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키워드로 예측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미래 [스페셜리스트뷰]
- 럭셔리 브랜드 양극화 심화…‘하이 주얼리’ 나홀로 성장
오프라인 공간 중요성 커져…라이프스타일로 영역 확장

[이윤정 ‘언베일’ 저자·‘노블레스’ 전 편집장] ‘명품’이라 불리며 개인의 기호품으로 군림하던 럭셔리 브랜드 제품은 이제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안착했다.
럭셔리 브랜드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몇몇 브랜드가 매출에서 글로벌 톱 5위 안에 들 정도로 럭셔리 브랜드 시장에서 중요한 국가가 되었다. 글로벌 제품 출시 이전에 제품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테스트 마켓으로서의 위치도 공고히 하고 있다.
많은 럭셔리 브랜드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지난 30여 년간 성장세를 지속하던 럭셔리 브랜드 시장이 주춤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내외 경제 상황이 결코 녹록치 않은 요즘, 럭셔리 브랜드의 미래는 어떻게 진행될지 몇 가지 요소로 예측해본다.

진정한 ‘명품’만이 살아남는다
“요즘 럭셔리 브랜드 시장이요? 어렵죠.” 최근에 만난 모 럭셔리 브랜드 지사장의 말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던 럭셔리 브랜드의 경기가 예전과 다르다는 지표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모든 럭셔리 브랜드가 어렵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럭셔리 브랜드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현상은 최근에 벌어진 일은 아니다. 초고가의 제품은 여전히 잘 팔리고, 너무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가격대의 럭셔리 브랜드는 판매가 부진한 현상은 꽤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초고가의 제품이 잘 팔리는 이유의 하나는 그것을 구입할 수 있는 대상이 경제적인 상황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계층이기 때문이다. 초고소득층은 경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물건을 구입한다.
두 번째로 요즘 럭셔리 브랜드 중 거의 유일하게 성장을 하는 품목이 하이 주얼리라는 것도 한몫한다. 대개 럭셔리 브랜드 제품이 한 나라에 진출할 때는 일종의 패턴이 생긴다.
진입 초기에는 가방이나 신발 같은 가죽 액세서리, 이후에는 옷, 가구, 자동차 등의 라이프스타일 제품 그리고 하이엔드 시계와 하이 주얼리로 이어진다.
이는 가격이 낮은 순서가 아닌 품목에 대한 이해도가 비교적 쉬운 순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적합하다. 일상에서 가깝게 사용할 수 있는 품목부터 개인적이고 특별한 취향으로 옮겨간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하이 주얼리와 하이엔드 시계의 매출, 특히 하이 주얼리의 매출은 지난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다.
당시 중국 럭셔리 브랜드 시장이 완전히 봉쇄된 상황에서, 중국으로 갈 예정이었던 몇몇 하이 주얼리 제품이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판매 신장의 한 요소로 작용했다.
하이 주얼리는 각 제품당 한 피스씩밖에 만들지 않는다. 즉 다른 나라의 VIP가 구입을 해버리면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 하이 주얼리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부쩍 높아진 국내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이 주어진 것도 매출 상승의 한 요인이었던 셈이다.
최근에 톱 주얼리 브랜드가 우리나라 VIP를 대상으로 하이 주얼리 행사를 개최하는 횟수가 부쩍 늘어났다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글로벌 패션 전문 미디어 BOF와 매킨지가 발표한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전문가들은 2025년에 하이 주얼리의 성장 가능성을 4~6%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여타 품목의 성장세보다 높은 신장률을 예상한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30년 간의 럭셔리 브랜드를 경험한 고객들이 진짜 좋은 제품을 선별하는 ‘안목’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온 제품이라면 무조건 구입하던 시대도 있었고, 근사한 브랜드 네임에 아낌없이 투자하던 때도 있었지만 시장이 확대된 만큼 소비자도 성숙해졌다.
에르메스, 샤넬, 디올, 루이비통, 까르띠에, 티파니, 반클리프 아펠, 불가리, 부셰론, 프라다, 로로 피아나, 브루넬로 쿠치넬리, 몽클레르 등 매출이 좋다고 알려진 브랜드는 유명하고 가격이 높아서가 아니라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와 제품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같은 상황은 고급 화장품이라고 하면 으레 럭셔리 브랜드 화장품을 연상하던 몇 년 전과 달리, 전반적인 국내 화장품의 품질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많은 럭셔리 브랜드 화장품 매출이 전에 비해 상당히 저조한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좋은 제품’을 알아보는 소비자의 눈이 한층 예리해진 것이다. 심지어 국내 화장품은 가성비도 갖추고 있으니 럭셔리 브랜드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곤란한 시기이다.
우리는 흔히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명품(名品)이라 부른다. 럭셔리 브랜드가 명품이라고 불리게 된 연유는 명확하지 않다.
1990년대 초반부터 국내에 진출하기 시작한 럭셔리 브랜드를 하나의 용어로 정리하려는 과정에서 품질이 고급스럽고, 가격이 비싸며, 만듦새가 특별한 제품을 가리키는 적당한 단어로 선택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럭셔리 브랜드를 명품이라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범용화된 명칭임은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는 진짜 ‘명품’이라고 불릴만한 제품력과 디자인 그리고 견고한 브랜드 인지도를 갖추지 않는다면 시장에서 환영받기 어려울 것이다. 요즘의 양극화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 번의 클릭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이 필요해!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많은 럭셔리 브랜드의 고민은 “온라인에서 우리의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격에 맞느냐’는 것이었다. 디지털 플랫폼은 여전히 ‘대중적인’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판매한다고 위풍당당하게 오픈한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중 지금까지 유지되는 곳은 많지 않다. 이들이 겪은 오류의 하나는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단지 ‘제품’으로만 취급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디지털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럭셔리 브랜드 제품에도 럭셔리 브랜드의 ‘톤앤매너’(tone & manner)를 입히는데 더 공을 들였어야 한다는 점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면서 각 럭셔리 브랜드도 자사의 웹사이트를 통해 온라인 판매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지만, 모든 제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지 않음으로써 희소성을 강조하고, 웹사이트 환경에서도 브랜드의 이미지와 분위기를 풍기려는 노력을 한다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럭셔리 브랜드의 온라인 판매가 소위 ‘럭셔리 브랜드의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주로 서울, 강남, 백화점이나 부티크에서만 구입할 수 있던 럭셔리 브랜드 제품의 판매를 전국구로 확장시킨 것은 온라인 플랫폼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그럼에도 최근 몇 년 동안 서울의 청담동에는 굴지의 브랜드들이 플래그십 스토어를 연달아 오픈하고 있다. 플래그십 스토어는 제품만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브랜드의 역사와 비전을 총 망라하여 보여주는 곳이다.
일찌감치 자리잡은 루이비통 메종 서울,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까르띠에 메종 청담, 하우스 오브 디올에 이어 몇 년 전엔 샤넬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 가옥이 문을 열었고, 작년에는 오데마 피게 플래그십 스토어, 올 5월에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메종 1755 서울이 오픈했다.
각 플래그십 스토어는 파리나 뉴욕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넘어서는 위용을 자랑할 뿐 아니라 한국 문화와 예술적인 특징을 가미한 것이 주목할 만 하다. 2026년에는 티파니가 청담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 계획이라는 점에서 한국 시장이 갖는 중요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4년 여의 기간과 5억 달러(약 6850억원)를 들여 레노베이션 후 2023년 개장한 뉴욕의 티파니 더 랜드마크는 플래그십 스토어의 중요성을 설명하는데 필수적인 곳이다.
브랜드의 심장으로서 또한 뉴욕의 명소로서 활약하는 티파니 더 랜드마크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감행한 이유는 하나다. 당장의 캐시카우 역할 보다는 럭셔리 브랜드 고객이 원하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경험’이 가능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구입하려는 소비자에게는 한번의 클릭만으로는 도저히 충족되기 어려운 열망이 자리하고 있다. 시간을 절약하여 필요한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온라인 쇼핑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러나 럭셔리 브랜드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오프라인 공간에서 체험할 수 있는 정성스러운 서비스와 환대, 제품을 고르는 시간과 과정을 놓칠 수 없는 법.
각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제품을 전시하는 공간보다 VIP가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며 예술 작품을 둘러보고 가끔은 식사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넓게 마련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객단가’를 넘어서는 고급스럽고 독창적인 경험의 제공이라는 목적 때문이다.
인공지능(AI)과의 결합으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구입은 더욱 정교해지고 편리하게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온라인 플랫폼이 편리해질수록 ‘화면 안에서는 누릴 수 없는 품격있는 특별한 순간’을 제공하기 위한 오프라인 장소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은 ‘생필품’이 아닌 ‘기호품’이기 때문이다.

취향이 트렌드인 시대, 라이프스타일 제품의 약진
흔히 의식주라고 말한다. 사람이 일상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관심의 순서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외모를 다듬었으면 먹는데 좀 더 집중하고 그 이후에는 나를 둘러싼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다. 럭셔리 브랜드의 진출 품목이 가방, 옷에서 음식, 가구, 조명 등으로 이어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루이비통, 디올, 구찌, 조르지오 아르마니, 에르메스 등의 브랜드는 오래 전부터 라이프스타일 제품으로 확장을 시도했다. 펜디 역시 1987년부터 라이선스를 통해 가구를 소개해왔고, 2021년부터는 자사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종종 만나는 에르메스와 디올의 찻잔은 단지 주력 품목이 아니었을 뿐 오래 전부터 일상에 자리해왔다.
가구, 그릇, 커트러리, 타월, 에어팟 케이스에 이르기까지 리빙 아이템을 늘려가는 것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옷이나 액세서리로만 보여주기에는 부족하다는 인식도 있을 것이고, 품목이 늘어남으로 인한 판매 증진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또 하나 다종다양한 제품과 가격대를 통해 자사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접근성을 넓히는 요소로도 활용하고 있다. 이유를 막론하고 많은 럭셔리 브랜드가 특히 라이프스타일로 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매년 4월이면 밀라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가구 박람회인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패션 브랜드의 부스를 만나볼 수 있다. 일찌감치 박람회에 참가해왔던 펜디와 에르메스, 루이비통 외에도 돌체앤가바나, 로로 피아나, 프라다, 미우미우 등의 독특한 부스에는 패션 DNA가 가미된 리빙 제품을 보려는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샹들리에로 유명한 바카라, 이탈리아의 유명 부엌 시스템인 보피, 생활 가전 다이슨 등의 국내 매출이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엿볼 수 있다.
얼마 전 다이슨은 새로운 청소기 펜슬백 플러피콘의 첫 론칭 장소로 서울을 택했을 정도로 ‘한국 소비자의 피드백’에 진심이다.
리빙 전문 브랜드와 패션 브랜드 할 것 없이 ‘라이프스타일이야말로 개인의 취향을 보여주는 진정한 척도다’라는 암묵적인 정의에 몰입하고 있다.
패션 브랜드의 경우 대표 제품으로서 기억되기보다는 ‘하나의 스타일’로 규정되고 싶은 바램과 취향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강한 소비 트렌드와 맞물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흥미는 날로 높아질 것이다.

필자는 1993년부터 2023년까지 프리미엄 패션·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노블레스’에서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다. 럭셔리 브랜드가 국내에 진출한 초기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명품 시장의 성장과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봐왔다. 제45회 한국잡지언론상 기자 부문을 수상했고, 럭셔리 브랜드를 주제로 대학과 기업 등에서 강의했다. 현재 브랜드와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며 디엘(DL)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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