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분양 방식' 개발사업, '수분양자 보호장치' 필요한 이유[김기동의 이슈&로(LAW)]
노보텔 앰버서더 부산 선분양자들, 왜 손실 입었나
우선 순위 밀리는 수분양자들...보호체계는 전무

이 상황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사람은 누굴까. 어두운 시장 분위기를 감안하면 노보텔 앰배서더 부산이 높은 가격에 낙찰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선수익자인 대주단이나 시공사는 원금에 손실은 입을지언정 그래도 매각 대금은 분배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수분양자들은 우선수익권 순위에서 밀려 이미 납부한 분양대금을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제2, 3의 ‘수분양 피해자’를 막아라
이 사례는 국내 분양형 개발사업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선분양 방식이 가진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공사 목적물이 완성되기 전 분양계약을 체결하고, 사업 주체가 이를 통해 사업비를 집행하는 ‘선분양 방식’은 유사 시에 꼼짝없이 수분양자가 손해를 떠안게 된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사업주체의 자기자본이 부족하고, 재무투자자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플랫폼이 미비한 한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이러한 선분양 리스크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수분양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주택’과 ‘비주택’ 개발사업을 나눠 살펴봐야 한다.
우선 주택 개발 사업은 ‘주택보증분양’제도를 통해 수분양자를 보호한다. 사업주가 파산 등 이유로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보증기관이 해당 주택의 분양이행, 계약금·중도금 환급 등을 책임지는 제도다.
반면 비주택 개발 사업에서의 보호장치는 ‘분양관리신탁’이다. 신탁회사가 수탁 부동산의 소유권을 보전하고 분양대금을 신탁회사 명의로 수납·관리하는 방식이다.
분양 사업자가 건축물 준공을 완료하지 못하면 신탁부동산을 환가 처분해 분양대금을 수분양자에게 우선 반환한다. 분양관리신탁 계약에 “사업좌초 시 환급금의 우선수익자는 ‘수분양자’”라는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 탓에 우선 순위가 밀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기관은 시행사로부터 받아야 할 대출 원리금에 관해 온전한 담보를 확보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분양관리신탁’을 채택한 사업장에는 PF 대출이 기피되는 것이 실상이다. 그렇다 보니 사업 주체는 또 다른 신탁방식인 ‘토지신탁’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토지신탁은 수분양자 보호에 한계가 있다. 「건축물의분양에관한법률」 제4조 제2항에는 토지신탁의 경우 별도의 분양관리신탁 계약이 필요하지 않다고 규정돼 있는데, 이에 대한 해석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양관리신탁 계약에서 요구되는 ‘수분양자 우선수익권’과 같은 보호장치를 둘 필요가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결국 이 사업에서 수분양자는 ‘분양관리신탁 계약’의 경우와는 달리 우선수익자로 보호받기 어렵다. PF의 약정 대주들이 우선적으로 보호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러한 구조를 잘 모르는 이들은 분양주체의 대외적 이미지만 보고 사업의 건전성을 판단하기 마련이다. ‘분양관리신탁’은 시행사가 분양자이고, ‘토지신탁’에서는 신탁업자가 분양자가 된다.
통상 시행사보다 신탁업자의 재무구조가 건전한 경우가 많다. 수분양자 입장에서는 ‘사업이 중단되더라도 분양대금을 우선 환급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분양계약을 체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토지신탁방식은 분양관리신탁에 비해 수분양자들에게 대금반환을 우선적으로 보장하기 어렵다. 노보텔 앰배서더 부산을 선분양받은 많은 이들이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으로 제도의 개선이 따르지 않는다면 제2의, 제3의 동일한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수분양 안전장치 마련한 선진국들
선진국의 상황은 어떨까.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도 선분양 방식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운용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는 사업 주체가 수납된 분양수입금을 별도 예치 없이 사업비 충당이나 PF 약정에 따른 대출 원리금 상환에 우선적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위 국가들에서는 수분양자가 분양대금의 5~10%에 해당하는 계약금만 지불하고, 이는 제3기관에 예치돼 사업비로 전용되지 않는다.
특히 미국의 경우, 콘도미니엄 개발 시 대주단이 50% 이상의 선분양 비율을 요구하나 이는 사업비 확보목적이 아니다. ‘사업성 입증’을 위한 것이다. 선분양 비율이 높을수록 대출 이자율이 낮아지는 구조다. 이처럼 선진국에서는 대출기관이 담보권을 확실히 보장받아 수분양자의 자금 보호와 대출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국내 부동산 시장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수분양자 보호를 위해서는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 지난해 말 정부가 발표된 ‘부동산 PF 제도개선 방안’에는 현재 5% 수준인 자기자본비율을 2028년까지 20% 수준으로 증가시킨다는 계획이 담겼다. 국내 재무투자자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플랫폼도 마련돼야 한다.
선분양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위 선진국의 사례와 같이 분양수입금 사용을 제한하거나, 중도금 비중 축소 등을 통해 수분양자를 적극 보호해야 한다. 앞서 ‘분양관리신탁’과 ‘토지신탁’의 비교에서 보았던 신탁구조의 사각지대를 제거하는 등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아울러, 선분양 구조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줄이고 후분양 구조를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 후분양 PF 대출 보증 확대와 같은 제도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개선책은 시장 신뢰를 회복하고 부동산 개발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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