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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올스톱·경영권까지 흔들…재계는 ‘결사 반대’

[상법 개정안 논란]③
해외 투기세력 공격 급증
방어 수단도 같이 고민해야

한국경제인협회 김창범 상근부회장이 11월 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주요 기업 사장단 긴급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상법 개정안을 두고 재계가 ‘결사 반대’하고 있다. 재계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기업 경쟁력이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 11월 21일 ▲한국경제인협회 ▲삼성 ▲SK ▲현대차 ▲LG 등을 비롯한 16개 그룹 사장단은 상법 개정 추진을 저지하기 위해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이 주요 기업들과 공동 성명을 낸 것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시절인 지난 2015년 7월 이후 처음이다.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은 이날 성명 발표 취지에 대해 “저성장이 지속되는 한국경제의 불확실성을 완화하고, 성장동력을 되살리기 위해 기업들이 먼저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상법 개정으로 교각살우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

이들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추진되는 상법 개정에 대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많은 기업은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시달려 이사회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지고, 신성장 동력 발굴에도 상당한 애로를 겪을 것”이라며 “결국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훼손되고 우리 증시의 밸류 다운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업의 경영 합리화를 위한 사업 재편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소수 주주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 정비는 필요하지만, 현재 추진되는 상법 개정은 이른바 ‘해외 투기자본 먹튀’를 조장해 기업경영 전반에 상당한 차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김 부회장은 “물적 분할이나 합병 등 소수 주주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핀셋 접근이 필요하다”며 “상법 개정으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기업들이 전례 없이 위기를 강조하는 것은 지배구조를 흔드는 규제가 동시다발로 추진되면서 해외 투기세력의 공격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분석업체 인사이티아에 따르면 행동주의 공세의 목표물이 된 한국 기업은 2019년 8개에서 2023년 77개로 열 배 가까이 급증했다. 알파벳(구글), 메타,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이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보호 장치를 기반으로 경영에 집중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후 재계는 11월 29일 진행된 더불어민주당 주식시장 활성화 테스크포스(TF)-경제계 간담회에서 다시한번 상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민주당에선 진성준 정책위의장과 주식시장 활성화 TF(단장 오기형) 소속 의원들이, 재계에서는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상근부회장, 이호준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정우용 한국상장사협의회 정책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박승희 삼성전자 사장, 김동욱 현대자동차 부사장, 이형희 SK수펙스 커뮤니케이션위원장, 하범종 LG 사장 등 대기업 대표도 자리했다.

진 정책위의장은 간담회에서 상법 개정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재계의 우려를 반영해 개정안 내용을 일부 변경하더라도 상법 개정 자체는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 급선무라는 게 전문가와 투자자의 한결같은 요구였다”며 “금투세 시행 찬반과 관계없이 상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기에 당론으로 채택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기업 지배구조 관련 규제는 2020년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을 계기로 어느 정도 도입됐다”며 “그런데 4년 만에 상법 개정이 다시 논의되는 것을 두고 경제계 걱정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익 관점에서 규제보다는 적극적인 산업 진흥 정책이 필요하고 우리 경제의 본원적 경쟁력을 더 키워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도 많다. 민주당이 최근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최근 경제계의 걱정이 많다”고 덧붙였다.

재계가 상법 개정안에 결사 반대하는 이유 살펴보니

그렇다면 상법 개정안의 핵심 쟁점 중 하나인 ‘이사 충실의무 확대’에 대해 재계가 강력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계는 이사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방안이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 가속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경협은 지난 7월 회사법 전문가들을 초청해 ‘이사 충실의무 확대,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회사법 학자와 전문가들은 논란이 된 상법 개정안, 즉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계획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당시 류진 한경협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일부에서는 상법을 개정하면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 하지만, 과도한 사법 리스크로 기업인들은 신산업 진출을 위한 투자나 인수합병을 주저하게 되고 결국 기업 가치를 훼손시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기업 지배구조’ 때문에 한국 증시가 저평가된 만큼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이사 충실의무를 확대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강원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특유의 법·제도의 틀 내에서 주주나 투자자들이 내린 합리적 선택의 결과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설명했다.

높은 상속세와 법인세 등으로 회사가 번 돈을 주주가 가져가지 못한다는 것을 시장이 알기 때문에, 미래 주가 예측에 큰 폭의 할인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들이 미래 유망 사업에 투자하려 해도, 반기업 정서나 각종 규제로 인해 투자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결국 투자자들이 한국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저평가하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강 교수는 이런 법·제도 환경에서 이사의 충실의무까지 확대될 경우,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켜 국내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외면하게 만들고 코리아 디스카운트까지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회사법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상법에 이사의 주주충실의무를 넣으려면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차등의결권’ 같은 제도를 함께 도입해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포이즌필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발생하는 경우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미리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다. 차등의결권은 ‘1주(株) 1의결권’ 원칙의 예외를 인정해 경영권을 보유한 대주주의 주식에 대해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김지평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을 기피하는 분위기와 관련해 “미국 및 일본 등의 선진 지배구조 법제에서도 소액주주의 문제제기 가능성이 있지만 위와 같은 경영권 방어 수단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참고할 수 있다”며 “선진국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사법심사를 통해 해당 수단의 투명성 및 효율성을 적정하게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경영권 방어 수단이 직접적으로 투명하게 도입되지 않으면, 자사주 매입 등 우회적인 경영권 방어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 경우 불필요한 자금 소요 혹은 비용 지출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경영권 방어수단이 법제화되면 자사주 매입 등 우회적인 경영권 방어에 투입될 기업 자금을 시설·R&D 투자나 임직원 보상, 이해관계자 이익 증진 등에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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