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잃은 5대 은행…올해 ‘내부통제’ 남다른 각오
[새 각오 다진 금융사]②
작년 3분기까지 5대 은행 금융사고 53건
은행장 교체·내부통제 강화 조직 개편
[이코노미스트 김윤주 기자] 2024년 은행권을 강타한 이슈는 단연 ‘금융사고’다. 은행권에선 횡령·배임 등의 금융사고가 잇따르며 허술한 내부통제 시스템의 민낯이 드러났다. 지난해 초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논란으로 시작해, 우리은행에서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연루된 수백억원대 금융사고 등 크고 작은 사고가 계속 터지면서 신뢰를 잃었다. 이에 은행들에게 2025년은 어느 해보다 각오가 남다르다. 올해는 이미지 하락을 만회할 기회로, 은행은 물론 금융지주도 내부통제 강화와 인적 쇄신에 나섰다.
작년 5대 은행 금융사고 ‘53건’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금융사고는 총 53건이다. 각 사별로 살펴보면 KB국민은행 19건, NH농협은행 16건, 하나은행 8건, 우리은행 6건, 신한은행 4건 순이다. 이 중 100억원 이상 대형 금융사고 건수는 KB국민은행 3건, NH농협은행 3건, 우리은행 2건이다.
아직 지난해 4분기 집계가 끝나지 않았지만, KB국민은행은 올해 12월에도 총 147억원 규모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업무상 배임 2건, 외부인의 사기 1건이다. 우리은행 또한 4분기 중 발생했다고 공시한 금융사고도 있어, 추후 은행권의 금융사고 발생 건수는 더 늘어날 예정이다.
지난해 초에는 홍콩H지수 기초 ELS 손실 사태가 은행권을 덮쳤다. 중국경제 악화로 홍콩H지수가 급락하면서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상품에서 수조원대 손실이 났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배상비율을 30~65% 수준으로 결정하면서 은행들은 대규모 배상에 나섰다.
홍콩ELS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SC제일은행 등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이 판매한 상품이라 배상 규모도 상당했다. 은행권은 지난해 상반기 ELS 배상을 위한 충당부채를 1조4000억원 쌓으며, 순이익이 주춤하기도 했다.
이어 하반기에는 우리은행이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친인척에게 350억원가량 부당대출을 내준 혐의도 불거졌다. 금융감독원은 손 전 회장의 처남 김 모 씨가 우리은행에서 600억원가량 대출을 받았고, 이 가운데 350억원 상당이 손 전 회장과의 친분을 이용한 특혜성 대출이라고 판단했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부당대출 재발방지는 물론 대대적인 조직 쇄신에 나설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임 회장과 조병규 우리은행장 재임 중에도 불법 대출이 실행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내부 통제와 리스크 관리에 대한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장 대거 교체…인적 쇄신·조직 개편 단행
지난해 금융사고로 바닥 친 신뢰를 끌어 올리기 위해, 각 사들은 올해 남다른 각오로 쇄신에 나섰다. 사고가 발생한 은행 뿐 아니라 금융그룹 전체가 내부통제를 다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은 지난해 연말 인사와 조직개편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대규모 부당 대출 사건이 일어난 우리은행은 조병규 행장이 조직 쇄신을 위해 연임을 포기한다는 의사를 지난해 11월 말 일찌감치 밝혔다. 차기 은행장으로는 정진완 중소기업그룹 부행장이 올랐다.
정진완 은행장은 지난 31일 취임식을 갖고 임기를 시작했다. 정 행장은 취임 일성으로 ‘신뢰 회복’을 강조했다. 그는 “(형식적이 아닌) ‘진짜 내부통제’가 되어야만 신뢰가 두터워질 수 있다”며 “2025년은 우리은행이 다시 도약하는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정진완표’ 쇄신안도 내부통제 강화에 집중됐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연말 조직개편을 통해 내부통제 조직을 고도화해 자금세탁방지센터와 여신감리부를 본부급으로 격상했다. 감독·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준법감시실에 ‘책무지원팀’을 신설해 책무구조도 이행 등 책무관리 업무의 충실도를 높이기로 했다.
이에 더해 ▲준법감시 ▲금융소비자보호 ▲정보보호 ▲자금세탁방지 등 조직 간 사각지대 없는 내부통제 구현을 위해 담당 임원들로 구성된 협의체도 신설키로 했다. 지주와 은행 통합조직으로 운영하던 리스크관리그룹은 지주·은행 각 조직의 특성에 맞게 분리해 운영한다.
KB국민은행장에는 이환주 KB라이프생명보험 대표이사가 올랐다. 이 행장은 지난 2일 취임식에서도 ‘신뢰’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는 “단순히 ‘금융상품을 파는 은행’을 넘어 고객과 사회에 ‘신뢰를 파는 은행’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KB금융은 지주 및 계열사 내부통제 조직의 역할을 재정비하고 부서명을 ‘준법추진부’로 일원화했다. 보다 체계적이고 긴밀하게 내부통제 효율화를 추구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국민은행은 준법감시인 산하에 상시감시, 책무관리 전담조직을 별도로 설치해 금융사고 예방과 내부통제 관리체계를 더욱 촘촘히 하는 동시에 경영진의 내부통제 관련 책임을 더욱 강화했다.
지난해 수차례 금융사고가 발생한 NH농협은행도 새로운 은행장을 맞이했다. 신임 농협은행장에는 강태영 NH농협캐피탈 부사장이 올랐다. 강태영 행장은 지난 3일 취임식에서 “내부통제 강화와 금융사고 제로화를 실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나은행 역시 새 수장을 맞이한다. 전임 이승열 하나은행장이 그룹의 안정적인 경영관리와 기업가치 제고에 전념하기 위해 은행장 후보를 고사했다. 차기 하나은행장은 이호성 하나카드 사장이 맡게 됐다.
아울러 금융당국 또한 선제적이고 효과적인 내부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박충현 금융감독원 은행담당 부원장보는 지난해 16일 ‘은행권 내부통제 워크숍’에서 “감독당국과 은행권이 중대 금융사고 예방을 위해 마련했던 내부통제 개선대책이 안착돼 내년이 은행권 신뢰회복의 원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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