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들리는 공모주 시장]①
의무보유확약 강화에 흔들리는 ‘기관 단타 전략’
공모주펀드 자금 유출…줄어드는 수요예측 실탄

[이코노미스트 정동진 기자] 상반기 기업공개(IPO) 시장은 외형적으로는 활기를 띄었지만 자금 흐름과 투자심리 측면에서는 오히려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신규 상장 기업 수가 지난해보다 늘고 공모금액도 증가했지만 기관 수요예측 열기와 일반청약 참여는 예년보다 한풀 꺾였다.
특히 공모주펀드와 코스닥벤처펀드 등 관련 투자 상품은 수익률이 높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설정액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시장에서는 기관 수요예측이라는 IPO의 핵심 동력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증시에 상장한 기업은 총 38개사로 전년 동기(29개사) 대비 30%가량 늘었다. 공모금액 역시 2조2095억원으로 같은 기간 32.2% 증가했다.
공모주 관련 펀드들의 수익률도 고공 행진했다. 개선된 증시 흐름이 반영되며 공모주펀드의 누적 수익률은 8월 초까지 꾸준히 올라 5%대를 기록했다. 코스닥벤처펀드 역시 16%를 넘어섰다.
다만 수치만으로 시장을 낙관하기엔 섣부르다. 전체 공모금액의 절반 이상인 약 1조2000억원이 LG CNS 단일 딜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해 탄핵 정국으로 인해 데이원컴퍼니, 미트박스글로벌 등 일부 기업의 상장이 올해 초 몰린 점도 공모금 확대에 영향을 줬다.
확정공모가 흐름 역시 다소 뜨뜨미지근했다. IPO 공모가는 통상적으로 기관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결정되는데, 올해 상반기 신규 상장 기업 중 희망밴드 상단을 초과해 공모가가 결정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오히려 하단에 설정된 경우가 2건, 하단 미만도 6건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29개사 중 27개사가 밴드 상단을 초과하는 가격으로 공모가를 확정하고, 나머지 2건 역시 상단 수준에 맞춰졌던 모습과 대조된다.
이 가운데 공모주 관련 펀드에서는 자금 유출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공모주펀드의 설정액은 2024년 9월 4조2000억원에서 2025년 7월 말 기준 3조2000억원으로 1조원 가까이 줄었다. 코스닥벤처펀드는 더 낙폭이 크다. 2021년 1조2600억원까지 불어났던 설정액이 현재는 2600억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누적 수익률이 꾸준히 증가해왔음에도 자금 유출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모주펀드의 최근 5년 누적 수익률은 26%, 1년 수익률은 4.9%, 6개월 수익률은 4%를 기록하는 등 준수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코스닥벤처펀드 역시 최근 6개월간 12%에 이르는 수익률을 냈다. 그럼에도 해당 펀드들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는 흐름이 멈추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최근 공모주 시장에서 단기 수익률보다 미래 불확실성이 더 큰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현재의 높은 수익률은 과거 성과를 반영한 후행 지표일 뿐”이라며 “자금 유출은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시장의 선제적 대응으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업계에서는 특히 7월부터 시행된 IPO 제도 강화가 이 같은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고 보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부터 기관투자자 물량 중 30%를 ‘의무보유확약’ 기관에 우선 배정하도록 제도를 개편했다. 내년부터는 이 비중이 40%로 확대된다. 때문에 확약 비율이 낮은 기관은 공모주를 거의 배정받기 힘들어졌고, 일부 운용사는 공모주펀드 운용 자체를 재고하고 있다.
공모주 투자 전략을 유지하는 운용사들 사이에서도 방어적 대응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의무보유확약을 하면 공모주 물량을 확보할 수 있지만, 확약 기간 중 주가가 하락할 경우 펀드 성과에 타격을 받는다. 반면 확약을 걸지 않으면 사실상 배정받을 수 있는 물량이 거의 없다. 때문에 운용사들은 IPO 시장이 투자 효율이 떨어지는 구조로 변화했다는 판단 하에 공모주 편입 비중을 줄이거나 아예 다른 전략으로 운용 방향을 틀고 있는 모습도 감지된다.
공모주펀드에 대한 시장의 기대도 예전과 달라졌다. 상장 초기 수익률이 뚜렷하지 않고 경쟁 강도는 더 높아진 상황에서 신규 자금 유입은 정체되고 있다. ‘따상’ 기대가 어려워진 시장에서 공모주펀드를 매력적인 투자처로 보기 어렵다는 인식이 투자자 사이에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에 업계에서는 펀드 자금의 지속적인 유출이 기관투자자의 수요예측 참여 여력을 더욱 감소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공모주펀드가 기관 수요예측 참여의 주요 재원인 만큼, 펀드 설정액이 줄어드는 것은 곧 기관투자자의 투자 여력 위축으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위축 우려…불확실성 커지는 IPO 시장
실제로 개편된 제도가 시행된 이후 7월 한 달 동안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신규 상장사는 없었다. 일부 기업은 하반기 실적 발표 이후로 공모 일정을 연기했다. 이에 따라 하반기 IPO 시장 전반에 불확실성이 커지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다만 시장의 침체가 장기적으로는 체질 개선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가 어려워지면서, 더 이상 ‘묻지마 청약’에 기댈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내실이 부족한 기업은 외면받고, 펀더멘털이 탄탄한 기업에 자금이 집중되는 흐름이 뚜렷해질 수 있다는 평가다.
IPO 업계 관계자는 “국내 IPO 자체가 기관 수요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어 단기적으로는 시장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다만 정부가 모험자본 공급을 위해 힘쓰겠다는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IPO 관련 정책이 향후에는 조금 유연하게 적용됐으면 한다”며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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