 수단’이란 이미지를 선점했다. 실제로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당시 라인은 구조 요청을 보내는 수단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연락망으로 활용됐다. 이후 ‘소중한 사람을 이어주는 서비스’란 이미지는 더욱 강화됐고 일본의 ‘국민 메신저’ 자리에 올랐다.
현재 라인의 일본 내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9600만명에 달한다. 일본인 10명 중 8명이 이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외에도 ▲태국 5500만명 ▲대만 2200만명 ▲인도네시아 600만명 등을 기록하고 있다. 월마다 108개국에서 약 2억명이 접속하는 앱으로, 한국 기업이 만든 가장 성공한 글로벌 플랫폼으로 불렸다.
네이버가 라인을 ‘글로벌 앱’으로 부른 까닭
라인 성공의 크기가 커질수록 ‘국적 논란’도 덩치를 키웠다. 이 GIO는 이에 지난 2016년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본사도 일본에, 직원 대다수도 일본인, 세금도 일본에 낸다. 라인은 일본 기업이다”라고 했다. 그런데도 ‘혐한 감정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는 일본 일부 매체들은 꾸준히 네이버와 라인의 국적 논란을 기사화했다.
이 GIO는 이런 논란이 라인에 사업에도 영향을 미치자 2019년 결단을 내린다. 일본 최대 포털 야후재팬을 운영하던 소프트뱅크와 협의해 라인과 야후재팬의 합병을 결정한 것. 이는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한 라인의 사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경영권을 사실상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양분하고 있지만, 라인야후를 네이버는 ‘타법인 출자 대상’으로 분류했고 소프트뱅크는 ‘자회사’에 포함했다. 네이버가 2021년 이후 라인야후를 ‘관계사’라고 불러왔던 이유다.
네이버는 지분법상 이익을 취하는 구조를 택한 건 당시 라인으로 적자를 보던 상황이 배경으로 꼽힌다. 반면 일본 시장에선 기업의 매출 규모를 중시하는 풍토가 있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의 이해관계가 일치해 이런 식의 합병 구조가 결정됐다는 게 업계 일각의 시각이기도 하다.
라인에 대한 국적 논란은 합병 후 수그러들었다. 이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든 건 2023년 11월 라인에서 약 51만9000건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서다. 네이버클라우드 협력사 PC를 타고 악성코드가 서버에 침투해 일어난 사고다. 다시 불거진 혐한 여론에 편승한 일본 정부는 ‘자본 관계 재검토’를 요구한다. 한국 정부의 대응과 네이버 물밑 협상 결과, 일본 총무성은 ‘라인야후와 네이버의 시스템 분리’ 수준에서 사안을 일단락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라인 앱을 한국 서비스로 인식하는 일본인들이 늘어났다.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 A씨는 “주변 지인 대다수가 라인을 쓰면서 네이버를 떠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라인야후 사태에 대한 많은 보도가 나오면서 서비스 국적에 신경 쓰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네이버 내부에선 “사실상 일본 사업 확장은 불가능하다”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신 CPO가 라인야후 사태를 겪던 중 사내이사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경영에 접근할 수 있는 채널도 대폭 줄었다. CPO 직위는 유지됐지만, 이사회가 전원 일본인으로 꾸려지게 됐다. 또 라인야후 서비스의 관리도 끊기게 되면서 당장 1000억원 규모의 매출 손실이 불가피하다. 일본은 물론 동남아 시장에서 라인을 기반으로 네이버 서비스 확장을 노리던 계획도 흔들릴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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